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남부 아프리카, 그 치명적 유혹을 넘어서....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5
조회
85

어렸을 때 미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 정말 존재하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다. 전쟁 직후 찢어지게 가난하던 시절 자갈길 비포장 국도를 흙먼지 날리며 내달리던 GMC 트럭 위의 GI 들을 향해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치며 하얀 피부와 노랑머리 이방인들의 모습이 신비롭기만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군에 입대해 미군부대에 배치되어 그 신비롭게만 보이던 미군 병사들과 많이 다투었었다. 그들과 다툴 이유는 많았다. 우선 우리 카투사들의 영어가 짧아 그들이 우릴 무시했다. 그 때만 해도 서양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가 음식 먹는 소리를 낸다고 멸시 당하기도 했었다. 그 당시 이미 미군의 지원병제가 시행된 터라 자질이 부족한 병사들과 빈민 출신의 흑인 병사들 때문에 그들과 우리의 갈등은 어쩌면 필연이었을 것이다.

 이후 국영 관광진흥기관의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뉴욕에서 근무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미국의 실체에 다가간 적이 있었다. 꿈에 그리던 뉴욕 근무의 결론은 사람 사는 모습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삶의 방식인 문화 차이가 있을 뿐.

 역마살 탓인지 이런 저런 이유로 평생 세계 곳곳을 누빌 기회가 있었던 내게 아프리카의 희망봉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그러나 주로 출장에 의존해 여행을 하던 내게 희망봉을 밟을 기회는 그렇게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는 내게 멀고도 먼 대륙이었다. 끝없는 사막과 초원의 지평선 그리고 야생 동물들의 질주가 연상되는 그 곳은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아프리카 땅을 밟을 기회는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후 안식년을 맞아 마침내 찾아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의 안식년은 외환위기와 함께 주어졌다. 천6백 원대의 원ㆍ달러 환율은 아프리카는커녕 가까운 동남아로의 여행도 망설이게 하였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어진 안식년을 환율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내일 모래 삼수갑산에 갈망정 평생에 한 번 온 기회, 빚을 내서라도 가보는 거야. 

 
 그래서 아내와 나는 배낭을 무겁게 꾸려 열여덟 시간의 오랜 비행 끝에 마침내 아프리카 대륙 남쪽 끝의 케이프타운에 내렸다. 그러나 이게 웬일. 케이프타운은 미국과 유럽을 모아 놓은 모습의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 아닌가. 웬만한 부자 집 정원에는 수영장이 갖추어져 있고 슈퍼마켓에는 부와 여유의 상징인 와인과 생활필수품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나미비아 비자를 받기 위해 케이프타운의 나미비아 영사관 겸 관광안내소에 들렀더니 영사 겸 관광안내인인 독일 출신 아주머니가 시간만 나면 나미비아에서 휴가를 즐긴다며 자랑이다. 다른 나라 여행은 안하느냐고 물었더니 유럽과 미국 등을 돌아보았지만 결론은 역시 나미비아란다. 위험하지 않느냐는 나의 거듭되는 물음에 천만의 콩떡이란다. 그렇다. 적어도 우리 부부가 한 달여를 여행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에의 남부 아프리카 네 나라는 아프리카에 관한 우리의 편견을 완전히 깨는 곳이었다. 

 
 트럭을 개조한 버스로 모두 6천여 킬로미터를 종주한 남부 아프리카 대륙의 곳곳에는 여행자를 위한 캠프 시설이 탁월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롯지
lodge를 겸한 캠프사이트에는 취사장과 화장실은 물론 저녁이면 여행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레스토랑과 바 그리고 여행자들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수영장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아프리카에도 갈등과 만남과 행복이 있었다. 현지의 흑인 가이드와 운전수, 여행사 직원, 레스토랑 점원, 기념품점 판매원, 모코로 폴러, 미국, 유럽, 호주에서 온 일행. 이들과의 만남과 갈등을 통해 세상은 어딜 가나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여정이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캠프사이트와 며칠 만에 한 번 나타나는 도시를 제외하면 아프리카 대륙은 사막과 초원의 지평선, 온종일 내리쬐는 태양과 폭염의 연속이다. 말라리아와 식중독 때문에 매일 같이 약을 복용하고 식수를 사먹어야 하는 불편한 여정이다.

 
 이 글과 사진은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우리 부부의 추억을 책으로 각인한 것이다. 우리 부부가 남들처럼 여행담을 술술 풀어내는 재주가 있었다면 이 여행기는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여행담을 재미있게 전달할 능력이 없어 아프리카에 관한 우리의 남다른 추억을 사진과 글로 전달하게 된 것이다. 우리 부부 주변의 지인들이 이 책을 통해 우리의 근황과 아프리카에서의 남다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만족한다. 그러나 우리 뒤를 이어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출발하려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 또한 더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남부 아프리카 종단 여행을 통해 아내는 지쳤고 나는 아직도 왕성하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아내와 나는 아프리카의 추억을 평생 보듬고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