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과 블랙타이 2007 1 15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15
조회
101
https://www.gtn.co.kr/home/news/news_view.asp?news_seq=26812&s_key=%B3%EB%B7%A1%B9%E6%B0%FA%20%BA%ED%B7%A2%C5%B8%C0%CC

지난 해 말 전국의 컨벤션단체를 어우르는 컨벤션네트워크숍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행사가 제주에서 열렸다. 불과 20여 년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컨벤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가 2005년의 경우 국제협회연합(UIA)기준의 국제회의 185건을 개최해 세계 17위 국가로 도약하는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특히 아시아 국가로는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컨벤션 강국으로 불리던 홍콩과 싱가포르를 제치고 중국에 이어 아시아 2위국으로 부상했음은 물론 단위 도시별로는 서울, 부산, 제주가 상위 10위권 주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컨벤션산업의 이러한 괄목할만한 발전은 지난 20여년간 정부의 강력한 컨벤션 정책과 재정적 지원, 지방자치단체의 컨벤션산업 육성과 유치를 위한 강한 의지, 그리고 관련 업계의 전문적인 노력이 빚어낸 결정체이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발전과정의 이면에는 부작용도 적지 않은데 일부 지방자치단체 장들의 선거용 전시행정이 빚어낸 지방의 무부별한 컨벤션시설 건립으로 인해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전반적인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컨벤션시설의 공급과잉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98년도에 서울의 COEX 한 개소에 불과하였던 우리나라의 컨벤션센터가 10년 만에 전국적으로 7개소로 늘어난데 이어 인천 송도 등에 추가로 컨벤션센터의 개관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공급과잉은 지방 컨벤션센터의 컨벤션 유치 경험 부족에 따른 경영실적 악화와 맞물려 컨벤션센터의 가동률을 낮추어 결국 우리나라 컨벤션산업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는 컨벤션네트워크숍이라는 행사 이름에 걸맞게 전국의 컨벤션 관련 산업협회·컨벤션연구원·컨벤션학계·컨벤션뷰로·컨벤션센터·컨벤션기획가·컨벤션서비스회사 그리고 여행사 등 컨벤션 관련 인사와 기관들이 대거 참가해 한국컨벤션산업의 발전을 실감케 하는 자리였다. 특히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국제적 영향력 증대에 따라 UIA 벨기에 본부의 고위 당국자가 방한해 세계 컨벤션산업의 동향을 직접 설명한 것도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한 사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는 80년대 이후 올림픽과 월드컵 등의 메가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면서 컨벤션 운영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컨벤션산업의 발전은 컨벤션센터 건립 등의 하드웨어 구축만으로는 절름발이에 불과한 것으로 컨벤션의 원활한 운영이 뒷받침될 때만이 진정한 컨벤션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제주도 컨벤션네트워크숍이 필자의 주목을 특별하게 끌어당긴 것은 우리나라 컨벤션 산업의 전반적인 발전도 발전이지만 바로 이런 유연한 컨벤션 운영 때문이다. 행사와 세미나 프로그램의 운영. 항공권 수배와 셔틀버스 운영, 참가자와 초청자들을 위한 호텔 시실 운영, 매끄러운 사회와 진행, 골프, 관광, 등산 등으로 구성된 포스트 컨벤션 프로그램의 운영 등 모든 프로세스가 유연하고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특히 컨벤션 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저녁의 사교와 유흥행사는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새로운 문화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발전에 발맞추어 개인적으로 필자 역시 과거 30여년 동안 크고 작은 컨벤션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온 것은 물론 이 과정에서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80년대 초, 중반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수준이 말 그대로 유치(幼稚) 수준이었을 때의 에피소드를 잊을 수가 없다.

지금이나 그때나 컨벤션의 마지막은 소위 갤라 디너라는 이름의 댄스파티로 대미를 장식하게 되는데 영화에서나 보아온 이 낯설기만 한 블랙타이 정장의 댄스파티가 우리는 물론 일본, 대만 등 동양 문화권 참가자들을 주눅 들게 했던 기억이다. 춤 문화에만 익숙하였다면 서양 여자들과 멋진 연애(?)도 수없이 즐길 수 있었던 필자는 결국 아직까지도 이 블랙타이 댄스파티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참석을 회피하고 있다. 컨벤션의 핵이자 사교 모임의 정수를 놓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퍼가는 형국에 다름이 아니다.

우리 문화 환경에서 댄스파티로 대표되는 서양 컨벤션문화의 대미인 축제는 영원한 그림의 떡인 줄 만 알았는데 이번 제주 네트워크숍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연출되어 필자를 놀라게 했다. 노래방 문화에 익숙한 우리의 신세대 컨벤셔너들이 우리 나름의 열기를 마음껏 발산하면서 컨벤션 사교 문화를 새롭게 창출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 것은 우리나라 컨벤션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박의서 안양대 교수>  2007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