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15/새벽길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1:02
Views
114
새벽길
청년은 새벽 두 시에 깨거나, 세 시에 깨거나 혹은 네 시에 깨거나 깊은 수면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늘 꿈속에서 깼다. 그것도 혼란과 혼돈 속을 헤매던 와중이다. 매일 새벽, 청년은 계모가 급하게 재촉해 깨우는 바람에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이후 잠시 졸며 앉아 있다가 밖에 나가 대충 세수한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새벽밥을 먹는다.
청년이 새벽밥을 허둥지둥 먹고 밖으로 나서니 눈이 한 치는 쌓여 있다. 청년은 눈 오는 날을 좋아했다. 이런 날은 새벽길에서 환희를 느꼈다. 그건 순결한 처녀성을 마주한 듯한 환희다. 그때 청년은 최초의 개척자인 것이다. 해묵은 상념들이 창백한 달빛 속으로 부서져 내릴 때 청년은 모두를 동반한 채 홀로 길을 재촉한다. 달마저 아직 휘영청 밝은 새벽길이다.
통근 열차는 청년에게 유일한 공부시간이자 공간이었다. 기차 안 등불은 희미하기가 이를 데 없어 청년은 기차 통학으로 인해 안경을 끼게 되었다. 청년의 기차 통학은 정기권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닌 배곯이 여정이었다. 학교와 대전 역을 오가면서 호떡집과 막걸리집이 즐비하였건만 한 눈조차 팔 수 없었다. 주머니에 동전 한 잎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밥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학교에서 늦은 밤 귀가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오죽하면 쇳덩이나 돌덩이도 녹일 수 있겠다고 했겠나. 청년은 이때 이후 평생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버릇이 생겨 창피할 때가 많다.
청년은 옅은 잠에서 정신없이 깨어났다. 통근 열차는 어느새 조치원 역을 지나치고 있었다. 청년은 으스스함을 느꼈다. 전동 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책가방을 챙기고 천안에서 통학하는 같은 과의 이 기영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고 열차에서 내렸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청년은 대전 역에서부터 의자 하나를 독차지하고 누워서 올 수 있었다. 전동 역에서 항상 한 무더기로 내리던 학생들이 앞에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잰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가 보았더니 동행자가 없다. 기철이가 같이 탔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청년은 혼자서 밤길에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걸음이 빨라졌다. 빠른 속도로 달리듯 걷다가도 혹시 뒤에 누가 오나 해서 되돌아보아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녘에 시커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붉은대기 고개 마루에 올라오니 하늘은 붉은 열였새달을 산 사이에 뱉아 놓는다. 머리가 뾰족해졌다.
아마 시속 8km는 되리라. 잰걸음으로 고개를 다 내려왔을 때 갑자기 정적을 깨고 커다란 그리고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고개가 180° 돌아갔다. 발은 멈춰졌고 등허리엔 식은땀이 쫙 흘렀다. 100여 미터 떨어져서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여자인 것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했다. 걸음의 속도를 줄였다. 같이 가려는 의도에서. 그러나 냇물의 다리를 건너도 뒤 엣 사람은 따라오지 못한다. 보평을 지났을 땐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보평이 행선지였던 모양이다. 청년은 콧노래를 불렀다. 내일은 혼자서 통근차를 탔던 무용담을 친구들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녁 통근차에 올랐더니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단추를 풀었다. 너무 과로했던지 잠에 떨어졌었나 보다. 깨어보니 내판역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청년은 앞에서 넷째 칸 아니면 다섯째 칸에 타고 있다가 조치원을 지나면 맨 끝 칸으로 내려오곤 했다. 오늘은 끝에서 넷째 칸쯤 되는 곳에 와보니 젊은 부인네들이 밝고 시원한 나들이 옷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장고 치며 즐거워한다. 한 청년은 트럼펫을 불고 있다. 청년도 같이 뛰어들어서 춤추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린애 등에 업고 잘도 논다.”
청년의 말에 기철이가 응수했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런 것에 굶주려 있어.”
마음속엔 오직 안도감만이 있을 뿐이다. 매주 돌아오는 토요일마다. 느끼는 일이다. 우선 내일도 아침 해가 동녘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지칠 때까지 잠을 자야지. 그리고 푹 쉬어야지. 밀린 숙제도 해야겠고, 닭장 청소도 해야겠다.
가만있어 보자. 어째서 모든 사람들은 청년을 보고 이렇게 묻는 건가?
“기차 통학하기 어렵지?”
어려운 것은 청년보다는 새벽과 저녁 늦게 밥상 차려주는 계모인데 어째서 그들은 계모의 수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는 것인가. 이건 모순된 일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계모의 가슴은 엄청 쓰라리리라.
청년은 계모를 위로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청년은 새벽 두 시에 깨거나, 세 시에 깨거나 혹은 네 시에 깨거나 깊은 수면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늘 꿈속에서 깼다. 그것도 혼란과 혼돈 속을 헤매던 와중이다. 매일 새벽, 청년은 계모가 급하게 재촉해 깨우는 바람에 무거운 몸을 간신히 일으킨다. 이후 잠시 졸며 앉아 있다가 밖에 나가 대충 세수한다.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새벽밥을 먹는다.
청년이 새벽밥을 허둥지둥 먹고 밖으로 나서니 눈이 한 치는 쌓여 있다. 청년은 눈 오는 날을 좋아했다. 이런 날은 새벽길에서 환희를 느꼈다. 그건 순결한 처녀성을 마주한 듯한 환희다. 그때 청년은 최초의 개척자인 것이다. 해묵은 상념들이 창백한 달빛 속으로 부서져 내릴 때 청년은 모두를 동반한 채 홀로 길을 재촉한다. 달마저 아직 휘영청 밝은 새벽길이다.
통근 열차는 청년에게 유일한 공부시간이자 공간이었다. 기차 안 등불은 희미하기가 이를 데 없어 청년은 기차 통학으로 인해 안경을 끼게 되었다. 청년의 기차 통학은 정기권 하나만 달랑 들고 다닌 배곯이 여정이었다. 학교와 대전 역을 오가면서 호떡집과 막걸리집이 즐비하였건만 한 눈조차 팔 수 없었다. 주머니에 동전 한 잎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벽밥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학교에서 늦은 밤 귀가하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분간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배가 고팠다. 오죽하면 쇳덩이나 돌덩이도 녹일 수 있겠다고 했겠나. 청년은 이때 이후 평생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버릇이 생겨 창피할 때가 많다.
청년은 옅은 잠에서 정신없이 깨어났다. 통근 열차는 어느새 조치원 역을 지나치고 있었다. 청년은 으스스함을 느꼈다. 전동 역에 기차가 도착하자 책가방을 챙기고 천안에서 통학하는 같은 과의 이 기영에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고 열차에서 내렸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청년은 대전 역에서부터 의자 하나를 독차지하고 누워서 올 수 있었다. 전동 역에서 항상 한 무더기로 내리던 학생들이 앞에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잰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가 보았더니 동행자가 없다. 기철이가 같이 탔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청년은 혼자서 밤길에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걸음이 빨라졌다. 빠른 속도로 달리듯 걷다가도 혹시 뒤에 누가 오나 해서 되돌아보아도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북녘에 시커먼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붉은대기 고개 마루에 올라오니 하늘은 붉은 열였새달을 산 사이에 뱉아 놓는다. 머리가 뾰족해졌다.
아마 시속 8km는 되리라. 잰걸음으로 고개를 다 내려왔을 때 갑자기 정적을 깨고 커다란 그리고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고개가 180° 돌아갔다. 발은 멈춰졌고 등허리엔 식은땀이 쫙 흘렀다. 100여 미터 떨어져서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여자인 것 같기도 하고, 남자 같기도 했다. 걸음의 속도를 줄였다. 같이 가려는 의도에서. 그러나 냇물의 다리를 건너도 뒤 엣 사람은 따라오지 못한다. 보평을 지났을 땐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보평이 행선지였던 모양이다. 청년은 콧노래를 불렀다. 내일은 혼자서 통근차를 탔던 무용담을 친구들에게 들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저녁 통근차에 올랐더니 온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단추를 풀었다. 너무 과로했던지 잠에 떨어졌었나 보다. 깨어보니 내판역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청년은 앞에서 넷째 칸 아니면 다섯째 칸에 타고 있다가 조치원을 지나면 맨 끝 칸으로 내려오곤 했다. 오늘은 끝에서 넷째 칸쯤 되는 곳에 와보니 젊은 부인네들이 밝고 시원한 나들이 옷 차림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고, 장고 치며 즐거워한다. 한 청년은 트럼펫을 불고 있다. 청년도 같이 뛰어들어서 춤추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어린애 등에 업고 잘도 논다.”
청년의 말에 기철이가 응수했다.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런 것에 굶주려 있어.”
마음속엔 오직 안도감만이 있을 뿐이다. 매주 돌아오는 토요일마다. 느끼는 일이다. 우선 내일도 아침 해가 동녘에서 솟아오를 것이다. 지칠 때까지 잠을 자야지. 그리고 푹 쉬어야지. 밀린 숙제도 해야겠고, 닭장 청소도 해야겠다.
가만있어 보자. 어째서 모든 사람들은 청년을 보고 이렇게 묻는 건가?
“기차 통학하기 어렵지?”
어려운 것은 청년보다는 새벽과 저녁 늦게 밥상 차려주는 계모인데 어째서 그들은 계모의 수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는 것인가. 이건 모순된 일이다. 이런 걸 생각하면 계모의 가슴은 엄청 쓰라리리라.
청년은 계모를 위로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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