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26/여인들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28
Views
130
여인들
그날 청년과 친구들은 갑사에서 동학사로 계룡산을 넘어오던 길에 청주교대생들과 동행했었다. 청년 일행은 그 여학생들과 동행했던 탓으로 갑사에서 해 먹기로 했던 점심마저 포기하고 동학사로 아무 어려움도 없이 다시 넘어왔다. 계룡산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여대생 일행은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청년은 그 여대생들과 함께라면 같은 고개를 두어 번이라도 더 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청년의 사실상 첫 직장 사무실에 어느 날 미모의 여직원이 입사했다. 이 여직원은 미모도 미모였지만 귀티를 풍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직원은 중견기업 창업주이자 국회의원이기도 한 부잣집 딸이었다. 일본 유학도 다녀와서 정숙한 일본 여인의 분위기도 넘쳐흘렀다. 이 모든 조건과 모습은 청년과는 매우 대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년은 그림의 떡처럼 이 여인을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은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류를 이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혼까지 논의했던 두 사람은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각각 다른 짝을 만나 헤어졌다. 그러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더 오래오래 남는 법이다.
청년의 첫 해외근무지는 구성원 모두의 로망이었던 뉴욕이었다. 뉴욕 근무는 청년의 로망이기도 했지만, 늘 목말라했던 청년의 학구열을 채워줄 수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청년은 뉴욕에 자리 잡자마자 야간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야간과정이라서 대부분 다른 학생들 역시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그것 또한 좋은 조건이었다. 나름의 학연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한때 한국 여학생도 등록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청년이 등록했을 때는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으로 옮겨 석사학위를 마치고 당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의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교통과 관광을 전공하고 있던 청년으로서는 사례연구를 위해 매우 소중한 네트워크가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미국 생활은 외견처럼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딸까지 두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가 호모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혼에 이르게 되었고 이 여인은 이후 홀로 지냈다. 이 여인은 나중에 뉴욕시립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후 관련 업계에서 상당 기간 활동을 이어갔다.
장년을 무척 따르던 후배가 있었다. 이 후배는 장년에게 정말 살갑게 굴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무조건 장년 편이었다. 장년도 이런 후배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년도 이 후배를 공사 간에 적극적으로 챙겨주었다. 이 후배는 장년의 밀라노 근무지까지 휴가차 와서 장년 집에서 며칠 묵고 가기도 했다. 한때 장년이 동료에게 향한 유탄에 맞아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직장 내 선후배들 대부분이 장년 곁을 떠났지만, 이 후배만은 끝까지 곁을 지켜주었었다. 그래서 장년도 이 후배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후배가 상사로서 장년을 따르는 게 아니라 호모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이 후배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장년과 팔장끼기를 좋아했고 여성스럽게 다가온 적이 많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년은 섬뜩해졌다. 따르는 후배가 많지 않아 끝까지 챙겨주고 싶었던 후배를 이런 이유로 손절할 수밖에 없었던 장년은 이후 심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그날 청년과 친구들은 갑사에서 동학사로 계룡산을 넘어오던 길에 청주교대생들과 동행했었다. 청년 일행은 그 여학생들과 동행했던 탓으로 갑사에서 해 먹기로 했던 점심마저 포기하고 동학사로 아무 어려움도 없이 다시 넘어왔다. 계룡산 고갯마루에 올라섰을 때 여대생 일행은 녹초가 되어있었지만, 청년은 그 여대생들과 함께라면 같은 고개를 두어 번이라도 더 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청년의 사실상 첫 직장 사무실에 어느 날 미모의 여직원이 입사했다. 이 여직원은 미모도 미모였지만 귀티를 풍기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여직원은 중견기업 창업주이자 국회의원이기도 한 부잣집 딸이었다. 일본 유학도 다녀와서 정숙한 일본 여인의 분위기도 넘쳐흘렀다. 이 모든 조건과 모습은 청년과는 매우 대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청년은 그림의 떡처럼 이 여인을 대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은 서로의 관심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류를 이어갔지만, 시간이 갈수록 둘 사이의 차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혼까지 논의했던 두 사람은 그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각각 다른 짝을 만나 헤어졌다. 그러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더 오래오래 남는 법이다.
청년의 첫 해외근무지는 구성원 모두의 로망이었던 뉴욕이었다. 뉴욕 근무는 청년의 로망이기도 했지만, 늘 목말라했던 청년의 학구열을 채워줄 수 있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청년은 뉴욕에 자리 잡자마자 야간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야간과정이라서 대부분 다른 학생들 역시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그것 또한 좋은 조건이었다. 나름의 학연으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는 한때 한국 여학생도 등록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청년이 등록했을 때는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콜롬비아 대학으로 옮겨 석사학위를 마치고 당시 미국 최대 항공사였던 팬암의 부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교통과 관광을 전공하고 있던 청년으로서는 사례연구를 위해 매우 소중한 네트워크가 생긴 셈이었다.
그러나 이 여인의 미국 생활은 외견처럼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사람을 만나 결혼해서 딸까지 두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가 호모였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이혼에 이르게 되었고 이 여인은 이후 홀로 지냈다. 이 여인은 나중에 뉴욕시립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후 관련 업계에서 상당 기간 활동을 이어갔다.
장년을 무척 따르던 후배가 있었다. 이 후배는 장년에게 정말 살갑게 굴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무조건 장년 편이었다. 장년도 이런 후배를 좋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장년도 이 후배를 공사 간에 적극적으로 챙겨주었다. 이 후배는 장년의 밀라노 근무지까지 휴가차 와서 장년 집에서 며칠 묵고 가기도 했다. 한때 장년이 동료에게 향한 유탄에 맞아 어려움을 겪게 되자 직장 내 선후배들 대부분이 장년 곁을 떠났지만, 이 후배만은 끝까지 곁을 지켜주었었다. 그래서 장년도 이 후배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켜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후배가 상사로서 장년을 따르는 게 아니라 호모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이 후배는 기회가 될 때마다 장년과 팔장끼기를 좋아했고 여성스럽게 다가온 적이 많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장년은 섬뜩해졌다. 따르는 후배가 많지 않아 끝까지 챙겨주고 싶었던 후배를 이런 이유로 손절할 수밖에 없었던 장년은 이후 심한 자괴감으로 괴로워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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