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동’과 문화관광산업 2003 03 07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16
조회
86
https://www.gtn.co.kr/home/news/news_view.asp?news_seq=8875&s_key=%B9%DA%C0%C7%BC%AD%20%B1%B3%BC%F6

근년 들어 우리는 새로운 사회 현상들을 경험하고 있다. 주말 연휴나 휴가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동남아나 태평양 연안에서 휴식이나 골프를 즐기기 위해 공항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고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언어 연수나 이국 문화체험을 위해 배낭을 걸머지고 유럽·일본·중국 등지로 무리지어 이동하는 새로운 여행 문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박정희 정권 이후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관광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집중 육성하여온 이래 주로 외국인 관광객의 편의만을 고려하여 왔던 시대의 관광 문화와는 사뭇 다른 모습인 것이다. 그나마 그 시절 외화벌이 하겠다고 투자한 설악산·경주·제주도 등의 관광지가 오늘날 주5일 근무 시대를 향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국내 관광 수요의 일부를 충족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경제운용에 있어서 성장과 함께 분배의 중요성이 증대해가고 있는 것처럼 관광도 이제는 종전과 달리 외화벌이보다는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매개체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 ‘미래 쇼크’, ‘제3의 물결’ 등의 저서를 통해 21세기의 새로운 조류를 예측하였던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는 ‘권력의 이동’이라는 책에서 권력의 원천은 완력, 돈 그리고 정신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와 같은 권력의 원천은 폭력·부·지식의 다른 표현으로서 새로운 세기의 파워는 전통적인 권력의 원천이었던 폭력이나 부(富)가 아닌 정보와 문화로 대표되는 지식산업으로 이동될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막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새로운 세기의 국가경쟁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 그것은 미국의 영화산업과 가까운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이 이 분야에서 각각 전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에서 잘 설명되고 있다. 미국 문화의 원류라며 콧대를 높이고 있는 유럽 각국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마저도 미국 영화와 일본 만화가 휩쓸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인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가 남겨놓은 훌륭한 문화를 자랑하고 있지만 그동안 먹고사는 일에 쫓겨 우수한 우리 문화를 산업화하여 해외에 알리는 데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는 지식과 문화가 재산 가치인 시대이고 문화가 경쟁력인 세기에서 문화상품의 개발과 산업화는 물론 문화산업을 해외에 홍보하는 매개체인 관광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21세기 벽두와 함께 출범하는 새 정부의 정책은 국민의 행복 추구권을 보장하고 국가 경쟁력을 증진하는 방편으로서의 문화와 관광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새로운 파워의 매개로서의 문화와 관광의 중요성을 깨달은 많은 통치자들은 관광 세일즈맨의 역할을 자임하여 크게 성공한 일이 있다. 90년대 초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텔레비전 관광홍보 모델로 출연하여 오늘날 미국을 관광대국인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수입국으로 발전시켰고, 열혈 여장부의 강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 역시 부드러운 모습으로 텔레비전의 관광광고 모델로 등장하여 관광목적지로서의 영국을 전 세계에 홍보함으로써 영국을 관광객 입출국 규모 모두 세계 5위권 이내의 관광대국으로 도약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었다. 우리나라도 환란으로 외환보유고가 고갈되었던 1998년 당시, 취임 직후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해외 관광광고의 모델을 자임해 그때 벌어들인 관광외화가 외환위기 극복의 효자역할을 톡톡히 해낸 일이 있었다.

일할 권리와 함께 휴식의 권리가 나날이 증대되고 있고 여가의 증대는 문화생활에 대한 국민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새로운 세기에서 국민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풍요로운 여가와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여가 수요와 향후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문화와 관광산업에 대한 새 정부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시점인 것이다. < 박의서 교수·안양대학교 euisuh@yahoo.com> 2003 03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