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마지막 친구들

살아가다보면 신체적, 정서적 이유들로 친구들이 정리되거나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그막에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동호회원들이다.
춘천 교외로 은퇴해온 늙은이가 거의 매일 즐기는 운동의 하나가 파크골프다. 이러다 보니 골프장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나 늘 어울리는 같은 클럽 사람들과는 친밀감이 더해진다. 그리고 이들 동호회원들이 좋은 이유는 같이 즐기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 골프장에서 자주 만나 친밀해진 한 동호회원의 뜻하지 않은 발언이 늙은이를 크게 감동시켰다.
“이 세월에 여기서 만난 우리는 죽을 때 장례까지 챙겨줄 생애 마지막 친구들이여!

그러나 전혀 모르던 객지 벗들과 친밀해진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모르던 사람들과 가까이 하다보면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비호감인 사람들과 마주하게 되는 경우도 꽤 많다는 게 늙은이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 때 주의할 일은 이들과 일일이 대증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늙은이의 경험칙이다. 낯선 사람들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이른바 ‘normal curve’ 즉 ‘정규분포론’의 적용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즉 정규 또는 정상분포라 하면 커브의 양극단에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10% 내외의 분포를 보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구조라는 것이다. ‘정규분포론’에 따르면 모든 커뮤니티에서 비정상적이거나 비호감인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대증적으로 일일이 반응하기 보다는 이들의 존재를 당연 시하여 하여야만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해 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불편한 사람들과 일일이 대증적으로 대응하다 보면 스스로 쌓은 담에 자신을 가둘 수도 있는 법이다.

은퇴 후 평안한 생활을 즐기기 위해 전원생활을 선택한 늙은이였건만 토지 경계 등으로 이웃과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매우 불편한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 아파트 등의 공동 주택에서 이웃과 인사도 없이 지내면서 참 드라이한 생활이라고 불평해왔던 늙은이로서는 눈만 뜨면 마주쳐야 하는 미운 이웃과의 전원생활은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일상이 아닐 수 없었다. 인사조차 하지 않고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공동 주택에서의 불만은 이런 증오감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기 아닐 수 없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는 지옥 같은 삶과 마주하게 된 늙은이는 결국 이를 피해 전원에 푹 파묻힌 시골 아파트를 골라 입주하면서 비로소 마음의 평정을 되찾게 되었다.

성당 커뮤니티는 은퇴 후, 일상으로 늘 마주하는 생애 마지막 친구들의 또 다른 축이다. 특히 늙은이가 출석하는 시골 성당은 귀농·귀촌한 은퇴자들이나 농부와 지역의 자영업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대표적 커뮤니티다. 신앙으로 결속된 성당 교우들이야 말로 죽을 때까지 챙겨줄 대표적인 공동체이기도 하다. 특히 신부를 비롯해 대부분 성당 교우들은 모임 마다 같이 술을 나눠 마시니 그 관계가 돈독해 질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늙은이가 출석하는 전원 속 아담한 규모의 성당에는 일흔 이상의 교우들이 매주 만나 술을 마시는 저녁 모임도 있어 금상첨화다.
아무리 술을 마시는 사교 모임이라 해도 성담 모임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늙은이가 성당 미사와 주회週會·酒會에서 가장 좋아하는 기도는 주님이 가르쳐 주었다는 주기도문 중 다음 대목이다.
‘저희에게 잘 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신의 용서는 ‘이웃의 잘못을 먼저 용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하는 ‘조건부 용서’라는 것이다. 그러니 죽기 전에. 불편했던 이웃이나 친지들과는 깔끔히 화해하고 떠날 일이다.
박 의서 박 의서 · 2025-01-02 07:18 · Views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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