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존중의 성숙한 사회 / 2005 09 26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08
조회
283
https://www.gtn.co.kr/home/news/news_view.asp?news_seq=19179&s_key=%B4%D9%BE%E7%BC%BA%20%C1%B8%C1%DF%C0%C7%20%BC%BA%BC%F7%C7%D1%20%BB%E7%C8%B8


지난 봄, 세계신문인협회(WAN)총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한 창경궁 명전전에서의 만찬 행사로 인해 주최 언론기관은 물론 참가자 그리고 허가관청인 문화재청 등이 여론의 몰매를 맞은 바 있다. 작년엔 힘있는 검사들의 모임에 문화재청이 경회루에서 파티를 열게 해주어 여론의 질타를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 두 행사가 여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행사 장소가 보호, 보존되어야만 하는 문화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왕족과 귀족들의 전용 공간인 궁궐에서 감히 속인들에게 술 먹이고 담배 피우게 한 것은 예의범절과 법도에 어긋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이 두 이유보다는 힘있는 기관인 검사와 무소불위의 언론에게만 특혜를 베풀었다는 인식과 이에 따른 민초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여론을 들끓게 한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이런 행사를 허가한 이유가 참가자들이 특권층인 때문이 아니고 우리나라 고궁의 아름다움과 문화의 우수성을 참석한 유수 언론인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관광 당국으로서는 단 한 사람의 영향력 있는 언론인을 활용하기 위해 비행기 삯은 물론 체재비 일체까지를 부담하여 우리나라를 마케팅 해야 하는 입장이다.

하물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수백 명의 언론 CEO들이 자비로 서울까지 와 한자리에 모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다면 당국으로서는 오히려 직무유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이용해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참가자들에게 궁궐에서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은 박수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다만 목조건물인 명전전과 경회루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대접한 것이라든지, 문화재 안에서 담배를 피우게 한 것 등은 분명한 시행착오이다. 문화재를 적절히 활용은 하되 문화재 보호에 피해가 가는 방법은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유엔과학문화기구(UNESCO)가 지정한 역사ㆍ문화유산이나 천연보호자원인 동굴에서 국경일과 같은 경사에 외교관 등의 손님을 청해 파티를 베풀거나 콘서트를 여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접대 문화에 일반인들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주무 관청에서 이런 행사를 선별적으로 허가하는데 따른 부작용과 거부감이 훨씬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명전전·경회루의 사례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 여론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사안들이 많이 돌출되고 있다. 심지어는 국가기관이 자행한 불법도청과 관련하여 불법 도청된 내용의 공개 여부를 놓고 국민정서법이라는 기상천외의 신조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최근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 역시 부동산 소유자를 투기꾼으로만 몰아가고 있는데 문제의 핵심은 가진 자를 죄인 시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천정부지의 집값을 잡고 무주택자들이 집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을 마련해 주는데 있는 것이다. 건전한 노력으로 돈벌이 한 사람과 기업이 마녀사냥 식 여론에 의해 매도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정부에서는 돈이 투기가 아닌 투자가 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해주어야 하며, 여론도 돈 있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맞아죽을 각오로 쓴 친일 선언’을 출간해서 관심을 끌었던 가수 조영남이 민감한 시기에 독도 관련 발언으로 추락한 경우와 일본 극우 세력들의 일부 의견이나 행위에 의해 우리 여론과 언론이 일사 분란한 모습으로 들끓고 있는 것은 국익과 한일 양국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결코 이로울 수가 없다고 본다. 국적법과 관련해서도 한 가지 잣대만을 가지고 감정적인 여론몰이로 특정인을 매도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글로벌 시대에 결코 실리적인 일이 아니다.

글로벌 환경에서 다른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민감한 문제들에 관한 다양한 의견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분출되고 또 수렴될 수 있어야만 한다. < 박의서·안양대 교수 2005, 0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