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9/ 제행무상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11
Views
168
제행무상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근무 중인 늙은이 절친의 부인은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각각 두 명씩 두고 그야말로 여왕처럼 살고 있었다. 아파트 역시 방이 여러 개 있는데다가 게스트 룸까지 별도로 갖추고 있어 열흘 넘게 얹혀살아도 신세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티베트 여행길에 일행과 떨어져 따로 들른 여정에서, 늙은이는 친구 부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왕의 그것과 다름없는 삶이라고 부러워했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편안한 삶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친구 부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아프리카 탄자니아 근무를 선택하는 위험을 감당했었다. 여러 지역 해외 근무를 통해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서울에 5층 건물을 사 놓은 직후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탄자니아로 근무 나간 지 몇 달 되지 않아 친구 부인은 이번엔 시신으로 돌아왔다. 백신 공급이 수월치 않던 탄자니아에서 코로나의 덫을 피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탄자니아로 떠나면서 절친 부부가 늙은이 집에서 함께 묵고 간지 불과 몇 달만의 일이라 늙은이 부부의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늙은이는 탄자니아로 홀로 돌아간 절친에게 남편과 사별한 한 여인을 소개했는데 다행히 둘은 탄자니아 근무지로 동반 출국하여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다. 그렇지만 부인끼리도 절친하게 지냈던 늙은이 아내로서는 새 여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늙은이와 반세기를 이어온 절친 사이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두 절친이 멀어지게 된 것은 여자들 탓만은 아니었다. 늙은이가 시골의 맹지에 두 동을 연결해 설치한 농막은 불법 구축물이어서 한 동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철거 과정에서 늙은이 절친 동생이 깔끔한 역할을 해주어 새로운 토지로의 이전 설치까지 맡기에 되었다. 그러나 새 땅에서의 설치 과정은 하수처리 시설 등 절친 동생이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절친 동생은 부품을 핑계로 철물점에 가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가 하면, 한 나절이면 끝낼 수 있을 야외 솥 걸이를 사흘에 걸쳐 만들며 공돌이 특유의 사보타지를 이어가더니 결국 농막 설치 공사를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절친 동생의 이런 터무니없는 행태는 절친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 계기가 되고 말았다.
어찌 이 뿐이랴. 틈만나면 살펴보던 고향의 불알친구들도 한 순간 감정이 상해 멀어진 후 다시 돌아보고 싶지가 않다.
조현병 어머니 밑에서 자란 늙은이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 애틋함 가운데 나름 똘똘 뭉쳐 지내왔었다. 그런데 서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이해관계만으로 움직이다가 화해 없이 사별하거나, 남은 사람들은 이웃사촌만도 못한 사이로 변질되어 서로 안부도 전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사소한 묘지 문제로 갈등을 겪은 사촌들은 경조사조차 서로 알리지 않는 남남 같은 사이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부 이종과 고종 사촌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조차 끊긴지 오래다. 이 모든 가족관계의 문제는 당사자들 탓이라기보다는 해체된 지연과 혈연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나 어찌되었건 변한 건 변한 것이다.
직장에서 얽혀 지내던 동료, 상사와 부하들은 퇴직하는 순간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가 않아 소식을 끊은 지 오래다. 향수를 실현해보려고 시작한 전원생활 역시 초기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순식간에 견원지간으로 발전하여 서로 이사 나가고 또 이사 나와야만 했다. 은퇴 후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귐이라 생애 마지막 친구들로 생각한 동호회 회원들 역시 이런저런 사소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결국은 멀어지고 말았다. 흔히 객지 벗은 헤어지면 그만이란 사실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모든 관계 절멸의 문제는 어쩌면 애정 결핍 속에 자라난 늙은이 개인의 독특한 성장 환경 탓일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삶이 이토록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이라면, 늙은이가 인생 여로에서 평생 추구해온 사랑, 정의, 가족, 친구, 이웃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한단 말인가.
세계 최빈국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근무 중인 늙은이 절친의 부인은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각각 두 명씩 두고 그야말로 여왕처럼 살고 있었다. 아파트 역시 방이 여러 개 있는데다가 게스트 룸까지 별도로 갖추고 있어 열흘 넘게 얹혀살아도 신세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였다. 티베트 여행길에 일행과 떨어져 따로 들른 여정에서, 늙은이는 친구 부인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왕의 그것과 다름없는 삶이라고 부러워했었다.
방글라데시에서의 편안한 삶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친구 부부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아프리카 탄자니아 근무를 선택하는 위험을 감당했었다. 여러 지역 해외 근무를 통해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서울에 5층 건물을 사 놓은 직후였다. 그러나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에 탄자니아로 근무 나간 지 몇 달 되지 않아 친구 부인은 이번엔 시신으로 돌아왔다. 백신 공급이 수월치 않던 탄자니아에서 코로나의 덫을 피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탄자니아로 떠나면서 절친 부부가 늙은이 집에서 함께 묵고 간지 불과 몇 달만의 일이라 늙은이 부부의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늙은이는 탄자니아로 홀로 돌아간 절친에게 남편과 사별한 한 여인을 소개했는데 다행히 둘은 탄자니아 근무지로 동반 출국하여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다. 그렇지만 부인끼리도 절친하게 지냈던 늙은이 아내로서는 새 여인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늙은이와 반세기를 이어온 절친 사이는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두 절친이 멀어지게 된 것은 여자들 탓만은 아니었다. 늙은이가 시골의 맹지에 두 동을 연결해 설치한 농막은 불법 구축물이어서 한 동을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철거 과정에서 늙은이 절친 동생이 깔끔한 역할을 해주어 새로운 토지로의 이전 설치까지 맡기에 되었다. 그러나 새 땅에서의 설치 과정은 하수처리 시설 등 절친 동생이 해보지 않은 일이라서 여러 가지 문제에 당면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절친 동생은 부품을 핑계로 철물점에 가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가 하면, 한 나절이면 끝낼 수 있을 야외 솥 걸이를 사흘에 걸쳐 만들며 공돌이 특유의 사보타지를 이어가더니 결국 농막 설치 공사를 도중에 포기하고 말았다. 절친 동생의 이런 터무니없는 행태는 절친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 계기가 되고 말았다.
어찌 이 뿐이랴. 틈만나면 살펴보던 고향의 불알친구들도 한 순간 감정이 상해 멀어진 후 다시 돌아보고 싶지가 않다.
조현병 어머니 밑에서 자란 늙은이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 애틋함 가운데 나름 똘똘 뭉쳐 지내왔었다. 그런데 서로 각자의 가정을 꾸리면서 이해관계만으로 움직이다가 화해 없이 사별하거나, 남은 사람들은 이웃사촌만도 못한 사이로 변질되어 서로 안부도 전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사소한 묘지 문제로 갈등을 겪은 사촌들은 경조사조차 서로 알리지 않는 남남 같은 사이로 변질되고 말았다. 일부 이종과 고종 사촌들은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조차 끊긴지 오래다. 이 모든 가족관계의 문제는 당사자들 탓이라기보다는 해체된 지연과 혈연 시스템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나 어찌되었건 변한 건 변한 것이다.
직장에서 얽혀 지내던 동료, 상사와 부하들은 퇴직하는 순간 더 이상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가 않아 소식을 끊은 지 오래다. 향수를 실현해보려고 시작한 전원생활 역시 초기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순식간에 견원지간으로 발전하여 서로 이사 나가고 또 이사 나와야만 했다. 은퇴 후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귐이라 생애 마지막 친구들로 생각한 동호회 회원들 역시 이런저런 사소한 감정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결국은 멀어지고 말았다. 흔히 객지 벗은 헤어지면 그만이란 사실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이 모든 관계 절멸의 문제는 어쩌면 애정 결핍 속에 자라난 늙은이 개인의 독특한 성장 환경 탓일 수 도 있겠다. 그러나 삶이 이토록 끊임없이 변해가는 과정이라면, 늙은이가 인생 여로에서 평생 추구해온 사랑, 정의, 가족, 친구, 이웃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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