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 · 화 · 겸은 내 이름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44
조회
95
辛卯年 토끼해, 환갑입니다. 환갑은 말 그대로 다시 갑년을 맞는다는 뜻이지요. 옛날 같으면 인생을 살만큼 살았으니 나머지 인생은 덤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허긴 환갑의 의미가 요즈음이라고 해서 퇴색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이 남녀를 불문하고 80대가 된 요즈음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갑 전에 직장에서 쫓겨나기 때문입니다.


건강 나이가 되었든 사회적인 은퇴가 되었든 환갑은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60평생을 살아오면서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젊음 한 때 큰 이상을 품고 이 세상을 출발하지만 세파를 헤쳐 나가면서 세상과 타협 해가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온갖 세속적인 것들과 타협해오다가 나이 들면서 독선으로 흐르기도 합니다.


얼마 전 막내딸과 결혼해 우리 집 식구가 된 사위가 병역특례로 다니던 회사를 뛰쳐나왔지요.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그 회사 임원과의 갈등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사위가 지나치게 순수하고 이상적이어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던 것이지요. 이런 사위에게 제 마음이 몹시 상했습니다. 딸의 앞날이 걱정되기 때문이지요. 강단에 서기 전 조직생활을 20년 넘게 해본 제 입장으로 보아도 사위의 행실과 파격이 기업의 입장에서 어땠을지 불 보듯 뻔해 보였고 임신한 딸을 배려하지 않은 사위의 비현실적인 행위가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앞으로 사위는 좀 더 처절하게 현실과 부딪쳐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나도 사위처럼 젊었을 때는 현실과 좌충우돌한 적이 있었고 또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다면 아마도 지금쯤은 뭔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환갑을 맞아 뒤돌아보니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만은 할 수가 없군요. 특히 인간관계에서 그렇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척진 사람들이 주위에 꽤 있다는 사실은 내 인간관계에도 문제가 있다는 반증일 것입니다. 척지고 사는 사람들은 형제자매, 직장 동료, 심지어는 마누라까지 평생의 관계를 밀접하게 유지해왔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즉 이해관계가 큰 경우입니다. 형제자매들과의 문제는 대부분 돈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만 옛 직장 동료들과의 문제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은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척지는 관계의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옳고 잘 했지만 상대는 그르거나 잘 못했다는 인식에서 출발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들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게 되어 관계가 깨진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 둘 관계를 단절시키다 보면 결국 홀로 남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지요.


환갑이 다된 근년 들어서도 같은 과오가 되풀이 되었지요. 여전히 나는 상대만을 나무라고 있었습니다. 인간관계라는 건 결국 상대적이어서 나만 잘하고 상대는 전적으로 잘 못한 경우는 없는 법이지요.


그래서 결심을 했습니다.
환갑을 맞은 새해에는 그 동안 척진 사람들과 원래의 관계를 회복해 가는 노력을 하기로 말입니다. 그동안에도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변할 것을 주문하거나 설득해 왔었지요. 그러나 관계 회복은 내가 변해야 가능할 뿐입니다. 상대를 설득하기는 어려워도 내가 변하는 것은 빠르고 쉽습니다. 그리고 내가 변화하는 길은 나에게 잘 못한 사람들을 용서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한 때 내게 상처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을 맞아 이렇게 결심을 하고는 있지만 실제 용서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렇지만 용서해야 화해하게 되고 또다시 용서와 화해할 일을 만들어가지 않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서 환갑을 맞아 내 이름을 용서, 화해, 겸손의 머리글자를 따서 용 · 화 · 겸이라 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름에 맞추어 살아가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선언함으로써 변화의 길을 걷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 신자입니다. 성당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주님의 기도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길이 이 기도문에 모두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2011년 1월 1일 아침에 용 · 화 ·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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