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23/간 큰 남자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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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간 큰 남자

 

겨울 끝자락이지만 여전히 매서운 바람이 머물던 2월 어느 날 청년은 서울 명동의 한 지하 다방에서 맞선을 봤다. 여러 차례의 중매 끝에 성사된 자리였다. 청년은 프랑스 파리로 발령받은 직장 선배가 송별 턱으로 낸 충무로의 한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은 후, 헐레벌떡 약속 장소로 뛰어갔다.

먼저 결혼한 동생 장모가 중매인이었지만 맞선 장소에는 뜻밖에도 할머니들이 여럿 진을 치고 있었다. 중매 당사자인 안사돈, 신부 측 어머니, 그리고 그 두 할머니의 친구들이었다. 물론 신부 자리도 함께 하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할머니들은 마산에서 방귀깨나 뀌는 할머니들이었다. 이들 장부 스타일 할머니들 사이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신부 재목이 오렌지색 자켓을 입은 채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반면에 신부 옆에 앉은 장모 재목은 왠지 차가운 느낌의 대가 쎈 모습이었다. 어머니 정을 모르고 자란 청년에겐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신부는 결혼해도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했다. 어머니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자란 청년에게 나쁜 조건은 아니었지만, 기왕이면 따뜻한 모습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쨌거나 이날 맞선을 본 청년은 며칠 후 청혼했고 신부도 동의해서 관행대로 신부 측이 결혼 날자를 잡기로 했다. 신부 측은 맞선 본지 한 달 후 정확히 얘기하면 33일 후인 5월 초 결혼식 날자를 잡았고 결혼은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모아놓은 돈도, 부모에게 물려받을 재산도 없던 청년은 신부가 살고 있던 서울 잠실의 15평 아파트에 입주하기로 한 결혼이었다. 살림살이를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신부 측 결혼 조건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일도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었다.

항구도시 마산에서 양조장, 소금 도소매, 목욕탕 등을 운영하면서 부유하게 살아가던 신부 가족은 신부가 중학교 다닐 때 아버지가 폐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자, 세간을 모두 정리하여 출가한 큰딸이 사는 서울로 이사했다. 서울의 큰 딸네도 볼트와 넛트를 생산하는 작지 않은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넉넉한 집안이었다. 신부 집도 마산 재산을 정리한 돈으로 휘경동에 집 한 채를 사고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현금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덕분에 신부는 아무 불편 없이 대학까지 마치고 서울의 한 외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맞선 자리의 다소 차가운 인상과는 달리 장모는 매우 감성적이었다. 게다가 80년대 초로서는 매우 드물게 신심이 매우 깊어 매일 아침 정한수 떠 놓고 하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표현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청년에 대한 배려도 매우 세심했다. 청년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위가 젓가락을 대지 않는 반찬들은 두 번 다시 식탁에 올리는 일이 없었다. 청년으로서는 평생 처음 받아 보는 관심과 대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혼 초 청년은 처가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저녁마다 일찍 귀가하지 않고 겉돌기 일쑤였는데 이런 줄도 모르던 신혼 아내는 저녁마다 버스 정류장에 나가 신랑을 기다리다가 쓸쓸히 그리고 허전하게 돌아서야만 했다.

장모의 치성 덕분인지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청년은 회사 비서실로 발탁되었다. 수행업무를 포함한 비서실 근무는 매우 고달픈 것이었지만 청년은 이 비서실 근무 덕분에 이후 동료 모두의 선망인 뉴욕지사로 발령받게 된다.

청년은 국내에 혼자 남게 될 장모를 배려해 뉴욕까지 동반했다. 배려라고는 하지만 뉴욕에서 청년이 야간에 공부를 계속하게 되면서 아내도 변호사 사무실에 자리를 얻어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야만 했다. 그래서 집안 살림과 두 손녀딸 뒷바라지는 오롯이 장모 몫이 되었다. 그러니 장모를 모셨다기보다는 장모 그늘에서 살았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뉴욕에서도 정한수 기도를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하던 장모는 그러나 어느 날 딸의 귄고를 받아들여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이후 장모는 세상 뜰 때까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살아갔다.

청년의 고단한 생활도 결혼을 기점으로 순탄한 길을 걷게 된다. 청년은 이 모두가 장모 기도와 아내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흔한 말로 청년은 장가를 잘 간 셈이었다.

그러나 아내는 본인 잣대로 남편이 잘못했다고 판단하면 늘 남편부터 나무랐다. 그리고 남편과 갈등이 생기면 평생 고집을 꺾기는커녕 가출도 불사했다. 그리고 아내에겐 믿고 있는 하느님이 최우선이었으며 남편과 자식들은 그다음 순위였는데 늘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남편은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심한 자괴감에 빠져들곤 했다.

은퇴 후, 늙은이 부부가 같이 즐기는 파크 골프 경기에 출전했을 때의 일이다. 앞서가던 비 매너 플레이어와 말다툼이 생겨 경기 도중 서로 크게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이때도 아내는 역시 남편을 쌈닭이라고 하면서 또 나무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심판을 보던 한 여인이 자신은 정의롭게 화내는 사람이 좋다며 편을 들어오자 이에 감격한 늙은이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마누라 바꿔!”

뜻하지 않은 이 말에 마누라 반응이 험악해지자 늙은이는 사태를 황급히 수습했다.

“마누라를 내 편으로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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