孝와 忠의 재해석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48
조회
94
오늘 천자문의 주제는 孝와 忠이었습니다. 이 두 개의 가치는 요즘, 특히 젊은 세대의 패러다임으로 보면 낡고도 낡은 가치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부모 없이 어찌 자식이 있을 수가 있고 나라 없는 백성(시민) 역시 존재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나라의 존재는 숨 쉬고 있는 공기와 같아서 잃고 나서야 그 절실함을 알게 됩니다. 36년 일제 강점기의 우리가 그랬고 2천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지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똘똘 뭉쳐 자신들의 공동체를 지켜내고 있는지를 보면 이를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孝와 忠의 기본은 여전히 우리 모두의 기저에서 옛날처럼 도도히 꿈틀거리며 흐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테면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태극기 집회 모두 그 모습만 바뀌었을 뿐 요즘 버전의 忠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봅니다.(우리 젊은이들이나 우리와 같은 기성세대들 모두 염려의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여현 선생님께서 미국 사례를 질문하셨기 때문에 그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영어에서 孝는 ‘filial piety’라고 쓰는데 제 생각으로는 이 단어는 동양의 孝 사상을 영어로 번역한 개념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동양 고전에서와 같은 孝 개념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에는 없다는 의미겠지요.
그러나 영어권 사람들이라고 해서 부모 자식 간의 정과 권리/의무가 없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다만 그 표현 방식만 다를 뿐이지요. 무엇이 진정한 孝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면에서는 미국 사람들 특히 중서부 지방의 시골 사람들은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된 순수함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의 순수함과 기독교 윤리 사상이 미국의 거대한 힘을 뒷받침하고 있는 기반이기도 하고요.

같은 서양 사람들이라도 이탈리아는 우리와 같이 대 가족제도와 혈연/지연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지방색과 축구 클럽에 대한 배타적인 열정은 우리의 그것들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간 천자문을 배우며 느낀 것은 천자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마침 낡은 가치관으로 치부되고 있는 孝와 忠이 그 주제였기 때문에 주제넘은 제 생각의 일단을 밝혀봅니다.= 虛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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