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아프리카 4개국 살짝 엿보기/로망 아프리카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2
조회
76

남아프리카 살짝 엿보기

차례


프롤로그/크루즈냐 사파리냐

새로운 세상

비자

백팩커backpacker의 천국

케이프타운cape town

희망봉cape of good hope

와이너리winery와 가든루트the garden route 드라이브

로빈 아일랜드robben island

트럭킹trucking, 랜드크루저land cruiser, 사이클링cycling

텐트와 캠핑

문화차이와 갈등 그리고 폭탄주

로밍roaming, 인터넷internet, 인프라infra

별, 은하수

나이 곱게 먹기


오렌지리버orange river의 카누 사파리canoe safari

피쉬리버 캐년fish river canyon

나밉 나우클루프트 국립공원namib naukluft national park

사막속의 오아시스 월비스 베이walvis bay와 스워콥문트swakopmund

돌핀 크루즈dolphin & seal cruise

에토샤etosha국립공원의 게임드라이브game drive

워터버그 고원 국립공원waterberg plateau national park


오카방고델타okabango delta의 경비행기

아일랜드 사파리 마운island safari maun 에피소드

모코로 사파리mokoro safari

오카방코델타okabango delta의 게임워크game walk

초베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의 게임크루즈game cruise

황혼의 석양 크루즈sunset river cruise와 아프리카 민속춤

빅토리아폭포victoria falls의 다양한 레포츠

아프리카 공예품과 물물교환


남부 아프리카 여행메모

2010남아공 월드컵 정보

에필로그/남부 아프리카, 그 치명적 유혹을 넘어서..... 



프롤로그/크루즈냐 사파리냐


 국영 관광 진흥기관에 22년 동안 근무한 필자는 늘그막에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는 행운을 잡았다. 이런 행운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인데 대학에 일정 기간 봉직했다고 안식년까지 주어지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전공이 관광경영이니 주어진 기회를 활용하여 그동안 못해본 종류의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당초의 계획은 미국 버지니아대학이 주관하는 선상학기제semester at sea1) 프로그램에 한 학기 동안 참가하여 공부를 겸한 세계 일주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대한 비용의 일부를 보충해 보고자 시도했던 방송사의 스폰서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데다 때 마침 불어 닥친 금융 위기로 환율이 폭등해 부득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비용을 덜 들이면서 크루즈 여행의 효과도 누릴 수 있는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그동안 못 가본 아프리카와 남미 대륙 여행이다. 두 곳 모두 가보기도 쉽지 않은데다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곳이니 최소한의 비용으로 여행이 가능한 캠핑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안식년이 시작된 후 두 달여의 준비를 끝내고 3월 하순 아내와 나는 드디어 아프리카 사파리 캠핑 투어를 위한 장도에 올랐다. 여행은 한 영국여행사가 제공하는 20일짜리 프로그램이었지만 비행기가 홍콩을 경유하기 때문에 홍콩 2박과 아프리카 여행국들의 비자 취득을 위해 체류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cape town 5박을 합치면 한 달 일정의 사파리 전문 트럭킹trucking2) 여행이다. 이 프로그램은 아프리카 대륙의 다양한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남아공의 케이프타운cape town을 출발해 짐바브에zimbabwe의 빅토리아 폭포까지의 5,500여 km의 여정이다. 숙박은 캠핑과 롯지lodge3)를 선택할 수 있는데 우리는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캠핑을 선택하였다. 나중에 현지에 도착해서 안 일이지만 케이프타운에선 이와 유사한 사파리 전문 여행상품들이 많이 있어 선택의 여지가 매우 많았으며4), 일부 상품의 경우는 국내 총판5)이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새로운 세상


 아직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3월 마지막 주의 이른 아침, 열세 시간여의 비행을 마친 남아프리카항공의 은빛 날개는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대륙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공항에 아내와 나를 내려놓고  마침내 그 날개를 접었다. 시간은 대략 아침 일곱 시. 내려앉은 비행기 창가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강렬하다. 창가로 비쳐오는 강한 햇살만큼이나 맑은 공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을 기대한 내게 조복johannesburg공항6)의 모습만은 다른 공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공항의 모습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홍콩 첵랍콕
chek rab kok공항에서 체크인check-in한 짐을 찾아 조복공항의 국내선 터미널로 들어서니 유럽이나 미국에 와 있는 느낌이다. 공항터미널에 걸린 삼성과 엘지의 대형 광고판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어 아프리카대륙의 낯설음을 달래준다. 전 세계 공항을 대상으로 한  우리 대기업들의 광고 캠페인은 매우 적절한 전략인 것 같다. 적어도 우리 같은 한국 여행자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남아공으로 오는 아프리카항공 비행기 안에서는 아프리카 오지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일본 청년 두 명과 이웃이 되었다. 일본 국영 해외봉사기구7)의 일원으로 자원하여 2년간 아프리카 오지에 체류 예정이라는 그들의 젊음과 여유가 부럽다. 이들 젊은이를 포함해서 아프리카로 여행하는 일본인 여행자들은 꽤 많이 눈에 띄는데 반해 한국인 여행자는 우리 부부 외에는 보이질 않는다.


비자


 케이프타운 공항 컨베이어 벨트conveyer belt의 짐을 찾아 출국장을 나서니 현지 교민 여행사 사장이 아내 이름의 피켓을 들고 서 있다. 교민 여행사 사장이 모는 오래된 모델의 벤츠 승용차를 타고 보츠와나botswana영사관으로 직행하여 비자를 신청한다. 현지 여행사는 공식 비자수수료 외에 발급 대행료만 미화 100불이나 요구해와 웬만하면 우리가 직접 비자 신청을 해 비용을 절약하고 싶었지만 보츠와나botswana는 비자 발급 절차가 영사의 자의적 판단에 좌우되어 자칫하면 비자를 못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비자 발급에 현지인 인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서울 여행사의 강권에 마지못해 선택한 대안이다. 어쨌거나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직접 부딪쳐 가는 게 여행의 또 다른 묘미겠지만 마침 주말로 이어져 시간이 여의치 않아 마지못해 현지 여행사의 신세를 지게 되었다.

 머리가 백발인 여행사 사장은 내 나이 또래쯤으로 보이는데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같지 않은 모습이다. 대행료를 받고 서비스를 하는 입장이면 본분에 충실한 게 좋을 것 같은데 고객에게 서비스를 한다기보다는 가르치려는 모습이다. 보츠와나botswana 영사는 이날 우리에게도 여행바우처travel voucher8)가 없다 면서 애를 태웠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여행바우처travel voucher가 없으면 여행사의 일정표로 대체해도 좋을 법 하건만 자기 나라에 돈 쓰러온 여행자에게 좀 심한 처사가 아닐 런지. 비자 수수료에 매달리는 보츠와나botswana 영사관의 관료적인 모습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나무 때문에 숲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비자 수수료만으로도 남아공 돈 1,250랜드rand, 미화로 120불이나 들었다. 반면에 나미비아namibia 비자는 관광사무소에서 담당자가 바로 내주는 시스템이고 담당 직원도 매우 호의적이어 무척 대비되는 모습이다. 다만 비자수수료에 대한 비리를 예방하는 차원인지 비자 수수료visa fee를 은행에 직접 납부토록 했는데 은행 창구가 붐비어 시간이 걸린 게 흠이라면 흠이다. 우리의 마지막 목적지인 짐바브에zimbabwe는 국경비자를 현장에서 준다니 다행이다.


백팩커backpacker9)의 천국


 다행히 아프리카 여행 일정에 필요한 비자를 하루 만에 모두 받은 우리는 숙소인 더 백팩커the back packer에 여장을 풀었다.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을 등지고 있는 이 숙소는 케이프타운cape town 현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데다가 조용하여 맘에 든다.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서울에서 가져온 된장라면을 공용 키친에서 끓여 먹고 바로 잠에 떨어졌다. 열세시간 여의 긴 비행 여독과 시차 때문에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나보니 현지 시간 저녁 열시로 눈부시던 남아프리카의 햇살이 어둠속에 삼켜져 있었다. 무슨 까닭인지 로밍전화기의 시간이 경유지인 홍콩시간으로 남아있어 현지 시간을 역으로 계산하여 시간을 알아냈다. 시계를 챙겨 올 걸. 핸드폰에 익숙해 있던 디지털문화의 역공이다.

 
 케이프타운
cape town 도착 다음 날은 새벽 네 시 반에 깨어났다. 도착한 날 저녁 제트 랙jet lag10)으로 일찍 잠이 든 탓이다. 투숙한 백팩커back packer11)는 환경이나 시설이 모두 맘에 들지만 이웃의 움직임이 낱낱이 잡히는 것이 흠이다. 일찍 깨어난 김에 노트북 전원 연결을 시도해 보니 서울에서 가져온 여행용 플러그들이 모두 남아공 것과 맞지 않는다. 다행히 밤새 술을 마시다 들어오는 피터라는 잉글랜드 젊은이를 식당에서 만났는데 플러그 때문에 곤란해 하는 내게 자기는 지금 안 써도 된다면서 플러그를 하나 내놓는다. 쓰고 난 후  내일 아침 프런트에 맡기란다. 그렇지만 그것도 맞지가 않는다. 호주에서 온 친구와 밤새 술을 마셨다는 이 젊은이에게서는 알코올 냄새가 진동을 한다. 홍콩에서 충전해온 노트북 배터리의 파워가 떨어지면 이 글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내일 아침 일찍 케이프타운 시내 상점에 나가봐야지.

 
 이튿날 백팩커
back packer를 나선 우리는 V&A 워터프런트waterfront12)까지 산책 삼아 관광을 나섰다. 도시가 안전한데다가 날씨도 좋아 걷기에는 최적이다. 케이프타운의 메인로드인 롱 스트리트long street를 따라서 곳곳에 백팩커back packer를 위한 숙소와 간단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바가 즐비하다. 케이프타운cape town은 백팩커back packer의 천국이다.


케이프타운cape town


 다음 날 우리는 여행안내소를 겸하고 있는 숙소 카운터의 안내를 받아 더블데커open-air double-decker13)의 시내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케이프타운cape town을 돌아보기로 했다. 매 20분마다 운행된다는 2층 관광버스는 30분을 넘게 기다린 후에나 나타났다. 여행 중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맑은 하늘을 보며 케이블카로 테이블마운틴
table mountain에 올랐는데 정상에 오르니 남쪽하늘에서 구름이 몰려온다. 케이프타운의 별명이 ‘four seasons in a day’ 라더니 날씨가 변덕스럽다. 그러나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 테이블 마운틴에서 전개되는 케이프타운과 교외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멀리 장대한 산맥과 바다들이 구름 속을 넘나들며 겹쳐오고 에메랄드와 하얀 모래의 조화가 아름다운 남쪽 해안에는 지중해풍의 호화별장과 고급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할리우드의 세기적 영화배우 커플, 브래드 피트Brad Pitt와 안젤리나 졸리Agellina Zolli의 별장도 이곳에 있단다.

 
 희망봉 때문에 한번 꼭 와보고 싶던 케이프타운은 주민의 대부분이 백인이다. 흑인들도 눈에 많이 띄긴 하지만 인도계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남아공이 영국연방인데다 영어권이어서 인도사람들이 오랜 전부터 많이 진출한 탓이다. 간디가 인종차별에 항의하여 비폭력 무저항 운동을 시작한 곳도 실은 남아공이다. 본래 남아공이었던 나미비아의 수도 윈드혹w
indhoek에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거리도 있다.

 
 언론에서 접하는 것과는 달리 흑백갈등이 표면화 되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침 총선 기간이어서 여기저기 선거벽보가 나붙어 있는데 후보들의 면면이 주로 흑인들이고 ANC14)가 선거의 대세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길가에서 만난 현지인들은 매우 친절하다. 슈퍼나 음식점에 들르면 넘치는 풍요로움과 높은 생활수준을 읽을 수 있다. 다민족 구성만큼이나 가톨릭성당, 교회, 무슬림 사원 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고 크고 고급스러운 주택에는 수영장을 갖춘 정원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여행을 원하는 기간만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우리의 형편은 늘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케이프타운 관광당국
cape town tourism은 여행자의 형편에 맞춘 여행지를 하루에서 사흘까지의 여정에 따라 추천하고 있다.15) 시간이 여유로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름다움을 집중적으로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도 꼭 보아야 할 10대 관광지도 참고할 만하다.16)

 
 케이프타운은 좋은 날씨와 비교적 싼 물가 그리고 영어 때문에 최근에는 한국 학생들의 조기유학 붐이 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케이프타운에는 현지 교민을 포함해 천오백 명 정도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 식당과 매점도 몇 군데 영업 중이다.


테이블마운틴국립공원Table Mountain National Park


 케이프 페닌술라 국립공원cape peninsula national park이라고도 불리며 테이블마운틴table mountain과 케이프 반도 일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20년대에 설치된 케이블카를 이용하거나 등산으로 쉽게 오를 수 있는 테이블마운틴국립공원은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희망봉cape of good hope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고원으로 이루어진 테이블마운틴 정상에는 1,470여종의 진귀한 식물들의 보고이다. 테이블마운틴의 양쪽은 매우 가파른 절벽이고 가운데는 좌우 길이가 3km에 달하는 고원으로 고원 동쪽에는 데블스 피크devil's peak, 서쪽에는 라이온스 헤드lions head가 있다. 라이온스헤드 정상까지는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한데 이웃한 캠프스 베이camps bay와 함께 매일 저녁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 가는 선셋sunset의 장관을 가장 잘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해질 무렵의 이곳은 연인들과 구경꾼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좋은 자리와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 두 시간 전에 올라야 한다. 라이온스헤드에서는 만델라가 18년 동안 수감되어 있던 로빈아일랜드robben island의 모습도 한 눈에 들어온다. 테이블마운틴에서 가장 높은 지점은 고원의 동쪽 끝으로 해발고도 1,086m에 달한다. 테이블마운틴의 평평한 정상은 구름, 안개 등으로 늘 덮여 있어 심한 경우 등산이 금지되며 올랐더라도 운이 좋아야 산 아래 펼쳐진 북쪽의 아름다운 모습의 케이프타운 전경과 남쪽의 캠프스 베이camps bay 해변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


 희망봉cape of good hope17)은 내가 남부 아프리카여행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이다. 언젠가는 꼭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밟아보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 옛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대륙 탐험을 위해 희망봉을 돌아 모험을 감행했었지! 콜럼버스 이전의 유럽 사람들에겐 유럽 세상의 끝은 지브롤터 해협까지였다.

 희망봉 가는 날 우리는 숙소의 공용 키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 먹고 화장실에 들러 장거리 운전 준비를 마친 후 렌터카에 올랐다. 렌터카는 영국식으로 오른 쪽 운전석인데다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매뉴얼로 빌렸더니 운전이 몹시 어설프다. 게다가 길도 익숙하지 않아 이래저래 불안하다. 서툰 운전으로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마침내 길을 잘 못 들었다. 그러나 잘못 들어선 호웃 베이hout bay 주변의 에메랄드 색 바다를 낀 경치가 환상이다. 에라! 엎어진 김에 쉬어 가랬다고 멋진 배경으로 사진이나 찍고 가지 뭐. 그래서 우리 부부는 차에서 내려 주변 도로 공사장에서 경비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의 흑인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사진을 찍어준 이 흑인이 손을 벌린다. 허를 찔린 기분으로 잔돈을 좀 쥐어 주고 차에 오르던 아내가 차안의 여행용 핸드백을 찾는다. 여기저기 여행용 손가방을 찾던 아내가 갑자기 불안 해 한다. 아무래도 손가방을 숙소에 두고 온 것 같단다. 여권과 현금이 몽땅 든 손가방이다. 내 기억으로 아내는 분명히 숙소의 객실에서 손가방을 지니고 나섰었다. 그렇다면 화장실 앞 소파에 두고 왔을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는 손가방 때문에 화장실 앞 소파에 앉아 화장실을 교대로 다녀왔었다. 현금이 든 손가방인데 이 시간까지 온전할까! 아내와 나는 혼비백산해서 차를 돌려 숙소로 달려간다. 온갖 걱정으로 앞이 잘 보이질 않는다. 현금도 현금이지만 비자를 받아둔 여권을 분실하면 나머지 일정이 완전히 무산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런 상황도 상황이지만 남편의 질책이 있을까 전전긍긍이다. 이래저래 아내의 얼굴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사색이다. 혼비백산한 채로 숙소에 도착한 나는 한걸음으로 프런트로 달려가서 맡겨둔 가방이 있는지 묻는다. 없단다. 이번엔 화장실 앞 소파로 돌진. 그러나 거기도 가방은 보이질 않는다. 혹시 싶어 공용 키친으로 내달아 보니 거기 식탁 의자에 가방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아내와 난 십 년은 감수한 느낌이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비로소 내 쉰다. 마침 시간이 오후의 어중간한 때라서 식당에 손님들의 출입이 없었던 같다. 게다가 이 백팩커backpacker는 24시간 경비를 두고 있어 외부 손님의 출입이 통제되어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햇살 눈부신 테이블마운틴국립공원t
able mountain national park 희망봉구역good hope section의 바분baboon18) 떼와 얼룩말zebra 무리를 뚫고 희망봉을 향한다. 경관이 빼어난 희망봉 가는 길에는 펭귄서식지 볼더스 비치boulders beach와 사이몬 타운simon's town, 물개서식지와 바다가재 산지로 유명한 호웃 베이hout bay를 만날 수 있는 곳이지만 가방 때문에 시간을 빼앗긴 우리는 희망봉으로 직행한다.

 희망봉으로 알고 오른 등대19)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주차장에서 바로 탈 수 있는 후니쿨라funicular20) 역시 승객으로 만원이다. 바다로 길게 뻗은 케이프 포인트cape point는 한 폭의 그림이다. 강렬한 햇살, 짓 푸른 바다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의 조화가 일품이다. 등대가 있는 산꼭대기에는 지구 구석구석까지의 표지판을 세워 밋밋했을지도 모를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