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바위 얼굴' 과 '작은 죽음들'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04
조회
224
‘큰 바위 얼굴’ 과 ‘작은 죽음들’
소설 ‘주홍 글씨’로 유명한 호손의 작품 중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기 때문에 그 스토리의 감동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불과 몇 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의 산허리에 인자한 모습의 사람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고 이 바위 근처 마을에서 그 큰 바위 모습을 닮은 큰 인물이 배출될 거라는 전설이 아메리칸 인디언 시대부터 전해져 오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은 그 모습이 숭고하고 표정이 다정다감해서 온 인류를 포용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어니스트라는 이름의 소년 역시 큰 바위 얼굴 닮은 모습의 인물의 출현을 기대하며 이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외지에 나가 큰돈을 벌고 정치나 전쟁을 통해 막대한 권력을 얻었거나 큰 바위 얼굴을 찬양한 시인 같은 이 지역 출신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 모습으로 마을에 출현하였으나 이 모든 이들은 결국 큰 바위 얼굴은 아니었다.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이 큰 바위 얼굴을 스승삼아 농사만 지으면서 자신이 태어난 오두막에서 늙은 어니스트 자신이었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지혜와 덕을 쌓아온 어니스트에게 큰 바위 얼굴은 자신을 내어 준 것이다. 초등학교 이후 이 큰 바위 얼굴 이야기는 내 평생을 간헐적으로 맴돌고 있는 화두다.
내 인생의 후반에 영향을 끼친 다른 스토리는 일본의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꼬와 가톨릭 신부 시리에다 마사유끼 간의 서한집인 ‘우리, 헤어지는 날까지’이다. 이 서한집은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소설가인 아야꼬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게 되면서 자신과 바티칸의 유일한 일본인 신부이던 마사유끼 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신앙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가톨릭 신부와 신자간의 서한집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대부분 신앙에 관한 것이지만 이 중에 내가 인생 후반기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은 ‘작은 죽음들’이라는 주제다. 작은 죽음들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다가온 치명적인 병마일 수도 있고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돌부리일 수 도 있다.
삶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고 그 여정은 작은 죽음들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사기, 배반, 병마 등과 같은 많은 ‘작은 죽음들’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간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 작은 죽음들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마침내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대학 강화캠퍼스는 해발 460미터의 혈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두어 시간이면 족하기 때문에 가끔 산책삼아 오르곤 한다. 그런데 하루는 이 혈구산에서 한 무리의 봉사들과 맞닥뜨렸다. 처음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의 산행에 대해 매우 의아했었는데 산행을 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한 오라기의 근심걱정도 없는 평안함을 일별하고는 이내 머쓱해졌다.
돌이켜보니 그 맹인들의 산행과 우리의 인생행로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눈뜨고 다닌다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보지 말아야 할 것들 조차 모두 보아야 하니 맹인들만큼 평화로운 얼굴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휘둘리며 환갑을 넘긴 후 새로운 갑년을 지향하는 동안 숱한 ‘작은 죽음들’을 겪어 오면서 오로지 평범한 삶을 추구해 왔건만 아직도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은 그 형체조차 가늠할 길이 없다.
소설 ‘주홍 글씨’로 유명한 호손의 작품 중 ‘큰 바위 얼굴’이 있다. 이 작품은 우리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기 때문에 그 스토리의 감동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불과 몇 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의 산허리에 인자한 모습의 사람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고 이 바위 근처 마을에서 그 큰 바위 모습을 닮은 큰 인물이 배출될 거라는 전설이 아메리칸 인디언 시대부터 전해져 오고 있었다. 큰 바위 얼굴은 그 모습이 숭고하고 표정이 다정다감해서 온 인류를 포용하고도 남을 것만 같았다.
어니스트라는 이름의 소년 역시 큰 바위 얼굴 닮은 모습의 인물의 출현을 기대하며 이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외지에 나가 큰돈을 벌고 정치나 전쟁을 통해 막대한 권력을 얻었거나 큰 바위 얼굴을 찬양한 시인 같은 이 지역 출신 사람들이 큰 바위 얼굴 모습으로 마을에 출현하였으나 이 모든 이들은 결국 큰 바위 얼굴은 아니었다.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은 평생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이 큰 바위 얼굴을 스승삼아 농사만 지으면서 자신이 태어난 오두막에서 늙은 어니스트 자신이었다. 정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지혜와 덕을 쌓아온 어니스트에게 큰 바위 얼굴은 자신을 내어 준 것이다. 초등학교 이후 이 큰 바위 얼굴 이야기는 내 평생을 간헐적으로 맴돌고 있는 화두다.
내 인생의 후반에 영향을 끼친 다른 스토리는 일본의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꼬와 가톨릭 신부 시리에다 마사유끼 간의 서한집인 ‘우리, 헤어지는 날까지’이다. 이 서한집은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던 소설가인 아야꼬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게 되면서 자신과 바티칸의 유일한 일본인 신부이던 마사유끼 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신앙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가톨릭 신부와 신자간의 서한집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이 대부분 신앙에 관한 것이지만 이 중에 내가 인생 후반기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은 ‘작은 죽음들’이라는 주제다. 작은 죽음들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다가온 치명적인 병마일 수도 있고 평온한 일상을 무너뜨리면서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돌부리일 수 도 있다.
삶은 태어나자마자 죽음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고 그 여정은 작은 죽음들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사기, 배반, 병마 등과 같은 많은 ‘작은 죽음들’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간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 작은 죽음들을 통해서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마침내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 대학 강화캠퍼스는 해발 460미터의 혈구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상까지 다녀오는데 두어 시간이면 족하기 때문에 가끔 산책삼아 오르곤 한다. 그런데 하루는 이 혈구산에서 한 무리의 봉사들과 맞닥뜨렸다. 처음엔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맹인들의 산행에 대해 매우 의아했었는데 산행을 하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한 오라기의 근심걱정도 없는 평안함을 일별하고는 이내 머쓱해졌다.
돌이켜보니 그 맹인들의 산행과 우리의 인생행로가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다. 눈뜨고 다닌다고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오히려 보지 말아야 할 것들 조차 모두 보아야 하니 맹인들만큼 평화로운 얼굴을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세파에 시달리고 휘둘리며 환갑을 넘긴 후 새로운 갑년을 지향하는 동안 숱한 ‘작은 죽음들’을 겪어 오면서 오로지 평범한 삶을 추구해 왔건만 아직도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은 그 형체조차 가늠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