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으로 돌아오는 여행
Author
박 의서
Date
2023-02-18 21:43
Views
261
소골 - 충청도 연기의 조그마한 산골 이름으로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소골에서 작은 고개 두 개를 넘고 큰 내를 건너서 십여 리 길을 가면 경부선 간이역 전동(全東)에 닿는데 나는 국민학교 시절을 면소재지이기도 한 이곳을 왔다갔다하며 보냈다. 중학교는 전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오리 거리에 있는 조치원 읍으로 다닌 나는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의 절반을 대전으로 기차 통학으로 마친 후 취직이 되어 서울로 올라 왔다. 서울의 처음 직장에서 야학으로 나머지 대학공부를 마친 나는 우리 나라 관광 매력을 해외에 홍보하는 국영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후 지구촌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욕과 세계적인 패션 도시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주재 근무를 하였었다. 지나온 여정을 좀 구구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소골 촌놈이 면 소재지, 군청 소재지, 도청 소재지와 서울을 거쳐 뉴욕과 유럽에까지 진출한 얘기를 하기 위함인 것이다. 심심 산골 소골 촌놈이 면, 읍, 시, 특별시를 거쳐 해외에까지 차례로 진출하였으니 출세의 의미가 세상에 나아감이라면 나름대로 出世한 셈이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 자란 소골은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정겨운 산골이다. 어려서 이곳에 살 때는 군(郡)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서 군가(郡歌)의 가사에도 나오는 오봉산이 동네 앞을 가로막고 있어 제법 큰 산 밑에 살고 있는 줄만 알고 지냈었는데, 出世 이후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과 유럽의 알프스 산자락에서 살다가 고향에 돌아가 보니 오봉산은 그저 고향의 푸근함을 안겨주는 품안의 야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어쩌다 돌아가 보는 소골은, 산천은 옛 모습이지만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더 이상 정붙일 수 있는 고향 마을은 아니다.
두 번의 주재 근무를 통하여 나로서는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뉴욕은 가을 단풍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살았던 곳은 뉴욕 북쪽의 교외였는데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까지 연결되는 단풍은 가을이면 현란한 색조로 활활 타올라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진 장관을 연출한다. 허드슨강 양안을 끼고 뉴욕의 부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버겐 카운티와 웨체스터 카운티의 풍요로운 숲 속에 그림 같이 정돈된 아름다운 마을들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해외 근무지인 밀라노는 그리스도 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4세기 초 유적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의 왕'으로서 황제 대관식을 가진 두오모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고색 창연한 건축물들의 조화로운 방사형 배치가 아름다운 도시이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회색으로 바랜 이 도시의 대리석 건물들이 늦가을 짙은 안개와 어우러질 때 나는 두오모 거리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깊은 향에 취해 나락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곤 했었다. 밀라노는 패션 도시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패션 쇼, 가구 전시회, 그리고 스칼라 좌의 오페라가 일년 내내 세계 곳곳의 온갖 멋쟁이들을 유혹하고 있어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살고 있는 곳은, 태어나 자란 소골도 아니고, 제2의 고향이라고 할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던 뉴욕도 아니며, 패션과 오페라의 도시 밀라노도 아닌 서울의 동쪽 끝에 조용히 숨겨진 마을, 둔촌동이다. 세계의 화려한 도시에서 주재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마다 내 가슴은 둔촌동에 안기는 푸근함으로 늘 설레어 왔었다. 둔촌동 역시 몇 년씩 자리를 비우다 돌아오는 나를 늘 정겨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둔촌동(遁村洞)은 서울이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숨겨진 시골 마을로, 고려말에 학문과 덕이 높고 절의(節義)를 굽히지 않아 삼은(三隱)으로 불리던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도은(陶隱) 이숭인과 함께 사은(四隱)으로 칭송되던 묵은(墨隱) 이집(李集)이 공민왕에게 당시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던 요승(妖僧) 신돈을 탄핵하였다가 이를 알고 노발대발한 신돈의 토살령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게되자 몸을 피해 이 곳 일자산 자락에 토굴을 파고 피신해 있은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도은 이숭인은 이집 선생이 마을에 토굴을 파고 살은 것을 기념하여 숨은 마을, 피하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둔촌(遁村)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는데 이후 이 것이 일자산 일대의 지명이 되었으며, 지금도 둔촌동과 일자산 일대에는 둔굴, 안둔굴, 굴바위 등의 지명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혼 초부터 둔촌동의 시골스런 풍경에 이끌려 이 곳에서 살기 시작한 나는 이곳의 소박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이십여 년이 넘게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둔촌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들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이웃들 역시 이 곳에서 영주하고 있거니와 어쩌다 떠난 사람들은 곧 되돌아오기 일쑤다. 둔촌동이 이렇듯 나와 우리 이웃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고향을 떠나 도회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보통 시민들에게 고향의 분위기를 대신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파트 동네는 더불어 사는 이웃이다. 매년 시월이면 온 동네 주민이 어우러져 옛날에 고향에서 그랬던 것처럼 춤판과 노래판을 벌리는 아파트 단지 축제를 십 년 넘게 열고 있어 이웃 동네의 부러움을 사고 있고, 매월 첫 번째 일요일 아침이면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아파트 단지를 질주하는 건강 달리기가 이웃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우리 아파트 이웃에는 내 동생 네 가족과 내 동생의 처가가 같이 살고 있고, 처형 네 가족과 처형의 시동생 가족도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이웃에는 또 내 학교 동기 동창생과 아내의 여고 동창생이 세 명씩이나 같이 어울려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육천여 세대로 구성된 대단위 아파트 단지이지만 그린벨트인 일자산을 끼고 경기도 하남시와 이웃해 있고 단지 자체가 구릉지대에 위치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조성된 데다가 남쪽으로는 올림픽 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주거지이다. 자연녹지를 있는 그대로 살려 오밀조밀하게 조성한 단지의 아파트 건물 높이 역시 십 층을 넘지 않아 편안함을 주고 있고, 구릉의 원래 모습과 선형을 살려서 꾸며진 단지가 마치 고향마을 같아 푸근함을 안겨주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우리 아파트 단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어 동네를 스스로 가꾸고 있다. 우리 아파트 동의 한 이웃과 경비 아저씨는 내 집 가꾸듯 아파트 정원을 매일 아침 돌보고 있고, 주말에는 이웃 모두가 환경 가꾸기에 참여하여 아파트 주변이 늘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다. 단지와 그린벨트를 연결하는 수풀에는 서울에서는 드물게 자연 늪지가 보존되어 있어 장마철이면 개구리, 맹꽁이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아 어릴 적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기도 한다.
고향마을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둔촌동에서 매일 아침 마을 뒷자락인 일자산으로 산책을 겸한 등산길에 오르면 늘 마주치는 친근한 이웃들과 건강한 하루를 함께 시작할 수 있어 즐겁다. 이 일자산,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의 절의(節義)를 지켜준 은둔처로 오르는 아파트 단지 안 오솔길에, 우리 마을의 한 이웃이 꽃씨를 뿌려 놓고 시를 지어 팻말에 꽂아 놓아, 오고 가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고향마을이 된 둔촌동의 인정을 따사롭게 전해주고 있다.
짧지만
고향마을 닮아
사색이 흐르고
정이 머무는 길
당신의 해맑은 미소가 그리워
여기
꽃씨를 뿌렸습니다.
무심히 흘려버린
담배꽁초.
갖가지 오물.
애견들의 배설물까지......
부끄러운 뒷모습에
애써
눈감아버린 안타까움 대신
이제는
모두의 가슴속에 사랑이 번지는
촉촉한
님의 마음 묻고 가소서.
내가 태어나 자란 소골은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정겨운 산골이다. 어려서 이곳에 살 때는 군(郡)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서 군가(郡歌)의 가사에도 나오는 오봉산이 동네 앞을 가로막고 있어 제법 큰 산 밑에 살고 있는 줄만 알고 지냈었는데, 出世 이후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과 유럽의 알프스 산자락에서 살다가 고향에 돌아가 보니 오봉산은 그저 고향의 푸근함을 안겨주는 품안의 야산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어쩌다 돌아가 보는 소골은, 산천은 옛 모습이지만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더 이상 정붙일 수 있는 고향 마을은 아니다.
두 번의 주재 근무를 통하여 나로서는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뉴욕은 가을 단풍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다. 내가 살았던 곳은 뉴욕 북쪽의 교외였는데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방까지 연결되는 단풍은 가을이면 현란한 색조로 활활 타올라 세계적으로 그 명성이 알려진 장관을 연출한다. 허드슨강 양안을 끼고 뉴욕의 부자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버겐 카운티와 웨체스터 카운티의 풍요로운 숲 속에 그림 같이 정돈된 아름다운 마을들도 잊을 수가 없다.
마지막 해외 근무지인 밀라노는 그리스도 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4세기 초 유적에서부터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의 왕'으로서 황제 대관식을 가진 두오모 대성당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고색 창연한 건축물들의 조화로운 방사형 배치가 아름다운 도시이다. 지난 수세기에 걸쳐 회색으로 바랜 이 도시의 대리석 건물들이 늦가을 짙은 안개와 어우러질 때 나는 두오모 거리의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깊은 향에 취해 나락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곤 했었다. 밀라노는 패션 도시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패션 쇼, 가구 전시회, 그리고 스칼라 좌의 오페라가 일년 내내 세계 곳곳의 온갖 멋쟁이들을 유혹하고 있어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살고 있는 곳은, 태어나 자란 소골도 아니고, 제2의 고향이라고 할만큼 왕성한 활동을 했던 뉴욕도 아니며, 패션과 오페라의 도시 밀라노도 아닌 서울의 동쪽 끝에 조용히 숨겨진 마을, 둔촌동이다. 세계의 화려한 도시에서 주재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마다 내 가슴은 둔촌동에 안기는 푸근함으로 늘 설레어 왔었다. 둔촌동 역시 몇 년씩 자리를 비우다 돌아오는 나를 늘 정겨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둔촌동(遁村洞)은 서울이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숨겨진 시골 마을로, 고려말에 학문과 덕이 높고 절의(節義)를 굽히지 않아 삼은(三隱)으로 불리던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도은(陶隱) 이숭인과 함께 사은(四隱)으로 칭송되던 묵은(墨隱) 이집(李集)이 공민왕에게 당시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던 요승(妖僧) 신돈을 탄핵하였다가 이를 알고 노발대발한 신돈의 토살령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게되자 몸을 피해 이 곳 일자산 자락에 토굴을 파고 피신해 있은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도은 이숭인은 이집 선생이 마을에 토굴을 파고 살은 것을 기념하여 숨은 마을, 피하는 마을이라는 의미의 둔촌(遁村)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는데 이후 이 것이 일자산 일대의 지명이 되었으며, 지금도 둔촌동과 일자산 일대에는 둔굴, 안둔굴, 굴바위 등의 지명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신혼 초부터 둔촌동의 시골스런 풍경에 이끌려 이 곳에서 살기 시작한 나는 이곳의 소박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이십여 년이 넘게 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둔촌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이웃들도 마찬가지여서 우리 이웃들 역시 이 곳에서 영주하고 있거니와 어쩌다 떠난 사람들은 곧 되돌아오기 일쑤다. 둔촌동이 이렇듯 나와 우리 이웃들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고향을 떠나 도회 생활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시대의 보통 시민들에게 고향의 분위기를 대신 지켜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아파트 동네는 더불어 사는 이웃이다. 매년 시월이면 온 동네 주민이 어우러져 옛날에 고향에서 그랬던 것처럼 춤판과 노래판을 벌리는 아파트 단지 축제를 십 년 넘게 열고 있어 이웃 동네의 부러움을 사고 있고, 매월 첫 번째 일요일 아침이면 남녀노소 모두가 참여하여 아파트 단지를 질주하는 건강 달리기가 이웃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우리 아파트 이웃에는 내 동생 네 가족과 내 동생의 처가가 같이 살고 있고, 처형 네 가족과 처형의 시동생 가족도 함께 살고 있다. 우리 이웃에는 또 내 학교 동기 동창생과 아내의 여고 동창생이 세 명씩이나 같이 어울려 살고 있다.
우리 동네는 육천여 세대로 구성된 대단위 아파트 단지이지만 그린벨트인 일자산을 끼고 경기도 하남시와 이웃해 있고 단지 자체가 구릉지대에 위치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조성된 데다가 남쪽으로는 올림픽 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주거지이다. 자연녹지를 있는 그대로 살려 오밀조밀하게 조성한 단지의 아파트 건물 높이 역시 십 층을 넘지 않아 편안함을 주고 있고, 구릉의 원래 모습과 선형을 살려서 꾸며진 단지가 마치 고향마을 같아 푸근함을 안겨주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이런 우리 아파트 단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어 동네를 스스로 가꾸고 있다. 우리 아파트 동의 한 이웃과 경비 아저씨는 내 집 가꾸듯 아파트 정원을 매일 아침 돌보고 있고, 주말에는 이웃 모두가 환경 가꾸기에 참여하여 아파트 주변이 늘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다. 단지와 그린벨트를 연결하는 수풀에는 서울에서는 드물게 자연 늪지가 보존되어 있어 장마철이면 개구리, 맹꽁이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아 어릴 적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기도 한다.
고향마을 같이 더불어 살아가는 둔촌동에서 매일 아침 마을 뒷자락인 일자산으로 산책을 겸한 등산길에 오르면 늘 마주치는 친근한 이웃들과 건강한 하루를 함께 시작할 수 있어 즐겁다. 이 일자산, 둔촌(遁村) 이집(李集) 선생의 절의(節義)를 지켜준 은둔처로 오르는 아파트 단지 안 오솔길에, 우리 마을의 한 이웃이 꽃씨를 뿌려 놓고 시를 지어 팻말에 꽂아 놓아, 오고 가는 이들에게 이제는 우리 고향마을이 된 둔촌동의 인정을 따사롭게 전해주고 있다.
짧지만
고향마을 닮아
사색이 흐르고
정이 머무는 길
당신의 해맑은 미소가 그리워
여기
꽃씨를 뿌렸습니다.
무심히 흘려버린
담배꽁초.
갖가지 오물.
애견들의 배설물까지......
부끄러운 뒷모습에
애써
눈감아버린 안타까움 대신
이제는
모두의 가슴속에 사랑이 번지는
촉촉한
님의 마음 묻고 가소서.
모처럼 글을 다시 읽어보니 글 쓴이후 흐른 시간이 강산도 두번 변하게 한 세월이 다되어 격세지감이 있네요. 지금은 이 둔촌동에도 도시화의 물결이 넘어가 상대적으로 삭막해진 모습입니다. 여전히 이 동네에 살고는 있지만 글쓰던 시절의 동네 모습이 그리워지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