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참회록]꿈꾸는 노마드 11/신발과 자전거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1:09
Views
106
신발과 자전거

소년의 국민학교 시절 옷차림은 아래위 까만 광목 교복에 코 묻은 손수건을 가슴에 붙이고 고동색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었다. 이후 옷차림은 세월 따라 바뀌었지만, 신발 벗고 교실에 들어가는 문화는 지금이나 그때나 변함이 없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두고 교실에 들어가야 하니, 신발이 없어지거나 바뀌는 일이 허다했다.

하루는 소년이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신고 다니던 고무신이 없었다. 당황한 소년은 신발장의 신발 하나를 골라 신고 학교를 나섰다.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운도 따라주지 않아 소년 자신의 신발은 찾지 못한 데 반해 본인이 신고 온 신발 주인은 바로 나타나서 망신 끝에 신발을 돌려주어야만 했다. 아마도 누군가 소년의 신발은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소년이 중학생 때도 수업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신발장에 가보니 신발이 없었다. 소년은 누가 신발을 신고 화장실에 갔거니 하고 신발장을 한번 훑어보고 나서 교실로 들어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갈 때까지 신발이 발견되지 않아 소년은 결국 현관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발에 맞지도 않는 큰 신발을 끌고서 집으로 돌아 왔다.

다음 날 아침, 학급조례 시간이었는데 학교 대대장 학생이 출입문 뒤에 서 있었다. 소년은 그를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그가 소년을 불러 세웠다.

“너 어제 내 신발 신고 갔니?”

아주 부드러운 음성이다.

”네. 신고 갔습니다.“

“이거야?”

그가 소년이 어제 신고 갔던 신발장의 신발을 가리킨다.

“그렇습니다.”

“너 어제 신발 잃어버렸니?”

“네.”

“내가 저걸 어제 얼마나 찾았다고.”

여전히 부드러운 말씨다. 어제 이 대대장 선배는 주번으로서 청소심사를 왔다가 신발을 현관에 벗어놓고 움직였던 모양이다. 소년은 이 대대장 선배의 너그러운 마음과 높은 인격에 크게 감동했다. 만약 같은 일을 소년이 당했다면 상대를 향해 펄펄 뛰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공기가 감돈다. 가을 날씨가 완연하다. 체육 시간에 땡볕 아래서 운동해도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다. 십 여리 넘게 학교를 걸어 다니는 소년은 자전거 통학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학교에 가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배가 고파오고, 다리가 제멋대로 놀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년이 통학하기 위해 하루에 걷는 시간은 왕복 150분이 넘는다. 그러나 소년은 자전거 사달라는 소리를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다.

“나 팔아서 자전거 사거라.”

소년이 언젠가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을 때 소년 아버지가 한 대꾸였다. 소년은 그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리가 아프단 말도 하기 싫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여전히 자전거 생각이 간절해 오는 것이다.

자전거만 사준다면 공부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돈이 무엇이라고 모든 것이 뜻대로 되어주질 않는다. 그래서 소년은 돈이 가장 싫다. 돈이라는 것은 소년 마음대로 움직여 주질 않기 때문이다. 요사이는 신입생이 입학해서 학교생활이 재미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재미는커녕 짜증이 나기도 한다. 왜냐고? 소년 같은 2학년은 자전거가 없는데, 일학년 신입생 꼬마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때문이다. 소년은 요놈들을 보면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기도 하고 자전거를 빼앗아 타보고 싶은 심정이 일기도 했다.

이러던 어느 날, 소년 아버지는 마침내 동네 이웃이 17년이나 타던 중고 자전거를 사주었다. 소년은 뛸 듯이 기뻤다. 그러나 이 기쁨은 잠시였다. 빌어먹을 놈의 자전거를 산후 걱정이 많아진 것이다. 수리비 자꾸 들어가지. 태워달라는 친구들에게 욕먹지. 그래서 인심, 신용 모두 잃어버릴 처지가 된 것이다. 젠장, 자전거 때문에 친구들과의 우의가 상할 염려만 커졌다.

”자식 소용없다.“

소년은 아버지의 푸념을 마음에 새기면서 모든 행동을 한다. 자식 소용없다는 의미는 아버지에게 자식들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 이를테면 돈이나 쓰고 벌어들이지도 못하면서 가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사주었지만, 소년은 아버지 잔소리는 듣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적으로 좀 평온하게 해줄 수는 없을까.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던 것도 집에만 오면 공부는커녕 짜증만 난다. 소년은 아버지와 함께 즐겁게 웃어본 기억이 없다. 잘한 일이 있어도 칭찬은 그만두고라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가 없다. 대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사정없이 꾸중이다. 이런 아버지가 툭하면 자식 소용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소년은 뇌까렸다.

‘나도 아버지가 소용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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