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4/마드리드의 아티스트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19
Views
150
마드리드의 아티스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4년여 남짓 주재했던 장년은 그러나 귀국 이후 한 번도 밀라노에 다시 들러볼 기회가 없었다. 깊은 맛과 향의 토스카나 와인, 이탈리아 특유의 봉골레vongole 스파게티, 짙은 안개와 회색 건물의 조화 그리고 두오모duomo 거리의 에스프레소 깊은 향을 좋아했던 장년에겐 밀라노는 언제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이었다.

교수 재직 중 마침 안식년을 맞이한 장년은 어떻게든 밀라노에 꼭 한번 다시 가보야겠다고 별렀지만 여러 가지 다른 일정들에 밀려 꿩 대신 닭이라고 밀라노 대신 세계관광기구UNWTO가 있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한여름을 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모두 같은 라틴문화권이고 언어나 문화도 매우 흡사한 측면이 있어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마드리드는 밀라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선 마드리드의 하늘과 공기가 밀라노의 칙칙한 분위기와는 판이한 것이었다. 두 달여의 마드리드 체류 중 단 한 번의 비를 만났을 뿐으로 마드리드 하늘은 여름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렀다.

알프스 남부를 모두 품고 있고 있는 이탈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산수를 기대했던 마드리드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삭막한 도시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드리드라는 스페인어의 의미가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뜻이란다. 또 다른 라틴 나라인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를 포함해 피레네산맥 남쪽 모두를 아프리카로 치부하기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부 아프리카의 사막과 흡사한 분위기를 계속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장년이 두 달여를 묵은 마드리드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있는 우메라는 마드리드의 다른 구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시가 온통 그린으로 뒤덮여 있고 수 백평 규모의 저택에는 대부분 정원 안에 수영장은 물론 테니스코트까지 갖추어 살고 있는 부촌이다. 마드리드의 세계관광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장년의 후배도 규모는 아담하지만, 이곳 부촌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장년은 운 좋게도 후배 가족이 서울에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본인의 아파트와 후배 집을 서로 맞바꾸어 이곳의 환상적인 주택에서 한여름을 지내게 되었다. 이곳에서 호의호식하던 장년은 어느 날 아침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알아보기 위해 마드리드 시내의 세계관광기구 근처에서 시내버스 27번에 탑승했다. 이 아토샤역 행 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을 지나 도심을 비켜나자 버스 안은 비교적 한산해졌다.

그제 서야 장년은 배낭, 등산용 조끼, 모자, 선그라스로 무장한 자신의 모습이 영락없는 여행자임을 깨달았다. 음~ 틀림없이 소매치기의 제물이겠구나 싶어 가끔 조끼 오른쪽 아래 주머니의 지갑을 더듬어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출근 시간인데 별일이야 있을라고. 버스가 붐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느 순간 버스가 정류장에 다가서기 시작하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큰 가방을 멘 사람들에게 장년은 버스의 한구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서 밀리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아차 싶어 조끼 주머니를 더듬었더니 아뿔싸! 이미 지갑이 없어진 뒤였다. 눈앞의 젊은 북아프리카계 아이들의 짓이 분명한데 이놈들의 멱살을 잡고 어찌해볼까 하는 사이 녀석들은 유유히 버스를 내려 선다. 소매치기 일당의 양동작전에 그만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다.

나름 여행전문가라고 자부한 장년은 마음속으로 외쳤다.

‘마드리드에서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다니! 그 유명한 이탈리아 집시들이나 전 세계 어디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내가!’

그러나 일을 당한 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붐비는 버스 안에서 지갑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있었으니 지갑을 내 준거나 다를 게 없는 행동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들의 소굴이란다.

일을 당한 후 장년은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버스를 내려 인근의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잃은 돈이 비교적 많지 않고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모두 털렸지만 다행히 여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래 마드리드에서 면역 주사 한 대 맞은 셈 치지 뭐. 불쌍한 북아프리카 친구들한테 자선사업 좀 한 셈 치고.

그러나 장년은 이후 면허증과 신용카드가 없어 렌터카조차 대여할 수 없었다. 하릴없이 스페인 여행을 기차와 버스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집에서 마드리드 시내의 외출도 한 두 시간에 한 번꼴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지하철로 바꾸어 타는 번거로움을 매번 겪어야 했고. 그래서 장년 부부는 웬만한 쇼핑도 동네의 쇼핑몰을 주로 이용했었다.

하루는 동네의 한 가게에 들러 물건 하나를 골라놓고는 가져온 돈이 부족한 것을 알고 소매치기 당한 얘길 했더니 그 가게 주인 스페인 아주머니가 한 말이 걸작이다.

‘their acts are kinds of art.’

마드리드 소매치기는 가히 예술가 수준이란다.

‘그래! 나는 마드리드의 예술가에게 잠시 혼을 빼앗겼을 뿐이야.’

장년은 마드리드를 베이스로 하여 포르투갈, 남불 등의 농촌 관광지를 돌아보면서 아내의 관심지인 가톨릭 성지 순례도 겸하였는데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성지(포르투갈 리스본 인근 타렘주(州) 빌라노바데오렘에 있는 작은 마을로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이 되면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와 로사리오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순례지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1930년 바티칸이 이곳을 성지로 지정하여 대성당을 세웠다.)에 들렀던 길에 리스본도 잠깐 거쳤는데 이 도시는 정말 아름다움의 극치여서 몇 해 전에 들렀던 평양의 도시개발 모델이 이곳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장년아내의 가톨릭 본명인 벨라뎃다bernadette의 성지인 루르드lourdes와 함께 세계 최고 품질의 와인 산지로 더 잘 알려진 이웃 도시인 보르도bordeaux와 생때밀리옹saint-emilion을 둘러 보았다. 두 도시는 모두 유서 깊은 중세의 건물과 포도 재배지로서의 독특한 풍경을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역사, 문화 도시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곳이다.

마드리드는 UN관광기구인 WTOworld tourism organization가 소재하고 있는 도시여서 틈틈이 강의와 연구 자료도 수집하고 글도 쓰며 지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근무 경험으로 라틴문화에 익숙한 장년에게 마드리드 체류는 정말 편안한 일상이었다. 환상적인 햇살, 매니저불한 스페인 와인, 하몽jamón(스페인의 전통 음식으로 소금에 절여 건조한 돼지 다리로 만든 햄의 일종. 얇게 썰어서 날로 먹으며, 오로지 도토리만 먹여 키운 돼지로 만든 이베리코iberico가 최고의 가격으로 팔린다. 이탈리아에도 프로슈토prosciutto라는 유사한 음식이 있으며 여름철 멜론에 얹어 먹는 프로슈토prosciutto e melone는 최고의 여름 별미다.)과 멜론으로 대표되는 지중해의 달콤한 과일 등. 마침 WTO에 근무 중인 후배 가족과 집을 서로 바꾸어 거주해 큰 비용이 들지 않아 금상첨화의 안식년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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