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술 새해를 여는 옴니버스 2006 01 31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10
조회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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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 하세요!

 

연초에 처형 회갑 여행 들러리로 서귀포의 한 특급호텔에 묵으면서 이른 아침 수영장에 들렀을 때의 에피소드. 샤워를 한 후 입수 전에 수온에 적응하기 위해 몸에 물을 끼얹는데 먼저 수영장에 들어와 있던 한 아주머니가 샤워했느냐며 정색을 한다. 이거 아침부터 웬 참견. 화가 발끈 치민다. 너나 잘 하세요! 다음 사례는 직장에서 밉살스러운 동료들. 고급 승용차 몰면서 밥이나 술은 늘 얻어먹기만 하면서도 술자리에서 입만 열면 남의 허물 안주 삼아 흥분하는 뻔뻔이. 경조사에 나는 5만원 봉투 냈는데 우리 집 일에 3만원만 보내온 낯 두껍이. 경조비 대납 부탁하고 까마득히 잊고 지내는 철판. 밥값이나 술값 낼 때만 되면 신발끈 열심히 매는 얌체. 십년 여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기 잘난 멋으로 안하무인인 당돌한 친구. 평소 술 마실 땐 더 없이 가까울 수 없다가도 결정적인 때는 주위 사람 챙길 줄 모르는 살살이. 정말이지, 한솥밥 같이 나누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이번엔 무늬만 가족인 사람들. 명의신탁으로 고향에 땅 좀 사두었더니 자기 땅은 모두 꽁꽁 챙겨두고 동생 것 저당 잡혀 경매 넘겨버린 누이. 집안의 어른으로 대접해 왔더니 조상 모시는 일로 자손 간에 이간질이나 시키는 종가의 큰 형수. 툭하면 돈 빌려 쓰고 갚을 생각이 없는 형. 그리워 돌아가고 싶어야 할 고향이건만 스쳐 지나치고 싶지도 않다. 아는가. 이런 저런 이유로 모두가 마땅치 않아 상대하기 싫어지면 스스로 쌓은 벽 안에 홀로 갇혀 왕따 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남의 눈에 티끌만 보려 하지 말고 너나 잘 하세요!

 

작은 죽음의 교훈.

 

대학에서는 공동생활을 할 기회가 많다. 학생들과 MT, OT, LT 등의 이름으로 같이 어울려야하고 교수들과는 학기 말에 연수를 같이 가야 한다. 이 경우 대부분 합숙을 하게 되기 때문에 코를 심하게 고는 필자에게는 이런 행사들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합숙을 같이 하는 학생들이나 동료 교수들에게 신경이 쓰여 잠자리가 바늘방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골이가 무호흡증으로 발전되고 있어 수술을 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 겨울방학을 이용해 코골이 수술을 감행하기로 했다. 수술을 위해 입원하면서 병실의 환자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필자야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수술을 위해 입원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비인후과 병실에 들어섰지만 병실에는 뜻밖에도 후두암이나 두경부암 환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으며 투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병명도 희귀하지만 환자들 역시 본인들이 이런 희귀한 부위에 암이 생겨 고통을 받을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을 것이다. 평소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해야 할 삶인지! 멀쩡한 상태로 입원을 했지만 수술은 수술이다. 수술을 위해 생전 처음 전신마취를 받는데 표현은 못했지만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전신마취 후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각서에 서명을 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긴장도 잠시, 수술실에서 순식간에 의식을 잃은 뒤 수술과 회복 절차 후 두 시간여 만에 깨어난 필자의 차가운 손을 꼬옥 쥐고 있는 아내의 따스한 손길에 그만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곁에 있는 누군가의 손길이 이렇게 고마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사람 탓을 왜 하랴. 이런 저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살이는 이렇게 큰 축복인 것을.< 박의서·안양대 교수  2006 0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