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2/아프리카 트러킹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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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아프리카 트러킹

 

전쟁 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자갈길 비포장 국도를 흙먼지 날리며 내달리던 GMC 트럭 위 GI들을 향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하얀 피부와 노랑머리 이방인들 모습이 신비롭기만 했었다. 그런데 입대 후 미군에 배치된 청년은 그 신비롭게만 보이던 미군 병사들과 많이도 다투었다. 그들과 다툴 이유는 많았다. 우선 카투사들의 영어가 짧아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식사 시간이면 서양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카투사들이 음식 먹는 소리를 낸다고 멸시당하기도 했다. 이후 꿈에 그리던 뉴욕 근무 후 청년이 내린 결론은 사람 사는 모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삶의 방식인 문화 차이만 있을 뿐.

직업과 취미가 모두 여행과 관광이었던 장년은 평생 출장과 취미로 지구촌을 누볐다. 이 중에서 장년에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역시 대학 안식년 기간에 했던 아프리카와 남미여행으로 특히 여행 중 겪었던 이방인들과의 갈등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외국인과 어울려 여행하면서 다소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화 차이가 큰 서구인들이나 아프리카 사람들과 같이 여행하려니 아무래도 그 갈등 정도가 좀 심하게 다가왔다.

한 달여의 아프리카 사파리 투어 중 어느 날 아침, 트럭 운전사 겸 가이드가 계란을 잔뜩 삶아 놓았기에 장년은 이 중 한 개를 날름 집어먹었다. 그랬더니 가이드가 점심용이라면서 심하게 나무란다. 장년은 나무라는 가이드 어투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행 비용의 일부로 산 음식을 먹었을 뿐인데 곱씹을수록 괘씸하다. 좀 잘못이 있었기로서니 고객에게 어찌 이리 함부로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사전에 먹겠다는 양해만 구했더라도 이토록 무안당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서양 사람들은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웬만해선 건드리지도 않을뿐더러 필요한 경우라도 반드시 사전에 상대의 양해를 구하거나 허락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서로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고 또한 있을 수도 있는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상식과 상대 문화에 대한 배려가 우선인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가이드가 계란 프라이를 아침으로 준비하면서 주문하란다. 그래서 장년은 ‘투 스크램블’하고 주문했더니 가이드가 정색을 하면서 하나만 주문하란다. 이번엔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난 장년은 일행의 주문이 모두 끝나길 기다려서 가이드에게 다가가 계란 프라이 개수에 대해 사전에 고지했느냐고 큰 소리로 따져 물었다. 이런 장년의 대응에 가이드도 흠칫 놀라고 일행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이후 가이드는 미안해하기보다는 장년과의 대화를 피했다. 이런 갈등을 유발할 때마다 동반한 장년의 아내는 걱정이 태산이다. 더욱이 사파리 투어 내내 매일 저녁 텐트를 쳐야만 했는데 아내가 보니 장년이 늘 재빨리 움직여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하는 모습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행동했던 장년은 아내의 이 말에 창피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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