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의 끊을 놓지 않은 뉴욕 주재 근무 시절(월간 HOTEL & RESTAURANT 1992년 1월호)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50
조회
98
나는 지금도 1984년 11월 관광공사 뉴욕지사에 부임하던 때의 흥분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오랫동안 선망해오던 해외지사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지사생활을 통해 무엇인가 전기를 마련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을 열어보겠다는 강한 의지의 발로였다.

그러나 기대했던 지사생활은 도착하던 날부터 엄청난 양의 업무에 파묻혀 아침에 출근하면 캄캄한 저녁 시간의 퇴근 때나 겨우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수 있을 만큼 바쁘기만 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때가 마침 연말이었고, 더욱이 그 당시는 주재원이라야 위로 지사장 한 분이었고 따라서 직함은 차장이었지만 홍보 브로슈어 발송부터 각종 활동보고서 작성에 이르기까지 온갖 잡스러운 일과 서류 더미는 오롯이 내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활이 지속되자 나는 내가 지금 그토록 동경하던 뉴욕에 와 있는 건지 아니면 서울 본사 어느 구석에 파묻혀 있는 것인지 조차 분간하기 힘들 지경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어쩌다 EATA, PATA, TTRA 등 관광 관련 국제기구 월례 회의에 참석하게 되면 나름 꽤 한다고 뽐내던 영어실력이라는 게 영어가 모국어인 현지인들을 상대로 우리 입장을 전달하고 관광목적지, 대한민국을 적극적으로 홍보·마케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래서 뭔가 특단의 노력 없이는 그토록 기대했던 지사 생활에서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할 수밖에 없겠다는 참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광이나 호텔 분야의 야간 강좌가 설치되어 있는 대학원 과정을 수소문해보니 마침 이름도 생소한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라는 대학원에서 ‘관광교통경영학’ 강좌를 개설하고 있었고 캠퍼스도 마침 사무실에서 전철로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워싱턴 스퀘어(뉴욕대도 이곳에 위치) 근처에 있어 매우 편리할 듯 했다. 시간을 내 캠퍼스를 방문해 보니 맨해튼 중심에 있는 대학 치고는 의외로 분위기가 매우 학구적인데다가 온화하기까지 하여 마음에 쏙 들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토플 등 입학에 필요한 절차는 이미 서울에서 준비해왔음으로 입학 허가 신청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사무실 형편이 비록 야간 과정이라고는 하나 지사장께 공부하겠다고 제의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망설이던 끝에 용기를 내 지사장께 상의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해주신 것은 물론 입학에 필요한 두 개의 추천장 중 하나를 써주시기까지 하였다.

용기백배한 나는 곧바로 입학 허가를 받아 이듬해 5월 여름 학기에 첫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2~3일은 저녁 여섯 시만 되면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강의는 여 나무 명의 수강생들이 교수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세미나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매 시간 사례연구나 페이퍼를 요구하였다. 가뜩이나 짧은 영어에 당황스럽기만 해 강의가 끝난 후 교수님이나 다른 미국 수강생들을 붙들고 페이퍼 쓰는 요령과 사례연구 작성법 등을 익히느라 애를 많이 태웠다. 이럴 때마다 과연 언어장벽과 주재 임기라는 제한된 시간을 극복하고 강의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두 과목을 수강한 그해 여름 학기 학점을 모두 성공적으로 취득하면서 ‘하면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등록을 계속하기로 하였다.

그렇지만 지사업무는 도무지 줄어들지 않고 그렇다고 업무를 소홀이 해서는 배려해주신 지사장께 면목이 없을 터이므로 사무실에 늘 아침 8시 이전에 출근하여 일을 챙기고 주말이면 늘 학교 도서관에서 생활하는 숨 막히는 일정을 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그렇지 갑자기 바뀐 환경에서 일하며 공부하는 스트레스가 엄청나 사소한 일에도 집에서는 물론 사무실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여 주위를 힘들게 했던 것은 물론 학업을 포기하려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투입한 시간과 학비가 아까워 그럴 수도 없었다.

쉽지 많은 않은 학업이었지만 수강 과목을 업무와 직결된 광고, PR, 마케팅, 회계학, 통계학 등을 선택해 들을 수 있었고 게다가 대부분 외래 강사들은 항공사와 호텔 간부 등 현업에서 출강했기 때문에 강의 내용 역시 이론보다는 실질적인 것이어서 업무에도 많이 도움이 되었다. 같이 공부한 학생들 역시 항공사, 호텔, 여행 도매업체의 간부나 뉴욕에 주재하고 있던 다른 나라 관광진흥기관 간부 등 같은 분야 전문가들이어서 업계 정보 파악은 물론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좋았다. 그 때 같이 공부한 사람들과는 아직도 친분이 계속되고 있는 걸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연이 다른 어떤 인연보다 진하다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이때의 학업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처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지금 돌이켜 보아도 내가 어떻게 2년 동안 능숙하지 않은 영어로 야간 강좌를 수강하면서 48학점이나 이수할 수 있었는지 스스로 놀라운 생각이다. 그 당시 나 스스로는 물론 가족 모두의 주말을 희생시켜야 했던 어려운 생활이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 때가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생활한 시기였으며 그래서 가장 보람된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이후 나는 불만과 좌절에 빠지게 될 때마다 삶의 보람은 외부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생활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산 그 시절 뉴욕생활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소중한 자산으로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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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2-18 21:50

    그 시설 같이 근무했던 대한항공 뉴욕지점장은 이 공부가 언젠가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했었다. 결국 이 공부가 계기가 되어 이로부터 15여 년 후 박사과정까지 마친 나는 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20-05-21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