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9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7
조회
142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아름다운 도시 수크레Sucre
19일차 : 1월4일
오늘은 시내 투어라서 느긋하다. 아홉시에 가이드와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서 아침도 여덟 시가 넘어서 먹는다. 아침 식사 후 일행이 모두 모여 걸어서 수크레Sucre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안 보아왔던 남미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1984에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UNESCO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니 그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날씨까지 맑아 시내 투어하기에는 그만이다. 도심의 플라자plaza 25 de Mayo를 돌아보고 가톨릭성당을 거쳐 개인 공원이었던 곳까지 돌아 본 후 한 식당에 들러 이곳 전통 음식으로 새참을 먹는다. 일년초에서 추출되어 백 퍼센트 자연산이지만 사카린saccharine 만큼이나 달디 단 스테비아stevia를 넣었는지 음식이 너무 달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새참이지만 아예 점심으로 배불리 먹어둔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이 식당,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건물도 매우 아름답고. 수크레Sucre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산이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토시Potosi 의 은광 탐사
20일차 : 1월 5일
남미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인이다. 물론 현지의 토속종교와 많이 복합된 신앙이긴 하지만. 오늘은 천주교 명절인 수태고지일인가 그렇다. 오늘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장식물을 다 걷어치우는 날이란다. 포토시Potosi 시가에서는 이날을 축하하는 밴드band의 퍼레이드parade가 있었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틈만 나면 먹고 즐기려 한다. 좋은 일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아침 6시 15분 전에 일행을 로비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로비에 나가니 리셉션 데스크reception desk도 썰렁하게 비어 있고 가이드는 밖에서 굳게 잠긴 호텔의 출입문을 두드리며 동동거리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6시 15전부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조치해 놓겠다던 가이드도 이제 나타나 난리법석이고 리셉션 데스크는 불조차 켜 있지 않은 상황이라니. 칭용과 바네샤가 차례로 나타나 기가 막혀한다. 밖에서 동동거리고 있는 가이드, 카리나의 지시대로 리셉션 데스크의 벨bell을 찾아 누르니 그제 서야 직원이 눈을 부비며 나타난다. 가이드 카리나는 어제 저녁에도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타났었다. 매리앤이 내게 헤어진 가이드, 유리를 미스miss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었다. 페루에서의 가이드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카리나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유리가 그립다는 뜻이다. 뭐든지 본인 할 나름이다.
결국 아침을 굶은 일행은 택시 두 대에 분승해서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서도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가게를 연 곳이 없다. 우리 일행은 아침을 쫄쫄 굶은 채 세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포토시로 이동했다. 푸노에서 수크레 이동할 때 버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일행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을 한다. 버스가 이번에 펑크 같은 것 없이 잘 가줘야 할 터인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길의 중간쯤에서 또 펑크가 났다. 일행은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포토시에 도착한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노천온천으로 간다. 택시로 한 시간여나 달렸을까? 야산의 둔덕위에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 물이 노천온천이란다. 적당히 따뜻해서 몸을 담그고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물이 깊고 넓어 사람들이 쉽게 들어가질 못한다. 때 마침 비도 내리고 편의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잠시 물에 들었다가 이내 모두 나온다. 원래는 한 시간 가량 머물 계획이었지만 서둘러서 호텔로 돌아오니 남은 일행이 놀라워한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고.
잠시 객실에서 쉰 우리 일행은 은광 탐사에 나섰다. 포토시는 은광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실제 영업 중인 은광에서 관광객들을 받아준다. 갱도의 깊이가 4천 미터까지 된다고 해서 좀 불안했지만 일행 중에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하는 수 없이 나도 따라 나선다. 광부와 똑 같은 복장으로 갈아입은 우리 일행은 한 시간 이상을 실제 갱도로 내려간다. 갱도 탐사는 생전 처음 해 보는 경험이지만 포토시 은광 탐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갱도 안에서 은광석도 실제 채집한 후 올라 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호텔에 돌아와 보니 푸노에서 헤어진 브랜트 커플Brant couple과 쥴리 커플Julie couple이 와 있다. 2-3일 만인데도 무척 반가워 포옹으로 호들갑을 떨며 서로 반긴다. 우리가 내일 가야할 코스를 이 두 커플couple은 거꾸로 돌아왔다고 했다.
저녁은 포토시 시내의 한 유명한 카페에서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 일행들이 모두 배고파 했지만 주문한 스테이크는 한 시간이나 잡담을 나눈 후에 나왔다. 오늘 저녁에는 바네샤가 와인을 사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칭용이 나서서 자기가 사겠단다. 가이드 카레나의 사촌 여동생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이름이 기셀라Gisela 라는 이 아가씨는 이탈리아에서 1년을 유학한 경험이 있어 이탈리아어가 유창하고 칭용 역시 이탈리아어를 1년 공부했다는데 제법 잘 한다. 3년 반이나 이탈리아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내가 이탈리아어를 제일 못한다.
일행이 시킨 스테이크 중에 우연히 내 것이 가장 멋진 모습으로 나왔다. 이 식당의 스페셜 메뉴special menu로 시켰는데 그게 적중한 것이다. 모두 내 스테이크에 군침을 흘린다. 고기의 양은 왜 이렇게 많은지. 푸노에서 부터 술 한 잔 할 때면 ‘위하여!’라는 구호를 가르쳐 줬더니 저녁때마다 술만 나오면 ‘위하여!’를 외쳐댄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위하여’는 힘이 차서 구호로서는 그만이다. 모두들 나보고 매번 선창하라고 해서 힘차고 분명하게 ‘위하여’를 우리말로 외치니 기분이 좋다.
볼리비아는 물가가 많이 싸다. 스테이크를 시켜봐야 우리 돈 7-8천원 내외이고 와인 한 병 역시 같은 값이면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저녁마다 파티를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분위기로 2주 이상을 가깝게 같이 여행을 하니 격의가 많이 없어졌다. 식탁에는 브랜트 커플Brant couple 일행의 가이드가 동석을 했는데 이 친구가 재미있다. 볼리비아는 한 남자가 여자를 네 명까지 거느릴 수 있다며 옆에 앉은 바네샤에게 밉지 않은 모습으로 들이댄다. 바네샤 역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 친구의 말을 거든다. 모처럼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고 와인까지 몇 잔 걸쳤더니 피곤과 졸음이 함께 몰려온다. 일행을 독촉하여 호텔로 돌아와 바로 잠에 떨어진다.
나 홀로 여행과 나 홀로 식당
21일차 : 1월 6일
소금사막 우유니Uyuni로 떠나는 날이다. 오전에 포토시 시내 관광을 했다. 아카이브archive 겸 박물관을 둘러봤는데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한 후 주조소의 역할을 한 곳이다. 스페인 점령자들은 포토시의 은광을 활용하여 이곳에 주조소를 세웠다. 당나귀들이 끄는 동력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증기와 전기를 이용한 시설들이 실제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이채로운 장소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박물관 관람을 끝낸 후 거기서 거기인 성당 한 군데를 더 거쳐 버스에서 먹을 점심 용 스낵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둘러본다. 예정대로 일행은 12시에 우유니 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뜻밖에 버스 안에 한국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분이 앉아 있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코이카KOICA 지원으로 도미니카Dominica에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두 달 일정으로 남미여행중이란다. 여자 혼자 대단하다. 짐도 달랑 배낭 하나다. 나중에 대화를 해보니 남미로 봉사오기 전에는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 강사를 했었다고 했다. 2월 중에 한국에 들어가면 강사자릴 다시 알아봐야 한단다.
버스는 6시간을 구불구불 달려 우유니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오늘은 저녁 먹고 호텔에서 쉴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막상 호텔에 도착해보니 시설도 부실하지만 인터넷이 안 된다. 나중에 식당에 가니 거기서 비로소 인터넷이 작동된다.
식당은 미국의 보스톤Boston에서 왔다는 크리스Chris라는 젊은 친구가 현지인과 결혼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칭용이 크리스가 보스톤에서 왔는지를 억양만 듣고 얼른 알아차린 것이다. 칭용이 보스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다국적 회사에 오랜 근무한 탓이란다. 그래도 지역별로 그런 정도의 다이어렉트dialect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 같은 경우는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 5년을 거주한 적이 있어 동부 발음과 남부 사투리의 차이 정도는 정확하게 집어 낼 수 있다.
칭용이 맥주를 한 병 시켜주어 마시고 있는데 먼저 와서 피자를 먹고 있던 바네샤가 호들갑을 떨며 소란을 피운다. 맥주를 그렇게 마구 따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맥주잔을 뺏더니 잔을 기울여 따라준다. 그래. 나는 클럼지 가이clumsy guy였지. 마누라가 옆에 있었어도 같은 핀잔을 들었을 거야.
나도 모처럼 피자를 시켜 저녁을 먹고 맥주 한 병 더 시켜 일행들과 어울려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랩탑 컴퓨터의 사진을 일행에게 보여주며 마누라 자랑, 아이들 자랑을 했더니 처음엔 관심 있어 하다가 금방 심드렁해 한다. 아, 그렇지! 누가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있겠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 자랑,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에 속하고 그래도 꼭 하고 싶으면 밥 사면서 그것도 심드렁하면 그 위에 웃돈까지 얹어주면서 해야 되는 게 세상 이치다.
그동안 2인1실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홀수여서 늘 독방을 썼었는데 오늘은 칭용이 내게로 붙어왔다. 실은 며칠 전부터 그런 시도를 계속해온 것을 내가 막았었는데 오늘은 결국 붙어온 것이다. 영국 친구 필립과 같이 한 방을 쓰며 지내는 것이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내가 코를 곤다는 것과 새벽 일찍 깬다는 것을 얘기했더니 괜찮단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앞으론 취직을 안 할 거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겠단다. 좋아하는 일이 무어냐고 했더니 역사 공부란다. 그것도 위크 리더쉽weak leadership에 관한 것이란다. 이를테면 고르바초프나 노태우의 리더쉽leadership이 권력 이양이나 민주화에 기여한 정도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 친구, 우리 역사나 현실 정치 사정에 관해서도 나보다 더 많이 꿰뚫고 있다. 나이를 물으니 59년 생 이라니 이제 쉰을 좀 넘긴 나이다.
나는 이런 와중에 또 잠에 빠져든다. 여행 중에 잠을 잘 들이는 것도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는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19일차 : 1월4일
오늘은 시내 투어라서 느긋하다. 아홉시에 가이드와 로비에서 만나기로 해서 아침도 여덟 시가 넘어서 먹는다. 아침 식사 후 일행이 모두 모여 걸어서 수크레Sucre 시내 구경을 나선다. 그 동안 보아왔던 남미 도시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1984에 도심 전체가 유네스코UNESCO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니 그 아름다움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날씨까지 맑아 시내 투어하기에는 그만이다. 도심의 플라자plaza 25 de Mayo를 돌아보고 가톨릭성당을 거쳐 개인 공원이었던 곳까지 돌아 본 후 한 식당에 들러 이곳 전통 음식으로 새참을 먹는다. 일년초에서 추출되어 백 퍼센트 자연산이지만 사카린saccharine 만큼이나 달디 단 스테비아stevia를 넣었는지 음식이 너무 달다. 11시가 넘은 시각이라 새참이지만 아예 점심으로 배불리 먹어둔다. 그런데 이 시간에 이 식당,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건물도 매우 아름답고. 수크레Sucre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아름답게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산이기 때문에 철저히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포토시Potosi 의 은광 탐사
20일차 : 1월 5일
남미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인이다. 물론 현지의 토속종교와 많이 복합된 신앙이긴 하지만. 오늘은 천주교 명절인 수태고지일인가 그렇다. 오늘을 기점으로 공식적으로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장식물을 다 걷어치우는 날이란다. 포토시Potosi 시가에서는 이날을 축하하는 밴드band의 퍼레이드parade가 있었다. 사람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틈만 나면 먹고 즐기려 한다. 좋은 일이다. 이 각박한 세상에.
아침 6시 15분 전에 일행을 로비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어 로비에 나가니 리셉션 데스크reception desk도 썰렁하게 비어 있고 가이드는 밖에서 굳게 잠긴 호텔의 출입문을 두드리며 동동거리고 있다. 기가 막힌 일이다, 6시 15전부터 아침 식사를 할 수 있게 조치해 놓겠다던 가이드도 이제 나타나 난리법석이고 리셉션 데스크는 불조차 켜 있지 않은 상황이라니. 칭용과 바네샤가 차례로 나타나 기가 막혀한다. 밖에서 동동거리고 있는 가이드, 카리나의 지시대로 리셉션 데스크의 벨bell을 찾아 누르니 그제 서야 직원이 눈을 부비며 나타난다. 가이드 카리나는 어제 저녁에도 약속한 시간보다 15분 늦게 나타났었다. 매리앤이 내게 헤어진 가이드, 유리를 미스miss하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었다. 페루에서의 가이드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었는데 카리나의 무성의한 태도 때문에 유리가 그립다는 뜻이다. 뭐든지 본인 할 나름이다.
결국 아침을 굶은 일행은 택시 두 대에 분승해서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터미널에서도 아침 이른 시간이라서 가게를 연 곳이 없다. 우리 일행은 아침을 쫄쫄 굶은 채 세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포토시로 이동했다. 푸노에서 수크레 이동할 때 버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일행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을 한다. 버스가 이번에 펑크 같은 것 없이 잘 가줘야 할 터인데.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길의 중간쯤에서 또 펑크가 났다. 일행은 실소를 금하지 못한다.
포토시에 도착한 일행은 호텔에 여장을 풀고 노천온천으로 간다. 택시로 한 시간여나 달렸을까? 야산의 둔덕위에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 물이 노천온천이란다. 적당히 따뜻해서 몸을 담그고 있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물이 깊고 넓어 사람들이 쉽게 들어가질 못한다. 때 마침 비도 내리고 편의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아 잠시 물에 들었다가 이내 모두 나온다. 원래는 한 시간 가량 머물 계획이었지만 서둘러서 호텔로 돌아오니 남은 일행이 놀라워한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왔느냐고.
잠시 객실에서 쉰 우리 일행은 은광 탐사에 나섰다. 포토시는 은광으로 세계적 명성을 가지고 있는 곳인데 실제 영업 중인 은광에서 관광객들을 받아준다. 갱도의 깊이가 4천 미터까지 된다고 해서 좀 불안했지만 일행 중에 안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하는 수 없이 나도 따라 나선다. 광부와 똑 같은 복장으로 갈아입은 우리 일행은 한 시간 이상을 실제 갱도로 내려간다. 갱도 탐사는 생전 처음 해 보는 경험이지만 포토시 은광 탐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갱도 안에서 은광석도 실제 채집한 후 올라 나오니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호텔에 돌아와 보니 푸노에서 헤어진 브랜트 커플Brant couple과 쥴리 커플Julie couple이 와 있다. 2-3일 만인데도 무척 반가워 포옹으로 호들갑을 떨며 서로 반긴다. 우리가 내일 가야할 코스를 이 두 커플couple은 거꾸로 돌아왔다고 했다.
저녁은 포토시 시내의 한 유명한 카페에서 스테이크를 시켜 먹었다. 일행들이 모두 배고파 했지만 주문한 스테이크는 한 시간이나 잡담을 나눈 후에 나왔다. 오늘 저녁에는 바네샤가 와인을 사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칭용이 나서서 자기가 사겠단다. 가이드 카레나의 사촌 여동생이 동행하고 있었는데 그 영향이 큰 것 같다. 이름이 기셀라Gisela 라는 이 아가씨는 이탈리아에서 1년을 유학한 경험이 있어 이탈리아어가 유창하고 칭용 역시 이탈리아어를 1년 공부했다는데 제법 잘 한다. 3년 반이나 이탈리아에서 거주한 경험이 있는 내가 이탈리아어를 제일 못한다.
일행이 시킨 스테이크 중에 우연히 내 것이 가장 멋진 모습으로 나왔다. 이 식당의 스페셜 메뉴special menu로 시켰는데 그게 적중한 것이다. 모두 내 스테이크에 군침을 흘린다. 고기의 양은 왜 이렇게 많은지. 푸노에서 부터 술 한 잔 할 때면 ‘위하여!’라는 구호를 가르쳐 줬더니 저녁때마다 술만 나오면 ‘위하여!’를 외쳐댄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위하여’는 힘이 차서 구호로서는 그만이다. 모두들 나보고 매번 선창하라고 해서 힘차고 분명하게 ‘위하여’를 우리말로 외치니 기분이 좋다.
볼리비아는 물가가 많이 싸다. 스테이크를 시켜봐야 우리 돈 7-8천원 내외이고 와인 한 병 역시 같은 값이면 즐길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일행은 저녁마다 파티를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분위기로 2주 이상을 가깝게 같이 여행을 하니 격의가 많이 없어졌다. 식탁에는 브랜트 커플Brant couple 일행의 가이드가 동석을 했는데 이 친구가 재미있다. 볼리비아는 한 남자가 여자를 네 명까지 거느릴 수 있다며 옆에 앉은 바네샤에게 밉지 않은 모습으로 들이댄다. 바네샤 역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이 친구의 말을 거든다. 모처럼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고 와인까지 몇 잔 걸쳤더니 피곤과 졸음이 함께 몰려온다. 일행을 독촉하여 호텔로 돌아와 바로 잠에 떨어진다.
나 홀로 여행과 나 홀로 식당
21일차 : 1월 6일
소금사막 우유니Uyuni로 떠나는 날이다. 오전에 포토시 시내 관광을 했다. 아카이브archive 겸 박물관을 둘러봤는데 스페인이 남미를 점령한 후 주조소의 역할을 한 곳이다. 스페인 점령자들은 포토시의 은광을 활용하여 이곳에 주조소를 세웠다. 당나귀들이 끄는 동력을 사용하던 시절부터 증기와 전기를 이용한 시설들이 실제 그대로 전시되어 있어 이채로운 장소다.
한 시간 반 정도의 박물관 관람을 끝낸 후 거기서 거기인 성당 한 군데를 더 거쳐 버스에서 먹을 점심 용 스낵을 준비하기 위해 시장을 둘러본다. 예정대로 일행은 12시에 우유니 행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뜻밖에 버스 안에 한국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분이 앉아 있다.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코이카KOICA 지원으로 도미니카Dominica에서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두 달 일정으로 남미여행중이란다. 여자 혼자 대단하다. 짐도 달랑 배낭 하나다. 나중에 대화를 해보니 남미로 봉사오기 전에는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 강사를 했었다고 했다. 2월 중에 한국에 들어가면 강사자릴 다시 알아봐야 한단다.
버스는 6시간을 구불구불 달려 우유니에 오후 6시에 도착했다. 오늘은 저녁 먹고 호텔에서 쉴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막상 호텔에 도착해보니 시설도 부실하지만 인터넷이 안 된다. 나중에 식당에 가니 거기서 비로소 인터넷이 작동된다.
식당은 미국의 보스톤Boston에서 왔다는 크리스Chris라는 젊은 친구가 현지인과 결혼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통하게도 칭용이 크리스가 보스톤에서 왔는지를 억양만 듣고 얼른 알아차린 것이다. 칭용이 보스톤에 본사를 두고 있는 한 다국적 회사에 오랜 근무한 탓이란다. 그래도 지역별로 그런 정도의 다이어렉트dialect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 같은 경우는 미국 동부의 뉴욕에서 5년을 거주한 적이 있어 동부 발음과 남부 사투리의 차이 정도는 정확하게 집어 낼 수 있다.
칭용이 맥주를 한 병 시켜주어 마시고 있는데 먼저 와서 피자를 먹고 있던 바네샤가 호들갑을 떨며 소란을 피운다. 맥주를 그렇게 마구 따르는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맥주잔을 뺏더니 잔을 기울여 따라준다. 그래. 나는 클럼지 가이clumsy guy였지. 마누라가 옆에 있었어도 같은 핀잔을 들었을 거야.
나도 모처럼 피자를 시켜 저녁을 먹고 맥주 한 병 더 시켜 일행들과 어울려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식사하면서 랩탑 컴퓨터의 사진을 일행에게 보여주며 마누라 자랑, 아이들 자랑을 했더니 처음엔 관심 있어 하다가 금방 심드렁해 한다. 아, 그렇지! 누가 남의 일에 그렇게 관심이 있겠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식 자랑, 마누라 자랑은 팔불출에 속하고 그래도 꼭 하고 싶으면 밥 사면서 그것도 심드렁하면 그 위에 웃돈까지 얹어주면서 해야 되는 게 세상 이치다.
그동안 2인1실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홀수여서 늘 독방을 썼었는데 오늘은 칭용이 내게로 붙어왔다. 실은 며칠 전부터 그런 시도를 계속해온 것을 내가 막았었는데 오늘은 결국 붙어온 것이다. 영국 친구 필립과 같이 한 방을 쓰며 지내는 것이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내가 코를 곤다는 것과 새벽 일찍 깬다는 것을 얘기했더니 괜찮단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앞으론 취직을 안 할 거냐고 물었더니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겠단다. 좋아하는 일이 무어냐고 했더니 역사 공부란다. 그것도 위크 리더쉽weak leadership에 관한 것이란다. 이를테면 고르바초프나 노태우의 리더쉽leadership이 권력 이양이나 민주화에 기여한 정도 등에 관한 것들이다. 이 친구, 우리 역사나 현실 정치 사정에 관해서도 나보다 더 많이 꿰뚫고 있다. 나이를 물으니 59년 생 이라니 이제 쉰을 좀 넘긴 나이다.
나는 이런 와중에 또 잠에 빠져든다. 여행 중에 잠을 잘 들이는 것도 건강한 여행을 위해서는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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