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5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9
조회
76
클래식 잉카 트레일Classic Inka Trail


9일차 : 12월 25일


텐트 안에서 깨어나 보니 새벽 2시가 좀 지난 시간이다. 어제 저녁, 양치도 못하고 잠에 떨어졌기 때문에 화장실도 갈 겸, 양치를 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세면가방을 더듬더듬 찾고 있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이란계 미국 친구 개프Gaff가 짜증을 낸다. 할 수 없이 양치는 포기하고 소변 만 보고 다시 잠을 청한다. 새벽에 일찍 깨긴 했지만 그나마 시차가 처음으로 극복된 후의 단 잠이다. 새벽 다섯 시에 역시 텐트 메이트tent mate 이란 친구가 코를 곤다고 또 깨우는 바람에 다시 일어났다. 그런데 이 녀석, 어지간히 잔소리가 많다. 틈만 나면 가르치려 들고. 본인은 늘 친절을 베푸는 것 같이 행동하고 있지만 내게는 몹시 번거롭기만 한 녀석이다. 그나저나 나의 코골이 습관에 대해서는 늘 룸메이트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난 싱글 룸이 주어질 때는 늘 적극적으로 챙기게 된다. 룸메이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몇 년 전 코골이 수술까지 받았었건만 이삼년 괜찮더니 도루아미 타불이다.


아침 이른 시간인 여섯 시에 아침밥을 마치고 두 번째 야영지인 파가이마요Pacaymayo까지 의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의 트레일 코스trail course는 해발 3천 3백 미터부터 4천 2백 미터까지의 11km 구간이다. 3박4일의 클래식 트레일 중 오늘 코스가 가장 험난한 코스란다. 어제의 고생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가장 험난한 코스라고 하니 배낭을 대신 지고 갈 포터porter를 따로 고용한다. 그러나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 탓도 있거니와 포터에게 배낭을 맡긴 탓으로 쉬지 않고 정상까지 간다. 포터까지 따로 고용했건만 고산 산행은 여전히 쉽지가 않다. 그래도 배낭을 메지 않은 탓인지 다른 일행보다 비교적 좋은 성적으로 올라간다. 죽을힘을 다해 올라간 해발 4천2백 미터의 와르민와누카 고개Warminwanusca Pass(일명, 죽은 여자의 고개Dead Woman’s Pass) 정상에는 구름만 끼여 있고 바람이 심해 곧 바로 산을 내려온다. 내리막길은 오르막보다 숨이 가쁘지 않아 훨씬 쉽고 편하다. 그래서 점심이 준비되어 있는 캠프까지는 매우 좋은 성적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포터 비용과 그 서비스가 웃긴다. 여자 둘의 짐은 반값이고 내 것은 온 값을 지불하는데 모두 한 포터가 짊어지고 가니 서비스는 같다. 그나마 30불이랬다, 35불이랬다, 40불이랬다를 반복하니 그 비용을 종잡을 수가 없다. 가이드의 중간착취가 심한 것 같은 짐작이다. 가이드 이 녀석, 겉으로는 젠틀gentle해 보이는데 속은 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앉아 있을 것 같다. 점심 캠프장에서 내가 랩탑 컴퓨터를 꺼내니 모두 놀라워한다. 설마 여기까지 랩탑을?!! 2분 걷고 1분 쉬기를 반복한 체력에 컴퓨터를 챙겨 온 내 욕심도 어지간하다.


캐나다 친구, 요스가 늙수그레하게 보여 우리 일행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 나이가 가장 많다. 많이 늙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요스는 나보다 여섯 살이나 아래란다! 서양 사람들의 나이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더 놀라운 건 76세의 미국 할머니가 3박 4일의 잉카 트레일에 도전하고 있는 일이다. 걸음걸이도 나보다 훨씬 가벼운 모습이다. 그래서 나이를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76세란다. 그러면서 ‘로마는 하루에 이루어 진 게 아니다Rome was not built in a day.’ 라며 노익장을 과시한다. 산행 시작하면서부터 옆에 전속 포터가 따라 붙긴 했지만 대단한 할머니다.


이번 여행에 참가한 우리 일행은 모두 17명이다. 그 중 호주에서 온 쌍둥이 자매 중 하나는 산행 시작하기 전에 고산증으로 쓰러져 쿠스코의 한 병원에 입원 중이라 잉카 트레일에는 동참하지 못했다. 잉카 트레일에 오른 열여섯 명의 일행 중 하나가 오늘 오후 또 낙오했다. 이 친구 역시 호주에서 온 친군데 일행과 잘 어울리질 않아 이름이나 직업은 아무도 모르는 눈치다. 첫날부터 산행을 몹시 힘들어 해서 인도계 여자 친구와 함께 늘 후미 그룹이었는데 오늘 점심을 먹을 때까지 캠프에 나타나지 않았다. 일행이 점심을 시작한 후 힘겨운 모습으로 뒤 따라 오긴 했는데 결국 일행과 합류하지 못하고 캠프에 남았다. 잉카 트레일은 인간의 한계와 체력을 시험하는 코스다.


오전 내내 심하게 내리던 비가 오후에는 다행히 그쳤다. 해발 4천 2백 미터의 와르민와누카 고개를 넘어 계곡에서 점심을 먹은 우리는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산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니 해발 4천 2백 미터의 와르민와누카 고개가 까마득하게 뒤로 보인다. 날이 좋아졌기 때문에 사진도 찍었으면 좋으련만 내 배낭을 메고 있는 포터가 옆에 없어 카메라도 없다. 너무 지친 나머지 카메라까지 배낭 안에 꾸린 탓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생각을 곱씹을수록 포터의 하루 일당을 놓고 장난치고 있는 가이드의 노회함이 괘씸하다. 얼마가 적정 비용인지와 전달되는 돈 중 과연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 포터에게 전달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저녁에 파카이마요 캠프Pacaymayo Camp에 도착해 가이드에게 내 의견을 말해준다. 30, 35, 40불로 비용이 왔다 갔다 했고 두 여자는 남자 배낭의 절반 만큼인 20불씩만 지불해도 된다고 했지만 결국 한 포터가 모두 지고 가고 있으니 내 배낭과 뭐가 다르냐? 내일 모래 하산할 때까지 포터를 쓰는 경우 적절한 가격을 정확하게 얘기해 달라.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소주 세 팩, 라면 3개. 그리고 믹스커피를 주면서 소주는 저녁에 일행과 함께 먹으라고 공개적으로 내놓고 라면과 커피는 알아서 하라고 살짝 챙겨 주었다. 그랬더니 라면은 포터들과 함께 먹고 커피는 자기가 챙기겠단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려고 개인용 텐트로 돌아오니 먼저 와 있던 개프가 자기 모자와 내의 하나를 공용텐트 안에 널어주고 와 달란다. 이미 잠잘 준비가 되어있는 이 친구의 청탁을 거절할 수가 없어 공용 텐트로 올라갔더니 텐트 안에서 아직까지 카드놀이 하고 있던 하이디heidi 등의 젊은 여자 일행들이 강력하게 반발한다. 여기는 포터들이 잠을 자는 곳인데 어떻게 그런 걸 여기다 널 수 있느냐고. 아래의 개인용 텐트에서 이런 대화를 듣고 있던 개프가 불만을 제기한 하이디에게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면서 맞받아치며 강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입장이 곤란해 진 나는 개프에게 직접 와서 해결하라고 하고는 그의 물건들을 텐트 앞에 놓아두고 내려와 버렸다. 이 녀석 하는 짓이라니. 남들이 모두 뒤에서 구시렁대며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미운 짓은 골라서 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지.


잉카 트레일 캠프Inka trail camp


10일차 : 12월 26일


다른 날보다 늦은 시각인 여섯시 반 기상이다. 그러나 나는 5시 반쯤 깨어났다. 내가 뒤척이는 소리에 개프도 깨어나길래 서로 인사를 하고 나는 침낭을 챙겼다. 그러나 캐프는 여섯시 반까지 더 자겠단다. 그런데 옆 텐트의 여자 메리앤marrianne이 급한 목소리로 화장지 좀 있으면 챙겨달란다. 몹시 급한 사정인 모습이다. 내게는 화장지는 가진 것이 없고 티슈tissue뿐인데 그나마 급하게 찾으려니 보이질 않는다. 이 소란 통에 잠을 좀 더 자겠다던 개푸가 화장지를 챙겨 주느라고 일어나면서 좀 일찍 텐트 안의 침구를 정리하게 되었다.


아침식사는 팬케이크pancake, 오트밀oatmeal, 토스트toast, 계란말이 등이 나왔다. 산중의 식사치고는 매 끼니가 정말 훌륭하게 나온다. 아침에 보니 변호사 바네샤vanessa도 속이 안 좋은 모습이다. 가지고 있던 정로환을 나누어 주긴 했는데 의사가 처방해 준 지사제를 챙겨오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떠날 준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캠프사이트의 넓은 공간을 이용해 가이드가 포터들을 정렬해 앉혀 놓고 피리를 불고 있다.


포터들을 소개시키는 시간이다. 우리 일행을 위한 포터는 모두 21명이다. 대부분 농사꾼들인데 부업으로 포터를 한단다. 포터들은 차례로 돌아가며 자신의 자녀 숫자와 나이를 소개 했다. 덕분에 이들에게 우리 일행도 소개하는 순서를 갖게 되어 우리 일행이 누가 누구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대학생 둘, 변호사 하나, 선생 둘, 호주의 군인과 그의 여자 친구, 그리고 나다.


비교적 평탄한 산행을 네 시간 정도 하고 3박4일 잉카트레일 코스의 마지막 캠프사이트 위나이웨이나Winaywayna에 도착했다.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고 있다. 캠프장에 도착하여 다른 날과 달리 텐트가 아닌 산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산장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조앤joanne과 나는 옆에 앉은 보조 가이드를 놓고 어떻게 해서 일본계인 후지모리fujimori가 페루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어눌하지만 매우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그래서 전공을 물었더니 관광을 공부했단다. 그것도 정규대학에서 5년 동안. 보조 가이드는 주로 가이드를 돕는 역할을 하지만 잉카 트레일 내내 일행을 위해 무거운 산소통을 메고 다니고 있다. 조앤과 나는 이런 거 하지 말고 정치를 해서 앞으로 페루 대통령이 되라고 추겨 세운다. 그는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잉카 트레일을 70번이나 했단다.


점심에 모처럼 맥주 한 병도 시켜 먹었다, 5솔을 주면 식당에 부설되어 있는 샤워장에서 약식 샤워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포기하고 텐트에 돌아와 산행 일기를 정리한 후 낮잠을 청한다. 텐트 메이트tent mate인 이란 친구 개프도 샤워를 끝내고 돌아와 옆에 눕는다. 그런데 이 친구 하는 짓이 사사건건 왜 이리 미운지 모르겠다. 미운 마음으로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저녁 약속시간인 6시 반이다. 옆에서 잠자던 개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없다. 저녁 먹으러 혼자 간 게지.


식당으로 가보니 개프는 보이지 않고 캐나다 친구만 보여 물어 보니 밖에 홀로 앉아 있단다. 저녁은 환송 파티라기보다 포터들에게 팁을 주는 세리머니ceremony였다. 저녁은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옆에 있던 뉴질랜드 친구들에게 수프를 챙겨주었더니 멀리 앉아있던 이란 친구 개프가 입 다물라는 시늉의 사인을 보내온다. 내가 뭘 잘 못했나? 자기는 홀대하면서 다른 친구들을 챙겨주는 것에 대한 시기심이 발동한 게 아닐까.


옆에서 식사 중인 캐나다 친구 요스와는 본인이 캐나다에서 생업으로 하고 있다는 온실 재배 얘기와 취미로 하고 있는 등반 등의 얘기를 나눈다. 평생 동안 온실 농사로 오이(English Cucumber)를 재배를 해왔는데 몇 년 전에 본인 소유의 농장으로 쇼핑몰이 들어오게 되어 좋은 값에 처분하고 대신 틈틈이 근처 친구의 일을 거들며 주로 여행을 다닌단다. 그래서 그런지 잉카 트레일에서 최고의 실력을 과시했었다. 내년에는 일행과의 일정 때문에 이번에 오르지 못한 마추픽추의 최고봉인 와이나픽추Waynapicchu를 등산하러 다시 오겠단다. 대단한 체력이다. 32년의 결혼 생활 후 자녀를 갖는 문제로 최근 부인과 이혼했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없단다. 그 동안 여행한 사진을 모아 사진집을 낼 계획인데 나도 여행기를 써볼 계획이라고 하니 내게도 사진을 제공해 주겠단다. 잉카 트레일에 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 잉카 트레일을 제대로 소개하는 여행기를 꼭 준비해봐야겠다.


잉카 트레일의 마지막 밤은 파티 분위기다, 해발 4천 미터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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