예초기

매년 추석 전이면 사촌들과 우리 형제들은 고향 선산으로 몰려들었고 증조부모부터 모셔져 있던 산소는 예초기에 의해 깔끔하게 다듬어졌었다. 그러나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초기를 다룰 줄 몰랐던 탓이다. 나는 그렇게 십수년을 고향 산소에 들락거리다가 사촌들과의 갈등으로 부모님 산소를 파묘해 오면서 그 산소와는 인연을 끊게 되었다.
이후 괴산 도원리의 맹지를 돌보면서도 웃자란 들판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어쩌다 방문해준 고향 친구들의 몫이었다. 고향 친구들은 책상물림인 내가 무슨 예초기를 돌릴 수 있겠냐며 스스로 예초기를 둘러메곤 했었다.
그런데 10여 년전 티벳여행 도반이었던 전남대 교수가 자신은 예초기의 대가라며 호까지 예초로 지었고 집안은 물론 동네 잡초까지 혼자서 도맡아 깎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예초기 돌리는 일이 특정인의 전유가 아니라는 걸 내게 깨우쳐 주었다. 이후 나는 도원리에 가면 예초기를 스스로 걸머메고 풀을 깎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돌밭을 함부로 다루면서 툭하면 예초기가 고장나 멈추기 일쑤였다. 서툴고 지치기도 했지만 툭하면 고장나는 예초기를 수선소에 맡겨야 했기에 일의 능률은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수선소에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예초기 운용면에서나 기능면 모두에서 어느덧 전문가 수준에 올라와 있게 되었다.
1박 2일나 2박 3일 씩 도원리 맹지에 들러 일하면서 힘들긴 하지만 그 어느 국내 여행보다 뿌듯한 마음이다. 이는 아마도 일도 하지만 인근 초정약수탕에서 그때그때 피로를 풀어내는 것은 물론 몇 달 치의 생수를 길어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욱이 산수리 맹지가 숲과 냇물에 둘러싸여 있어 그 안 농막에서의 체류가 자연 치유를 안겨주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세 시간 운전의 도원리는 피곤하고 고달픈 일정이긴 하지만 치유와 보람의 여정이기도 하다.
박 의서 박 의서 · 2024-10-08 19:42 · 조회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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