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로망과 혁명가 체 게바라
모터사이클 로망과 혁명가 체 게바라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의 작은 시골마을 라이게라에 있는 한 시골 학교 교실에서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는 정보요원의 총살로 짧지만 굵게 산 39년 혁명가의 생애를 극적으로 마감한다. 사르트르가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완벽한 인간이라며 극찬했던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에서 과테말라까지의 남미 전역, 쿠바에서 콩고까지의 혁명 지대, 그리고 볼리비아혁명까지를 누비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위해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며 투쟁해온 불세출의 혁명가다.
남미대륙에서는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아르헨티나에서 테니스, 골프, 체스를 즐기면서 유복하게 성장한 체 게바라는 그러나 천식으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체 게바라의 부모는 아들의 천식 치료에 도움을 주기위해 아르헨티나의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건조한 기후의 안데스산맥 지역인 코르도바에 잠시 정착한다. 체 게바라가 유년시절을 보낸 알타 그라시아라는 마을은 코르도바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는 아름답고 조용한 동네다. 오래된 수도원과 평온한 호수가 있어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분위기의 알타 그라시아의 아벨라네다 거리는 수수하고 조용한 곳이다. 세를 얻어 살았다는 이 거리의 체 게바라 집은 이웃에 비해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중산층 주택이다. 어찌 이런 배경과 환경에서 체 게바라와 같은 반항적 혁명가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체 게바라가 친구와 같이 감행했던 남미 종단 여행의 영향이다. 아쉬울 것 없이 자란 평범한 시민 체 게바라가 자신의 이념과 사상에 따라 투쟁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바로 이 여행을 통해 다져진 그의 강한 의지와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체 게바라는 1951년 다섯 살이나 나이가 위인 친구 알베르토와 함께 배기량 500cc 짜리 중고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구입해 남미 전역을 8개월간에 걸쳐 여행한다. 체 게바라는 이 여행을 통해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인디오들의 비참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겪으면서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여 동참하게 된다. 이 여정은 나중에 ‘오토바이 남미 여행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되고 후에 이를 원전으로 한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가 제작되어 개봉된 것은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1953년 의학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을 졸업한 체 게바라는 친구 카를로스와 함께 남미 여행을 다시 떠난다. 이 여정 중 혁명이 진행 중이던 볼리비아를 여행하면서 그때까지 억압받으며 살아오던 인디오가 해방되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살고 있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 후 체 게바라는 페루, 에콰도르, 파나마,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를 거쳐 사회주의 정권의 과테말라에 도착하게 된다.
과테말라의 좌파 정권은 미국의 다국적 회사가 소유한 경작지를 인디오와 빈농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을 추진하지만 미국은 정보기관을 동원해 이를 무산시키고 만다. 이를 체험한 체 게바라는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혁명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고 제국주의 침략자들에게 남미 전체가 하나로 뭉쳐 싸워야 한다면서 이후 혁명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된다.
미국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우파 정부에 반대 운동을 전개하던 체 게바라는 멕시코로 망명하여 이곳에서 카스트로와 만나 쿠바와 세계 혁명을 이룩하자며 의기투합하게 된다. 이후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체 게바라는 이에 안주하지 않고 콩고와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투쟁하다가 결국 볼리비아의 작은 마을에서 혁명가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여러 가지 동기와 이유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의 결과는 체 게바라의 경우처럼 인생의 항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놓는 경우가 허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