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7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8
조회
82
전형적인 스페인 콜로니얼Spanish Colonial 푸노Puno


13일차 : 12월 29일


오늘은 아침 일찍 푸노Puno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움직인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일찍 든 탓으로 새벽에 일찍 깼다. 일찍 깬 김에 인터넷을 연결한다. 페이스북facebook에 들어가 보니 카타르 도하Quatar Doha에서 일하고 있는 큰딸이 온라인에 올라와 있다. 챠오ciao! 신호를 보냈더니 엄마인지 아빠인지 긴가 민가 하는 답이 왔다. 아빠다! 큰딸아이가 무척 반가워하고 놀라워한다. 그래서 화상 채팅을 연결한다. 세상 참 좋긴 좋다. 남미 오지 쿠스코와 중동의 도하가 무선 랜의 랩탑 컴퓨터 하나로 연결되다니.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곁을 오가는 요스와 조앤한테도 큰딸과 세이 헬로say hello를 하도록 강요한다.


아침 일곱 시 버스가 오도록 예정되어 있는데 일곱 시가 다되도록 일행 중에 호텔로 돌아오지 않은 친구가 있단다. 하이디Haidi다. 새벽에 매 시간마다 출입문 벨소리가 났었는데 매리앤, 아니타Anita 등이 한 시간 단위로 새벽 네 시부터 여섯시까지 들어 왔단다. 어제 저녁 식사 후 모두 나이트클럽에 가서 신나게 놀다가 돌아올 때는 각자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하이디는 푸노 출발시간이 다되도록 호텔에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젊음이 좋긴 좋구나! 이런 젊음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다. 가이드, 유리와 매리앤이 택시를 잡아타고 매리앤의 기억을 더듬어 어제 놀던 장소로 간다. 다행히 버스 출발에 늦지 않게 하이디를 데리고 왔다. 시내 플라자plaza 근처의 여관에서 자고 있더란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고.


한 차례의 소동을 겪은 후 푸노Puno행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생각보다 쾌적했고 일곱 시간을 여행해야만 하니 버스 안에 화장실까지 비치되어 있다. 버스는 중간에 휴식 겸 사진 촬영을 위해 한 번만 쉰다고 해서 간단한 스낵을 사가지고 버스에 오른다.


쿠스코에서 푸노로 가는 길은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평균 해발 고도가 4천 미터가 넘는 길이지만 길가에 펼쳐진 초원은 풍요롭기 그지없다. 평화로운 초원에 양떼, 소, 말, 라마Llama, 알파카 등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과 이들을 돌보고 있는 페루 농민들의 모습이 정겹다. 풍요롭기 그지없는 광활한 초원의 지평선 끝으로는 가파른 산들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높은 산봉우리들은 만년설로 덮여 있어 한 폭의 그림이다.


초원을 굽이쳐 흐르는 강과 냇물은 인공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뱀의 움직임처럼 구불구불 흐르고 있다. 초원 역시 원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농로조차 보이질 않는다. 양떼를 돌보고 있는 인디오 여인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모자, 치마 그리고 포대기를 둘러맨 모습이 왜 저렇게 똑 같은 모습일까?


군데군데 눈에 띄는 양몰이 개들의 모습도 아름답다. 이런 평화롭고 풍요로운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일행은 어제 저녁의 광란으로 모두 깊은 잠에 떨어져 있다. 평화롭고 풍요로운 초원을 가로 질러 왕복 2차선 고속도로와 단선 철도 그리고 전봇대 등이 인프라infrastructure의 전부이다. 페루의 건축에 쓰이고 있는 돌 문화와 흙벽돌 문화는 우리의 옛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세 시간여를 달린 버스는 휴식 겸 사진 촬영을 위해 10분 간 멈추었다. 주변의 황홀한 경관에 모두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정신이 없다. 이곳의 고도는 해발 4300m. 나도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이곳 휴게소에는 양털 제품들을 많이 팔고 있다. 양모 양탄자에 관심을 보였더니 180솔을 달랜다. 안사겠다고 했더니 20솔씩 내리더니 버스에 오른 내 옆의 창가에 와서 100솔에 사라면서 자릴 뜨질 않는다. 양피가 작긴 하지만 물건은 좋아 보여 나도 관심을 끊지 못한다. 출발하기 위해 버스에 오른 기사에게 100솔이면 괜찮은 가격이냐고 물었더니 180솔 아니었냐면서 100솔이면 얼른 사란다. 그래서 양모 양탄자를 우리 돈 3만 원 정도에 건졌다. 마누라 잠자리에 펴주면 좋아 하지 않을까? 사서 만져보니 촉감도 좋고 가공도 꼼꼼히 잘되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지난여름 스페인 여행 때 마드리드에서 바르셀로나까지 버스를 아홉 시간 가량 탔었는데 중간에 기사가 교대되는 것을 보고 매우 큰 인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페루 운전수는 일곱 시간을 교대 없이 혼자 운전을 한다. 그래서 일까. 조수석에 웬 여인이 동승해 말동무를 해준다. 부인일까? 이 여인은 푸노Puno의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 시내에서 하차했다.


스페인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푸노의 호텔은 리마, 쿠스코의 호텔에 비해 훨씬 시설이 좋다.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지만 나는 샤워 후 라면 하나 끓여 먹은 후 랩탑 컴퓨터에 매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티티카카Titikaka 호수


14일차 : 12월 30일


어제 저녁 일찍 잠이 들었지만 행정과장 전화 때문에 10시경에 깨어났다. 직원 인사 때문에 마음이 상한 분위기다. 행정과장과 통화하고 또 같은 사안으로 e메일까지 하고 나니 그동안 좋아졌던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잠이 들었나 했는데 새벽에는 반갑지 않은 문자로 깨어났다. 전 직장의 동료가 딸 결혼식을 알지 못해 미안하다며 뒤늦게 축하한다는 변명의 메시지다. 안 그래도 기분이 언짢았었는데 시차도 모른단 말인가. 나는 자기 집 경조사 다 챙겼는데. 이제 와서 변명 문자나 보내다니. 마누라가 좋으면 처갓집 들보에 대고 절을 한다고 했었지. 그러나 미운 사람은 뭘 해도 미운 법이다. 새벽에 잠을 설친 나는 결국 잠을 못 이루고 아침을 먹는다.


8시에 가이드가 툭툭이들을 대동하고 호텔로 왔다. 아만타니Amantani 섬으로 민박을 가기 위해서다. 일행은 여덟 대의 툭툭이에 분승하여 티티카카Titikaka 호수의 터미널에 도착한다. 보트는 우리 일행을 위해 전세 낸 것인데 시설이 비교적 호화롭다. 한 삼십분을 달려가니 물위에 떠 있는 섬floating islands 인 우로스Uros에 도착한다. 왕골로 뗏목을 이어서 뜨게 한 섬인데 섬 위의 집들도 모두 왕골로 지어져 있다. 섬의 아낙네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품 등을 팔면서 삶을 영위해간다. 남자들은 고기잡이에 나가 있는데 주로 트라우트trout 와 킹 피쉬king fish를 잡아서 육지에 내다 판단다.


우로스 섬을 떠나 세 시간여를 보트를 타고 아만티니amantani섬에 도착한다. 섬에 도착하기 전, 배에서는 젊은 친구들의 카드 판이 재미있게 왁자지껄하다. 글쎄, 어딜 가나 사람 사는 모습은 거기서 거기다. 심심할 때는 무리지어 떠들며 시간을 보내는 게 인간의 속성이자 본능인 것이다. 보트에는 운전수의 딸이 동승해 아버지를 낮잠 재우고 운전을 대신한다. 이제 겨우 열네 살이라는데 운전을 참하게 잘 한다. 물론 운전면허는 아직 없다. 열여덟이 되어야 딸 수 있단다.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2월말까지는 방학이라서 아빠 일을 도와주고 있단다.


아만타니 섬에 도착하니 민박집 주인들이 마중 나와 있다. 나는 요스와 함께 후안Juan네 집으로 안내되었다. 그런데 부두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오르막길이 잉카 트레일이나 다름없이 가파르다. 해발 4천 미터가 넘어 산소가 평지보다 30%이상 부족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걸을 수가 없다. 그런데다 집이 가파른 언덕위에 있어 웬만한 등산 뺨친다. 안내된 민박집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세미semi 2층으로 되어있는 집인데 손님용 객실에는 침대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고 분위기도 쾌적해서 맘에 든다. 요스와 나는 방을 하나 씩 각각 쓰기로 한다. 네 시에 일행 모두가 다시 모이기로 했는데 시간이 좀 있어 요스가 내 방에 와 이런 저런 한담을 같이 나눈다. 그러나 나는 피곤에 지쳐서 졸음이 오는 것을 겨우 참고 앉아 있다. 세시쯤 되니 점심 준비가 다되었다고 식사를 하란다. 부엌은 어릴 적 우리가 쓰던 것과 비슷한데 아궁이에 불을 지펴 장작으로 식사 준비를 한다. 감자를 주로 한 야채로 수프가 먼저 나오고 밥과 감자튀김이 메인 디시main dish다. 마지막으로 문야munya라는 풀잎으로 뜨거운 차를 타주었는데 차 맛이 페루에서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요스와 나는 준비해간 선물을 내놓았다, 나는 소주 두 팩, 라면 두 봉지 그리고 1회용 커피 몇 봉지를 내 놓았다. 선물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보트 터미널에서 바나나 열두 개를 샀었는데 두 개는 보트 안에서 배가 고파 먹고 열 개를 내놓는다.


점심 후에는 뒷산에 올라 선셋sunset을 보는 팀과 마을주민들과 축구를 하는 팀으로 나뉘어 시간을 보내기로 했는데 나는 피곤해서 양쪽 모두에 참가하지 않고 낮잠을 자기로 한다. 한참 만에 요스와 주인이 깨워서 일어나니 이미 어두워져 있다. 요스는 뒷산에 일행 일부와 함께 다녀왔는데 날씨 때문에 선셋을 보지는 못했단다. 나머지 일행들도 성원이 되지 않아 마을사람들과 축구를 하는 대신 자기들끼리 카드놀이를 하며 놀았단다. 저녁 메뉴도 점심과 같은 것이었는데 장작불로 지은 식사라서 따끈따끈 따뜻하다. 밥을 뚝딱 먹어 치웠더니 부족한 줄 알고 아들 월터Walter가 더 먹겠느냐며 권해온다.


저녁때는 이집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남편, 큰 아들 월터, 열아홉 살짜리 딸과 나머지 아들 둘. 모두 5남매의 다복한 가정이다. 부엌에 놓여있는 테이블table에는 요스와 내가 앉고 이집 식구들은 모두 부엌바닥에 옹기종기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매우 행복하고 다정다감해 보인다. 그래! 그 옛날 우리도 고향마을에서 저렇게 살았었지! 지금은 도시로 몰려와 무얼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르며 이리저리 떠밀려 살고 있다. 아침에 출근하면 하루 종일 일에 치여 살다가 저녁에 돌아오면 각자 텔레비전이나 보다 각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또 다음 일상을 준비하는 다람쥐 체 바퀴 돌 듯 하는 따분한 삶.


저녁을 먹고 나니 민속의상을 하나씩 내놓는다. 판초 식으로 만들어진 이 마을의 전통의상이다. 옷을 걸치고 마을 회관으로 가니 민속 밴드band의 음악에 맞추어 이미 댄스파티dance party가 벌어졌다. 다음 차 순이 되어 나도 마을 주민 그리고 우리 민박집 주인아주머니와 한편이 되어 플로어floor를 돌았다. 음악이 리드미컬rhythmical해 매우 흥겨운 자리다, 특히 여자들의 복장은 매우 원색적이어서 분위기를 돋우는 데는 그만이었다. 이렇게 한 시간 정도를 흥겹게 놀고 민속의상차림으로 기념촬영도 한 후 민박에 돌아와 깊은 잠에 빠져 든다.


남미 식 송년 파티


15일차 : 12월 31일


아침에 일어나 양치와 화장실 볼 일을 보고 짐을 챙긴다. 입던 기능성 긴팔 티셔츠와 내의 그리고 양말을 곱게 접어 침대 위에 놓아둔다. 아무래도 이 집에서 필요할 것 같아서다. 가이드가 현금은 주지 말라고 했는데 팁으로 10솔도 침대 위에 같이 놓아두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이지만 밖에 나가 마을 사진 몇 장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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