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27/귀환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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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소골. 충청도 조치원 인근의 조그마한 산골 마을로 소년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소골에서 작은 고개 두 개를 넘고 큰 내를 건너서 십여 리 길을 걸어가면 경부선 간이역 전동全東에 닿는데 소년은 국민학교 시절을 면 소재지이기도 한 이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보냈다. 중학교는 전동과는 다른 방향으로 시오리 거리에 있는 조치원읍으로 다닌 소년은 고등학교와 대학과정의 절반을 대전에서 마친 후 공무원이 되어 서울로 올라왔다. 군 생활과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하며 야학으로 나머지 대학공부를 계속하던 청년은 대한민국의 관광 매력을 해외에 홍보하는 국영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청년은 이후 지구촌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욕과 세계적인 패션 도시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주재 근무를 했다. 심심 산골, 소골 촌놈이 면, 읍, 시, 특별시를 거쳐 뉴욕과 유럽에까지 차례로 진출하였으니 출세의 의미가 세상에 나아감이라면 나름 크게 출세한 셈인 것이다.

소년이 태어나 자란 소골은 사방이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정겨운 산골이다. 어려서 이곳에 살 때는 군郡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서 군가郡歌의 가사에도 나오는 오봉산이 동네 앞을 가로막고 있어 제법 큰 산 밑에 살고 있는 줄만 알고 지냈었다. 그런데 출세 이후 서울의 북한산, 도봉산과 유럽의 알프스 산자락에서 살다가 고향에 돌아와 보니 오봉산은 그저 고향의 푸근함을 안겨주는 품 안의 야산에 불과했다. 그러나 어쩌다 돌아가 보는 소골은, 산천은 옛 모습이지만 같이 지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가 더 이상 정붙일 수 있는 고향 마을이 아니었다.

장년이 애착을 가지고 살았던 곳은, 태어나 자란 소골도 아니고, 제2의 고향이라고 할 만큼 왕성하게 활동했던 뉴욕도 아니며, 패션과 오페라의 도시 밀라노도 아닌 서울의 동쪽 끝에 조용히 숨겨진 마을, 둔촌동이다. 세계의 화려한 도시에서 주재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올 때마다 장년의 가슴은 둔촌동에 안기는 푸근함으로 늘 설레어 왔다. 둔촌동 역시 몇 년씩 자리를 비우다 돌아오는 장년을 늘 정겨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둔촌동遁村洞은 서울이지만 이름에서 풍기는 대로 숨겨진 시골 마을이다. 고려말에 학문과 덕이 높고 절의節義를 굽히지 않아 삼은三隱으로 불리던 포은圃隱 정몽주, 목은牧隱 이색, 도은陶隱 이숭인과 함께 사은四隱으로 칭송되던 묵은墨隱 이집李集이 공민왕에게 당시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던 신돈을 탄핵하였다가 이를 알고 노발대발한 신돈의 토살령으로 목숨을 위협받게 된다. 둔촌동은 이집이 이곳 일자산 자락에 토굴을 파고 피신해 있었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혼 초부터 둔촌동의 시골스런 풍경에 이끌려 이곳에서 살기 시작한 장년은 이곳의 소박한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어 이 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둔촌동은 그린벨트인 일자산을 끼고 경기도 하남시와 이웃해 있고 단지 자체가 구릉지대에 위치한 지형을 그대로 살려 조성된 데다가 남쪽으로는 올림픽 공원과 연결되어 있어 자연환경이 잘 보전된 주거지다. 구릉의 원래 모습과 선형을 살려 꾸며진 주택단지는 마치 고향 마을 같아 푸근함을 안겨주고 있다. 단지와 그린벨트를 연결하는 수풀에는 서울에서는 드물게 자연 늪지가 보존되어 있어 장마철이면 개구리, 맹꽁이 울음소리가 그치질 않아 어릴 적 고향 마을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고 있는 고향 아닌,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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