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바오 효과
빌바오 효과
통계상 스페인은 세계 최대 관광객 유치국이다. 역사유적, 문화유산 그리고 환상적인 날씨가 지구촌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 나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다. 세계에서 여행을 가장 많이 하는 유럽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위치도 한 몫 하고 있다. 이러한 매력에 더하여 스페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축이다. 가우디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바르셀로나로 이끄는 가장 큰 유인(誘因)이다.
스페인 건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또 있다. 바로 피레네산맥 근처 인구 35만의 작은 도시 빌바오다. 이 도시의 상징은 은색의 티타늄을 번득이며 솟아있는 거대한 물고기 형상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특이한 모습의 이 구겐하임 미술관은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네르비온강 주변의 빌바오를 환상적으로 연출하고 있는 핵심 코드다. 그러나 구겐하임 미술관이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빌바오는 1980년대까지 이 도시의 주력 산업이던 철강업과 조선업이 붕괴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세계 경제위기와 아시아 신생 산업국의 저가 공략으로 경쟁력을 잃게 된 때문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83년에 이도시를 강타한 700여 년만의 대홍수는 네르비온강을 범람시키며 빌바오 도심을 폐허로 만들었다. 8만여 명의 주민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서 한 때 세계 최대를 자랑하던 네르비온 강가의 철강공장과 조선소는 절망의 상징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폐쇄된 공장의 암울한 잔해와 바스크지역 분리주의 단체의 테러가 빌바오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이러한 총체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퇴로를 모색하던 빌바오는 미국 구겐하임 재단의 유럽 구겐하임 미술관 설치 계획을 접하고 유치 신청을 하게 된다. 지역 언론과 시민들은 코카콜라와 햄버거 문화에의 종속이라며 유치계획을 매도했다. 구겐하임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1억3천3백만 유로라는 거금을 투자해야 했으니 시민과 언론의 저항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1억3천3백만 유로의 투자를 되갚기 위해서는 연간 4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계산이었으니 황폐한 산업도시로 전락한 빌바오의 시민들에게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시도로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겐하임은 빌바오에 유치된다. 예산부족과 문화종속이라는 반대를 극복하고 우여곡절의 유치경쟁에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따돌린 것이다. 미국 현대 미술의 유럽 전초기지를 마련하려던 구겐하임재단의 의도와 빌바오의 파격적인 유치조건이 맞아떨어진 때문이다.
1997년에 개장한 구겐하임 빌바오는 도시 재개발을 동시에 유발하여 폐쇄된 조선소와 철강공장을 회의장과 음악당으로 탈바꿈시켰으며 도심을 가로지르던 철로를 지하화 하는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장과 동시에 빌바오의 랜드마크가 된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이듬해 예상을 뒤엎고 관람객 136만 명을 동원하는 폭발적 인기를 모았다. 40만 명 유치도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를 깨끗이 날려 버린 것은 물론 크루즈까지 유치하게 되어 1억4천4백만 유로의 관광수입을 올리는 기적을 일구어 냈다. 엄청난 규모의 구겐하임 유치비용으로 시민과 언론의 저항을 불러왔던 빚을 단 한 해만에 되갚은 것이다.
경제위기와 자연재해가 겹쳐오면서 쇠퇴해 가던 산업 도시 빌바오는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세계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시민들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이후 문화가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를 일컬어 ‘빌바오 효과’ 또는 ‘컬쳐노믹스’라고 하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빌바오는 뉴욕, 홍콩, 서울 등의 세계 유수 도시가 도심 재개발을 위해 앞 다투어 벤치마킹하고 있는 모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