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19/공업고등전문학교 5년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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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공업고등전문학교

사회에 진출한 청년은 출신 고등학교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출신 고등학교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설 분야에서는 청년이 졸업한 학교는 나름 명문으로 알려져 있고 동문 네트워크도 그만큼 막강했다. 그러나 당시 전공인 토목과 전혀 다른 분야로 튀어나온 청년을 알아주는 사람은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청년은 출신 고등학교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대충 얼버무리기 일쑤다.

청년은 정규 고등학교 과정이 아닌 5년제 공업고등전문학교를 졸업했다. 박정희 정권이 공업고등학교를 개편해 만든 이 교육과정은 당시 수요가 팽창한 산업 인력을 배출하기 위해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육성한 국립학교였다. 그래서 취업도 잘 되어 당시 가난하지만 우수한 시골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시험도 고교입시가 아니라 대학입시와 동시에 치루어진 특차 전형이었다.

청년은 이 학교에서 5년 동안 공부하면서 불평과 불만만 가득했다. 가장 큰 불만은 학교 시스템과 교수들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점도 있었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청년의 가정 사정으로서는 수업료가 매우 쌌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금만 노력하면 그 수업료까지 모두 면제받을 수 있었고 실제로 청년은 대부분의 수업료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공업고등전문학교라는 제도 자체가 매우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들인 얼치기 선생들만 적은 노동과 많은 봉급으로 덕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교수는 일본어 교재를 번역한 자신의 프린트를 수업 내내 읽어 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청년 재학 중, 문교부가 이 학교를 2년제 초급대학으로 개편하는 안을 발표하자 재학생들은 격렬한 반대 농성에 들어갔다. 일부 학생들은 전학과 검정고시를 택했다. 당시 재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는 2년제 초급대학으로 개편되었다가 이후 산업대를 거쳐 결국 4년제 정규 국립대로 개편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청년과 같이 5년을 공부한 후 건설 분야에 진출한 마흔 명의 동기생들은 대부분 기술사, 건설사 임원, 대학교수와 기술직 고위 공무원 등으로 맹활약하게 된다. 그만큼 당시 가난했지만 우수한 인재들이 이 학교에 많이 몰려들었다는 의미다. 물론 이들 대부분은 주경야독으로 정규 4년제 대학의 편입을 거쳐 박사학위까지 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문과 취향의 청년에게 이과는 애당초 잘 못 끼워진 첫 단추에 불과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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