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기기관 완행열차의 향수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2:03
조회
225
http://www.gtn.co.kr/readNews.asp?Num=48517

증기기관 완행열차의 향수

산업화 이전 세대에겐 간이역마다 서던 증기기관 완행열차에 대한 짙은 노스탤지어가 있다. 피난민 수송의 대명사이기도 했던 증기기관차는 이를 밀어낸 디젤기관차와 함께 이제는 추억의 한 구석에나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빠름이 최고의 가치인 초고속전동열차 시대인 요즈음 증기기관차는 철도박물관에서거나 관광상품으로 만 만나볼 수 있는 귀한 몸이 되었다. 관광상품 증기기관차는 오늘도 전남 곡성역과 가정역을 오가며 관광자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여행상품으로 사랑받고 있다.


신대륙 미국에서 일확천금을 노렸던 초기 이민자들은 황금의 보고로 알려진 서부로 진출하기 위해 대륙 횡단 열차를 개설했었다. 그러나 비행기가 북미 대륙 교통수단의 총아로 등장하면서 미 대륙 횡단열차의 대명사인 앰트랙(Amtrak)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신세나 진배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사라진 철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철도여행상품이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배 자체가 여행상품인 크루즈처럼 기차 자체를 여행상품으로 개발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가 대표적인 철도여행상품이자 효시다.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이동수단이라기보다는 먹고 자는 것은 물론 사교장까지 갖춘 초호화 열차다. 호화로운 실내장식과 우아한 분위기의 연출로 이 기차는 상품 출시 초부터 왕족과 사교계 명사들의 인기를 독점해 왔다. 런던과 파리, 베네치아를 연결하는 오리엔트 익스프레스는 다채로운 유럽의 도시 풍광과 아름다운 알프스 경관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게 큰 메리트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방콕을 연결하는 이스턴 오리엔탈 익스프레스와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프레토리아, 더반을 이어주는 초호화 블루 트레인 역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도 뉴델리에서 시작해 로열 라자스탄에서 끝나는 팔레스 온 휠은 인도 왕실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코틀랜드 왕립 열차인 로열 스코츠맨은 단 36명의 승객만을 태우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기차로 알려져 있다.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첼랴빈스크까지 운행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역시 모든 여행자들의 로망이다. 캐나다 록키산맥의 비경을 열흘 여 동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록키 마운티니어는 4백만 원이 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도 철도청이 철도공사로 전환되면서 다양한 철도여행상품을 출시해 여러 계층의 취향을 사로잡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와 디스코 대회가 여행 내내 이어지는 7080세대 향수  상품인 통통통 뮤직트레인. 아줌마와 신데렐라의 합성어인 줌마렐라. 상품가격이 250만원에 달하는 호텔식 숙박형 레일크루즈 해랑. 티켓 한 장으로 1주일 내내 철도여행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내일로. 와인인삼트레인. 팔도장터 농심체험 기차여행 등이 대표 상품이다.


특별히 증기기관차와 간이역은 나에겐 아련하고 가슴 저린 향수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십 여리 새벽길을 경부선 간이역까지 걸어서 개근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간이역에서 대전까지 다시 시간 반여의 완행열차를 타야하는 긴 통학 길이었다. 간이역까지는 큰 냇물 건너 고개를 두 개나 넘는 지루한 길이었지만 홍수 지거나 눈보라쳐도 기차를 놓쳐본 적이 없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아궁이 새벽밥 지어놓고 깨워주시던 어머니 덕분이었다. 이토록 희생만 하신 분이지만 계모라는 이유만으로 정 한번 살뜰히 나누어 보지 못한 채 세상 버리신지 십수년. 세월 탓일까. 그 메말랐던 정이 오늘따라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