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파이팅 남미 종단 트레킹 : '잉카에서 길을 찾다.' 10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19:37
조회
86
우유니 소금 사막Uyuni Salt Dessert


22일차 : 1월 7일


하루 왼 종일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를 끝내면 저녁 9시에 아르헨티나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야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 첵크 아웃을 해 짐을 스토리지storage에 맡긴다. 그러나 우유니 염호 투어는 아침 열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 식사 후 시간이 남아 인터넷을 여기저기 서핑surfing한다. 그런데 서울의 아내 건강검진 결과가 좋지 않은지 아내로부터 걱정스러운 메일이 왔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건강해야 할 텐데.


랜드 크루저land cruiser 두 대에 나누어 탄 일행은 투어를 출발한 후 한 시간여 만에 첫 목적지인 소금마을에 닿았다. 이 마을에서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소금을 원시적으로 가공해서 한 포대에 겨우 볼리비아노 20센트 씩 받고 볼리비아는 물론 남미전역에 공급하고 있단다. 마을이 온통 천연 소금으로 뒤덮여 있지만 가격을 제대로 쳐 받을 수 없는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어 있어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우리 일행을 나누어 태운 두 대의 랜드 크루저는 서로 경쟁하듯 앞서거니 뒤서거니를 반복하면서 소금사막 위를 전력으로 질주한다. 사막에 들어서니 지평선이라고 해야 할지 수평선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소금 평원이 아득하기만 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마침 날씨마저 좋아 소금 사막이 눈부시기 그지없다. 어찌 이런 광야에 소금 사막이 형성되었단 말인가. 소금 사막의 크기는 만 2천 평방km, 평균 깊이가 80m나 된다고 한다. 이 거대한 규모의 염호가 비가 내려 물로 살짝 뒤덮이면 하늘과 구름이 염호에 투영되어 기가 막힌 장관을 연출하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거울로 불린단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지금은 볼리비아 내륙 한 가운데의 염호이지만 빙하기 이전 남미의 여러 섬들과 섬 사이의 바다가 융기된 후 빙하기를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거대한 남미 대륙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이곳은 바다였다고 한다. 볼리비아는 대부분 해발 3천 미터 이상의 고지에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유니 염호 역시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곳(3,653m)에 위치해 있음은 물론이다.


한 시간여를 달렸을까. 끝이 보이지 않던 소금 평원 너머로 선인장으로 뒤덮인 페스카도르Isola del Pescador 섬이 다가온다. 어부의 섬이라는 뜻이라는데 우리 일정은 이 섬을 탐사한 후 점심을 이곳에서 먹고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일행 네 명이 타고 있는 랜드 크루저가 고장이 났다. 운전기사가 한참을 노력해도 시동이 걸리지 않고 있는데 앞서 갔던 랜드 크루즈가 빈차로 돌아와서 우릴 태워간다. 일행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다. 볼리비아에 대한 신뢰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일행은 선인장이 아름다운 페스카도르섬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점심을 먹는다. 우리 일행의 식사는 치킨 위주의 식사였으나 옆의 여행사 팀은 라마Llama 고기를 현장에서 구어 먹고 있어 군침을 돌게 한다. 우리 일행은 점심을 간단히 끝낸 후 기념 촬영을 한다. 기념 촬영을 끝낸 후 로빈 커플Robin couple이 호텔에서 빌려온 것이라며 장난감 같은 공룡 모형을 내 놓는다. 이 모습이 의아했었는데 작디작은 공룡 모형을 카메라 앞에 바짝 붙이고 사람들을 일정한 거리에 배치한 후 사진을 찍으니 흡사 공룡의 입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모습이 연출된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모습, 도망치는 모습, 공룡과 싸우는 모습 등을 연출하며 즐거워한다. 소금사막에 장애물이 전혀 없어 가능한 연출이라고 한다.


네 시가 조금 안된 시간에 일행은 귀로에 올랐다. 지금과 같은 우기에는 보통 비가 와서 10cm 정도 소금 위에 고여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물이 염호 전체에 고여 있지는 않았지만 운 좋게도 좋은 날씨 덕택에 소금사막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달렸을까? 피로감에 잠시 졸았나 싶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어났다. 깨어보니 바로 눈앞의 소금 사막에 물이 고여 있고 이곳에 멀리의 산과 구름이 반사되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 장관을 모두들 카메라 렌즈에 담느라고 난리 북새통이다. 참 아름다운 광경이다.


랜드 크루저의 시속은 평균 80km였는데 두 시간여를 드라이브하여 원래의 출발 장소로 돌아왔으니 소금사막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소금으로 지어진 호텔도 잠시 들렀는데 이 소금 호텔은 소금으로만 지어진 호텔이자 우유니 사막 안에 있는 유일한 호텔이라는 희소성 때문에 여행자들이 꼭 거쳐 가는 코스란다. 소금 호텔에서 숙박을 하지 않더라도 화장실도 볼 겸 커피도 한 잔하며 쉬어가기 위해서 여행자이 들려가기 때문이다. 귀로의 절반쯤은 거의 폭풍우 수준의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몰려왔다. 그나마 귀로에 맞은 상황이니 운이 참 좋은 하루였다.


호텔에 돌아와 저녁을 간단히 먹고 맡겨놓은 짐을 찾아 정리한 후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국경 행 버스가 연발이다. 일행의 불만은 극에 달해 통제가 되지 않는 수준으로 분출된다. 30분 이상 늦게 온 버스를 타고 밤을 새워 아르헨티나 국경으로 향한다.


얼마쯤 달렸을까, 쌀쌀한 느낌에 버스에서 잠시 깨어났는데 밖에 보이는 은하수와 왕 눈처럼 크게 보이는 별들이 장관이다. 거참! 여기 남미도 지난봄에 여행했던 아프리카처럼 무공해 하늘이라서 매일 같이 은하수가 장관이었을 텐데 어째 오늘 밤에서야 이런 장관을 처음 접한단 말인가! 생각해 보니 아프리카에서는 텐트의 중앙이 하늘로 뻥 뚫린 캠프사이트camp site에서 매일 밤 야영을 했었고 이곳 남미 여행 중에는 매일 밤 호텔에서 묵어 하늘을 볼 수 없었던 차이 때문이었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23일차 : 1 월 8일


날이 훤해와 깨어나 보니 동이 터오고 있다. 볼리비아의 산하는 여전히 원시적이다. 정제되지 않은 원시의 모습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구불구불한 강과 비포장의 도로. 카메라만 들이 대면 한편의 서부영화가 금방 제작될 것 같은 분위기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는 연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곱 시 경에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의 국경도시 빌라손Villazon에 닿았다. 버스에서 짐을 다 내릴 때까지 아르헨티나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는다. 일행은 볼리비아 가이드, 카리나에게 주어야 할 팁으로 의견이 분분해 진다. 페루의 가이드, 유리에게는 굉장히 호의적이었던 일행은 카리나에게는 이래저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카리나의 서비스는 유리의 그것에 비해 너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서비스에서는 정성과 진정을 다할 때만이 고객을 움직일 수 있는 법이다. 나도 당초에는 20불을 팁으로 주려고 준비했으나 일행 모두가 훨씬 낮은 수준을 준비했다고 해서 우리 일행을 위해 팁을 거두고 있는 칭용에게 100 볼리비아노 즉 미화 14불 정도를 주고 말았다. 그나마 매리앤 같은 경우는 전혀 줄 생각이 없다며 입을 닦아 버린다. 카리나에 대한 불만은 어제 저녁 투어 평가서를 돌릴 때부터 만만치 않았었다.


이런 와중에 때 마침 아르헨티나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나타나 우리 일행은 카리나와 헤어져 인근의 국경 검문소로 향한다. 국경에는 출국 프로세스process를 위한 줄이 장사진이다. 우리는 한 시간 이상을 이곳에서 출입국 수속을 한 후 아르헨티나로 넘어왔다. 아르헨티나 경우는 입국 수속이라기보다는 세관 검사였는데 여행자들의 가방을 일일이 열어 손으로 뒤져 검사를 한다. 요즈음 그 흔하디흔한 엑스레이X-ray 투시기를 이곳에서는 왜 활용하지 않는 걸까? 설마하니 아르헨티나의 국력이 엑스레이를 국경에 설치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닐 테고 어쩌면 일부 마약 종류가 엑스레이로는 검색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리는 아르헨티나로 넘어와 처음으로 우리 일행 전용의 미니버스에 오른다. 에어컨이 되는 최고급 버스다. 매리앤은 지옥에서 천당으로 왔다며 좋아한다. 짐을 모두 싣고 9번 도로를 달리는데 포장이 잘되어 있어 페루나 볼리비아의 도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승차감이 좋다. 그리고 왜 이렇게 환경까지 달라 보인단 말인가! 아르헨티나는 페루와 볼리비아에 비교하면 엄청나게 발전된 선진국 느낌이 든다.


우리 일행은 국경 도시인 라 퀴아카La Quiaca에 들러 잠시 구경을 한 후 점심식사를 했다. 이 도시는 아르헨티나라기보다는 아직까지 볼리비아 향취가 물씬 풍기고 있다. 알파카Alpaca 제품들도 많이 팔고 있고. 나는 쇼핑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아내가 알파카 얘길 남미 다녀온 친구한테 듣고 e메일을 보내와 스웨터sweater 두 개를 골랐다. 100% 알파카 털이라고 해서 샀는데 현지 가이드에게 보여 주니 알파카 함량을 잘 모르겠단다. 그러고 보니 라파스의 알파카 전문 상점에서 스웨터 가격이 4~500 볼리비아노 정도였던 생각이 난다. 그러니 4~50페소의 물건들은 당연히 순 알파카 제품일 수가 없을 터이다. 물건을 사고 또 기분이 언짢아 진다. 이런 걸 마케팅 용어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경험이라고 학생들한테 매 학기 가르치면서도 내가 당하고 있으니 스스로에게 한심한 생각이다.


우리 일행은 이 작은 마을의 성당을 한두 군데 돌아 본 후 우마우아카Humahuaca의 한 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푼다. 좀 이른 체크인이긴 하지만 밤새 버스에 시달려 왔으니 샤워도 하고 짐도 정리하며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를 보낸다. 호텔 시설도 시골치고는 아주 좋은데 문제는 인터넷이 되질 않는다. 그러나 호텔 시설만큼은 비데까지 갖추어져 있어 유럽 수준이다. 수돗물 역시 그냥 먹어도 좋을 만큼 수질이 좋단다. 더 이상 돈 주고 산 물로 양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양치까지도 돈을 주고 산 물로 해야 한 것과는 천지차이다.


가이드가 여행보험증명서를 챙겨 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오질 않는다. 분명히 페루의 가이드, 유리에게 준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유리에게 연락해서 좀 알아봐 달라고 할 수 밖에. 아님 서울의 아내에게 알아보던지. 그나저나 인터넷도 안 되고 휴대폰도 먹통이 된지 벌써 여러 날 째고. 서울 소식이 많이 궁금하다. 전화나 문자도 많이 와 있을 텐데.


모처럼 한가한 오후를 보내며 그 동안 사진기에 그냥 저장해 두었던 사진을 모두 노트북에 다운받는다. 그런데 이번엔 노트북 용량이 부족하단다. 잡스런 프로그램들이 많이 다운되고 또 사진도 1,200만 화소로 찍은 탓이다. 사진 화소 수를 줄여야겠다. 저녁은 이웃 타운으로 가서 먹는다. 아르헨티나의 국경일을 맞아 백 팩커back packer들이 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많이 몰려와 있다. 아르헨티나는 오후 시에스타siesta 를 여전히 즐기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여덟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여덟시 훨씬 넘어 식당에 도착했는데도 아직 식당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기다리게 한다.


그러나 식당은 아주 훌륭하다. 우리 일행이 입장한 후 조금 지나니 사람이 꽉 찬다. 모처럼 한가한 마을에서 쉬어 가는 김에 아주 푹 쉬어 가자면서 바네샤가 레드 와인을 한 병 시킨다. 로빈도 큰 병으로 맥주를 한 병 시키고. 아르헨티나 북부에는 라마를 많이 키운다. 그래서 나는 라마 스테이크를 시켰다. 맛은 있었는데 얼마나 고기가 질기던지. 결국 중간에 포기하고 고기를 남겼다. 서양 사람들은 전채appetizer나 수프soup를 남기는 경우는 있어도 설탕이 듬뿍 들어가 돌체dolce로 된 디저트desert는 남기는 법이 없다. 나도 모처럼 이곳 특산품이라는 치즈에 잼을 얹은 디저트를 시켜보았다. 그런데 이게 참 맛있다. 내일 아침 일정은 이 동네의 유적인 푸카라Pucara를 돌아보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필립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그 일정을 포기하고 아침 10시 반까지 푹 쉬기로 한다. 와인을 곁들인 모처럼의 풍요로운 만찬으로 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호텔로 돌아와 편안하고 포근한 분위기에서 깊은 잠에 빠져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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