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의 아티스트에게 넋을 잃다....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1:52
조회
198
http://www.gtn.co.kr/readNews.asp?Num=40361
마드리드의 아티스트에게 넋을 잃다....
90년대 중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년 반이나 주재 근무를 했던 나는 그러나 98년 봄 귀국이후 한 번도 밀라노에 다시 들러볼 기회가 없었다. 토스카나 와인, 봉골레vongole 스파게티, 짙은 안개와 회색 건물의 조화 그리고 두오모duomo 거리의 에스프레소 깊은 향을 좋아했던 내겐 밀라노는 언제나 추억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이었다.
지난해는 마침 안식년이어서 어떻게든 밀라노에 꼭 한번 가보야겠다고 별렀지만 여러 가지 다른 일정들에 밀려 꿩 대신 닭이라고 밀라노 대신 세계관광기구UNWTO가 있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한여름을 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모두 같은 라틴문화권이고 언어나 문화도 매우 흡사한 면이 있어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마드리드는 밀라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선 마드리드의 하늘과 공기가 밀라노의 칙칙한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두 달여의 마드리드 체류 중 단 한 번의 비를 만났을 뿐으로 마드리드의 하늘은 여름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렀다.
알프스 남부를 모두 품고 있고 있는 이탈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산수를 기대했던 마드리드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삭막한 도시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드리드라는 스페인어의 의미가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뜻이란다. 또 다른 라틴 나라인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를 포함해 피레네산맥 남쪽 모두를 아프리카로 치부하기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부 아프리카의 사막과 흡사한 분위기를 계속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내와 내가 두 달 여를 묵은 마드리드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포스엘로는 마드리드의 다른 구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시가 온통 그린으로 뒤덮여 있고 수백평 규모의 저택에는 대부분 정원 안에 수영장은 물론 테니스코트까지 갖추어 살고 있는 부촌이다. 마드리드의 세계관광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도 규모는 아담하지만 이곳 부촌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운 좋게도 후배 가족이 서울에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아파트와 후배 집을 서로 바꾸어 이곳의 환상적인 주택에서 한여름을 지내게 되었다. 이곳에서 호의호식하던 아내와 나는 어느 날 아침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알아보기 위해 마드리드 시내의 세계관광기구 근처에서 시내버스 27번에 탑승했다.
아토샤역 행 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을 지나 도심을 비켜나자 버스 안은 비교적 한가로워 졌다.
그제 서야 내 모습을 살펴보니 배낭, 등산용 조끼, 모자, 선 그라스로 무장한 영락없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음~ 틀림없이 소매치기의 제물이겠구나 싶어 가끔 조끼 오른쪽 아래 주머니의 지갑을 더듬어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출근시간인데 별일 있을 라고. 버스가 붐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느 순간버스가 정류장에 다가서기 시작하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큰 가방을 멘 사람들에게 내가 버스의 한 구석으로 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서 밀리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아차 싶어 조끼 주머니를 더듬었었더니 아뿔싸! 이미 지갑이 없어진 뒤였다. 눈앞의 젊은 라틴계 아이들의 짓이 분명한데 이놈들의 멱살을 잡고 어찌해볼까 하는 사이 녀석들은 유유히 버스를 내려선다. 소매치기 일당의 양동작전에 그만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다.
나름 여행전문가라고 자부한 내가 마드리드에서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다니!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집시들이나 전 세계 어디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내가! 그러나 일을 당한 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붐비는 버스 안에서 지갑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있었으니 지갑을 내 준거나 다를 게 없는 행동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들의 천국이란다.
일을 당한 후 아내와 나는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버스를 내려 인근의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잃은 돈이 비교적 많지 않고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모두 털렸지만 다행히 여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래 마드리드에서 면역주사 한대 맞은 셈 치지 뭐. 불쌍한 라틴 친구들한테 자선사업 좀 한 셈 치고.
그러나 우리는 이후 면허증과 신용카드가 없어 렌터카조차 대여할 수 없었다. 하릴없이 스페인 여행을 기차와 버스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집에서 마드리드 시내의 외출도 한 두 시간에 한번 꼴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지하철로 바꾸어 타는 번거로움을 매번 겪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웬만한 쇼핑도 동네의 쇼핑몰을 주로 이용했었다.
하루는 동네의 한 가게에 들러 물건 하나를 골라놓고는 가져온 돈이 부족한 것을 알고 소매치기 당한 얘길 했더니 그 가게 스페인 아주머니의 말이 걸작이다. ‘their acts are kinds of art.’ 마드리드 소매치기는 가히 예술가 수준이란다.
그래 나는 마드리드의 예술가에게 혼을 잠시 빼앗겼을 뿐이야…
마드리드의 아티스트에게 넋을 잃다....
90년대 중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3년 반이나 주재 근무를 했던 나는 그러나 98년 봄 귀국이후 한 번도 밀라노에 다시 들러볼 기회가 없었다. 토스카나 와인, 봉골레vongole 스파게티, 짙은 안개와 회색 건물의 조화 그리고 두오모duomo 거리의 에스프레소 깊은 향을 좋아했던 내겐 밀라노는 언제나 추억의 노스탤지어이자 로망이었다.
지난해는 마침 안식년이어서 어떻게든 밀라노에 꼭 한번 가보야겠다고 별렀지만 여러 가지 다른 일정들에 밀려 꿩 대신 닭이라고 밀라노 대신 세계관광기구UNWTO가 있는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한여름을 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나 스페인 모두 같은 라틴문화권이고 언어나 문화도 매우 흡사한 면이 있어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 됐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보니 마드리드는 밀라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우선 마드리드의 하늘과 공기가 밀라노의 칙칙한 분위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두 달여의 마드리드 체류 중 단 한 번의 비를 만났을 뿐으로 마드리드의 하늘은 여름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르렀다.
알프스 남부를 모두 품고 있고 있는 이탈리아와 같이 아름다운 자연과 산수를 기대했던 마드리드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삭막한 도시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마드리드라는 스페인어의 의미가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뜻이란다. 또 다른 라틴 나라인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경계인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스페인이나 북아프리카를 포함해 피레네산맥 남쪽 모두를 아프리카로 치부하기도 한단다. 그러고 보니 스페인 전역을 여행하면서 남부 아프리카의 사막과 흡사한 분위기를 계속 느끼게 된다.
그러나 아내와 내가 두 달 여를 묵은 마드리드 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포스엘로는 마드리드의 다른 구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시가 온통 그린으로 뒤덮여 있고 수백평 규모의 저택에는 대부분 정원 안에 수영장은 물론 테니스코트까지 갖추어 살고 있는 부촌이다. 마드리드의 세계관광기구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도 규모는 아담하지만 이곳 부촌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운 좋게도 후배 가족이 서울에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우리 아파트와 후배 집을 서로 바꾸어 이곳의 환상적인 주택에서 한여름을 지내게 되었다. 이곳에서 호의호식하던 아내와 나는 어느 날 아침 바르셀로나행 기차표를 알아보기 위해 마드리드 시내의 세계관광기구 근처에서 시내버스 27번에 탑승했다.
아토샤역 행 버스 안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매우 붐비고 있었다. 그러나 몇 정거장을 지나 도심을 비켜나자 버스 안은 비교적 한가로워 졌다.
그제 서야 내 모습을 살펴보니 배낭, 등산용 조끼, 모자, 선 그라스로 무장한 영락없는 여행자의 모습이다. 음~ 틀림없이 소매치기의 제물이겠구나 싶어 가끔 조끼 오른쪽 아래 주머니의 지갑을 더듬어 확인했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출근시간인데 별일 있을 라고. 버스가 붐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느 순간버스가 정류장에 다가서기 시작하자 버스 안이 소란스러워지면서 큰 가방을 멘 사람들에게 내가 버스의 한 구석으로 밀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타서 밀리나 싶었는데 다음 순간 아차 싶어 조끼 주머니를 더듬었었더니 아뿔싸! 이미 지갑이 없어진 뒤였다. 눈앞의 젊은 라틴계 아이들의 짓이 분명한데 이놈들의 멱살을 잡고 어찌해볼까 하는 사이 녀석들은 유유히 버스를 내려선다. 소매치기 일당의 양동작전에 그만 순식간에 당한 일이었다.
나름 여행전문가라고 자부한 내가 마드리드에서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다니! 그 유명한 이탈리아의 집시들이나 전 세계 어디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내가! 그러나 일을 당한 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붐비는 버스 안에서 지갑을 조끼 주머니에 넣고 있었으니 지갑을 내 준거나 다를 게 없는 행동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소매치기들의 천국이란다.
일을 당한 후 아내와 나는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버스를 내려 인근의 바에서 에스프레소 한잔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잃은 돈이 비교적 많지 않고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을 모두 털렸지만 다행히 여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래 마드리드에서 면역주사 한대 맞은 셈 치지 뭐. 불쌍한 라틴 친구들한테 자선사업 좀 한 셈 치고.
그러나 우리는 이후 면허증과 신용카드가 없어 렌터카조차 대여할 수 없었다. 하릴없이 스페인 여행을 기차와 버스에만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집에서 마드리드 시내의 외출도 한 두 시간에 한번 꼴로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서 지하철로 바꾸어 타는 번거로움을 매번 겪어야 했고. 그래서 우리는 웬만한 쇼핑도 동네의 쇼핑몰을 주로 이용했었다.
하루는 동네의 한 가게에 들러 물건 하나를 골라놓고는 가져온 돈이 부족한 것을 알고 소매치기 당한 얘길 했더니 그 가게 스페인 아주머니의 말이 걸작이다. ‘their acts are kinds of art.’ 마드리드 소매치기는 가히 예술가 수준이란다.
그래 나는 마드리드의 예술가에게 혼을 잠시 빼앗겼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