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8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8
조회
78
오늘은 뉴이어 이브new year eve라서 특별한 파티를 한단다. 일행 모두는 시내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팬티panty를 파는 가게에 들렀다. 페루 풍속은 뉴이어 이브에 색깔 있는 팬티를 소원에 따라 사 입는 단다. 노란색은 사랑, 빨간색은 건강, 초록색은 돈 등이다. 다들 팬티를 하나씩 사기에 나도 덩달아 샀는데 마땅한 색깔이 없어 그린green으로 샀다. 나중에 나이트클럽에서 이 팬티들을 바지 위에 입고 광란의 밤을 지냈다.


나이트클럽에 가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었지만 일행 모두 나이트클럽에 들러 음료수 하나씩을 시켜놓고 담소하다가 춤을 추기 시작한다. 평소 조용하던 일행들이 갑자기 광란의 모습으로 바뀐다. 특히 나이 마흔 여덟이자 학교 선생인 조앤까지 20대들의 몸짓으로 광란이다. 뉴이어 이브를 이렇게 지내야 한다고 해서 자정을 넘겨 호텔로 돌아왔다.







볼리비아Bolivia 국경을 넘다


16일차 : 1월1일


광란의 뉴이어 이브를 보낸 탓인지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 일찍 깨어났다. 깨어난 김에 짐도 챙기고 샤워도 한 다음 여섯 시에 맞추어 아침 식사를 했다. 일곱 시 정각에 호텔에 도착한 전세 버스를 타고 일행 모두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버스터미널에서 노선버스로 옮겨 탄 우리는 볼리비아 국경까지 와서 입국수속을 한 후 코파카바나Copacabana라는 도시에서 볼리비아 국적의 버스로 옮겨 탔다. 페루 버스는 비교적 쾌적했는데 볼리비아 버스는 자리가 협소한데다가 몸집이 큰 개프가 내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몹시 불편하게 세 시간을 시달린 끝에 호텔에 도착한다.


호텔에 투숙한 후 잠시 쉬었다가 인근의 까페cafe에서 일행 모두와 저녁을 함께 했다. 볼리비아의 물가는 페루의 절반 정도인 것 같다. 적어도 음식 값은 그렇다. 식당에서 잘 시켜 먹어도 미화 5불에서 7불 정도면 충분하다. 음식도 맛이 있다. 저녁 식사 후 바로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산책을 겸해 시내를 돌아본다. 산책 후 호텔에 들어오니 잠 잘 시간이다. 내일은 5시간 코스의 다운 힐 바이킹down hill biking이 예정되어 있다.






죽음의 길 바이킹Death Road Biking


17일차 : 1월 2일


새벽 일찍 일어나 일행 모두는 죽음의 길 바이킹death road biking을 하기 위해 도보로 매드니스madness라는 회사로 향한다. 호텔에서부터 좀 가파른 길을 10여분 이상 걸은 것 같다. 어드벤쳐 투어adventure tour 전문회사인 매드니스에서 각각 미화 75불씩을 계산하고 헬멧 helmet 등의 바이크bike 장비를 지급받은 후 인근 카페에서 아침을 간단하게 때운다. 아침 식사 후 여행사에서 제공한 전용버스로 해발 4천 7백 미터 고지로 향한다. 산 정상에 오르니 부슬비가 내리고 몹시 춥다. 옷을 단단히 챙겨 입고 올 걸 그랬나? 일행 모두 산악자전거를 한 대씩 지급받고 자전거 타기에 대한 주의 사항을 간단히 들은 후 단체 사진 촬영을 한다. 우리 일행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에서 온 친구들까지 함께 모여 인원이 꽤 많다. 난생 처음 해보는 산악자전거인데다가 그것도 죽음의 도로라고 하니 좀 두렵다.


그러나 기왕 도전한 것이니 선두그룹을 따라 가파른 길을 미끄러져 내려간다. 워낙 높은 곳에서 출발하다보니 영하를 넘나드는 빗길이라 매우 춥다. 손발이 얼어붙어 오고 때 마침 내리고 있는 부슬비에 옷도 젖어와 추위에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잉카 트레일에 이어 괜한 객기를 또 부린 건가. 그냥 개프나 조앤처럼 자전거를 타지 말고 우리 그룹의 뒤를 쫓아오고 있는 밴van에 타고 경치나 즐길 걸 그랬나. 데스 로드death road 의 경치는 기가 막힐 정도로 빼어난데 카메라 배터리camera battery를 호텔에 그냥 두고 왔다. 어젯밤에 배터리 충전 후 카메라에 다시 넣는다는 걸 깜빡한 것이다. 이 빼어난 경치와 평생 한번 해보는 이 멋있는 산악자전거의 경험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러나 다운 힐 바이크의 모두 일정을 끝내고 나니 매드니스 여행사의 전속 사진사가 촬영한 CD를 한 장씩 나누어주어 이 소중한 경험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되어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처음엔 두려움이 많았던 다운 힐 바이킹down hill biking이 고도가 낮아지면서 추위가 가시고 또 날씨도 걷히면서 점점 재미있어 진다. 아! 이거 안했으면 평생 이 묘미를 몰랐겠는걸. 서울 돌아가면 MTB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해야겠다. 나이 70이 다된 동서 형님의 친구 권 사장이 MTB에 빠져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 그나저나 그 양반, 내 권유에 따라 이번 여행길에 같이 왔더라면 이런 멋있는 체험에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저녁은 우리 일행 중 하이디heidi와 아니타anita가 내일 아침 일찍 떠난다고 해서 송별연을 겸하여 특별한 곳으로 가기로 한다. 분위기가 아주 좋은 곳이라며 가이드, 카리나Karina가 안내했다. ‘죽음의 길’ 산악자전거의 성취감도 있고 해서 좀 무리하게 주문을 한다. PLSCO & Sour라고 이곳의 전통 칵테일cocktail에다 위스키whisky 한잔까지. 낮의 피로도 있고 해서 술 두 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정신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친구들의 수다는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호텔로 돌아갈 생각을 안 한다. 몰려오는 졸음을 얼마나 참았을까. 바네샤 그룹이 호텔로 돌아가잔다. 요스 등은 그냥 남아있고. 바네샤를 따라 택시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이내 잠에 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 라파스 La Paz


18일차 : 1월 3일


라파스La Paz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라파스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3천 6백 미터 고지에 위치한 도시로 불리비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도시로서 사실상 수도나 다름없다. 볼리비아의 헌법상 수도는 유엔교육관학문화기구가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수크레다. 오전엔 가이드와 함께 라파스 시내 관광을 했다. 무릴료Murillo광장과 쇼핑가 등이다. 무릴료 광장 투어를 하면서 가이드로부터 이 나라 정치 환경에 관한 얘기와 나라 이름이 왜 볼리비아Bolivia가 되었는지 등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라파스에서 새로이 투어에 조인한 칭용Ching Yong이 오전 관광 끝날 무렵에 날 잡아끈다. 코카Coca 박물관이나 구경하잔다. 칭용은 중국계 캐나다인이다. 아시아계는 역시 서로 통하는데 가 있다. 칭용은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Ottawa에서 살고 있다고 했는데 얘길 들어보니 완전히 떠돌이 인생이다. 스위스의 베른Bern에서 18년인가를 살았다고 했다. 최근에는 28개월째인가를 직장 내던지고 여행만 하고 있는 중이다. 라파스도 두 번째 방문이란다. 볼리비아 북부를 작년에 여행했지만 남부는 여행할 기회가 없어 이번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코카박물관에 가서야 비로소 코카 잎이 코케인cocaine은 물론 코카콜라Coca Cola의 제조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가이드가 호텔 근처에 일본식당이 있다고 한 말이 생각나 둘은 호텔로 돌아왔다. 프런트에 물으니 호텔이 소재한 길을 한참 따라가면 뉴토쿄New Tokyo 라는 일본 식당이 있다고 해서 한 참을 걸었다. 이 길을 따라 걷다보니 길 주위에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모습이다. 같은 길을 계속 내려가다 보니 미국대사관과 스페인대사관이 보인다. 두 대사관을 지나 한 참을 더 가서 일본 식당 뉴토쿄를 찾긴 했지만 일요일이라 문이 닫혀 있다. 헛걸음을 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일단 호텔로 돌아온다. 마땅한 대안이 없어 전에 한 번 들렀던 알렉산더 커피숍Alexander coffee shop 에서 샌드위치sandwich 와 샐러드salad로 점심을 때운다. 남미의 커피숍은 유럽 음식문화의 영향으로 커피숍에서 웬만한 메뉴의 식사가 가능하다.


그러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어 인터넷 카페internet cafe 에 들렀더니 랩탑 컴퓨터는 받아줄 수 없단다. 유료인 자기들 컴퓨터만 쓰라는 얘기다. 한글 자판이 없으면 내게는 무용지물임으로 길 건너의 인터넷 카페 두어 군데를 더 돌아본다. 그러나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포기하고 호텔로 돌아온다. 그런데 뜻밖에 에일린Eileen 이 랩탑 컴퓨터로 인터넷을 하고 있다. 나도 프런트에 가 호텔의 와이파이wifi 비번을 물었더니 비로소 인터넷이 된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인터넷은 속도가 매우 느려 실용성이 떨어져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 몸이 피곤해 잠이 오는데 마침 조앤이 자기 방에서 잠시 쉬라며 방 열쇠를 건네준다. 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여행을 계속하는 우리 일행은 아침에 체크아웃을 한 상태이고 내일 귀국하는 조앤 등은 방을 아직 가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조앤 방에 가서 한숨을 자고 났더니 개운해 졌다. 로비로 내려오니 일행들이 호텔에 맡겨두었던 짐을 정리하고 있다. 나도 짐을 찾아 정리한 후 여섯 시가 되어 수크레Sucure 행 버스를 타기 위해 택시 두 대에 나누어 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남미의 남쪽으로 여행을 계속하는 우리 일행은 나, 새로 라파스에서 조인한 칭용과 필립Phillip, 바네샤와 매리앤, 로빈Robin과 에일린Eileen 커플couple 그리고 가이드, 카리나Karina 등 모두 여덟 명이다. 버스터미널에 와서 밤새 달릴 버스에서 먹을 스낵snack 과 물 등을 사서 챙긴 후 여덟시나 되어 버스에 오른다. 오버나이트overnight 버스이기 때문에 좌석을 기울일 수가 있고 좌석마다 모포가 지급되어 있는 비교적 고급 버스다.


나는 여전히 피곤이 몰려와 버스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다. 그런데 두어 시간 후쯤 되었을까. 창밖이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났다. 타이어 펑크가 난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타이어 수리를 마치고 가던 버스가 이번엔 알터네이터alternater 고장이라서 다시 멈추었다. 수리를 시도하던 차가 수리가 불가능하다며 다른 대체 차량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손님들이 모두 버스에서 새우잠으로 밤을 새웠다. 그나저나 이 오지까지 언제 대체 버스가 올 수 있단 말인가!


날이 밝아지자 대체 차량은 끝내 오지 않고 버스 수리가 다시 시작되었는데 어찌어찌하여 버스가 수리되어 다시 운행을 시작한다. 당초 아침 일곱 시에 수크레에 도착 예정이었는데 수크레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두 시 반이다. 바네샤는 우리가 받아야 할 증명서가 3박4일의 잉카 트레일이나 다운 힐 바이크가 아니라 볼리비아 버스 서티피켓certificate 이라고 불평을 에둘러 얘기한다. 정말 힘든 여정이었다.


호텔에 들어 짐을 대충 챙기고 스낵으로 점심을 먹자고 로비에 모였는데 생각해 보니 휴대해온 라면 생각이 난다. 객실에 들러 짐을 대충 정리하고 라면을 끓여 먹으니 살 것 같다. 그나저나 라면도 이제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