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5/사고무친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1:16
Views
127
사고무친
소년이 집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으레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가족관계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 떠난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어머니가 다시 들어왔느냐?”
“예. 계모가 계십니다.”
“ 저런!”
여자들인 경우는 아주 딱하다는 듯이 반응해온다. 계모에 관한 편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희 계모는 저희들에게 아주 잘 해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행이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소년의 생모는 소년이 열한 살 때 그것도 오랜 지병 끝에 돌아가셨으니, 그 어머니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소년에게는 어머니 마음이란 게 지금의 계모와 같은 것으로만 생각될 뿐이다.
소년에겐 어머니, 엄마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 전혀 없다. 소년이 이따금 친구들 집을 방문하게 되면 친구 모자 사이를 부럽게 바라볼 때가 많다. 그것도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무어라 야단하는 그 친구들이 어떤 때는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어쩌면 소년을 낳다가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소년에겐 미친 모습 이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게 혈육이 있나, 돈이 있나. 이렇게 살다가 내 한 몸 죽어지면 그만이지. 자식이고 영감이고 다 소용없어.”
소년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늘 푸념하면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모습의 계모가 전부다.
소년의 계모는 화장품 등을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던 방물장수 아줌마였다. 이 아주머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주머니는 소년이 살던 마을 한 집의 사랑방에 들어앉았고 아버지는 골방의 미친 여인 방 대신 이 사랑방을 출입하고 있었다. 얼마를 이렇게 지냈는지 모르지만, 이 방물장수 아주머니는 어느 날 소년 집 안방을 차지했다, 사랑방 연결의 골방에는 여전히 미친 여인이 밤낮없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주절거리고 있을 때였다. 과년한 두 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아주머니와 싸워댔다. 이런 꼬락서니를 두고 볼 수만 없던 소년 아버지는 스물을 갓 넘기자마자 두 딸을 차례로 출가시켜 버렸다.
이 아주머니는 소년에게 자신의 과거를 한번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38선 이북의 강원도가 고향이고 결혼해서 애도 둘이나 있었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여인은 호적도 없었다. 그러니 선거권을 포함해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런 여인을 위해 소년 아버지는 호적을 만들어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여인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계모는 모두를 상대로 투정하거나 짜증을 낸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이따금 동생 혹은 소년에게 훈계라고 언성을 높일 때면 도무지 어린애 장난하는 모습만 같아서 오히려 웃음을 참느라 무진 애를 쓰게 된다. 계모에게는 자식을 훈계할 진심이 없거나 아니면 훈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계모에겐 그런 감정이 애초부터 부여되어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신 계모에겐 투정이나 짜증만 있을 뿐이다. 오로지 자신 하나만을 위한 짜증이고 투정이다. 자신이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잘 자지 못하면 못 자는 대로, 오직 투정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모든 게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일에 대해 일일이 참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식이고 아내라고 하더라도 빈틈만 있으면 하는 그 참견이 달가울 리 만무하다.
방학 때마다 소년 집에 와서 지내던 소년의 고종사촌 형이 왔다. 소년은 고종사촌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계모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상은아, 너 외숙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소년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한번 생각해 봐라. 그분이 불쌍하지도 않니? 너희들만 믿고 사는 분인데.”
나중에 청주에서 고등학교 교장까지 지낸 고종사촌 형의 말이 이어졌다. 소년은 비록 하지 않던 어머니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계모를 적절히 예우해주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소년은 계모에게 정신적으로 보답하지는 못하지만. 물질적으로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모가 또 앓는 소리를 하니 얼굴도 보기 싫어졌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이렇게 물어보기도 싫다. 싫기는커녕 이런 때는 아예 계모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계모가 아버지와 말다툼 하더니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계모가 측은하다. 아버지와 다툰 계모는 집을 나갔다. 지나온 일은 어찌어찌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다. 지금은 한가한 철이니까 그렇지. 앞으로 가을 농번기가 닥치면 아버지의 걱정이 더 많아지리라. 그리고 밥은 누가 해줄 것이란 말인가.
‘아! 계모는 왜 집을 나갔을까? 시련을 조금만 참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 계모가 집을 나가니 소년도 불편하고 계모도 어려울 게 아닌가. 그렇다. 어떻게든지 계모를 다시 찾아 모셔 와야 한다. 어떻게든지 찾아내야 한다. 소년은 자신의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누가 이 텅 빈 가슴을 채워 줄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져 온다. 누굴 의지하고 살아갈 것이며 당장 돈 한 푼을 누구한테 타 써야 한단 말인가. 병환의 소년 아버지도 마음 둘 곳이 없는지 자리에서 누었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큰일 날 판이다.
계모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고민 고민하던 소년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계모가 아마도 부강의 외가를 들러 청주 이모네 집을 다녀 온 것으로 추측했다. 집을 아주 나갔다면 모를까 계모에게는 이밖에 달리 다녀올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가와 이모 집은 물론 소년 생모의 혈연들이다.
일요일 아침상이 평소에 비해 호화판이다. 호화판이라야 미역국에, 김치찌개, 김구이 등이었지만. 이상하다 싶어 마침 친정에 와있던 누나에게 생질 생일이냐고 물었더니 계모 생신이란다. 물론 이 아침상은 누나가 차린 것이었다.
‘오늘 생신이라고요?!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소년은 입안에서 맴돌던 이 말을 삼켜버렸다. 누나까지 와 있으니 이런 말을 내뱉기가 더욱 쑥스러웠다. 소년은 결국 이날 저녁때까지 끝내 생신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두 누나와 형의 영향으로 소년은 이 여인을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두 누나와 형 그리고 소년 그 누구도 이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친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두 누나들도 출가해 나가면서 이 여인은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었고 좋건 싫건 남은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이 여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학교 갈 때 도시락 챙겨주고, 아침밥도 지어주고. 이런 게 모두 이 여인의 몫이었다. 집에 남은 삼 형제는 여전히 이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있었지만, 계모로는 여기게 되었다. 어쨌거나 형제들의 새벽밥을 지어주기 위해 새벽잠을 수년간 설쳐야 했고, 십여 년 넘게 병치레하던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 준 것도 이 여인이기 때문이다.
근래 와서 계모의 근심과 걱정이 더욱더 커진 것 같다. 이따금, 통곡도 하고, 신세타령도 더 자주 한다.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한 모양이다.
‘매일, 매일 누굴 위하여 새벽밥을 짓고 무엇을 위하여 뜨거운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일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쓰디쓸 뿐이다.
‘자식들은 나를 학대하고 남편은 나를 미워하고.’
그래서 한없이, 한없이 울고 싶어진 게고, 한없이 한없이 슬픈 게다. 며칠 전, 밥해주는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말이 밥해주러 왔다지만 허리가 “ㄱ”자이고 백발이 성성하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다. 그래도 그런 분이라도 좋다고 받아들인 계모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어느 날, 철이 들어 청년이 되면서 계모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해 보니 이 여인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다. 이 분 슬하에 자식 하나라도 있었다면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였는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온 이후로 계모는 임신도 해본 적이 없었다.
청년은 계모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장래를 위해 버림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위한다는 것은 천지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계모는 여전히 불쌍하다. 인간으로서 계모도 나름 할 일을 다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남의 자식을 자기 친자식처럼 대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이런저런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청년은 여전히 계모를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청년은 이 담에 성공하면 물질적으로는 계모를 편안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 치마저고리를 해주고, 매일매일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더러 어머니라고 하란다면 그것만은 아마 못 할 겁니다. 저는 천애 고얀 놈입니다. 그러나 고얀 놈이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밤잠 못 주무시고 제게 새벽밥 지어주시어 고맙습니다.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십시오.‘
청년의 계모는 말년까지도 불운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에도 시골에 집과 꽤 넓은 텃밭 그리고 논도 몇 마지기가 남아 있었지만, 이걸 포기하고 서울의 형네와 합쳐 살겠다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시골 재산 모두 팔아 형네로 넘겨주고 합쳤지만, 형수와 끝내 화합하지 못하고 다시 낙향하여 어느 날 갑자기 지병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침 해외에 주재 근무 중이던 장년은 계모의 임종마저도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계모는 어머니 흉내에, 장년은 아들 흉내로 자신들을 평생 속여 왔는지도 모른다.
소년이 집을 떠나 낯선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으레 마주하는 질문이 있다. 바로 가족관계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 떠난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레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어머니가 다시 들어왔느냐?”
“예. 계모가 계십니다.”
“ 저런!”
여자들인 경우는 아주 딱하다는 듯이 반응해온다. 계모에 관한 편견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희 계모는 저희들에게 아주 잘 해주고 계십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다행이라고 한마디 덧붙인다.
소년의 생모는 소년이 열한 살 때 그것도 오랜 지병 끝에 돌아가셨으니, 그 어머니가 어떤 마음의 소유자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소년에게는 어머니 마음이란 게 지금의 계모와 같은 것으로만 생각될 뿐이다.
소년에겐 어머니, 엄마에 대한 따스한 기억이 전혀 없다. 소년이 이따금 친구들 집을 방문하게 되면 친구 모자 사이를 부럽게 바라볼 때가 많다. 그것도 눈시울이 뜨거울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고 어머니에게 무어라 야단하는 그 친구들이 어떤 때는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어쩌면 소년을 낳다가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소년에겐 미친 모습 이외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내게 혈육이 있나, 돈이 있나. 이렇게 살다가 내 한 몸 죽어지면 그만이지. 자식이고 영감이고 다 소용없어.”
소년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늘 푸념하면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 모습의 계모가 전부다.
소년의 계모는 화장품 등을 머리에 이고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던 방물장수 아줌마였다. 이 아주머니는 당시로서는 드물게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아주머니는 소년이 살던 마을 한 집의 사랑방에 들어앉았고 아버지는 골방의 미친 여인 방 대신 이 사랑방을 출입하고 있었다. 얼마를 이렇게 지냈는지 모르지만, 이 방물장수 아주머니는 어느 날 소년 집 안방을 차지했다, 사랑방 연결의 골방에는 여전히 미친 여인이 밤낮없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주절거리고 있을 때였다. 과년한 두 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아주머니와 싸워댔다. 이런 꼬락서니를 두고 볼 수만 없던 소년 아버지는 스물을 갓 넘기자마자 두 딸을 차례로 출가시켜 버렸다.
이 아주머니는 소년에게 자신의 과거를 한번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38선 이북의 강원도가 고향이고 결혼해서 애도 둘이나 있었는데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잃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여인은 호적도 없었다. 그러니 선거권을 포함해 아무런 권리도 행사할 수 없었다. 이런 여인을 위해 소년 아버지는 호적을 만들어주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이 여인에 관해서는 남아 있는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계모는 모두를 상대로 투정하거나 짜증을 낸다. 매우 드문 일이지만 이따금 동생 혹은 소년에게 훈계라고 언성을 높일 때면 도무지 어린애 장난하는 모습만 같아서 오히려 웃음을 참느라 무진 애를 쓰게 된다. 계모에게는 자식을 훈계할 진심이 없거나 아니면 훈계에 익숙하지 않은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계모에겐 그런 감정이 애초부터 부여되어 있지 않은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대신 계모에겐 투정이나 짜증만 있을 뿐이다. 오로지 자신 하나만을 위한 짜증이고 투정이다. 자신이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잘 자지 못하면 못 자는 대로, 오직 투정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스스로 거동하지 못하는 소년의 아버지는 모든 게 초조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일에 대해 일일이 참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자식이고 아내라고 하더라도 빈틈만 있으면 하는 그 참견이 달가울 리 만무하다.
방학 때마다 소년 집에 와서 지내던 소년의 고종사촌 형이 왔다. 소년은 고종사촌 형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마침내 계모에게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상은아, 너 외숙모를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소년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한번 생각해 봐라. 그분이 불쌍하지도 않니? 너희들만 믿고 사는 분인데.”
나중에 청주에서 고등학교 교장까지 지낸 고종사촌 형의 말이 이어졌다. 소년은 비록 하지 않던 어머니라는 말은 못 하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계모를 적절히 예우해주고 싶은 생각은 있었다. 소년은 계모에게 정신적으로 보답하지는 못하지만. 물질적으로는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모가 또 앓는 소리를 하니 얼굴도 보기 싫어졌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이렇게 물어보기도 싫다. 싫기는커녕 이런 때는 아예 계모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침에 계모가 아버지와 말다툼 하더니 결국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계모가 측은하다. 아버지와 다툰 계모는 집을 나갔다. 지나온 일은 어찌어찌해서 여기까지 왔으니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다. 지금은 한가한 철이니까 그렇지. 앞으로 가을 농번기가 닥치면 아버지의 걱정이 더 많아지리라. 그리고 밥은 누가 해줄 것이란 말인가.
‘아! 계모는 왜 집을 나갔을까? 시련을 조금만 참아 주었으면 좋으련만.’
아, 계모가 집을 나가니 소년도 불편하고 계모도 어려울 게 아닌가. 그렇다. 어떻게든지 계모를 다시 찾아 모셔 와야 한다. 어떻게든지 찾아내야 한다. 소년은 자신의 텅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누가 이 텅 빈 가슴을 채워 줄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져 온다. 누굴 의지하고 살아갈 것이며 당장 돈 한 푼을 누구한테 타 써야 한단 말인가. 병환의 소년 아버지도 마음 둘 곳이 없는지 자리에서 누었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자칫 큰일 날 판이다.
계모가 마침내 집으로 돌아왔다. 고민 고민하던 소년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일이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계모가 아마도 부강의 외가를 들러 청주 이모네 집을 다녀 온 것으로 추측했다. 집을 아주 나갔다면 모를까 계모에게는 이밖에 달리 다녀올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가와 이모 집은 물론 소년 생모의 혈연들이다.
일요일 아침상이 평소에 비해 호화판이다. 호화판이라야 미역국에, 김치찌개, 김구이 등이었지만. 이상하다 싶어 마침 친정에 와있던 누나에게 생질 생일이냐고 물었더니 계모 생신이란다. 물론 이 아침상은 누나가 차린 것이었다.
‘오늘 생신이라고요?!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소년은 입안에서 맴돌던 이 말을 삼켜버렸다. 누나까지 와 있으니 이런 말을 내뱉기가 더욱 쑥스러웠다. 소년은 결국 이날 저녁때까지 끝내 생신에 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두 누나와 형의 영향으로 소년은 이 여인을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았다. 두 누나와 형 그리고 소년 그 누구도 이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친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두 누나들도 출가해 나가면서 이 여인은 집안 살림을 도맡게 되었고 좋건 싫건 남은 가족들은 자연스럽게 이 여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학교 갈 때 도시락 챙겨주고, 아침밥도 지어주고. 이런 게 모두 이 여인의 몫이었다. 집에 남은 삼 형제는 여전히 이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고 있었지만, 계모로는 여기게 되었다. 어쨌거나 형제들의 새벽밥을 지어주기 위해 새벽잠을 수년간 설쳐야 했고, 십여 년 넘게 병치레하던 아버지 뒷바라지를 해 준 것도 이 여인이기 때문이다.
근래 와서 계모의 근심과 걱정이 더욱더 커진 것 같다. 이따금, 통곡도 하고, 신세타령도 더 자주 한다.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한심하기만 한 모양이다.
‘매일, 매일 누굴 위하여 새벽밥을 짓고 무엇을 위하여 뜨거운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피고 있단 말인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힌 일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쓰디쓸 뿐이다.
‘자식들은 나를 학대하고 남편은 나를 미워하고.’
그래서 한없이, 한없이 울고 싶어진 게고, 한없이 한없이 슬픈 게다. 며칠 전, 밥해주는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말이 밥해주러 왔다지만 허리가 “ㄱ”자이고 백발이 성성하다.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다. 그래도 그런 분이라도 좋다고 받아들인 계모의 심정을 짐작할 만하다.
어느 날, 철이 들어 청년이 되면서 계모 입장에서 모든 걸 생각해 보니 이 여인은 불쌍하기 짝이 없는 분이었다. 이 분 슬하에 자식 하나라도 있었다면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였는지 몰라도 아버지에게 온 이후로 계모는 임신도 해본 적이 없었다.
청년은 계모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로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자신의 장래를 위해 버림받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식을 위한다는 것은 천지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계모는 여전히 불쌍하다. 인간으로서 계모도 나름 할 일을 다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남의 자식을 자기 친자식처럼 대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리라. 이런저런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청년은 여전히 계모를 어머니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청년은 이 담에 성공하면 물질적으로는 계모를 편안히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단 치마저고리를 해주고, 매일매일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더러 어머니라고 하란다면 그것만은 아마 못 할 겁니다. 저는 천애 고얀 놈입니다. 그러나 고얀 놈이라고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밤잠 못 주무시고 제게 새벽밥 지어주시어 고맙습니다. 부디 건강히 오래오래 사십시오.‘
청년의 계모는 말년까지도 불운했다.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에도 시골에 집과 꽤 넓은 텃밭 그리고 논도 몇 마지기가 남아 있었지만, 이걸 포기하고 서울의 형네와 합쳐 살겠다고 나선 것이 화근이었다. 시골 재산 모두 팔아 형네로 넘겨주고 합쳤지만, 형수와 끝내 화합하지 못하고 다시 낙향하여 어느 날 갑자기 지병인 천식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마침 해외에 주재 근무 중이던 장년은 계모의 임종마저도 지켜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계모는 어머니 흉내에, 장년은 아들 흉내로 자신들을 평생 속여 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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