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의무와 고객권리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58
조회
233
http://www.gtn.co.kr/readNews.asp?Num=42263

가이드의무와 고객권리

패키지투어에서는 가이드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여행 중에 어떤 가이드와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늘 자유로운 여행만을 고집하는 나는 학생들과의 수학여행과 동료 교수들과의 연수연행만은 어쩔 수 없이 가이드에 의존하여 여행을 한다. 그렇지만 가이드와 동반하는 여행은 편리한 면도 많다. 가이드는 관광지를 잘 소개해 줄뿐만 아니라 여행 중의 이런 저런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하며 고객을 깎듯하게 모시기 때문이다.

지난 해 봄 나는 안식년 기간 중 한 영국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해 흑인 쉐프 겸 가이드와 함께 남아공,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에의 남부 아프리카 4개국을 트럭킹으로 일주 한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 여행에서는 가이드의 깍듯한 대우를 받기는커녕 가이드와의 갈등으로 힘든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었다. 생면부지의 외국인들과 일행이 되어 한 달여를 같이 지내는 데 다소의 갈등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차이가 심한 서구인들과 아프리카 가이드와 같이 지내려니 아무래도 그 갈등의 정도가 좀 심하게 다가왔었던 같다.

하루는 아침에 계란을 잔뜩 삶아 바구니에 담아 놓았기에 하나를 냉큼 집어 먹었다. 이런 나를 향해 가이드가 점심용이기 때문에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강압적인 어투로 나물해와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낸 돈으로 준비한 음식을 내가 먹은 건데 곱씹을수록 괘씸하다. 좀 잘못이 있었기로서니 어찌 고객한테 이렇듯 무안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먹겠다고 사전에 양해를 구하기만 했더라도 이토록 무안당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서양 사람들은 언행에 매우 신중한 모습이다. 웬만해선 건드리지도 않을뿐더러 필요한 경우라도 반드시 사전에 양해를 구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른 문화와 충돌을 예방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런 경우 상대 문화에 대한 배려가 우선이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후 계란프라이를 아침으로 준비하면서 주문을 하란다. 그래서 ‘투 스크램블’ 하고 주문했더니 가이드가 정색을 하며 하나만 주문하란다. 이번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일행의 주문이 모두 끝날 때까지 화를 참고 있다가 가이드에게 다가가 사전에 계란프라이가 하나만 된다는 고지를 했느냐고 큰소리로 따져 물었다. 가이드도 흠칫 놀래고 일행들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내친 김에 더 이상 조롱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일행들의 분위기와 관계없이 가이드를 몰아부쳤다. 이후 가이드는 미안해하기 보다는 나와의 대화를 피했고 나도 가능하면 가이드를 무시하며 지냈다. 어찌 보면 가이드로서의 카리스마도 있고 자존심도 만만치 않은 친구다. 그렇지만 가이드로서 손님에 대한 예우가 우선 아니겠는가. 어쩌면 가이드는 농담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농담은 받아들일 준비나 분위기가 되었을 때만이 농담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가이드가 어른이자 고객을 존칭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고 안내를 시작할 때면 ‘친구들(you guys)’ 하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습은 서양문화이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과는 당연히 갈등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에피소드때문인지 한 독자는 아프리카의 경험을 담아 펴낸 내 여행기에 대해 매우 불쾌했다는 서평을 블로그에 올려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평생 대접만 받고 살아온 작가인 것 같다는 게 그 이유다. 나는 다만 문화차이와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문제점만 지적했을 뿐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일로 해서 그동안 내가 가이드들에게 너무 고압적이거나 고객을 빙자해 지나친 요구를 해온 적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