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25/안나와 쥬세페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31
Views
109
안나와 쥬세페
장년의 마지막 해외근무지인 밀라노는 4세기 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가톨릭 교부의 한 분인 암부로시오 성인의 레전드를 품고 있는 도시다. 밀라노는 주교좌인 두오모 대성당을 중심으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아름다운 도시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회색으로 바랜 이 도시의 대리석 건물들이 늦가을 짙은 안개와 어우러질 때 장년은 두오모 거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의 깊은 향에 취해 나락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곤 했다. 밀라노는 패션 도시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패션쇼, 가구 전시회, 그리고 스칼라 좌의 오페라가 일 년 내내 세계 곳곳의 온갖 멋쟁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장년이 그 문을 열고 근무를 시작한 밀라노사무소는 명칭만 밀라노사무소였지 밀라노를 베이스로 하여 이탈리아반도, 스위스, 터키, 그리스, 발칸반도 그리고 중동지역까지의 광대한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장년은 우스갯소리로 스스로 로마 황제를 자임하면서 일했다.
밀라노사무실 개소 후 장년이 주관한 첫 번째 큰 행사는 인근 도시 베네치아의 한국 미술관 개설이었다. 이름하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설로 마침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국제 미술 전시회가 처음으로 한국관을 열어주기로 한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었던 장년은 현지 통역을 구해야만 했다. 베네치아에는 마침 건축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와 있었다. 비엔날레 한국관을 신축하는 일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서울 명문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 여자 대학원생은 매우 사교적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건축이 발달해 건축학 역시 매우 발달해 있었고 그중에서도 베네치아의 건축은 알아주고 있었다.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로 결혼까지 해 서울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같이 일하던 이 대학원생 부부는 선진 건축을 더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고 남편이 먼저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그런데 6개월 후, 남편을 만나기 위해 베네치아로 온 젊은 대학원생은 기막힌 상황과 마주한다. 불과 반년 전에 먼저 출발한 젊은 남편이 금발 눈부신 이탈리아 여자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 젊은 건축가는 밝은 모습으로 이 모진 삶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나중에 서울시 프로젝트와 연결되고 또 그 프로젝트에 장년의 절친이 깊이 간여하게 되면서 서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교류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남편을 채간 이 금발의 이탈리아 여인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면서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남자들을 매우 선호해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다른 서양 여자들 보다는 휠씬 그 수가 많은 게 현실이다. 아내에겐 차마 밝히지 못했지만 장년에게도 밀라노 유수 호텔의 판촉부장이던 프란체스카라는 미모의 이혼녀가 장년의 이혼을 전제로 청혼을 해와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일도 있었다. 이 여인과는 일종의 학습 투어인 방한 팸투어 그룹에 참여시켜 한국을 다녀오게 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같은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공유하는 문화와 정서가 굉장히 많다. 예를 들면 마음껏 떠들며 밤새 먹고 마시는 음주가무 문화가 대표적이다. 다른 서양 사람들은 잘 먹지않는 동물의 내장을 잘 요리해 먹는 것도 우리와 유사해서 이탈리아에서는 우리 음식을 따로 챙겨먹지 않아도 몇 달을 견딜 수 있을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또한 시니어들을 예우하는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어 한 집안에서 노부모와 손자 손녀들이 함께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타 서양 사람들과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특별히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장년은 미국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거의 없는데 반해 이탈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안나와 쥬세페 부부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회의 참석을 위해 장년 부부와 사르데냐섬에 같이 동반했던 이 부부는 이후 밀라노의 자기 아파트로의 초대는 물론 전원의 별장에까지 장년 부부를 초대하며 환대를 이어갔다.
귀국 후 장년은 이 부부를 한국으로 초대해 집에서 묵게 하고 싶었으나 부부가 묵을 만한 규모의 아파트가 아니라서 몇 해를 미루다가 기회가 닿아 방문을 초대했더니 남편 쥬세페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고 안나 역시 장거리 여행을 감내할 건강 조건이 아니라면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해 매우 아쉬웠었다.
장년의 마지막 해외근무지인 밀라노는 4세기 초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가톨릭 교부의 한 분인 암부로시오 성인의 레전드를 품고 있는 도시다. 밀라노는 주교좌인 두오모 대성당을 중심으로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아름다운 도시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회색으로 바랜 이 도시의 대리석 건물들이 늦가을 짙은 안개와 어우러질 때 장년은 두오모 거리 카페에서 에스프레소의 깊은 향에 취해 나락을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곤 했다. 밀라노는 패션 도시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패션쇼, 가구 전시회, 그리고 스칼라 좌의 오페라가 일 년 내내 세계 곳곳의 온갖 멋쟁이들을 유혹하고 있는 매력이 넘치는 도시이기도 하다.
장년이 그 문을 열고 근무를 시작한 밀라노사무소는 명칭만 밀라노사무소였지 밀라노를 베이스로 하여 이탈리아반도, 스위스, 터키, 그리스, 발칸반도 그리고 중동지역까지의 광대한 지역을 관할구역으로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로마제국에 버금가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장년은 우스갯소리로 스스로 로마 황제를 자임하면서 일했다.
밀라노사무실 개소 후 장년이 주관한 첫 번째 큰 행사는 인근 도시 베네치아의 한국 미술관 개설이었다. 이름하여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설로 마침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이 국제 미술 전시회가 처음으로 한국관을 열어주기로 한 때문이었다.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었던 장년은 현지 통역을 구해야만 했다. 베네치아에는 마침 건축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이 와 있었다. 비엔날레 한국관을 신축하는 일이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었다. 서울 명문 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이 여자 대학원생은 매우 사교적이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일찍이 건축이 발달해 건축학 역시 매우 발달해 있었고 그중에서도 베네치아의 건축은 알아주고 있었다. 같은 대학의 캠퍼스 커플로 결혼까지 해 서울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같이 일하던 이 대학원생 부부는 선진 건축을 더 공부하기 위해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고 남편이 먼저 베네치아에 상륙했다.
그런데 6개월 후, 남편을 만나기 위해 베네치아로 온 젊은 대학원생은 기막힌 상황과 마주한다. 불과 반년 전에 먼저 출발한 젊은 남편이 금발 눈부신 이탈리아 여자와 동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이 젊은 건축가는 밝은 모습으로 이 모진 삶을 감내하고 있었다.
이 여인은 나중에 서울시 프로젝트와 연결되고 또 그 프로젝트에 장년의 절친이 깊이 간여하게 되면서 서울과 이탈리아를 오가며 교류를 이어가기도 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남편을 채간 이 금발의 이탈리아 여인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면서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맹활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탈리아 여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남자들을 매우 선호해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다른 서양 여자들 보다는 휠씬 그 수가 많은 게 현실이다. 아내에겐 차마 밝히지 못했지만 장년에게도 밀라노 유수 호텔의 판촉부장이던 프란체스카라는 미모의 이혼녀가 장년의 이혼을 전제로 청혼을 해와 매우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한 일도 있었다. 이 여인과는 일종의 학습 투어인 방한 팸투어 그룹에 참여시켜 한국을 다녀오게 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같은 반도 국가인 이탈리아와 우리나라는 공유하는 문화와 정서가 굉장히 많다. 예를 들면 마음껏 떠들며 밤새 먹고 마시는 음주가무 문화가 대표적이다. 다른 서양 사람들은 잘 먹지않는 동물의 내장을 잘 요리해 먹는 것도 우리와 유사해서 이탈리아에서는 우리 음식을 따로 챙겨먹지 않아도 몇 달을 견딜 수 있을 정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또한 시니어들을 예우하는 생활문화를 가지고 있어 한 집안에서 노부모와 손자 손녀들이 함께 사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타 서양 사람들과 다른 이탈리아 사람들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을 특별히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오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장년은 미국 가정에 초대받은 적이 거의 없는데 반해 이탈리아에서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안나와 쥬세페 부부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회의 참석을 위해 장년 부부와 사르데냐섬에 같이 동반했던 이 부부는 이후 밀라노의 자기 아파트로의 초대는 물론 전원의 별장에까지 장년 부부를 초대하며 환대를 이어갔다.
귀국 후 장년은 이 부부를 한국으로 초대해 집에서 묵게 하고 싶었으나 부부가 묵을 만한 규모의 아파트가 아니라서 몇 해를 미루다가 기회가 닿아 방문을 초대했더니 남편 쥬세페는 이미 세상을 뜬 뒤였고 안나 역시 장거리 여행을 감내할 건강 조건이 아니라면서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해 매우 아쉬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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