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8/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1:13
Views
162
엉덩이에 뿔 난 송아지

중학생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억지로 등교했다. 등교 후 수업이 시작될 무렵 영어 선생이 찾는다는 급우의 전갈을 듣고 중학생은 교무실로 갔다. 중학생을 보자 영어 선생은 교무실 복도로 나오더니 영어 참고서 「The exercise Book in English」를 소년에게 주면서 말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책을 건네주며 영어 선생은 중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까지 했다. 중학생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영어 선생이 중학생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지는 미처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학교로 전근 가는 영어 선생의 주소도 모르고 있으니 주소라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오전, 중학생은 이임하는 영어 선생의 환송을 위해 조치원역으로 나갔다.

“어려울 때 찾아와라.”

영어 선생의 이 말에는 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네가 내 기억 속에 가장 많이 남는다.”

는 말도 감동적이었다. 비록 떠나가는 분이었지만 소년은 영어 선생이 정말 좋았다. 공부 잘 했다고 주는 우등상을 한 아름 안아 드는 것보다도 몇 배는 더 좋았다. 소년은 가지고 있는 비밀 모두를 영어 선생에게 털어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도 전혀 부끄러울 것 같지 않았다. 역에서 돌아오는 길의 논 가에는 백로가 한가롭게 노닐고, 제비는 푸른 하늘을 마음껏 휘젓고 있었다. 산벗꽃과 진달래는 이산 저산 여기저기서 울긋불긋 서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온 누리에 봄이 완연해진 것이다.

소년에게는 진정한 사표로 남은 스승도 있었다. 소년 인생의 긍정적인 부분은 모두 이분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담임이던 이분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촌놈에게 거의 매일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당시 막 개봉된 벤허와 같은 영화 얘기도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년에게 긍정 마인드와 적극적인 태도를 일깨워 준 일이다. 매일 아침 해준 이 담임의 훈시는 소년의 가슴을 뛰게 했고 그것은 평생 소년의 나침판이 되었다.

소년의 중학생 담임은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촌놈, 촌놈하며 학생들을 나무랐다.

“너희들 욕할지 몰라도 그까짓 거 욕하려면 해라. 솔직히 말해서 너희들은 촌놈이야. 촌놈!”

물론 우리는 촌놈이다. 그러나 담임 얘기는 촌에서 살아서 촌놈이란 뜻이 아니고 무엇이든지 도시 아이들에 비해 뒤떨어지고 열등하다는 의미로 쓰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랑만 하는 선생! 학생들을 비하하는 선생!’

소년은 마음으로 스승을 이처럼 공격했다.

그러나 소년은 곧바로 반성했다.

‘학생이 스승을 공격하다니! 네가 더 나쁜 놈이지!’

윤 필중. 소년의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이다. 그 선생이 평소에 잘하는 말이 있다.

“여자는 남자 갈빗대 하나.”

그 선생 발언 요지는 여자는 약하고 의존적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그래서 여자를 상대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얘기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동급생 진호가 그 선생 얘기를 했다.

“응, 윤 필중. 그거. 그전에 우리 학교 영어 가르치던 유 인숙 선생의 처녀를 빼앗은 나쁜 놈이야.”

소년은 놀랐다. 평상시 늘 여자를 비하 한데다가 결혼까지 한 몸으로 그런 짓을 하다니!

진호 얘기는 더 계속된다.

“그때, 유 선생이 윤 선생 보고 이혼을 요구했다는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더냐. 윤 필중은 재미로 한 건데. 그리고 윤 선생 부인이 잘 생겼다는군.”

‘속 다르고 겉 다르시군.’

소년은 씁쓸하게 뇌까렸다.

대의원회의에서는 수업을 무단히 빼먹지 말아 달라는 등의 중학생들 요망사항에 대한 선생들의 답변이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요망사항은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선생들은 모든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하려고만 했다. 대의원회에서 소위 연구과장 선생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목동이 소에게 물을 먹이려고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다. 그러나 소가 물을 안 먹으면 그때는 어쩔 도리가 없다.“

이 발언 중에는 사제 간의 정은 한 줌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선생의 주장에 대해 중학생은 이렇게 답변했다.

”여기 기름진 땅이 있습니다. 여기에 틈실한 씨앗을 뿌리고 정성들여 가꾸어야만, 충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씨앗도 뿌리지 않고 가꾸지 않는다면 잡초만 무성하게 자랄 것입니다. 농부는 이 기름진 땅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루한 조회가 끝나고 학생들은 운동장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쓰레기를 줍기 위해 흩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우람한 체격의 체육선생이 중학생에게 다가와 중학생을 사정없이 낚아챘다. 중학생은 영문을 모른 채 운동장에 나뒹굴었다. 이후 중학생은 온몸을 무차별로 가격 당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체육선생은 분이 덜 풀렸는지 중학생을 교무실로 끌고 갔다. 모든 선생들이 함께 하고 있는 교무실에서도 중학생은 무차별 린치를 당해 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어야 했다. 그러나 선생 중 그 아무도 이런 상황을 제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숨죽인 모습으로 당해 싸다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중학생은 여전히 왜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중학생은 학교 교정의 언덕에 앉아 아픔을 달래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려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비로소 중학생의 마음 한구석에 분노가 솟구쳤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면, 이 깡패 체육선생에게 오늘 당한 수모를 반드시 갚아주고 말리라!’

중학생은 3학년 시절에 희망이라곤 없었다. 형은 입대해서 훈련 중이었고 아버지는 중학생에게 실업학교 진학을 못 박아놓고 있었다. 이런 영향 때문인지 중학생은 진학을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생은 단 한 장의 고등학교 입학원서도 사지 않았다. 중학생은 겨우 학교에서 공동 구입한 5년제 공업고등전문학교 입학원서를, 그것도 담임의 권유로 생경하기만 한 토목과를 선택해 원서를 써냈을 뿐이다. 당시 이 공업고등전문학교는 경쟁률이 매우 높았고, 또 고등학교 입시 이전에 특차로 시험을 볼 수 있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소년은 이 시험에 합격되었다. 그러나 특차 시험에 같이 합격했던 같은 중학교의 다른 학우들은 이후 당시 대전 소재의 명문 고등학교 시험에 따로 응시해 학교를 옮겼다. 그러나 중학생은 합격 후 교감 선생의 강력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다른 고등학교에는 일절 응시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시를 이렇게 포기한 중학생은 이후 얼마나 이를 후회했는지 모른다. 물론 중학생의 가정 사정을 무시한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토목은 담임이 고등학교 때 공부한 과목이었고 실제로 공업계 전공으로는 진로가 매우 유망한 분야였다. 당시 선망의 대상이었던 기계과와 전기과 졸업생들은 대부분 현장으로 취업한 데 반해 토목과 졸업생들은 상당수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기관과 이사관 등 고위직까지 승진했다. 그 밖에 다른 친구들은 기술사를 취득해 토건회사의 임원이 되거나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학교수로 진출하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더라도 문과가 더 적성에 어울리는 중학생에게 이과는 지나치게 빠른 진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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