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서
2024.11.29
한때 국보였던 청평사 극락보전이 대처승 주지 부인의 방화로 소실되었다는 해설에 부처님께 누가 되는 언사라면 발끈한 청평사 주지. 매춘까지 할 수 밖에 없었던 처절한 아낙의 삶을 얘기했다고해서 해설사 해임을 공문으로 건의한 소설가 출신의 김유정문학촌장. 신도비에 기록된 신숭겸장군의 봉분이 세 개인 이유 중의 하나가 부인 둘 설이었다는 해설에 후손들을 불효로 만드는 거라며 그렇게 해설하면 안된다는 묘역관리소장. 왜 사람들은 한결같이 진실을 외면하려고만 하는 것일까...to be continued...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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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11.27
강의 때와 마찬가지로 해설도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분위기에 따라 해설의 질이 달라진다. 컨디션 좋은 날의 해설은 손님들의 반응도 당연히 좋아 해설자의 기분도 좋아질 수 밖에..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꽤 많아 피해설자들의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 우울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일희일비 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인생이 그렇듯 웬만하면 모든 걸 그저 그렇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나갈 일이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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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근무 출장 시 늘 호텔의 독방만을 사용해오다가 대학으로 직장을 옮겼더니 MT 등의 학생 행사에 동반하면서 교수들이 콘도 등의 다인실을 쓰게 되면서 나름 매우 불편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일년 한두번의 해설사 행사를 위한 모임에서도 여전히 다인실을 이용하게 되어 지난 몇 년 그럭저럭 적응해왔었다. 그런데 이번 주 강릉에서의 해설사 행사에서는 뜻밖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행사장을 5성급 호텔로 잡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객실 요금이 예산과 맞지 않았는지 해설사들을 2인 트윈룸에 네 명씩 배치한 것이다. 성인 둘이 한 침대에서 숙박하기는 생전 처음이다. 견디기 힘들어 근처 여관이라도 따로 잡아서 지낼까하다가 단체 행사에서 그것도 불편한 일일 것 같아 하루 저녁 불편한대로 그냥 지내고 말았다. 동숙한 다른 해설사들도 이런 상황이 당연히 불편했겠지만 특급호텔이니 그저 감내해야 된다는 태도다. 그러나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예산에 맞춘 숙소라도 편안한 숙박을 제공했어야 했고 설사 부득이한 경우라도 온돌방을 예약해서 그 불편을 최소화했어야 한다. 마치 짐짝 취급 받은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불편을 견디지 못한 일부 해설사들은 일정을 당겨 일찍 귀가하거나 인근의 다른 숙소를 정해 나가서 숙박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한심한 일이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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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11.07
종교 단체의 스포츠 행사에서 성적 순으로 시상도 하지만 더 큰 비중은 시상식 말미에 주는 경품이다. 특히 가장 큰 경품이 골프채라서 참석자들의 기대도그만큼 크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전에 온갖 행사를 진행하면서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해 전에 이꼴을 경험하고 두 번 다시 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심했었지만 마침 근무가 없는 날이어서 노느니 염불한다고 금년에도 또 참여하게되었다. 그러나 혹시나가 역시나였고 장시간 진행된 행사는 여전히 참을 수 없을만큼 짜증을 유발하는 것이아니었다. 이런 경품에 미혹되어 몸을 비틀며 추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 세월이 더 이상 아니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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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10.25
서툰 농사꾼에게 면장갑 착용은 필수다. 안그러면 손가락 여기저기에 상채기가 생기기 일수다. 그런데 캐주얼하게 텃밭을 지나치다 잡초라도 잡아당길라 치면 자칫 전지된 대추나무가지 가시 등에 찔리기 쉽다. 그런데 이 가시가 깊숙히 박혀 며칠 지나다 보면 곰기기도 해서 결국 병원 신셀져야 한다. 그래서 초기에 병원에 가 응급조치를 하는 게 필수다. 더 좋은 건 잠시라도 텃밭을 돌보게 되면 무조건 면장갑을 챙겨 끼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않으면 호미로 막을 걸 가래도 막아야 한다. 나이들어가며 사소한 일에도 조심 또 조심 할 일이다. 안그러면 가래로 막을 일이 점점 더 많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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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10.08
매년 추석 전이면 사촌들과 우리 형제들은 고향 선산으로 몰려들었고 증조부모부터 모셔져 있던 산소는 예초기에 의해 깔끔하게 다듬어졌었다. 그러나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초기를 다룰 줄 몰랐던 탓이다. 나는 그렇게 십수년을 고향 산소에 들락거리다가 사촌들과의 갈등으로 부모님 산소를 파묘해 오면서 그 산소와는 인연을 끊게 되었다. 이후 괴산 도원리의 맹지를 돌보면서도 웃자란 들판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은 어쩌다 방문해준 고향 친구들의 몫이었다. 고향 친구들은 책상물림인 내가 무슨 예초기를 돌릴 수 있겠냐며 스스로 예초기를 둘러메곤 했었다. 그런데 10여 년전 티벳여행 도반이었던 전남대 교수가 자신은 예초기의 대가라며 호까지 예초로 지었고 집안은 물론 동네 잡초까지 혼자서 도맡아 깎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예초기 돌리는 일이 특정인의 전유가 아니라는 걸 내게 깨우쳐 주었다. 이후 나는 도원리에 가면 예초기를 스스로 걸머메고 풀을 깎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돌밭을 함부로 다루면서 툭하면 예초기가 고장나 멈추기 일쑤였다. 서툴고 지치기도 했지만 툭하면 고장나는 예초기를 수선소에 맡겨야 했기에 일의 능률은 오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런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수선소에도 자주 드나들다 보니 예초기 운용면에서나 기능면 모두에서 어느덧 전문가 수준에 올라와 있게 되었다. 1박 2일나 2박 3일 씩 도원리 맹지에 들러 일하면서 힘들긴 하지만 그 어느 국내 여행보다 뿌듯한 마음이다. 이는 아마도 일도 하지만 인근 초정약수탕에서 그때그때 피로를 풀어내는 것은 물론 몇 달 치의 생수를 길어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더욱이...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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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isuh
2024.09.28
이 세월에 아직도...

euis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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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09.22
깜도 되지 않는 일로 깜도 되지 않는 것들에게 당하니 자존심이 몹씨 상한다. 이것도 견뎌나가야 할 나이 듦 중의 하나겠지. 어쨌든 문제는 이 사소하지만 성가신 일이 out of control 이라는 것이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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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08.28
학문과 경륜이 깊고 높았던 공자에게 고국 노나라에서의 하급 관리 생활은 너무도 작은 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14년이란 긴 세월을 천하를 주유하며 자신의 경륜을 펴보고자 하였지만 그를 알아보아준 제후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공자는 고국 노나라로 되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다가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자는 50의 나이(지금으로 치면 70 정도)를 지천명이라 하였으며 그 의미는 아무리 학문과 경륜이 깊고 높아도 일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 뜻을 펼칠 수 없음을 뜻히는 것이다. 즉 천명을 거역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물며 일개 범부로서 뜻한 바를 펼칠 수 없다고 해서 그 누굴 원망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일보다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더 많음을 아로새겨야 할 세월이다. 아무튼 금년에 추진했던 플랜 A와 플랜 B 모두 좌절되었으니 현실에 충실할 수 밖에. 그리고 주어진 현실이 바로 자로 재어진 내 구역이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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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의서
2024.08.24
직장 생활하면서 대인관계의 나름 철칙이 있었다. 밥 한번 얻어먹었으면 반드시 되 갚는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내가 밥을 사면 상대도 그래주길 당연히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은퇴 후 춘천으로 와서 보니 그게 작동하질 않는다. 밥을 사도 다시 사는 사람이 거의 없고 심지어는 서너번을 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마음이 상할 뿐만 아니라 관계도 지속되기 어려울 수 밖에. 그래서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밥을 사는 건 내 맘이고 되갚지 않는 것은 상대의 마음이자 그들이 살아온 문화다. 더구나 은퇴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밥 살 형편이 안될 수도 있을 것이고.. 은퇴 인생에서 기브 앤 테이크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기대해서도 안되고 또 그래야 맘 편히 지낼 수가 있다.

박 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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