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울 엄마가 아니야!”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1:19
Views
148
울 엄마가 아니야!
낮에는 머리와 옷고름을 풀어헤친 채 산과 들을 마구 헤집고 춤추며 내달리던 여인. 밤에는 사랑방에 연결된 골방에 갇혀 끊임없이 음담패설을 주절대던 미친년. 이런 모습의 어머니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이를 비웃듯 지켜보는 이웃 동리 아이들에게 소년은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울 엄마가 아니야!”
이런 소년에게 슬픔보다는 창피함이 훨씬 더 커, 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년 아버지 역시 들로 산으로 날뛰던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사랑채에 붙어있던 골방에 가두었다. 소년의 어머니 역시 골방을 자기 방으로 알고 그 음침한 곳에서 홀로 지냈다. 남편은 물론 자식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어머니와 함께 하는 가족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를 골방에 숨겨 두고 갓 스물을 넘기자마자 시집가야 했던 소년의 큰 누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말리는 동네 사람들을 뿌리치면서 목 놓아 울고 또 울면서 시발택시에 올랐었다.
소년의 국민학교 3학년 가을 학기는 12월 중순이면 끝나던 다른 때와 달리, 그해 양력 섣달 그믐까지였다. 소년이 종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소년 집 바깥마당은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소년이 대문 안 안마당을 거쳐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랫목에 누워 있는 소년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그리고 이웃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랫목의 어머니는 탁한 가래를 뱉어내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들판을 마구 헤집고 춤추며 내달리던 어머니는 이렇게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은 출가한 큰딸 집에 가 있던 작은 딸을 마중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경부선 간이역 전동 쪽으로 몇 마을 떨어진 큰 개울가로 나가 누나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날 누나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소년은 이 일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날은 양력 섣달그믐이었으니 한겨울의 장례였다. 마침 폭설이 내려, 온 누리가 하얗게 뒤덮여 있는 동구 밖 길을 삼베 상복 위에 동아줄로 감싼 두건을 두른 소년은 종종걸음으로 상여 꽁무니를 뒤따르고 있었다. 천수를 다한 분들의 호상일 때나 하던 상여꾼들의 길놀이가 마흔 초반의 어머니 상여 길에도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집간 딸과 사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년은 슬픔보다는 상복을 입고 지팡이를 집고 상여를 따르는 모습을 남들이 주목하는 모습에 오히려 우쭐한 마음이었다. 철모르는 소년의 소영웅심리라고나 할까.
이런 소년 어머니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아 소년의 기억 속에만 아련할 뿐이다.
낮에는 머리와 옷고름을 풀어헤친 채 산과 들을 마구 헤집고 춤추며 내달리던 여인. 밤에는 사랑방에 연결된 골방에 갇혀 끊임없이 음담패설을 주절대던 미친년. 이런 모습의 어머니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이를 비웃듯 지켜보는 이웃 동리 아이들에게 소년은 연신 외쳐대고 있었다.
“울 엄마가 아니야!”
이런 소년에게 슬픔보다는 창피함이 훨씬 더 커, 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어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년 아버지 역시 들로 산으로 날뛰던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사랑채에 붙어있던 골방에 가두었다. 소년의 어머니 역시 골방을 자기 방으로 알고 그 음침한 곳에서 홀로 지냈다. 남편은 물론 자식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런 어머니와 함께 하는 가족은 없었다.
그러나 이런 어머니를 골방에 숨겨 두고 갓 스물을 넘기자마자 시집가야 했던 소년의 큰 누나는 서러움에 복받쳐 말리는 동네 사람들을 뿌리치면서 목 놓아 울고 또 울면서 시발택시에 올랐었다.
소년의 국민학교 3학년 가을 학기는 12월 중순이면 끝나던 다른 때와 달리, 그해 양력 섣달 그믐까지였다. 소년이 종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소년 집 바깥마당은 동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소년이 대문 안 안마당을 거쳐 안방으로 들어서자 아랫목에 누워 있는 소년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가족 그리고 이웃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랫목의 어머니는 탁한 가래를 뱉어내며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들판을 마구 헤집고 춤추며 내달리던 어머니는 이렇게 임종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소년은 출가한 큰딸 집에 가 있던 작은 딸을 마중하라는 아버지의 명을 받고 경부선 간이역 전동 쪽으로 몇 마을 떨어진 큰 개울가로 나가 누나가 돌아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그날 누나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고, 소년은 이 일 때문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켜볼 수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가 세상을 버린 날은 양력 섣달그믐이었으니 한겨울의 장례였다. 마침 폭설이 내려, 온 누리가 하얗게 뒤덮여 있는 동구 밖 길을 삼베 상복 위에 동아줄로 감싼 두건을 두른 소년은 종종걸음으로 상여 꽁무니를 뒤따르고 있었다. 천수를 다한 분들의 호상일 때나 하던 상여꾼들의 길놀이가 마흔 초반의 어머니 상여 길에도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었다. 시집간 딸과 사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년은 슬픔보다는 상복을 입고 지팡이를 집고 상여를 따르는 모습을 남들이 주목하는 모습에 오히려 우쭐한 마음이었다. 철모르는 소년의 소영웅심리라고나 할까.
이런 소년 어머니는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아 소년의 기억 속에만 아련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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