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3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41
조회
80
리마 택시기사의 천연덕스러운 바가지요금


5일차 : 12월 21일


리마 사정을 잘 모르는 나는 로스앤젤리스에서 리마의 호텔에 전화를 걸어 호텔 예약이 잘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면서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택시 요금을 물었더니 영어가 매우 서툰 프런트 데스크front desk 직원이 ‘투엔티 to 투엔티 파이브twenty to twenty five’ 라고 답한다. 여행 출발 전에 구입한 남미 여행 가이드북은 페루 택시의 바가지요금에 대해 주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어 조심스럽다.


공항에 내리니 새벽 한시가 넘은 시간이고 여러 비행기들이 동시에 착륙해 공항 입국 심사대는 구불구불 긴 줄로 매우 혼잡하다. 한 시간 여의 입국 수속과 로스앤젤리스에서 이틀 전에 부친 짐을 찾아 나서니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다. 배기지 클레임에는 나처럼 미리 부친 짐을 찾는 미국인 아가씨가 있었는데 남프랑스의 농촌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뉴욕을 경유하면서 친구를 만나느라 비행기를 놓쳤는데 비행기 자리가 다시 잡히지 않아 다시 예약하는데 며칠이 걸린 경우이다.


공항 터미널을 나서니 택시 기사들의 호객이 극성이다. 호객 택시 보다는 일반 택시를 타는 게 좋다는 여행가이드북의 권유가 생각나 몇 사람을 지나쳤지만 결국은 호객 택시에 붙잡혔다. 후앙 라미네스Juan Ramines라는 기사는 영어가 비교적 유창하였는데 택시가 출발하기 전에 차안에서 성호경을 긋는다. 이 성호경 때문에 사람 좋은 사람으로 믿고 당신의 택시를 탄 건 행운이라고 추겨 세웠다. 후앙은 호텔에 도착하니 택시비 20달러를 받으며 천연덕스럽게 팁까지 요구해서 2달러를 따로 지급했다. 전화로 택시요금을 확인할 때 20에서 25라고 들은 나는 비교적 싼 요금으로 생각해 아무 의심도 없이 택시 요금과 팁을 지불한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일행들을 만나 택시비 얘기를 했더니 20달러가 아니라 현지화 20솔Sol(약 7달러)이란다. 눈감으면 코 베어가는 놈 있다더니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당할 줄이야.


아침에 이번 여행일정을 동반하며 관리해 줄 여행 가이드, 유리Yuri를 만나 여행 일정을 소개받고 여권을 건네주었더니 날보고 뉴질랜드New Zealand 국적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난 분명 한국 사람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받은 정보로는 내가 분명 뉴질랜드 패스포트passport 소유자로 되어 있단다. 잉카트레일Inca Trail 갈 때 여권 정보에 오류가 있으면 입장이 불가능하다며 난색을 짓는다. 예약 정보가 내가 최초로 예약했던 영국의 이매지너터브 Imaginative여행사, 호주의 겟코Gecco여행사 그리고 페루의 현지 랜드land사를 거치면서 정보 전달이 잘 못된 모양이다. 여행사의 착오로 잉카 트레일의 여권 신청이 잘 못되어 어쩌면 잉카 트레일이 어려울지도 모른단다. 그러나 유리의 노력으로 가까스로 여권 정보를 정정하여 잉카 트레일에 문제가 없게 되었다. 어딜 가나 시행착오도 있고 또 그에 대한 해법도 있는 법.


도착 이튿날 리마에서는 성당과 성당 안의 카타콤베catacombe를 둘러보고 리마의 해변에 들러 피어pier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호주에서 온 생물학 교사 조앤Joan, 변호사 바네샤Vanessa,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매리앤computer graphic designer Marrianne과 동행했는데 쓸 데 없는 얘길 잘도 조잘대는데 나만 홀로 제트 래그jet lag 때문에 닭 졸 듯 꾸벅댄다. 저녁에는 리마의 워터 파크waterpark를 둘러 본 후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집에서 짐 꾸릴 때 분명히 챙겨 넣은 배터리 충전기의 헤드head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는다. 어디다 두었을까? 호텔에 돌아와 무선 인터넷을 시도하였지만 연결이 되질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전화로 서울의 아내에게 안착 신고를 하고 허둥대느라 감사 인사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 로스앤젤리스의 강 사장과 겨우 통화했다.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Cusco



6일차 : 12월 22일


아침 일찍 호텔을 첵크 아웃 check out 한 후 란칠레Lan Chile항공편으로 쿠스코Cusco로 이동한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페루의 산하가 우리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겉모습도 비슷하게 생겼나? 쿠스코Cusco에 도착해서도 일행의 멤버 수자가 홀수라서 싱글 룸을 배정받는다. 숙소의 환경이 마음에 쏙 드는 유스호스텔이다. 점심을 모두 같이 사먹고 오후에 쿠스코 시내 투어에 조인하였지만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서 성당 투어만 간신히 마치고 이후에는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아예 잠에 빠져 버렸다. 이 시차가 언제나 극복되려나. 헤어날 수 없는 졸음 때문에 아름답고 유서 깊은 쿠스코의 유적지 투어를 대부분 다 놓친 셈이다.


스탠바이 티켓과 공항에서의 새우잠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탓인지 몇 년 동안 탈이 없던 대장이 다시 안 좋아 진 것 같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는 시내 중심가의 바bar에 가서 머쉬룸 수프mushroom soup에 맥주 한잔으로 간단하게 때운다. 점심을 치킨수프chicken soup와 샐러드salad로 잘 먹었더니 식욕이 당기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도 그랬는데 페루의 식문화와 음주문화는 서양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바bar에는 각국의 지폐가 붙어 있어 나도 우리 돈 1000원짜리도 같이 붙여 놓는다.


식사 후 산책 겸 구경을 위해 시내에 나가 카메라 충전기를 구입했다. 120솔(미화 40달러 정도)로 엉성한 제품에 비해 비교적 비싼 값이다. 그나저나 서울에서 가방 쌀 때 분명히 챙겨 넣은 충전기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귀신 곡할 노릇이다.


쿠스코 시내 투어에서 숙소로 돌아와 잉카 트레일에 관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려운 산행이 될 것 같다. 장비도 미흡하게 준비해온 것 같고. 투어를 주관한 영국 여행사의 서울 에이전트는 왜 이런 것들을 미리 챙겨주지 않은 걸까? 아니지. 그러고 보니 잘난 체 한 내게 잘못이 더 많지. 오리엔테이션 신청하라고 여행 준비 문서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긴 했지만 내가 신청을 안 하고 안 들은 탓이지. 그렇더라도 여행사는 이런 걸 좀 더 적극적으로 손님에게 챙겨주는 게 의무 아닐까? 어쨌거나 트레일 코스는 몇 번 해 본 지리산 종주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가이드와 포터porter가 충분히 따라 붙는 거 같아 안심이다. 심혈관 관상동맥 수술 후에는 가파른 등산이 두렵다. 담당 주치의가 남미여행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권고한 탓도 있고.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