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연습 @ 조양리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44
조회
91
꿈을 꾸어온 것인지 우연인지...암튼 귀촌이 이루어졌다. 엄격히 얘기하자면 귀촌 연습이다. 남의 집을 2년 동안 빌려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귀촌을 위해 우리를 맞아준 곳은 동산면 조양리다. 산기슭의 스무평 남짓한 작은 집에 텃밭이 500 여평 달려있다. 동북향이지만 앞의 조망이 탁 트여 시원한 모습이고 너대채 되는 이웃은 모두 좋은 사람들로 느껴진다. 이 정도면 귀촌 조건으로는 매우 흡족하다. 더욱이 춘천의 손주에게 20여 분의 드라이브면 닿을 수 있고 서울 집에서도 50여분 거리에 불과하다. 아이들 곁에서 흙 밟으며 살아가고 싶은 꿈이 적어도 앞으로 2년은 이루어진 것이다. 130620

조양리에 오무막을 마련했더니 처형내외분, 큰딸 부부가 이틀 사이에 다녀갔다. 오시라고, 오라고 사정할 일이 없어졌다. 이 게 세월들어가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구먼.

그런데 이 오두막집 생각보다 손갈 일이 많아진다. 입지와 겉모습에 반해 전세 계약을 서둘렀던 것인데 한 동안 비워둔 집이라 여기저기 손볼데가 많다. 큰 딸은 남의 집에 돈들일 필요없다고 말하지만 골프 서너번 나가는 돈이면 해결 될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래저래 세상은 남의 것 빌려쓰다 가는 것인데 사는 동안 편안하게 잘 쓸 수 있다면 그게 혜택인 게지....

조양리는 손주 겸이에겐 더 없는 야외 놀이터가 될 것 같고 내게도 큰 노력없이 여름 한 철과 봄, 가을을 잘 낼 수 있는 곳이 될 것 같다.... 130622

우리 차로 조급씩 이주를 하면서 텃밭의 잡초들을 뽑아내고 들깨와 서리태를 좀 심었다. 도배와 청소도 하고 살림살이도 조금씩 옮겨 놓기 시작하니 사람사는 집 같아 졌다. 시간을 내어 마눌과 함께 이웃 탐색에 나선다. 가까이 재학생 30여명에 선생님 열다섯분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동산중학교가 있다. 800여 미터를 걸어가면 면사무소, 보건소, 소방소가 함께 있는 면소재지다. 거기서 조금 더 운전했더니 하누마루라고 일주일에 두번 소를 잡아 팔기도 하고 정육식당도 운영하는 값싸고 품질 좋은 먹거리가 있다. 조양리는 북방면 부사원리를 경계로 홍천군과 맞닿아 있는데 10킬로미터 쯤 운전하면 홍천온천이 있어 땀흘린 후 피로를 풀기에는 그만인 조건이다. 조양리는 이웃마을인 굴지리 끄트머리로 홍천강과 닿아 있어 여름철에는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130630

우리 집을 포함해서 모두 여섯 채인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우리의 일거수 잍투족이 이웃에게 모두 노출되고 있는 느낌이다. 작은 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드니 당연히 호기심의 대상일 게다.
전세 계약을 위해 처음 이 마을에 들렀을 때 띠 동갑 아주머니 집에서 마침 지붕 수리를 하다가 인부들에게 점심을 내고 있었는데 마눌과 내게도 동참을 권유해와 밥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이를 인연으로 동네 사람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네와 우리의 중간 이웃에 여든여덟의 할머니가 외로이 사시는데 우리 일에 관심이 많으시다. 텃밭의 야채들도 가져다 먹으라고 하실만큼 정이 많으신데 지나치게 가까이 하시려 해서 나중에 서로 상처가 될까 걱정이다. 할머니가, 말씀으로는 이사 나갈 사람들에게는 정을 주기 싫다고 하시지만 실제 행동은 가족같이 하시기 때문이다.130630

집안 여기저기에 땡벌집 천지다. 작은 이사짐을 처음 들여오던 날 처마에 달려 있던 땡벌집을 모르고 지나가던 마물에게 네 마리의 땡벌이 달려들어 침을 주고 달아나 마눌을 질겁하게 했었다. 벌을 포함해 짐승들은 사람이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먼저 공격을 해오지 않기 때문에 이상하다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벌들이 여자들의 화장 향때문에도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오늘은 현관 앞의 작은 정원수를 전지하던 딸이 기겁을 해 뒷걸음을 쳐서 보니 그 덤불안에도 땡벌이 깃들여 있다. 하마터면 손주에게 무차별 벌침 세례가 난무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틀여 전에는 마당에서 물뱀이 우리 차에 깔려 죽은 적도 있다. 개구리도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처마 끝에 달려 있던 땡벌 집의 처치때문에 며칠을 고민하다가 바퀴벌래 용 살충제를 분무했더니 삽시간에 땡벌들이 소멸되었다. 땡벌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토록 강력한 살충제의 폐해가 우리 어른들에게는 물론 겨우 두돌배기 손주에게도 이를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암울해온다.130630

어제 저녁에는 처음으로 오두막에서 잠을 잤다. 시골생활에 익숙치 않은 마눌이 벌래와 야음이 무섭다고 밤만되면 춘천의 딸 집에 가자고 졸랐기 때문이다. 기실 전등, 싱크대 등 집안 정리가 아직 덜 되어 밤이되면 으시시한 분위기가 느껴져 나 역시 혼자 자라면 무서운 분위기다. 집이 산기슭과 맞닿아 있는데다 현관 맞은편으로 달아낸 창고 쪽이 좀 으시시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띠동갑 아주머니가 어제 잠시 방문해 그간 이집에 살다나간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잘 되어나간 좋은 집터라고 한 말에 마눌의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실제로 하루밤 유숙을 해보니 기분이 매우 상쾌한 느낌이다. 130701

장마비에도 불구하고 불알친구들이 와서 전등도 모두 달거나 교체해주고 도배후에도 곰팡이가 그대로 남아있던 몰딩 부분을 모두 깨끗하게 청소해 주었다. 씽크대도 새 것으로 교체해 넣고나니 비로소 집안이 깔끔해 졌다. 고향친구들이 아니면 이런 궂은 일들을 이 멀리까지 와서 해줄 수 있을런지...불알친구들이 역시 고맙다. 130702

스무 여일 만에 중국 서역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조양리 오두막 여기저기에 곰팡이와 습기는 물론 물까지 스며들었다. 천산산맥을 끼고 비가 오면 초원이고 가물면 사막인 실크로드지만 날씨만은 쾌적했었다. 그런데 자릴 비운 조양리는 내내 장마비로 후텁지근한 날씨가 계속되고 인근에 산사태가 여기저기 발생해 도로가 두절될 정도였단다. 조양리 오두막의 텃밭 한귀퉁이도 내려 앉아 있다. 전원생활 좋다고해서 영감따라나선 마눌이 혼자 맘 고생을 많이 한 눈치다. 이제 슬슬 조양리와 귀촌의 어두운 면들을 적어나가야 할 때 인가보다.... 130721

심야전기를 이용해 집중적으로 습기 관리를 하고 낮엔 선풍기로 습기와 곰팡이를 관리했더니 집안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마침 장마도 소강상태여서 모처럼의 햇살도 도움을 주었다. 시골이라서 생활편의 시설 공급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없던 사이에 뒤늦게나마 세탁기와 가스레인지도 중고를 사서 설치해 놓았지만 연결은 오늘에서야 겨우 되었다. 오늘은 인터넷, 케이블TV, 전화도 한꺼번에 연결되었다. 인터넷을 이용해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계속되는 장마로 시골 누님집에 보관해 두었던 이사짐도 옮기지 못하고 있는데 돌아오는 일요일 옷장과 책상 등을 가져다 놓으면 살림살이가 대충 구비될 것 같다.  이웃들에게 계속 미루던 집들이도 곧 해야한다. 130725

접이식 테이블 가져댜 놓고 테이블에 맞는 의자도 구비했다. 여행 가기 전이니 벌써 3주나 전에 바베큐  세트도 큰 사위가 택배로 보내왔었다. 어제 저녁 작은 딸 네가 와서 막국수 먹으러 가자고 하니 마눌이 삼겹살  사다 놓은 게 있으니 바베큐 해보잔다. 마당에 텐트도 있고 날도 늬엇 늬엇 바베큐 하기에 딱 좋은 날씨여서 작은 사위와 함께 전을 벌렸다. 한번도 안해 본 일이지만 어찌어찌하여 불을 피우고 소금 삼겹살을 구워 놓으니 손주,  겸이도 잘 먹는다. 드디어 이루어진 시골 생활의 로망에 모두들 뿌듯해 한다.  130727

세월가면서 아침 일찍 일어납니다. 서울 있을땐 공연히 서성거리기도 하고 청소도 해보고 했지요. 그런데 조양리에서는 할 일이 천집니다. 들깨 모종해야지요, 모기장 구멍도 땜질해야지요. 풀도 뽑아야지요, 나무들 전지도 해야지요....그래서 하루가 매우 바쁘게 돌아갑니다. 일을 해놓고 보면 이렇게 뿌둣할 수가 없네요...그래서 딸, 사위, 마눌에게 이것 저것 자랑하게 되네요... 130728

시골살면 좀 외로울 수가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드립니다. 그러면 술 한잔 같이 나누고 도시 사람들은 시골의 공기와 경관에 감탄해 합니다. 그렇지만 손님 수발을 들어야 하는 마눌의 불평,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해는 갑니다. 시골에 손님 치다꺼리나 하러 온 게 아니란 거지요...사람과 사람들이는 걸 좋아하는 나와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군요. 130729

3년전 아파트를 줄이면서 시골 누님집에 옮겨 놓았던 짐들을 모두 조양리로 옮겼습니다. 곰팡이가 많이 낀 가구들을 털어서 정리하니 가구도 살고 조양리 오두막도 살아났습니다. 이제서야 사람사는 집으로 거의 온전하게 변모한 것 같습니다. 이사짐 옮기고 정리하는데 우채국 택배가 직업인 고향 친구의 신세를 많이졌네요. 오두막을 동네 사랑방으로 내놓겠다는 게 신세질 때마다 내놓는 변인데 마눌이 번거로워 해서 약속을 잘 지켜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130730

텃밭에 들깨 모종을 겨우 끝냈습니다. 모종이나 파종 때 욕심을 부려 모두 가질려면 모두 버리게 됩니다. 적절이 솎아주어야 남은 놈들이 틈실히 잘 자라는 게 자연의 이칩니다. 그리고 야생으로 자란 들깨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130731

휴가가 피크라서 보통 때면 40분이면 오는 길을 세 시간 걸려서 조양리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살림살이에 필요한 짐은 모두 가져온 것 같습니다. 들일 때는 쫄딱 쫄딱 날랐지만 나중에 집 비워줄 때는 이삿짐 센터 불러야 할 것 같네요.... 130801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려 콩밭에 나간다. 이사 오자마자 파종한 서리태가 잘 자라 있긴 하지만 장마를 겪으면서 잡초 역시 무성하다. 아침 여덟 시에 밭메기를 끝냈으니 세 시간이나 일한 셈이다. 밭메기 끝에는 작은 새떼들이 밭으로 몰려든다. 밭 일구면서 나온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서다. 자연은 인간에게 끝없는 일거리를 제공해 준다. 그래서 살 맛나는 세상이다. 어제 어녁 아홉 시 좀 넘어 잠이 든 손주 겸이는 아직도 곤하게 잠 자리에 든 채다. 이 모든 게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130802

조양리 집들이 마쳤습니다. 일종의 통과의례지요. 숙제 끝낸 기분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통과의례로서가 아니라 마을 분들에게 정중하게 신고를 하고자 했던거지요. 그런데 우선 마눌에게는 이 게 큰 부담이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저 삼겹살 구워서 막걸리와 상추 정도로 가볍게 신고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지요. 마눌과 나 사이는 늘 이런 갭이 있습니다. 난 언제나 가겹게 생각하고 마눌에겐 늘 그게 부담이고요. 그래서 친구 부인이 서울에서 차출됐습니다. 손이 빠르고 몸이 가벼워 이런 일에 겁을 내지 않는 여인이지요. 그래서 마눌은 한결 가벼워했습니다. 다행이었지요. 그런데 정중한 신고식이 통과의례가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었습니다. 초대된 이웃 중의 한 가족이 점심 때부터 시작해서 저녁 때까지 일어날 줄을 모르고 음식을 탐하는 것입니다. 옛날 일 돌이켜 보면 시골에 잔치가 열리면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이 있긴 했었지요. 다른 할머니 한 분도 자릴 뜰 생각은 커녕 계속해서 한말 반복하고 반복하고..그래서 우리는 지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정중한 입주 신고식이 통과의례로 변해 버렸지요. 왼종일 손님 치닥거리했던 막내딸과 마눌 그리고 친구 내외가 더 이상의 가까운 친교는 어렵겠다고 선언한 이유입니다. 엊그제 종림당 서역여행 뒷풀이에서 남궁원장이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귀촌생활하면서 시골의 이웃들과는 불가근불가원이라고... 아무튼 통과의례는 끝났습니다. 130804

오늘 새벽엔 이사 시작한 후 한번도 치우지 못했던 쓰레기를 한꺼번에 소각했습니다. 세상 물건 없애는 데 소각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걸 왜 비로소 느낄까요. 각종 박스는 물론 플라스틱, 유리병, 폐전등까지 모두 태워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화장을 하는가 봅니다. 내가 본 장례 중에는 중국에서 본 조장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갈 육신이니 먹이사슬을 통해 돌아가면 마지막 보시를 하는 셈이 될테니까요.

소각 마치고 아침밥 먹고 마눌이 해놓고 간 빨래 좀 널고 난 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데 왠 중년 남정네가 차를 몰고 집마당으로 들어섭니다. 의아하게 서재의 창넘어로 내다보고 있으려니 현관으로 들어옵니다. 하는 수 없이 나가 맞이했더니 동네 주민인데 가까운 냇가 다리 밑에서 한잔하다가 날 데리러 왔다네요. 아니 생면부지인 사람이 왜 날? 그런데 알고보니 어제 집들이 때 왔던 한 아주머니의 남편된다네요. 아 이를 어쩐다? 통과의례로 마을사람들과는 불가근불가원하기로 했는데....그렇지만 집에까지 찾아온 분을 문전박대할 수도 없는 일이고... 또 어차피 한 동네에서 살아갈 분들이니 그냥 따라 나섭니다. 2-3분여 거리의 시냇가 다리 밑에 어제 왔던 아주머니 두 분과 남자 두분이 불루스타에 불 피워놓고 오리고기 안주 삼아 한 잔 하고 있더라고요. 어제 집들이에서 보니 주인장 인상이 좋아보여 불르기로 했다네요...이러니 또 붕 떠서 이분들과 주거니 받거니 또 술을 걸치게 되었네요. 남자 두 분이 내 나이 또래인줄 알았는데 한분은 칠순 또 다른 분은 예순여섯이라네요. 그래서 술김에 두 분 모두 형님하기로 하고 낮술을 꽤 마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골 인심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남궁원장이 내게 한말하고 정확히 일치합니다. 불가근불가원해야 하는 이유가 가까이 하면 매일 술먹자고 한다는 것이지요...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를 수 밖에. 그래도 이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을 때가 고마운 것 아니겠어요? 130805

어제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겸이를 데리고 와 조양리에서 돌봐주려고 춘천의 석사동에 들렀는데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스쿨버스에서 내린 겸이가 내 차를 타지않고 아무도 없어 썰렁한 제 집으로 들어가겠다고 내 손을 아파트 쪽으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 녀석, 그 동안 제 집과 할아버지 집을 분간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냥 차에 실려만 다니는 줄 알았는데...전날 저녁 조양리에서 혼자 머물며 밤 늦도록 뽀로로를 보다 잠이 들었었는데 잠자리가 불편했는지 아님 제 엄마와 떨어진 게 싫었었는지...나중에 학원에서 돌아온 제 엄마를 보고 얼마나 반기든지...역시 피는 진하고 할아버지는 한 다리 건너다. 130807

조양리는 해발 200미터 정도의 고지다. 서울과 한반도가 불볕 더위로 난리지만 여기서는 저녁에 홑이불 덮고 자야한다. 개발은 결국 인간의 미래를 구속하게 된다. 그러니 자연이 주는 혜택으로 돌아갈 일이다.

고양이 두세마리가 늘 집 주위를 맴돈다. 가끔 바베큐도 하고 쓰레기도 버리니 그 주위를 맴도는 게다. 조양리 이사온 후 쥐새끼 한 마리 보지 못했으니 다 이놈들 덕택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놈들에게 먹을 것도 챙겨주게 된다. 그런데 이놈들이 어느날 부터 집안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시골 생활이 처음이고 가축이나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는 마눌이 기겁을 한다. 그래서 이놈들을 적극적으로 쫓아내게 되었다. 그 중의 한놈은 예쁜 새끼들을 낳아 키우고 있다고 듣기만 했는데 오늘 아침 드디어 새끼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겸이는 자고 있고 마눌은 아침 준비 중이라 어미와 새끼에게 돌을 던져 쫓아냈다. 이놈들이 도망치며 뒤돌아보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온다. 모처럼 새끼 데리고 좋은 이웃 소개하러 왔을지도 모르는데.... 130811

서울서 손님들이 와 인근의 막국수 집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이웃 테이블에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도 함께 식사중이었는데 마침 식당에서 서빙하던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와 조양리 이장이 그 테이불에 합석하고 있다고 했다. 장소가 너무 캐쥬얼해서 다음에 인사할까 하다가 만난 김에 인사나 하지 싶어 그 테이블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그랬더니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 사람들이 내게 좀 거부감을 가지고 반응을 해온 것이다. 너무나 뜻밖의 상황에 좀 언짢은 기분이었지만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이장의 얘기인 즉 이사 온 내가 이장에게 신고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전입신고서에 싸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동네 사람들에게 성의를 다한 입장이기 때문에 너무나 뜻밖의 얘기를 들은 것이다. 전세 계약 끝내고 면사무소에 전입 신고하러 갔을 때 담당 공무원이 분명히 내게 말하기를 동네 이장이 방문하여 실제 전입 여부를 확인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지난 주말 집들이 때 이장을 불르면 어떻겠냐고 동네 아주머니와 상의했을 때 이웃들만 하면 된다고 해서 우리 마을 여섯 가구만 초청했었다. 이장은 같은 조양리이긴 하지만 한 참 떨어진 이웃 마을에 살고 있으니 다음에 기회되는 대로 만나면 된다고 해서 그런 줄만 알았는데....

나로서는 특별히 경우에 어긋난 짓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장이 소위 텃세를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당연히 동네 이웃들과 잘 지내고 싶고 또 그렇게 노력해 갈 생각이다. 그렇지만 동네 이장이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어깃장을 놓으면 나로서도 당연히 협조할 생각이 없다. 이래서 불가근 불가원이라고 했던가? 130812

요 며칠 사이 새벽마다 집 뒤의 잡목들을 계속 베어내는 일을 했습니다. 산자락이 남향인데 우거진 잡목들이 지붕까지 덮고 있어 오두막을 계속 습기 차게 하고 곰팡이까지 슬게 하고 있기 때문인입니다. 오늘 새벽에 그 일을 대충 끝내고 보니 뒷곁이 한결 시원해지고 통풍도 잘 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는 집안의 습기와 곰팡이가 상당 부분 잡힐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오늘은 광복절 휴일이라 어린이 집이 문을 닫기 때문에 손주 겸이가 어제 밤에 조양리에 와서 묵었습니다. 아침에 잡목 제거하는 일을 모두 마친 후 샤워하는 소리에 겸이가 깼네요. 아침 일곱 시 밖에 되지 않았으니 다른 때 같으면 한 시간 이상을 더 자야 할 시간이지요. 그래서 잠이 부족해 기분이 깔끔하지 않은 겸이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산책을 크게 한바퀴 해보기로 했습니다. 일 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면사무소 있는 동네까지 가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겸이를 놀게 할 생각이었지요. 동네 앞의 작은 시냇물을 따라 농로가 조성된 길로 유모차를 밀고 갑니다. 동네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백일홍, 맨드라미, 해바라기 꽃과 코스모스를 풍성하게 심어 놓았습니다. 코스모스만 아직 꽃이 피기 전이고 나머지 꽃들은 만발해 있어 혼자 보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시골길이네요. 시냇물에는 백로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서성이다 공중에 날다를 반복하고 있어 겸이에게는 더 없이 좋은 구경꺼리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키울 수 있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30815

한반도의 날씨가 예사롭지 않다. 미국 플로리다에서나 본 스콜성 소낙비가 하루 한두번씩 몰아친다. 소나기 오기 전의 참을 수없는 후텁지근함은 소나기 지나간 후의 상큼함이 깔끔히 날려준다. 소위 아열대성으로 날씨가 바뀌면 서민들 삶은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 소나기때문에 우리 마눌은 어제 크게 다쳤다. 햇볕에 널어 둔 빨래를 급히 걷으려다 그만 현관 앞 계단에서 실족을 한 것이다. 실족뿐만 아니라 계단 옆의 정원수 속으로 팔을 디디며 넘어졌는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만큼 알러지로 연결되었다. 하는 수 없이 한의원에 가서 침맏고 피부과에 가서 알러지 약 처방을 받아야만 했다. 가끔은 사소한 일에 신경쓰다가 큰 일을 그르치는 게 인생 살이이다. 130817

세월에 장사 없다고 했었지. 하늘 높은 줄 모르던 폭염이 물러간 모습이다. 청명한 하늘에 가을을 알리는 구름이 걸쳐있고 농로에 만개한 백일홍이 눈부시다. 겸이가 버스 편으로 아침 일찍 왔기 때문에 농로를 따라 산책을 겸해서 조양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간다. 시골 학교들은 모두 정남향의 명당 자리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바로 옆에 있는 동산중학교와 달리 겸이의 놀거리가 많다. 미끄럼틀, 시소 그리고 무엇보다 그늘이 드리워진 시원한 규모의 운동장.  겸이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신나게 논다. 집에 있었으면 뽀로로에 매달려 꼼짝도 안하고 앉아 있었을 아이다. 돌아오는 길에 한우누리에 들러 안심을 사서 마당의 천막 테이블에서 구으니 이게 바로 귀촌의 묘미다. 귀촌은 일상생활을 자연스레 family- oriented 하게 몰아주니 이 또한 혜택이다. 때마침 청명한 하늘에 산들바람까지 불어주니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

저녁 먹고 어둠이 짙게 내려 앉은 5번 국도를 시원하게 달려 춘천시내의 딸네 집으로 겸이를 데려다 준다. 각각 340 미터 높이의 모래재와 원창고개를 넘으며 차밖의 기온이 22도가 찍혀 더없이 쾌적한 느낌이다. 그런데 춘천시내에 들어서니 외기온도가 갑자기 27도까지 찍힌다. 그러니 아침 식전에 조양리 집에 온 딸이 긴팔 남방을 찾아 입은 게지. 춘천의 기온이 이럴진데 서울은 지금 얼마나 푹푹 찌고 있을까? 130825

농삿일과 뒷산 잡목 제거가 다소 무리했던지 담이 결려왔는데 지난 한 주의 침술과 파스 치료로 증세가 호전되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삿짐도 그렇고 농사와 집관리도 그렇고 자칫 무리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일이 생길 수 있겠다.

겸이가 고열로 또 어린이집에 가지 못했다. 섭생이 특별히 부족한 것 같지는 않으니 타고난 체질이 약골인 게다. 제발 아프지 밀거라. 잦은 병치레와 약골까지 하찌를 닮아올 것까지는 없다. 130826


병원 정기 검진, 천안의 상가집, 토욜 오전의 결혼식이 주말에 연이었다. 결혼식 마치고 서울 집에 돌아가 만삭의 큰 딸과 함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TV로 함께 봤다. 미국적인 감동을 주는 영화다. 영화 끝나자마자 춘천 딸에게 전해 줄 짐들을 챙겨 조양리로 돌아왔다. 조양리 돌아오는 길에 작은 딸과 함께 춘천 인근의 전원주택단지 한 곳과 조양리 인근에 지어진 새 집을 돌아봤다. 좋은 땅이나 집이 있으면 춘천에 자릴 잡을 생각이다. 큰 딸의 due date가 열흘 남짓이다. 아모쪼록 순산하거라^^ 130831

오늘 아침 드뎌 뒷산의 잡목 제거 작업을 모두 마쳤다. 그동안은 집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을 습기 제거 차원에서 정리했었는데 앞밭과 뒷밭 주위의 잡목들까지 모두 정리해 집 주위가 깔끔해졌다. 내가 보아도 좋고 이웃분들도 와서 보고 좋단다. 뿌뜻한 마음이 넘쳐온다. 자연과의 통섭이라고나 할까. 잡목들을 정리해야 제대로 자라고 있는 나무들에게 도움이 된다. 그 동안 큰 나무와 잡목 그늘에 눌려 시원치 않았던 농작물들도 활기를 찾고 있다. 농작물 위로 드리워져 있던 큰 나무들의 가지들도 모두 전지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동안 매일 아침마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잡은 일을 해준 셈이다. 130902

잘 자라던 배추에 벌레가 여기저기 많이도 먹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런지....학곡리 농협자재백화점에 들러 해충제를 사다 조리에 넣어 뿌려준다. 탐스런 배추를 조양리 오는 사람들마다 몇 포기씩 나눠줄 꿈을 꾸면서....  20130916

추석이다. 형님 댁에 차례가는 대신 조양리의 집을 깔끔히 정리했다. 어제 밤에 비로소 보일러 난방이 제대로 작동한 김에 구석구석의 곰팡이를 모두 닦아냈다. 앞으로 차례, 설, 제사로는 형님댁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대신 생신이나 잔치 등 산 사람일로 만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어차피 조카 며느리도 들어왔고 동생네도 부도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잠수에서 수면으로 떠올르지 못할터이니 제사 등은 조카에게 맡겨두는 게 좋을 것이다.

추석 아침 조양리의 햇볕이 환상이다. 오늘 아침 같은 날이 시골생활의 백미이자 묘미이다. 집안을 대충 정리하고 아직 산부인과에 입원해 있는 큰딸과 외손녀 은총이를 보러 나서야 겠다.... 20130919

인간관계에서 무엇이 소중한 가치인지, 그래서 어디에 그 가치를 두어야하는지 지혜롭게 판단해서 말하고 행해야 한다. 어제는 처형네 등이 조양리에 와서 모처럼 조개탄 피우고 고기 구었다. 분위기와 즐거움은 이것보다 더 좋을 수 없지만 뒷일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그 뒷일들도 즐겁해 하면 또 다른 보람이 된다. 20130921

남의 집 세 산다고 마눌이 세탁기와 가스레인즈까지 중고로 들여 놓았었다. 월욜에 서울에 딸보러 가면서 마눌이 국을 한 냄비 끓여놓고 가서 때마다 데워 먹으니 간편하긴 하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가스레인즈에 불을 켜놓고 밭일을 하다가 그만 냄비가 시커머케 타들어 가도록 몰랐었다. 갑자기 가스레인지 생각이 퍼뜩 떠올라 집으로 뛰어들어 보니 집안에 연기가 가득이다. 나이들어 가면서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가전 제품이 필수다. 중고 살 때 새 것들도 함께 돌아보았었는데 요즘 가스레인즈들은 모두 3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소화되는 장치가 되어 있었다. 다소 부담이 되더라도 가스레인즈를 새 것으로 교체해야겠다. 20130926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던 이웃과의 적절한 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웃 관리가 생각만큼 쉬운 일만은 아니다. 우리 이웃에는 가치관과 생활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늘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 문화 그리고 행동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공존한다는 것은 때론 몹시 피곤한 일일 수도 있다. 조양리 입주 직후 냇가 다리 밑에서 얻어 먹은 오리 바베큐를 어제 저녁에 겨우 되갚았다. 그 당시 전화번호라도 따 두었어야 하는 건데 술김에 그냥 헤어진 탓으로 연락할 방법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제 다행히 그 모임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저녁 기회가 어렵사리 마련되었다.

그런데 내가 사람을 집으로 불러 들이는 것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스런 저녁이었다. 평소의 지론대로 마당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소주 마시면 된다는 생각으로 농협 마트에서 삼겹살, 오리고기, 상추, 깐 마늘, 고추, 쌈장과 막걸리, 맥주 정도를 샀다. 소주는 집에 아직 많이 남아 있었고...그런데 여름에 다리 밑에서 만났던 두 커플 외에 한 커플이 더 오면서 다소 당황스러운 상황이 전개되었다. 생각지 않게 찾아준 새 커플이 술을 전혀 하지 못해 밥부터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내가 준비한 것은 소주 안주 뿐이었으니 난감할 수 밖에. 밥을 먹을려면 반찬 몇가지는 있어야 하는데 우리 집엔 반찬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마눌이 딸 보러 서울 간 상황이라 그나마 익스큐즈가 되는 상황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한 아주머니가 없는 반찬인데도 이리저리 수단을 발휘하여 볶은 밥을 준비해 주어 끼니를 때우긴 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만 아니었다면 평소의 내 소신대로 삼겹삽에 야채 몇가지로 모임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차피 서로 돌려가며 하는 모임이라면 피차 부담스럽지 않게 준비하는 게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웃들과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이다. 가까운 친구들과도 가끔은 부담스러운 일이 생기는 나이인데 이 저녁 모임을 통해 전혀 다른 환경의 사람들과 이웃하며 잘 지내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은 경험을 했게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웃과 담쌓고 은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 20130927

나는 왜 시골에 와 있는가? 손주와 딸 네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자연이 좋아서? 공기도 좋고 농삿일이 주는 활력 때문에? 안식 학기이기 때문에? 혹시 현실을 도피해서 와 있는 것을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20130930

춘천시립도서관 주관으로 매월 문학기행이 개최되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40명 선착순인데 거기 끼어서 '은마는 오지 않는다'의 배경 지역인 서면의 장군봉 일원을 걸었다. 작가 안정효가 대학 영문과 재학 시절 방학을 이용해 장군봉 맞은편 산자락의 황면장댁에서 이 작품을 영어로 집필했다고 했다. 소설은 장군봉과 거기에 얽힌 설화를 배경으로 하고 실제 스토리는 작가의 외가가 있었던 부천지역에서 일어났던 전쟁 시절 얘기를 엮은 것이란다. 집필은 60년대 였는데 책의 출간은 30년이나 지난 90년대에 뉴욕에서 영어로 먼저 이루졌다고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지역을 먼저 돌아보았으니 책을 한번 읽어 보아야 겠다. 소설의 내용과는 별개로 장군봉과 소양강을 낀 서면 일대의 지세가 간단치 않은 모습이다. 풍수를 잘 모르는 아마츄어가 보아도 장군봉을 뒤로 하고 앞으로 흐르는 소양강 주변의 경관이 빼어난 모습이다. 이곳 금산리가 서면의 면소재지인데 바로 박사마을로 잘 알려진 동네다. 작은 지역에서 박사가 백명이 넘게 배출되었단다. 풍수를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지만 집터나 묘지를 보면 좋아 보이는 곳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기왕이면 좋은 곳에 터를 잡을 수 밖에.....

소양강 서쪽 연안을 끼고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데크길이 아를답게 조성되어 있는데 우리 같은 초행에게는 쾌청한 날씨 그리고 수려한 경관과 어울려 아름답게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 현지인들은 불만이 많다. 데크길이 조성될 때 시행부서인 국토부와 지자체 간에 협조가 전혀 이루지지 않아 더 아름답게 조성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고 조성 후에는 아무런 예산 조치도 없이 관리만 춘천시에 떠 맡겼다는 것이다.

어쩼거나 도서관이나 문화원 주관 행사들을 잘 따라다니기만 해도 필요한 인맥을 만들어 가고 지역사회에서도 잘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20131002

춘천과 홍천을 잇는 5번 국도는 참 아름다운 드라이브 길이다. 해발 3백 미터가 넘는 고개를 세 개나 넘는데 나머지 길도 모두 산길인데다가 들어설수도 없을만큼 산림이 도로 양쪽으로 빼곡해 한 여름에도 서늘하다. 이 길의 홍천쪽 끝자락에 홍천온천이 있어 자주 오가게 된다. 춘천은 아이들이 있는 곳이니 더 자주 드나들고. 조양리는 이 아름다운 길의 중간에 있어 늘 쾌적하고 상큼한 느낌이다. 20131007

가을은 하늘만 높고 책읽기만 좋은 계절이 아니다. 한 낮을 피해서 일하던 농부들이 하루 종일 밭에 나가 있어도 견딜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조양리 텃밭에 엉성하게 서리태, 들깨, 무우, 배추를 심었었는데 오늘 드디어 그 중에서 들깨를 수확했다. 연약하고 작은 모종의 들깨들이었는데 낫이 잘 들어가지 않을만큼 억센 대궁이 되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들깨 특유의 향이 가을 하늘에 더해지니 바야흐로 수확의 계절인가 보다.  20131010

마당의 수도가 이사올 때부터 누수로 조금씩 흐르고 있었는데 최근에 그 정도가 심해졌다. 물이 조그씩 흐르는 건 수도를 보호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마을 상수도라서 수도 요금을 별도로 내지 않아 그냥 방치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이웃 사람들 오가며 눈치를 주고 있어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오늘 하는수 없이 수도업자를 불러다가 대공사를 하게 됐다. 손잡이 하나 정도 갈면 될줄 알았는데 수도관이 한 세트로 되어 있어 콩크리트를 깨고 땅을 파내는 큰 공사를 하게 된 것이다. 남의 집에 이래저래 돈만 자꾸 들어간다. 그러나 어쩌랴! 사는 동안은 내 마음과 몸이 편안한 게 우선인 것을...... 20131011

습관은 좋은 쪽으르든 나쁜 쪽으르든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십년 넘도록 강화를 왔다갔다하는 생활을 했더니 안식학기임에도 불구하고 조양리와 성내동을 왔다갔다해야 직성이 풀린다. 어느 한 쪽에 여러날 있게되면 좀이 쑤셔온다. 이래저래 조양리에 터전을 임시라도 마련한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20131014

조양리에서 첫 수확으로 들깨 조금 거두웠다. 산뜻한 들깨 향만큼이나 기분이 좋다. 이걸 기름집에 가져가 저울에 달아보니 2kg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적은 양의 소출이다. 한 말은 되어야 한다기에 기름집에서 들께 3kg을 더 사서 기름을 짜니 다섯 병이 채 나오지 않는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 그래도 첫 소출이니 이웃과 나누어야겠다.  20131017

갓 거두어
사각사각 달콤하기까지한
배추쌈에
넓다란 테이블 가운데 놓고
가족 모두 둘러 앉아
저녁을 같이 하니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래,
가족은
이렇게 땀흘린 보람을 가운데 놓고
도란도란 살아가야
자연스런 법이지.... 20131021

어제 저녁 모처럼 손주, 겸이가 제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조양리에서 지냈다. 제 엄마 아빠가 학원 일로 한 동안 각각 바삐 지낸 탓으로 손주 돌보는 게 다소 소홀했던 탓으로 요즘 손주가 제 어미 애비 곁을 떠나지 않으려 했었다. 덕분에 할아버지는 손주의 안전에 없는 상황이었고...딸네가 온 김에 모처럼 삼겹살 구어 저녁을 먹으니 딸이 맥주 생각이 난단다. 그래서 저녁 후 맥주를 곁들인 아이들을 춘천 딸네 집에 데려다 주고 거기서 잤다.

오늘 아침 딸과 함께 다시 조양리로 돌아왔는데 왠 낯선 사람이 마당에서 서성인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니 참 좋은 터의 집에서 살고 있단다. 스스로를 남춘천역 앞 성불사의 스님이라면서...좋은 터에서 살고 있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그런데 스님이라는 사람이 좋은 집에 사니 절 짓는데 기와장 값 정도 보태달란다. 순간 이 사람이 스님인가, 아님 사기꾼인가 하는 생각으로 헛갈려 왔다. 그렇지만 적선한다는 생각으로 기왓장 한장 값이 얼마냐고 물었더니 알아서 달란다. 그래서 2만원을 챙겨 주었더니 기왓장 한 장이 4만원이란다. 나는 천주교인이요 했더니 두 말 않고 돌아선다. 이 사람이 진짜 스님이었을까? 아님 사기꾼이었을까? 20131024

오늘 아침 조양리에 서리가 내린 것과 함께 살얼음이 얼었다. 서리 내린 김에 텃밭의 서리태를 아침 일찍 거두어 들였다. 서리와 살얼음은 이미 예보되어 있었는데 어제 밤 갑자기 심야전기 보일러가 작동되지 않아 냉골에서 밤을 지새울 뻔 했다. 그러나 다행히 마눌이 보일러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다가 어찌어찌하여 보일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덕택에 따뜻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20131025

정말 오랜만에 손주 겸이가 제 엄마 아빠와 따로 떨어져 하찌, 하니와 함께 조양리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있다. 그 전엔 제 엄마 아빠보다 하찌를 더 좋아 한 적도 있었건만....그나마 이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다시 돌아온 모습이라 고맙다. 오랫 동안 달고 있던 기침 감기도 떼어 내고 잘 놀고, 잘 먹고, 샤워도 잘 하고 지금 이 시간까지 잘 자고 있다. 조양리의 공기와 환경이 좋긴 좋은가 보다. 131026

조양리의 동네 사랑방 역할은 과연 잘 하고 있는 것일까. 공교롭게 종림당 사랑방과 기일이 겹친 건 무언가 시그널을 주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131028

이슬비가 가을을 재촉하는 홍천 시장을 다녀왔다. 읍 단위 도시는 모든 게 컴팩트하게 위치하고 있어 편리하다. 재래시장, 옹기전, 철물점, 농협하나로 마트...손주 겸이와 함께 하니 더욱 즐거운 나들이다. 131102

야생화를 사랑하는 모임 카페에 가입했더니 이 카페의 춘천방에서 번개를 쳤다. 서울서 볼일 끝내자마자 춘천으로 직행한다. 한 시간의 운전으로 닿을 수 있으니 춘천은 이런 면에서도 아주 좋은 위치다. 벙개에 나온 분들이 모두 초면이지만 반갑게 만나주어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해관계 없이 같은 취미만 공유한 모임은 늘 즐거움이 클 수 밖에 없다. 이분들 덕분에 거두리 정착하면 야생화를 열심히 가꾸어 갈 수 있을 것 같다. 131105

어제와 오늘, 생전 처음 김장을 해봤다. 사먹는 김치는 믿을 수 없고 그렇다고 허구헌날 얻어 먹는 것도 그래서 배추, 무우 농사지은 김에 멋모르고 김장을 하게 됐다. 그런데 이게 속된 말로 장난이 아니다. 배추 뽑아서 소금에 절이고 이걸 또 씻어내고, 배추속 만들어 버무리는 과정이 간단치 않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팔, 다리, 허리 어깨 모두 뒤틀릴만큼 아프다. 그나마 친구와 부인이 도와 주고 아이들 부부까지 가세했는데도 이 지경이다. 어울려 김장하고, 나누어 먹는 문화는 참 좋은데 그동안 김장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너무 모르며 살아온 것 같다. 김장 담그기는 좋은 경험이었지만 김장을 다시 담그는 일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을 것 같다. 20131111

조양리에서 겨울 날 일이 걱정이다. 춥고 긴 겨울엔 별로 할 일이 없을텐데 집을 비워두자니 동파가 걱정이고 난방을 유지하자니 심야전기를 활용하는 난방비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파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관리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다. 20131115

30여년 만에 네 부부가 밤샘으로 조양리에서 다시 뭉쳤다. 감회는 깊으나 옛 모습은 더 이상 아니다. 밤새워 술 마실 줄 알았더니 12시도 안되어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간다. 대신 강한 아집과 함께 말들이 많이 늘었다. 모두 제 갈길을 가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모습인 것 같지만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이 깔려 있다.  20131117

조양리 마당의 수도도 잠그고 테이블과 의자들도 모두 접어서 창고로 옮겼다. 겨울나기 준비다. 조양리의 마당이 휑하게 비어 보여 안그래도 차가워진 날씨로 스산한데 썰렁함까지 더해진다. 그래도 시골 공기는 여전히 상쾌, 상큼하고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시골 풍경이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남아있다. 20131118

심야전기는 밤 11시부터 그 이틑날 아침 9시까지만 작동된다. 이 시간은 조양리의 심야전기 이용 보일러의 작동시간이기도 하다. 지난 토요일 오후 일찍, 보일러를 꺼놓고 한 주일여 비워두었던 조양리에 보일러를 작동시켰것만 실내 온도가 올라가지를 않는다. 일반 전기로 보일러를 가동시켜 보았자 기왕에 덮혀진 물만 순환시킬 뿐인데 보일러의 온수가 이미 식을대로 식어있기 때문이다. 밤 11시부터 난방보일러가 가동되기 시작하자 실내온도가 그제서야 서서히 오르기 시작한다. 춘천의 딸 집에서 저녁만 먹고 돌아와 초저녁부터 조양리의 거실에서 TV보던 마눌과 나는 추위에 오돌오돌 떨다가 하는 수 없이 이불펴고 잠자리에 들었었다. 잠 들기 전 안방이 온전히 덮혀지기 전까지는 얼어죽는 줄 알았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동파를 예방하는 수준에서 조양리 오두막을 비워두고 서울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 20131125

한종나, 한국종자나뭄회 춘천방의 정모가 어제 저녁 남춘천역 근처의 한 식당에서 있었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카페 모임인데 정기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고 종자를 서로 나눈다. 앞으로 춘천에서 정착하느데 크게 도움이 될 모임이다. 시골 생활을 할려면 텃밭과 정원 관리가 필수인데 이분들이 그런걸 좋아해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131130

귀촌 연습 비용을 좀 과다하게 치루게 되었다. 내년 봄 입주 예정으로 계약했던 거두리 집을 해약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주 후 후회하는 것 보다는 그 비용을 휠씬 덜 들인 것이라며 자기 합리화 겸 위안을 삼는다. 거두리 집의 이웃이 집을 짓기 위해 공사를 하면서 경계가 너무 바터 경관도 크게 해치게 되고 공사 과정에서 이런 저런 불편을 겪게 된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그렇지만 네 계절을 겪어보니 시골 생활이 그렇게 녹녹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게 해약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다. 그렇지만 네 계절을 겪어보니 시골 생활이 그렇게 녹녹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게 해약을 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다. 덧붙여 시골집의 선택은 외관이나 경관보다는 집의 기능과 실용성이 우선이라는 깨달음도 같이 얻었다. 거두리 집이 텃밭이 없어 귀촌의 의미가 다소 퇴색되는 상황에서도 한 여름에 이 집을 둘러싼 경관과 집의 아름다운 외관에 현혹되어 집을 계약했었기 때문이다. 20131206

지난 겨우 내내, 눈덮이고 얼음 얼어 붙은 조양리에서 할 일이 많지 않아 비워두었었다. 비운 동안에도 동파 예방을 위해 겨우 내내 심야 전기를 쓰는 보일러를 틀어 놓아 적지 않은 전기료는 계속 물어야 했다.
새학기 들어 안식학기도 끝나며 강의가 시작되어 더 이상 조양리 오두막을 돌볼 여유가 없게 됐다. 시간되는 대로 주말에나 가끔 들러 보고 방학 때나 이용해야 할 것 같다. 차제에 은퇴 시점까지는 오두막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을 내놓으면 전세는 잘 빠질려는지....20140304

춘천 거두리 성당에서 손주 겸이의 유아 영세식이 있었다. 이제 세 돌이 채 안된 아이니 세례식의 의미를 알리 만무하다. 신부, 수녀, 대부가 모두 함께한 자리에서 오늘 세례를 진행하는 데 엉뚱하게도 손주가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세례를 무슨 선물이나 물건을 받는 것 쯤으로 생각한 탓일 게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신앙의 선택을 본인에게 맡겼어야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에피소드라는 생각도 든다.

오늘 일을 겪으면서 80년대 후반 내가 영세를 받던 때의 기억이 새롭다. 6개월 동안 교리 공부를 열심히 한 후 정작 세례를 받아야 할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했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때는 세례를 받을만큼 확신이 서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받은 이유는 당시 교리 교육을 담당했던 수녀님의 강권때문이었다. 지금 확신이 없더라도 세례를 받아야 언젠가는 신앙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면서 대부까지도 당신이 직접 정해주셨었다. 오늘 손주가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나 내가 그 때 세례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의 차이가 있을까나?

그러나 이상한 일은 오늘은 손주의 세례식이었지만 어쩐지 내가 세례를 받는 듯한 느낌의 예식이었다는 것이다. 140308

학기 중이라 조양리를 챙겨볼 틈이 없다가 5월 연휴를 맞아 2박 3일을 오두막에서 묵었다. 영산홍과 늦은 철쭉을 비롯해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만발해 아침 햇살과 함께 상쾌하기 그지없다. 학곡리 농협에 들러 가지, 참외, 수박, 옥수수, 배추,상치 둥의 모종을 사다가 이틀 내내 옮겨 심었다. 정신노동으로 말미암은 스트레스 해소에는 노동이 좋은 해소 방법이고 특히 흙을 밟으며 생명을 가꾸는 일이면 그 효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연 이틀 맑은 햇살과 생명력이 넘치는 공기를 몸으로 느끼면서 조양리 오두막을 언제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지 헷갈려 온다. 세상만사 좋은 일만 이어질 수 없으니 일희일비하며 우왕좌왕할 필요는 없겠다. 140506

큰 사위가 휴가를 얻었다고 해서 작은 사위네 식구 모두와 조양리에서 주말을 보냈다. 이것 저것 심어 놓은 텃밭의 잡초도 매주고 45m 짜리 호스를 새로 마련해서 물도 듬뚝 주었다. 어제 저녁엔 삼겹살로, 오늘 점심엔 동네 한우집에서 갈비살을 사서 온식구가 실컷 고기를 구워먹었다. 이제부터 늦여름까지 조양리를 최대한 즐겨야겠다.

모처럼 긴 주말을 조양리에서 보내고 있다. 옥수수 묘목에 물도 주고 김도 매주니 옥수수가 화사하게 반응해 온다. 어제 저녁에는 한국종자나눔회 춘천방 식구들의 오프라인 모임에도 모처럼 동참했다. 스무분 정도의 동호힌들이 모여 들꽃 모종을 나누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인이다. 그래...나이들어 가면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과 이렇게 어울려 왁자지껄 떠들며 놀아볼 일이다. 140524

가뭄 탓인지 조양리 마당의 마을 상수도가 졸졸졸 흐르는 수준이고 그나마도 부엌에서는 아예 끊겨 버렸다. 물 소중한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는데 머지 않아 정말 물이 부족할 것아이라고 상정해 보니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20140601

현충일을 맞아 조양리 텃밭의 김을 매주고 뒤돌아서 바라보니 기분이 참 좋다! 20140606

조양리 마당의 텃밭에서 소담스레 자라던 하지 감자가 일주일 사이에 벌레들의 집중 공격으로 시들 시들 죽어가고 있다. 사람이든 동식물이든 돌봄에서 잠시 멀어지면 무슨 일을 언제 어떻게 당할지 알수가 없다. 20140617

챙겨줄 이 없어 굶주린 들고양이 일망정 상하거나 먹다 남은 음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20140623

땡벌들도 귀소 본능이 있다는 걸 조양리에서 처음 알았다. 작년에 제거했던 땡벌집 처마에 금년에도 두 번이나 땡벌집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공존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지만 이 녀석들은 부지부식간에 근처에 접근하기만 해도 그야말로 벌떼같이 달려들어 벌침을 놓기 때문에 안타깝지만 제거할 수 밖에 없었다.

땡벌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에프킬러와 같은 강력 살충제를 분무하는 것이다. 20140626

며칠째 졸졸졸 흘러내리던 조양리의 마을상수도가 마침내 끊겼다. 예비로 지하수가 있긴 하지만 오랜 동안 사용해 오지 않은 탓에 전기를 연결하니 모터가 파열되어 있다. 파열된 모터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어 교체해서 사용해야 한단다. 모터 값이 27만원에 출장비가 별로도 7만원이 든단다. 그런데 집주인 김교수와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 많이 불편하다.

어렵사리 집 주인과 통화가 되었지만 결국 서로 불쾌한 얘기가 오간 끝에 모터를 교체하긴 했다. 이 나이되도록 화를 절제하지 못해 내가 유리한 입장에서의 모든 대화와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많이 보게 된다. 이 쓸 데 없는 혈기는 언제쯤이나 다스릴 수 있게 될는지...20140630

조양리 오두막의 화장실과 작은 방의 전기가 나가 전기 전공한 친구가 어제부터 내려와 고장난 전기를 고친 것은 물론 집안 여기 저기 손을 봐주고 떠났다. 어찌하다 보니 필요한 때만 친구들을 부르게 된 것 같아 낯이 간지럽다.
그러나 손님 치닥거리가 아니라 쾌적한 삶과 힐링을 위해 와 있다는 마눌님의 절규도 충분히 이유가 있는 항변이라서 친구들을 마구 불러들이기도 쉽지 않다.
어쨌거나 형편무인지경이던 조양리 오두막은 점점더 사람 살만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사람들 손길 덕분이다. 20140705

장마 후 햇살은 참 맑다. 습기 한 점 없는 공기가 바람에 실려오는 조양리의 녹음 속에서 여덟 팔자로 누워있는 팔자는 그 어느 팔자와 비교해도 부럽지 않다.... 20140712

이웃은 사촌을 넘어 형제지간이나 다름없다. 80 중반의 할머니도 막걸리 한 잔 걸치면 그 마음만큼은 여전히 28청춘이다....이런 조양리의 이웃들과 천렵으로 잡은 물고기 매운탕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들이키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구나..... 20140714

아이는 그 존재만으로도 집안의 에너지다. 아이를 돌보며 에너지도 같이 얻게 된다는 말씀. 요즘 한 주에 2-3일씩 큰 딸아이와 외손녀 단비가 조양리에 머물면서 집안의 활기가 넘치고 있다. 외손녀 단비 역시 조양리에서 온몸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어제 드디어 둘째 외손주 설용이 입양되어 제 부모와 집을 찾아왔다. 애처로운 모습이었지만 다행히 순둥이다. 보채지도 않고 주위에서 어우르면 같이 웃어주기고 한다. 아무쪼록 좋은 인연을 만났으니 건강하게 잘 자라거라..... 20140716

귀촌하고자 하면서 아름다운 집에 더 이상 현혹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20140731

손님맞이 준비를 혼자 해보니 만만치가 않네.... 20140805

텃밭농을 작게 하더라도 자급자족하고 넘쳐나 도시의 이웃들과 나누게 된다. 그런데 도시의 이웃들은 그 농산물의 소중함을 전혀 모른다. 나도 그래왔듯이 싼값에 사먹는 데 익숙해져 그 소중함을 알리가 없다. 그 소중함은 오로지 땀흘려 가꾼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다.... 20140807

쓸고 닦는 것은 손님맞이의 기본이다.... 20140810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앞 도어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시골 생활하면서 우리 집을 포함해 여섯 가구밖에 안되는 작은 마을이라 동네 구석구석 일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이 생겨 버렸다!

앞집에서 초상 치른 걸 모르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이런! 시내에서 발인을 한 후 어제 아침 망인이 사시던 집 앞에서 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어제 아침에는 마침 외손녀와 큰 딸 아이가 조양리에 와서 묵고 있어서 정신없이 지내긴 했었지만 오늘 동네 아주머니에게 전해들으니 동네 어귀에서 아침 일찍 노제가 있었다고 했다. 물론 망인이 몇 년째 시내의 요양병원에서 지낸 분이라 일면식도 없긴 하지만 그 아들은 혼자서 바로 우리 집 코 앞에서 살고 있다. 늘 술에 취해 있어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마주치면 인사는 하던 사이고 또 작은 마을에서 상을 당했으니 인사를 했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거늘....

얘길 전해 듣고 뒤늦게나마 부의를 전하긴 했지만 일이 어긋날려면 이런 식으로도 어긋나게 되나 보다....어딜가나 사람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모두에게 외면받게 마련이거늘....20140810

귀뚜라미 울음 소리가 가을을 재촉하고 있다. 입춘지나더니 바람도 썰렁해 지고 조양리도 가을로 접어든 느낌이 완연하다. 그래서 배추 모종도 하고 무우씨도 뿌렸다.

길기만 했던 여름방학도 찬바람이 불어오며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고 이제 곧 학생들과 다시 마주해야 겠지. 본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설레임과 즐거움 그리고 약간의 긴장을 동반한다. 이 여름을 이렇게 보내면 학생들을 기다리는 여름방학도 이제 손꼽을 만큼만 남게 된다.

오늘 조양리의 여름을 정리하기 위해 오두막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보던 책이며, 옷가지와 약품들을 모두 정리하여 서울의 집으로 옮겨가야 한다. 가을 학기 동안 주말에 몇 번이나 조양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런지....

그런네 짐을 정리하던 마눌이 외손주가 보고 싶지 않느냐며 불쑥 혼잣말 같이 내뱉는다. 그러고 보니 외손주 보고 싶다며 춘천시내의 딸집을 뻔질나게 드나든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지금은 볼 일이 있어 시내를 들를 때나 아니면 딸 네가 찾아와야만 만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엄마, 아빠 품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외손주가 더 어려서는 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할아버지 품에서 자고 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들어 댄다. 이 녀석 가까이에서 지내자고 조양리 집까지 얻어가지고 온 외할아버지름 무색하게 하고 있다. 그 녀석! 좀 더 자라면 할아버지 품으로 다시 돌아와 줄 날도 있으려는지.....20140820


모처럼 조양리에 들러 김장밭을 매주고 뒤돌아보니 정말 기분이 상큼하다. 무언가를 돌보았다는 보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런지.....
아침 일찍 김장밭의 김을 매면서 사람들과의 갈등에서 벗어나 그저 돌보아주고 베풀어 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그래서 마음도 평안해져 온다. 20140829

딸 도울 일이 있어 어제 밤 서울에 갔다가 오늘 새벽 일어나자마자 다시 조양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울의 공기가 갑갑하기만 하다..... 20140830

추석 연휴 첫날을 맞아 모처럼 막내 식구들이 조양리로 모두 모였다.
외손주 겸이와 함께 밤도 발르면서, 채마밭도 돌보면서, 막둥이 용이도 케어하면서 정말 사람 사는 것 같이 지낸 하루였다^^

그래...가족은 역시 모여야 하고 아이들은 사람 많은 것을 좋아하니 세대는가 많아질 수록 훈훈한 법이다... 20140906

타임 머신을 50년 이상 돌린 느낌이다.
조양리 주민들이 추석을 맞아 돼지를 잡았기 때문이다.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이 나누고 그 부속 고기들로 내장탕을 가마솥에 끓여 동네 사람 모두 모여 술마시고 떠들고 왁자지껄..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람사는 모습이다... 20140907

추석을 조양리 오두막에서 맞으니 우리 고유의 명절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식구들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가고 오늘 아침엔 이웃의 할머니 두 분이 마당의 탁자에서 이런 저런 이웃들간의 얘기를 나누다 돌아가셨다.
이 분들을 위해 마눌이 처남댁이 해온 식혜를 나누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이렇게 일상이 잔잔하게 흘러가니 이는 더욱 좋은 일이다.  1040910

생애 처음으로 내가 심은 고구마를 수확했다. 가슴이 뿌듯해 온다. 농부들은 이 마음때문에 농사를 이어가는가 보다. 세월가면서 어떻게든 이 같은 보람을 이어 가야한다..... 20141009

가을의 농촌은 가을걷이 냄새가 난다. 들깨향. 들꽃향. 고구마 냄새, 무우와 배추떡잎 냄새...가을이 또 이렇게 깊어간다.... 20141019

한 달여 간 미국여행을 한 큰 딸 아이가 손녀딸과 함께 귀국했다. 어디 한 군데 머문 여행이 아니라서 이제 겨우 돌 지낸 손녀딸이 몹시 피곤한 모습이다. 그래도 이 도도한 손녀 딸이 공항까지 마중나온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낯설어 하지는 않아 한다. 피곤에 절어 멍한 모습의 외손녀를 조심스레 안아주니 평상 시와는 달리 거부하지는 않는다.

한 주 전 춘천의 막내 딸이 집앞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후 낙담을 크게 했었다. 핸드폰 안에 제 아이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저장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공항에서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던 큰 딸이 핸드폰을 하나 가지고 내리며 '이거 엄마꺼야 아빠꺼야' 하며 물어온다. 막내가 잃은 핸드폰이 춘천의 주차장이 아닌 우리 차 뒷좌석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마눌이 기쁜 나머지 춘천의 막내에게 곧바로 전화를 한다.

이 모든 일이 행복하기만 한 일요일 오후다.....20141026

찾은 줄 알고 좋아했던 핸드폰은 마눌님이 막내딸에게 가져다 주려고 했던 중고 폰인데 차에 떨어뜨린 것이라네요....이렇게 허망할 수 가..... (2014-10-27)

삶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상쇄되지 않는다...... (2014-10-27

모처럼의 조양리 오두막.
가을 분위기가 마당에 한 가득이다. 그동안 돌보지 못해 낙엽이 여기저기 딩굴고 있고 그래도 채마밭의 무우와 배추는 속을 가득 채우고 김장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여름 한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성했던 산자락의 관목들도 낙엽을 떨구는 중이다. 햇볕과 습기 제거를 위해 이 녀석들을 모두 제거해 주니 시원하게 통풍이 되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보기에도 참 좋다. 집은 나무에 가려 있으면 집안에 습기를 가져오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법이다. 나무로 뒤덮힌 집은 보기에는 좋을지 모르나 통풍, 환기 그리고 햇볕을 위해서는 집 주변의 나무들을 과감하게 잘라주어야 한다. 20141031

춘천과 홍천을 이어주는 5번 국도는 사시사철 모두 아름답다. 단풍 어우러진 가을길도 그 경치가 빼어나다. 조양리에서 이 길을 홍천 쪽으로 달리면 홍천 입구에 온천이 있다. 모처럼 손주 겸이와 단 둘이서 여길 갔더랬다. 손주 녀석이 깊은 물을 겁내 할아버지한테만 의지해 오니 그야먈로 기분이 짱이다. 제 엄마 아빠한테 빠져버린 이후 얼마만의 호사란 말인가!!! 20141102

막내 딸이 가슴으로 낳은 손주 容이가 처음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집으로 와서 외박을 했다. 제 아버지가 친 할아버지 묘지의 이장으로 容이를 돌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즐거움이지만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떼를 쓰는 경우는 전혀 다른 얘기가 된다.

하루 저녁 아이를 돌보면서 딸의 결단이 새삼스레 존경스럽다. 이런 일을 평생 해나가야 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결행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 때문에 잠 못이루며 잠시 짜증스러울 때 아이가 보고 싶어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아이의 생모를 생각해 보았다. 容이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귀한 선물이란 말인가!!! 20141103

요즘 무언가를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손주 겸이와 함께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어둠이 내려앉은 춘천 시가를 걷는다. 아이스크림 사준다고 꼬득여서 조막만한 손을 잡고 같이 걸으니 참으로 행복하다. 이런 호사를 조금이라도 더 누리려고 손주 집에서 멀리 떨어진 수퍼로 이동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등에 업어주기도 한다.

요즈음, 내 삶에서 이보다 더한 기쁨은 없다. 20141117

금년 가을 조양리 김장은 고통이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진행된 파티였다. 당초 우리 조상들의 김장문화가 이랬으리라.

혈연과 지연으로만 연결되어 살았던 우리 조상들은 김장을 통해 월동준비와 함께 공동체를 확인하면서 커뮤니티을 유지해 왔던 게지.

작년에 생전 처음 친구 부부들과 조양리 표 김장을 했을 때는 고통스럽기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이번 가을의 김장이 가족 행사로 즐겁게 마무리되면서 마눌님의 제안으로 춘천의 한 카페에서 스위티로 뒷풀이까지 했다.

아이들 때문에 김장에 동참하지 못한 막내 딸과 손주들이 뒷풀이에 함께 했는데 여기서 생긴 할아버지와 손주 간에 생긴 기막힌 에피소드 한 토막.

차에서 내리는 손주에게 할아버지가 손을 잡자고 제안하자 손주 녀석 왈
엄마 손 잡을꺼야!
그래 그러면 할아버지가 맛있는 거 못 사준다!!

이렇게 삐친 할아버지는 성큼성큼 앞장서서 가페 안으로 획 사라진다.

이어서 들어선 가족들의 얘기가 웃기기도 하고 기가 막힌다.

손주 겸이의 엄마이자 우리 막내 딸의 얘기.

겸이가 뭐라고 했느지 알아? 아빠.
뭐라고 했는데?
글쎄, 이 녀석이 오늘 맛 있는 건 엄마보고 사달라고 하지 뭐야.
그래서 엄마가 돈을 가져오지 않아서 못 사준다고 했더니 아내 할머니에게 다가가서는
할머니가 맛있는 거 사주어. 응. 오늘은....
하고 사정을 하더란다.
그래서 할머니가
할머니 손 잡으면 사준다!
그랬더니 손주 겸이 녀석이 이번엔 할머니 손을 덥썩 잡더라는 얘기!!

아이들도 생각이 빤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한다... 20141122

모처럼 춘천까지 갔다가 손주들도 못보고 그냥 돌아왔다.... 150215

토요일 오후 저녁 시간대의 원주 결혼식에 갔다가 마눌과 함께 모처럼 조양리 오두막에서 1박 했다.
6월이면 전세 계약 기간이 끝나기 때문에 집을 내놓은 이후 처음이다.
계절 탓인지 꽃으로 둘러쌓인 오두막 주위의 분위기가 참 좋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짐들을 정리하느라 창고에 들어갔더니 들고양이 한 마리가 화들짝 놀란 모습으로 튀어 나온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정돈되지 않아 엉망인 창고의 짐들을 들쳐보니 새끼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녀석, 우리가 집을 비운 사이에 식구들을 늘려놓았구먼...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를 창고 안에서 들으니 웬일인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150426

2년 동안 귀촌 연습하며 정들였던 조양리 오두막을 오늘 아침 일찍 번갯불에 콩튀겨 먹듯 비웠다.
주인이 어제 밤 늦게 전세금 중 잔금을 지불하겠으니 방을 바로 빼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도 전세금을 빼주지 않던 상황이라 한시를 지체할 수 없는 형편이어서 불야불야 방을 빼기로 한 탓이기도 하다.

갑작스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택배 차를 새벽부터 운전해준 불알친구와 이삿짐 날라준다고 밤잠 설치고 달려와 준 우리 제자들 모두 모두 고맙구나....

조양리 창고에 여름용 나무돗자리를 벽면에 세워두었었다. 그런데 이름 모를 새가 이 돗자리 꼭대기에 둥지를 튼 후 알을 품고 있어 하는 수 없이 이놈은 그냥 두고 왔다.

집을 오래 비워두니 새도 들고양이도 빈집에서 생명을 품고 있구나.
그러니 사람들의 삶이 다른 생명들에게는 해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얘기가 된다.

암튼 지난 2년 동안 조양리에서 금전적으로는 다소 손해를 보았지만 그래도 귀촌 연습 한번 참 잘했다^^15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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