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3/잉카 트레일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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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카 트레일

 

안식년 말미에 5대양 6대주 섭렵의 대미를 장식하는 의미로 장년은 아프리카에 이어 남미여행에 나섰건만, 서양 사람들은 남극도 대륙으로 친다고 했다. 그러니 장년으로서는 남극 여행까지 마쳐야 지구촌 대륙을 빠짐없이 섭렵하게 되는 것이다. 남미 종단 여행 시 서양 사람들과 그것도 새파란 젊은이들과 함께 했던 장년은 남극 여행엔 나이도 엇비슷해 어울리기도 편하고 동반하기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향의 불알친구도 좋고, 여행 좋아하는 낯선 사람들이라도 대화가 통하면 좋을 것이다.

여행은 누구에게는 집으로 돌아가는 귀소본능의 여정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망각과 치유의 여정이기도 하다. 여행은 가끔 평범한 중산층 출신의 의사를 새로운 세계로 세탁시켜 불세출의 혁명가로 거듭나게 하는 신통방통한 마술을 부리기도 한다. 평범한 의사 체 게바라는 친구와 함께 남미 전역을 오토바이로 여행하면서 남미 사람들의 식민 생활과 가난을 직접 체험한 끝에 세계적인 혁명가로 거듭났다. 그런가 하면 미국 예일대의 고고학자 하이럼 빙엄 교수는 4백여 년 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사라진 도시’ 마추픽추 유적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장년이 안식년 기간 그 일부를 택해 트레킹 한 잉카 트레일Inka Trail은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부터 칠레 수도 산티아고까지 남미 대륙을 종주하는 2만 2530km의 장대한 길을 의미한다. 잉카 사람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이 길을 이용하여 물자 운송은 물론 우리의 파발마처럼 군사 기밀 등의 우편물을 전달했었다.

16세기 일단의 에스파냐 군대가 남미 대륙을 점령하기 전까지 잉카 사람들은 수레나 말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도보로만 이 먼 길을 다녔다. 잉카 트레일은 해발 5천 미터에 이르는 안데스산맥의 고원을 연결하는 샛길과 소롯 길로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잉카 사람들은 짐을 운반하기 위해서 기껏해야 라마를 이용한 게 전부였다.

5천 미터에 달하는 해발 고도와 이에 따른 고산증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겨우 10여km 내외를 트레킹 할 수 있는 이 험난한 길을 잉카의 메신저들은 하루에 240여km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잉카의 메신저들은 안데스산맥의 다람쥐들이었던 셈이다. 이들 메신저들을 위해 이 잉카 트레일에는 우리의 역참과 같은 개념인 2천 여 개의 숙소가 운영되고 있었고 수십만 명의 잉카 여행자들과 군인들은 이들 숙소에서 음식과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들 숙소가 잉카 여행자들에게 제공한 음식은 주로 옥수수, 콩, 말린 감자와 라마 저키 등이었으며 여행자들은 잉카 트레일 주변의 주민들이 재배하는 과일로 음료수를 대신했었다.

잉카제국 당시 남미 대륙에는 안데스산맥을 따라 깊은 산중에 조성된 5천 2백 킬로미터의 카미노 레알 트레일Camino Real Trail과 해안을 따라 조성된 4천 킬로미터의 카미노 코스타 트레일El Camino de la Costa Trail을 중심으로 이 두 개의 트레일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잉카 트레일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길은 모두 잉카 제국 수도였던 쿠스코를 반드시 거쳐 가게 되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길은 에콰도르 키토를 출발해 쿠스코를 경유하여 아르헨티나 투크만Tucuman을 연결하는 5천 백 km의 카미노 레알 트레일이었다.

트레킹 상품으로 개발된 트레일 중 장년이 선택해 트레킹 한 클래식 잉카트레일은 그 옛날 잉카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해발 3천 미터에서 4천2백 미터까지의 안데스산맥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잉카 트레일을 3박 4일 동안 트레킹과 캠핑으로 이동하여 마추픽추까지 내려가는 코스다. 페루 정부 당국은 이 클래식 트레일의 보존을 위해 하루 트레킹 참가자를 포터와 가이드를 포함해서 5백 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몇 달 전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트레킹 자체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 다소 낯선 단어인 잉카 트레일을 이용해 안데스산맥을 평화롭게 오가던 남미 사람들에게 일단의 스페인 군이 총칼과 말 그리고 세균을 전파하면서 남미의 평화는 마침내 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포악한 스페인 사람들이 전파한 가톨릭 문화가 아직까지도 남미 대륙을 뒤덮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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