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1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41
조회
82
들어가며....





우리에게 다소 낯선 단어인 잉카 트레일Inka Trail은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Quito Ecuador에서부터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Santiago Chile까지 남미 대륙을 종주하는 22,530km의 장대한 길을 의미한다. 잉카 사람들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까지는 이 길을 이용하여 물자의 운송은 물론 우리의 파발마처럼 군사 기밀 등의 우편물을 전달하였다.


16세기에 일단의 스페인 군대가 남미대륙을 점령하기 전까지 잉카 사람들은 수레나 말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도보로만 이 먼 길을 다녔었다. 잉카 트레일은 해발 5천 미터에 이르는 안데스산맥mountain ranges of the Andes의 고원을 연결하는 샛길과 소롯길로만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잉카 사람들은 짐을 운반하기 위해서 기껏해야 라마Llama를 이용한 게 전부였다.



5천 미터에 달하는 해발 고도와 이에 따른 고산증altitude sickness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겨우 10여 km 내외를 트레킹trekking 할 수 있는 이 험난한 길을 잉카의 메신저messenger들은 하루에 240 여km까지 달릴 수 있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잉카의 메신저들은 안데스 산맥의 다람쥐들이었던 셈이다. 이들 메신저들을 위해 이 잉카 트레일에는 우리의 역참과 같은 개념인 2천여 개의 숙소가 운영되고 있었고 수십만 명의 잉카 여행자들과 군인들은 이들 숙소에서 음식과 군수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들 숙소가 잉카 여행자들에게 제공한 음식은 주로 옥수수, 콩, 말린 감자와 라마 저키Llama jerky등이었으며 여행자들은 잉카 트레일 주변의 주민들이 재배하는 과일로 음료수를 대신했었다.



잉카 제국 당시 남미대륙에는 안데스산맥을 따라 깊은 산중에 조성된 5천2백 킬로미터의 카미노 레알 트레일Camino Real Trail과 해안을 따라 조성된 4천 킬로미터의 카미노 코스타 트레일El Camino de la Costa Trail을 중심으로 이 두 개의 트레일을 연결하는 여러 개의 잉카 트레일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 모든 길들은 모두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sco를 반드시 거쳐 가게 되어 있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길은 에콰도르의 키토를 출발해서 쿠스코를 경유하여 아르헨티나의 투크만Tucuman Argentina을 연결하는 5천2백km의 카미노 레알이었다.



이와 같이 다양하게 존재했던 잉카 트레일 중 오늘날 남미 대륙을 여행하는 트렉커trekker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는 쿠스코를 출발해서 마추픽추Machu Picchu에 이르는 열 세 개의 트레일 코스로서 1박 2일부터 8박9일까지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중에는 가이드가 반드시 동반해야 하는 트레일과 그렇지 않은 코스가 있는데 이들 트레일을 이용해 매년 수십만 명의 여행자들이 안데스산맥 깊숙이 숨겨져 있는 잉카유적은 물론 안데스의 절경과 비경을 즐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이 중에 필자가 참가한 코스는 3박4일의 ‘클래식 트레일Classic Trail’로서 페루Peru와 마추픽추를 찾는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코스이다. 마추픽추를 찾는 여행자들은 대개 쿠스코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마추픽추가 있는 산기슭의 오리엔트 밤바Orient Bamba에서 버스로 갈아타고 마추픽추에 오르는 당일치기의 관광을 즐기게 된다. 이에 반해 클래식 트레일은 그 옛날 잉카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해발 3천 미터에서 4천2백 미터까지의 안데스 산맥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잉카 트레일을 3박 4일 동안 트레킹과 캠핑으로 이동하여 마추픽추까지 내려가는 코스다.



페루 정부 당국은 이 클래식 트레일의 보존을 위해 하루 트레킹 참가자를 포터와 가이드를 포함해서 500명으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 트레킹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마추픽추를 단기에 여행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트레킹 참가 자체가 쉽지 않아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코스이기도 하다.



다행히도 필자는 호주의 한 여행사를 통해 6개월 이상의 여유를 가지고 ‘클래식 트레일’을 예약한 덕분에 트레킹이 가능했었지만 잉카 트레일에 관해 충분한 사전 지식 없이 도전한데다가 지병인 협심증과 고산증까지 겹쳐 천신만고 끝에 3박 4일의 캠핑과 트레킹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이 트래블 포토 에세이는 마추픽추까지의 3박 4일간의 클래식 트레일 트레킹을 포함하여 페루의 수도 리마Lima에서 출발해서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 이르는 장장 4천2백여km의 여정을 한 달여에 걸쳐 이동한 기록이다. 그 옛날 잉카 사람들처럼 순전히 도보로만 이동한 것은 아니지만 안데스 산맥의 장대함을 도보와 자전거 그리고 오래되어 형편없이 낡아빠진 오버나이트 버스overnight bus를 이용해 이동하면서 온 몸으로 체험한 어드벤처adventure에 대한 체험담이다.


필자가 한 달 동안 힘들여 체험한 길은 그 옛날 잉카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숨어 다녔던 길이자 체 게바라Che Guevara를 의사로서의 편안한 인생을 버리게 하고 불세출의 혁명가로 거듭나게 한 길이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초 예일대의 고고학자 하이람 빙엄Hiram Bingham이 ‘사라진 도시’ 마추픽추를 발견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에서 리마Lima까지 섭렵했던 바로 그 길이기도 하다.


30여 일간의 남미대륙 여정에는 3박 4일의 ‘클래식 잉카 트레일’ 트레킹 외에 우유니 소금사막Uyuni Salt Dessert과 포토시Potosi 은광 탐사, 라파스La Paz의 죽음의 길 다운 힐 바이킹Death Road Downhill Biking, 티티카카호수의 아만타니섬Amantani Island Titicaca Lake 민박 체험과 함께 체 게바라Che Guevara가 유년 시절 살던 알타 그라시아Alta Gracia의 집과 예수회 수도원Jesuit Block 그리고 에바 페론의 묘지Tomb of Eva Peron 등 남미 여행의 진수를 대부분 담고 있다.




공짜 항공권의 명암


1일차 : 12월 18일 인천 공항


막내딸 결혼식 뒤처리와 아프리카 여행기 원고 교정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오늘은 정신없이 인천공항으로 내 닫는다. 외국항공사에 근무하는 큰 딸 덕분에 빈자리가 있어야 비행기 탑승이 가능한 조건의 스탠바이stand by 공짜 항공권을 가지고 있는 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겹친 성수기라 로스앤젤리스Los Angeles를 거쳐 페루Peru의 수도 리마Lima까지 갈수 있을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을 맞았다. 탑승 대상 항공사인 아시아나와 아메리칸 항공을 알아보니 모두 만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쿠! 이러다 리마에 가보지도 못하고 여행을 끝내겠는 걸!


사위와 막내딸이 공항까지 차를 태워 주겠다고 어제 밤에 집에 와서 묵었었다. 어제 밤 한시가 넘도록 아프리카 여행기의 교정을 본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못 다한 교정을 다시 시작하여 아침 아홉시가 넘어서야 겨우 끝냈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짐들을 캐리어carrier여행 가방에 채우니 공항으로 출발할 시간이다. 교정쇄를 출판사에 넘겨주기 위해 사위가 운전하는 차를 얻어 타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연말이라 그런지 출판사가 소재하고 있는 서울대입구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원고를 출판사에 건네준 아내와 나는 사위와 막내딸을 자동차와 함께 서울대 앞에서 집으로 돌려보내고 공항버스로 갈아탔다. 버스를 탄 후 아무래도 로스앤젤리스 행 좌석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아 항공사 간부인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자리를 잡는데 도움을 달라고 부탁 한다. 좌석 확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는 이번 남미 여행을 주관하고 있는 영국 여행사 한국 에이전시의 이 대리에게 전화를 걸어 가격 불문하고 정규 항공권을 따로 예약해 줄 것을 부탁했다.


공항에 도착해 항공사 카운터counter에서 체크인check in하면서 스탠바이 좌석 사정을 알아보니 역시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아주 절망적인 상황은 아닌 것 같은 뉘앙스를 주어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스탠바이 티켓은 다른 예약 승객들이 모두 탑승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좌석이 없어 출발을 못하게 될 상황을 맞게 될지라도 여행 중에 가볍게 읽을 책 두 권을 샀다. 만약을 위해 여행보험도 알아보고 현지화 환전을 위해 ATM에서 출금도 해둔다.


한숨을 돌린 후 공항 지하층의 한식당에 내려가 돌솥밥 하나를 시켜 전송 나온 마누라와 나눠먹고 있는데 항공사의 친구가 전화를 주었다. 오후 네 시 반 비행기를 탑승할 확률은 95%이고 저녁 여덟시 비행기 좌석은 100% 개런티guarantee가 되었다는 굿 뉴스good news다. 역시 네트워크network가 좋긴 좋구나.


식사 후 공항 건물을 배회하다 지정된 시간에 항공사 카운터에 다시 가니 탑승권을 내어준다. 탑승권을 받자마자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학교의 행정과장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무얼요?’ 하고 답 문자를 보냈더니 ‘학장 발령’이라고 답문이 왔다. 여행을 막 시작하려는데 보직 발령이 났다면 일정을 당겨서 돌아와야 할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학교 당국의 공식적인 통보도 아니니 그냥 이대로 여정을 진행할 수밖에. 아무튼 아직 공항을 뜨지 않은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해준다, 탑승권과 발령 소식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경황없이 입국장으로 들어선다. 여행사에 따로 부탁한 정규 항공권의 예약 상황을 체크check하기 위해 전화한 것을 빼고는 주위에 전화도 하지 못하고



스탠바이stand-by 대기자 명단


2일차 : 12월 18일 로스앤젤리스Los Angels 공항


비행기는 예정대로 현지 시간 아침 10시 경 날렵하게 로스앤젤리스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로밍roaming을 작동시킨다. 밤 샘 비행 끝에 로스앤젤리스 공항에 도착하였지만 날자는 여전히 12월 18일이다.


미국 입국을 위해 입국 심사대immigration counter에 줄을 선다. 그런데 입국 심사대의 대기 선이 장사진이다. 입국 심사를 위해 손가락 열 개를 다 찍고 얼굴 사진까지 찍어야 하니 오죽할까. 입국 심사만 한 시간여가 걸린 느낌이다. 후진국이 따로 없다. 미국이 이젠 늙고 병든 종이호랑이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공항 시설이 모두 낡고 퇴색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노베이션renovation을 위해 다시 투자할 줄도 모르고.


로스앤젤리스 공항 국제선 터미널international terminal의 입국 수속을 마치자마자 짐을 찾아 리마 행의 중간 기착지인 마이애미Miami 행 12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사력을 다해 아메리칸 항공이 있는 터미널 4로 달려간다. 염려했던 것과는 달리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의외로 순순히 체크인을 해준다. 아니! 예약이 엄청나게 밀려 있다더니 이게 웬 떡! 그러나 체크인 후 보딩boarding을 하려고 단숨에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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