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화합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03
조회
224
http://www.gtn.co.kr/readNews.asp?Num=49124

미국 뉴욕시는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용광로는 지구촌의 온갖 잡다한 종족들이 모여 화학적으로 융합된 도시임을 자랑하는 뉴욕시의 비공식 슬로건이기도 하다. 비슷한 의미이긴 하지만 뉴욕의 다른 별명은 문명의 모자이크다. 모자이크는 화학적 융합으로 제3의 문화를 만들어 가기보다는 인종과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물리적인 조화를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용광로가 되었건 모자이크가 되었건 간에 뉴욕이 자랑하던 융합과 조화는 911테러가 빚은 쌍둥이 빌딩의 운명과 함께 참담하게 무너져 버렸다. 청교도의 이주로 시작되고 유태 권력의 강력한 뒷받침으로 유지되어온 미국의 견고한 기독교 문화는 태생적으로 이슬람 문화와 늘 대치해 올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거대 권력 미국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은 헌팅턴교수의 예견대로 피할 수 없는 한판의 승부일지도 모른다. 뉴욕시 당국은 911테러 현장에 그라운드 제로라는 역사교훈관광상품을 만들어 놓고 이슬람에 대한 증오를 여전히 불사르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체제 이후의 국제질서가 중동을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과 중국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실제로 지구촌의 세력 구도는 미국과 구소련에 의해 주도되던 냉전시대가 종식되면서 미국 주도의 G-7 경제체제가 유지되어 오다가 미국과 중국 위주로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물론 중국문화권, 특히 부자 화교들의 영향력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화교의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는 동남아인데 특히 말레이시아에서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말레이시아 반도 북서쪽 끝에 있는 섬, 피냉(Penang)은 콜로니얼문화가 잘 보전되어 있어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유산 도시인데 정치와 경제적으로는 화교에 의해 장악되고 있는 지역이다. 말레이시아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이 섬의 조지타운은 영국문화에 흠뻑 젖어 있는 곳이지만 이슬람, 불교, 힌두, 성공회가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지만 부를 배타적으로 축적하고 있는 중국 화교들의 불교, 식민 통치자들의 유산인 성공회 그리고 이민사회의 한축을 이루고 있는 인도의 힌두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채로운 것은 말레이시아반도의 식민지배자였던 영국인의 일부는 아직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레이시아 국적의 시민으로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지타운으로 대표되는 말레이시아는 문명의 화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동체다.

건전한 의미에서 모든 종교는 진리와 선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이 추구하는 진리는 궁극적으로 하나로 모아질 수밖에 없으며 진리는 결국 서로 통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다만 진리에 이르는 길, 즉 종교와 문화만이 서로 다를 뿐이다.

인류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위한 소통을 통해 공존해 갈 수밖에 없다. 특정 종교가 지향하는 유일 신앙의 배타적인 접근으로는 끊임없는 갈등과 전쟁만이 있을 뿐이다. 문화와 문명 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만이 공존을 위한 유일한 방편이며 다른 문화와 문명에 대한 존중과 소통 노력은 바로 관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