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참회록]꿈꾸는 노마드 31/무녀에게 휘둘리다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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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에게 휘둘리다

수직. 수평 사회를 다 겪어본 장년에게 대학의 가장 큰 매력은 6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안식년이었다. 더욱이 미국 등 서양 대학들은 대부분 안식년 동안 급여를 지불 하지 않는 데 반해 우리 대학은 거의 100% 봉급도 지급하는 안식이니 꿩 먹고 알 먹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장년은 안식년을 활용해 가보지 못했던 남미와 아프리카 여행도 하고 각각의 여행에 관한 여행기도 쓸 수 있었다.

장년의 안식년 기간 백미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UN 관광기구에서 일하고 있던 후배와 주거를 스와핑swapping해서 지낸 일이다. 마침 세계관광기구UNWTOworld tourim organization에서 근무 중인 후배 가족 자녀의 방학 중 서울 주거와 안식년 기간 중이던 교수의 여행 욕구가 딱 맞아떨어져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 후배는 교수가 전 직장에서 아끼던 직원 중 한 사람이었다.

이 후배가 살고 있던 마드리드 교외의 우메라라는 주택단지는 매우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 마드리드 주재 외국 대사관원이나 스페인 부자들이 몰려 사는 부촌이었다. 교수의 후배는 정원에 수영장까지 갖춰진 이 전원 단지의 아름다운 집을 빌려 살고 있었다. 두 달간의 짧은 생활이긴 했지만, 교수 부부는 이 집을 베이스로 하여 이베리아반도는 물론 카나리아 제도 그리고 프랑스 남부까지를 여행할 수 있었다.

특히 이때 여행한 북아프리카 연안, 까나리아군도canary islands의 란사로테lanzarote섬은 가보지도 않은 곳이면서 장년이 여러 글과 강연에서 섬 관광지 개발과 연출의 모범 사례로 자주 들먹이던 곳이었다. 란사로테는 마드리드에서 2시간 반 정도의 비행거리에 있는 섬으로서 세사르 만리케cesar manriche라는 화가가 섬을 지속 가능하게 개발, 관리하는 캠페인을 벌여 유명해진 곳이다. 추상주의 화가와 설치미술가로 알려진 만리케는 뉴욕과 마드리드에서 활동한 예술가로서 말년에는 란사로테에 정착하여 섬의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그의 여생을 바쳤다. 만리케에 의해 건물 크기, 색상, 높이 등이 자연 친화적으로 개발된 섬은 그의 예술적 감각까지 더해져 이후 세계적 관광지와 휴양지로 발돋움하게 된다. 특히 만리케가 살았던 섬의 중 산간 지대 저택은 마치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벗하며 살았던 것을 연상시키는데, 만리케 특유의 미술적 감각까지 더해져 우리 조상들보다 한 수 위로 평가될 수도 있는 곳이다.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는 법. 서울에서 잘 지내던 후배 가족은 사용하던 장년의 집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자 장년의 사전 양해도 없이 컴퓨터를 초기화해서 저장된 장년의 자료를 모두 날려버렸다. 물론 일부 자료가 노트북에 옮겨져 있긴 했지만, 장년으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 일로 서로 불쾌하게 된 장년과 후배는 이후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는 몹시 불편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안식년 말미에 장년에게 주어진 학장 보직은 재단과 혈연관계인 총장에 의해서 좌우되고 있었다. 재직 대학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자 장년에게도 학장 보직이 주어졌다. 그것도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분교 캠퍼스의 장을 겸하는 자리였다. 이를테면 학사와 교무행정을 모두 관장하는 미국의 단위 캠퍼스 책임자인 ‘챈슬러’Chancellor와 같은 보직이었다.

그러나 교수의 학장 보직은 영광스러운 자리만은 아니었다. 재단의 실세이기도 했던 젊고 잘 생긴 총장이 무녀로 알려진 한 여인에게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되었든 조직이 되었든 무속과 비선에 의해 그 운영이 좌우되면 그 조직은 끝장나게 마련이다. 대학 행정에 이 여인이 깊숙이 관여하게 되면서 내키지는 않았지만, 총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무녀도 같이 섬겨야만 했던 장년은 끝내 교수협의회 편을 들게 되면서 학장 보직에서 해임된다. 젊고 잘 생긴 총장 역시 결국 이 무녀로 알려진 여인 때문에 총장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철밥통인 교수직까지 내놓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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