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노마드 37/사랑말 탐진치貪瞋癡 세트
Author
박 의서
Date
2025-08-25 10:14
Views
128
사랑말 탐진치貪瞋癡 세트
귀향과 귀촌은 은퇴자의 꿈이자 로망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으니 특히 고향 떠나온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장년은 나이 사십 중반에 접어들고 마침 해외 발령을 받게 되면서 귀향의 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운다. 살고 있던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이면 고향에 천여 평이 넘는 토지를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년의 꿈은 고향 산자락의 적당한 땅을 사 조상들의 산소도 한 곳으로 모으고 아담한 집을 지은 후 노후를 거기서 보내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도 가꾸면서 인근의 청주, 대전, 천안, 공주 소재 대학에서 강의도 하며 소일하는 것은 장년의 다른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8월에 해외로 발령을 받자마자 고향의 사촌 형에게 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촌은 나온 매물이 없어 땅을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 땅은 농한기에 집중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다가 시골은 물론 조치원읍 내에도 제대로 된 부동산중개소가 없을 때였다. 땅을 같이 보러 다니던 장년의 누나가 이런 사정을 알고 그렇다면 읍내의 적당한 땅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고 해서 읍내의 조그만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엔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 사람의 농지 취득이 금지되어 있어 소위 명의신탁인 누나 이름으로 땅을 구입해야 했다. 그러나 장년이 밀라노 근무 4년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 땅은 이미 경매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다. 명의신탁해준 땅 부자, 누나의 소행이었다. 누나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몰래 한 일이라서 전혀 모른 일이라고 발뺌했지만, 핑계에 불과한 일이었다. 기가 막힌 상황을 맞이한 장년은 누나와 절연하는 것으로 이 일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귀향의 다음 기회는 조상 땅 찾기로 찾아왔다. 고향에서 좀 떨어진 곳이긴 하나 충북 괴산에 조상 명의의 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은 접근로가 없는 맹지라서 그 가치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땅 위치가 냇가이고 산속에 폭 들어가 있는 조용한 입지라 장년은 이곳에 흙을 채우는 한편 냇가로 임시 도로를 내 농막을 가져다 놓고 애지중지 관리했다.
그러나 맹지는 주위 토지 소유자들에 의해서 그 입장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일단 차도는 물론 인도 사용이 불가했고 이로 인해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늙은이는 직장을 은퇴하면서 춘천의 새로 지은 전원주택을 구입해 입주했다. 사랑말이라는 이름도 정겨운 마을로서, 햇볕 잘 들고 전망이 탁 트인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라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더구나 춘천은 늙은이의 두 딸이 이미 정착하고 있는 곳이라서 금상첨화였다.
늙은이의 전원생활 중 늘 참새가 무리 지어 아침을 깨웠는데 하루는 이웃에서 얘들을 잡겠다고 그물을 쳐 놓은 뒤 하루아침에 참새떼가 모두 자취를 감췄다.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가치관이 다른 시골 이웃과 다투기 싫어 늙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전에 통골 마을에 농막 지어 주말농장 삼아 잠시 왕래할 때는 이웃 할머니가 끈끈이로 다람쥐를 잡아 씨를 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늙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녀석들이 햇볕에 말리고 있는 이웃 농산물을 모두 먹어치운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양지바른 애향, 사랑말에 둥지를 튼 후 늙은이는 이웃들과 한동안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의 터무니없는 탐욕 때문에 이 평화가 순식간에 깨졌다. 전원 단지 내 자기 집 앞 도로를 주차장으로 무단 점용해 사용하는 것까지는 눈감아 줄만 했는데 개발업자 명의의 이 도로 소유권을 이전해 가겠다고 나서더니 어느 날 이웃 아무도 모르게 도로를 폐지하고 자기 집 대지와 합병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로 몇 차례 전원의 이웃과 갈등을 겪은 아픈 경험이 있어 사소한 일에는 끝까지 감내하려던 늙은이의 인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이웃의 젊은 부부 교사가 도로 지정을 해제하고 자기 집 대지로 합병해 간 이 열 평짜리 도로는 부부 교사 집으로의 진입로이지만 늙은이 차량의 후진에도 필수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단지 내 택배 차량이나 방문 차량의 회전용 도로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목도 도로인데다 그 용도가 도로로 지정된 그야말로 단지 내 공용도로다.
이웃이 마침 부부 교사라 대화가 될 상대라서 도로 합병 시도의 부당함을 직접 얘기했건만 개발업자와 결탁하여 도로의 소유권을 이전해 간 후 공익을 폐하고 사익을 챙긴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도 사표가 되어야 할 젊은 교사 부부의 이 같은 사욕 추구 행태에 대해서 늙은이는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았다. 더더욱 기가 찰 일은 공익을 우선해야 할 행정 당국마저 이에 동조해 기왕에 지정된 도로를 해제하여 사익을 우선으로 챙겨준 일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담당 공무원은 이 도로의 전후 사정이나 현장 상황도 살피지 않은 채 도로폐지 신청 이틀 만에 도로를 폐지하고 고시해주는 초특급 서비스까지 베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를 해제해주면서 건축법의 도로 해제 관련 조항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도로 허가 관련 조항을 적용하여 해제해주는 터무니없는 절차적 불법까지 저질렀다. 해제 관련 조항을 적용하면 이해 당사자인 늙은이와 다른 이웃들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했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기 위한 불법이자 꼼수 행정이었다.
춘천시 부시장까지 지낸 늙은이의 국민학교 동창은 이 도로상황을 처음 접하면서 공무원 모가지 열 개가 있어도 부족하겠다고 그 불법성을 단언했었다. 그런데 막상 불법 행위가 이루어지자 관련 공무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서 뒤로 숨어버렸다. 지역사회 공무원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고향 동창 하나 보호하려다 지역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것보다는 지역사회에서의 보신을 먼저 챙긴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 작은 전원 단지 빈 터에 새집을 짓고 두 이웃이 함께 입주했다.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건만 단지와 조화롭게 집을 지은 건너편 이웃과 달리 늙은이의 앞집은 늙은이 집 거실 앞에 위압적인 지붕을 올렸다. 집을 짓기 전에 2층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다락방만 올린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늙은이 집도 아담한 다락방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락방이라고 주장하는 앞집 건물은 웬만한 2층 규모의 높이로서 늙은이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웃은 법대로 지은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이웃 간의 정은 법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법은 냉정함이고 이웃은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원 단지 중앙에 최대한 건물을 끌어 올린 이 이웃은 여유롭지 않은 공간의 늙은이 집 앞으로 출입문을 낸 후 저온창고까지 내달았다. 소음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몰염치한 처사였다. 그래서 앞집과 방음벽을 치겠다고 했더니 이게 시비가 되어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은 이 다툼에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시기에 이사 들어온 옆집이 앞집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건만 이제 막 이사 들어온 이웃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니 새로 입주한 이웃들과의 좋은 관계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좋은 이웃은 집값에 덤을 얹어 산다고 했고, 좋은 이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것 역시 늙은이도 모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웃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양보 없이 내 욕심부터 챙기니 손을 내밀어 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지바르고 전망 탁월한 사랑말은 탐욕스러운貪 자, 화 내는瞋 자, 어리석은癡 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갈등과 미움만 가득 찬 살기 불편한 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름도 정겨운 사랑말은 춘천 박씨 시조인 박 항이 사랑채를 짓고 살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박 항은 이웃 주민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 주민들 역시 수백 미터 떨어진 예후고개(여우고개)서 부터 이분께 예를 갖추고 지냈다는, 전설조차 미담인 마을이다. 그러나 늙은이의 이웃은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먼저 챙기고, 늙은이 역시 이에 대한 분노로 소중한 이웃을 놓치고 있으니 이 어찌 딱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늙은이의 은퇴 전, 통골이라는 마을에 농막 지어 놓고 왕래할 때의 얘기다.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긴 했지만, 대부분 시골 사람들과는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세월은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도 같이 덮쳐 흘렀으니 시골 사람들에게만 순박함과 순수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은 여전히 이웃 간 정이 넘치고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 통골에 이십여 년 전부터 들어와 살던 도시 사람이 있었다. 이 도시 사람은 통골 사람들과 십여 년 넘게 잘 지내오다가 어느 겨울 운전 중 동네 빙판길에서 이웃과 접촉사고를 내게 되었다. 이후 이 도시 사람은 시골 이웃들과 불편해지면서 남남처럼 지내게 되었다. 통골 왕래하면서, 나름 경우가 밝은 동네 이장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늙은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이웃과 잘 지내오다가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랑말에서 늙은이가 이와 유사한 경우를 겪으면서 통골 도시 사람 입장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터놓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시골이라고는 하나, 이웃과 불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이웃과 잘 지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금상첨화 대신 금상만으로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골 생활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이웃 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집을 짓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이웃을 피해 돌아앉아 있는 환경도 좋다. 불편한 이웃과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예 이사 나가는 것도 대안의 하나겠지만 이사 가는 곳이라고 해서 이웃과 편안하게 지내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늙은이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은 이웃을 투명인간 대하듯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불교나 유교적으로 보면 이웃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소위 중도나 중용을 현실에서 구현해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수행에 가까운 생활일 수도 있겠지만 중생 모두가 불성을 가지고 있고 또 중생 모두의 행복 추구가 부처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입장에서 보면, 수행은 꼭 출가하여 절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집에서 이웃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지낼 수만 있다면 바로 재가在家 수행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늙은이의 화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웃’이다.
귀향과 귀촌은 은퇴자의 꿈이자 로망이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했으니 특히 고향 떠나온 사람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장년은 나이 사십 중반에 접어들고 마침 해외 발령을 받게 되면서 귀향의 꿈을 실현할 계획을 세운다. 살고 있던 서울의 아파트 전세금이면 고향에 천여 평이 넘는 토지를 사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년의 꿈은 고향 산자락의 적당한 땅을 사 조상들의 산소도 한 곳으로 모으고 아담한 집을 지은 후 노후를 거기서 보내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도 가꾸면서 인근의 청주, 대전, 천안, 공주 소재 대학에서 강의도 하며 소일하는 것은 장년의 다른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8월에 해외로 발령을 받자마자 고향의 사촌 형에게 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사촌은 나온 매물이 없어 땅을 살 수가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당시만 해도 시골 땅은 농한기에 집중적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다가 시골은 물론 조치원읍 내에도 제대로 된 부동산중개소가 없을 때였다. 땅을 같이 보러 다니던 장년의 누나가 이런 사정을 알고 그렇다면 읍내의 적당한 땅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고 해서 읍내의 조그만 땅을 구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엔 농사를 짓지 않는 도시 사람의 농지 취득이 금지되어 있어 소위 명의신탁인 누나 이름으로 땅을 구입해야 했다. 그러나 장년이 밀라노 근무 4년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이 땅은 이미 경매를 거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 있었다. 명의신탁해준 땅 부자, 누나의 소행이었다. 누나는 자신의 막내아들이 몰래 한 일이라서 전혀 모른 일이라고 발뺌했지만, 핑계에 불과한 일이었다. 기가 막힌 상황을 맞이한 장년은 누나와 절연하는 것으로 이 일을 마음에서 지워버렸다.
귀향의 다음 기회는 조상 땅 찾기로 찾아왔다. 고향에서 좀 떨어진 곳이긴 하나 충북 괴산에 조상 명의의 땅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은 접근로가 없는 맹지라서 그 가치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그래도 땅 위치가 냇가이고 산속에 폭 들어가 있는 조용한 입지라 장년은 이곳에 흙을 채우는 한편 냇가로 임시 도로를 내 농막을 가져다 놓고 애지중지 관리했다.
그러나 맹지는 주위 토지 소유자들에 의해서 그 입장이 좌지우지되고 있었다. 일단 차도는 물론 인도 사용이 불가했고 이로 인해 온갖 설움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래서 늙은이는 직장을 은퇴하면서 춘천의 새로 지은 전원주택을 구입해 입주했다. 사랑말이라는 이름도 정겨운 마을로서, 햇볕 잘 들고 전망이 탁 트인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라 마음에 쏙 드는 곳이었다. 더구나 춘천은 늙은이의 두 딸이 이미 정착하고 있는 곳이라서 금상첨화였다.
늙은이의 전원생활 중 늘 참새가 무리 지어 아침을 깨웠는데 하루는 이웃에서 얘들을 잡겠다고 그물을 쳐 놓은 뒤 하루아침에 참새떼가 모두 자취를 감췄다. 기가 찰 노릇이었지만 가치관이 다른 시골 이웃과 다투기 싫어 늙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전에 통골 마을에 농막 지어 주말농장 삼아 잠시 왕래할 때는 이웃 할머니가 끈끈이로 다람쥐를 잡아 씨를 말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시 늙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녀석들이 햇볕에 말리고 있는 이웃 농산물을 모두 먹어치운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양지바른 애향, 사랑말에 둥지를 튼 후 늙은이는 이웃들과 한동안 잘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웃의 터무니없는 탐욕 때문에 이 평화가 순식간에 깨졌다. 전원 단지 내 자기 집 앞 도로를 주차장으로 무단 점용해 사용하는 것까지는 눈감아 줄만 했는데 개발업자 명의의 이 도로 소유권을 이전해 가겠다고 나서더니 어느 날 이웃 아무도 모르게 도로를 폐지하고 자기 집 대지와 합병해가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로 몇 차례 전원의 이웃과 갈등을 겪은 아픈 경험이 있어 사소한 일에는 끝까지 감내하려던 늙은이의 인내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순간이었다.
이웃의 젊은 부부 교사가 도로 지정을 해제하고 자기 집 대지로 합병해 간 이 열 평짜리 도로는 부부 교사 집으로의 진입로이지만 늙은이 차량의 후진에도 필수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단지 내 택배 차량이나 방문 차량의 회전용 도로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목도 도로인데다 그 용도가 도로로 지정된 그야말로 단지 내 공용도로다.
이웃이 마침 부부 교사라 대화가 될 상대라서 도로 합병 시도의 부당함을 직접 얘기했건만 개발업자와 결탁하여 도로의 소유권을 이전해 간 후 공익을 폐하고 사익을 챙긴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도 사표가 되어야 할 젊은 교사 부부의 이 같은 사욕 추구 행태에 대해서 늙은이는 그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받았다. 더더욱 기가 찰 일은 공익을 우선해야 할 행정 당국마저 이에 동조해 기왕에 지정된 도로를 해제하여 사익을 우선으로 챙겨준 일이다.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담당 공무원은 이 도로의 전후 사정이나 현장 상황도 살피지 않은 채 도로폐지 신청 이틀 만에 도로를 폐지하고 고시해주는 초특급 서비스까지 베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로를 해제해주면서 건축법의 도로 해제 관련 조항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도로 허가 관련 조항을 적용하여 해제해주는 터무니없는 절차적 불법까지 저질렀다. 해제 관련 조항을 적용하면 이해 당사자인 늙은이와 다른 이웃들의 동의를 모두 얻어야 했기 때문에 이를 배척하기 위한 불법이자 꼼수 행정이었다.
춘천시 부시장까지 지낸 늙은이의 국민학교 동창은 이 도로상황을 처음 접하면서 공무원 모가지 열 개가 있어도 부족하겠다고 그 불법성을 단언했었다. 그런데 막상 불법 행위가 이루어지자 관련 공무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면서 뒤로 숨어버렸다. 지역사회 공무원 카르텔이 얼마나 견고한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고향 동창 하나 보호하려다 지역사회에서 왕따가 되는 것보다는 지역사회에서의 보신을 먼저 챙긴 것이다.
이런 일이 있은 후, 이 작은 전원 단지 빈 터에 새집을 짓고 두 이웃이 함께 입주했다. 당연히 환영해야 할 일이건만 단지와 조화롭게 집을 지은 건너편 이웃과 달리 늙은이의 앞집은 늙은이 집 거실 앞에 위압적인 지붕을 올렸다. 집을 짓기 전에 2층만 아니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더니 다락방만 올린다고 해서 안심했었다. 늙은이 집도 아담한 다락방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락방이라고 주장하는 앞집 건물은 웬만한 2층 규모의 높이로서 늙은이가 우려한 최악의 시나리오와 마주하게 된 셈이다. 이웃은 법대로 지은 것이라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이웃 간의 정은 법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법은 냉정함이고 이웃은 양보와 배려 그리고 상식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원 단지 중앙에 최대한 건물을 끌어 올린 이 이웃은 여유롭지 않은 공간의 늙은이 집 앞으로 출입문을 낸 후 저온창고까지 내달았다. 소음으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몰염치한 처사였다. 그래서 앞집과 방음벽을 치겠다고 했더니 이게 시비가 되어 말다툼이 크게 벌어졌다. 안타까운 일은 이 다툼에서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같은 시기에 이사 들어온 옆집이 앞집 편을 들고 나선 것이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고 했건만 이제 막 이사 들어온 이웃이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니 새로 입주한 이웃들과의 좋은 관계는 애초부터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좋은 이웃은 집값에 덤을 얹어 산다고 했고, 좋은 이웃을 기대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밀어 다가가는 게 도리라는 것 역시 늙은이도 모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웃이 상대에 대한 배려나 양보 없이 내 욕심부터 챙기니 손을 내밀어 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양지바르고 전망 탁월한 사랑말은 탐욕스러운貪 자, 화 내는瞋 자, 어리석은癡 자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갈등과 미움만 가득 찬 살기 불편한 마을로 전락해 버렸다.
그 이름도 정겨운 사랑말은 춘천 박씨 시조인 박 항이 사랑채를 짓고 살은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박 항은 이웃 주민들에게 덕을 많이 베풀어 주민들 역시 수백 미터 떨어진 예후고개(여우고개)서 부터 이분께 예를 갖추고 지냈다는, 전설조차 미담인 마을이다. 그러나 늙은이의 이웃은 눈앞의 사소한 이익을 먼저 챙기고, 늙은이 역시 이에 대한 분노로 소중한 이웃을 놓치고 있으니 이 어찌 딱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늙은이의 은퇴 전, 통골이라는 마을에 농막 지어 놓고 왕래할 때의 얘기다. 약간의 인내심이 필요하긴 했지만, 대부분 시골 사람들과는 잘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시골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은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세월은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도 같이 덮쳐 흘렀으니 시골 사람들에게만 순박함과 순수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골은 여전히 이웃 간 정이 넘치고 허물없이 터놓고 지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이 통골에 이십여 년 전부터 들어와 살던 도시 사람이 있었다. 이 도시 사람은 통골 사람들과 십여 년 넘게 잘 지내오다가 어느 겨울 운전 중 동네 빙판길에서 이웃과 접촉사고를 내게 되었다. 이후 이 도시 사람은 시골 이웃들과 불편해지면서 남남처럼 지내게 되었다. 통골 왕래하면서, 나름 경우가 밝은 동네 이장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늙은이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오랫동안 이웃과 잘 지내오다가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의아함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랑말에서 늙은이가 이와 유사한 경우를 겪으면서 통골 도시 사람 입장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터놓고 가깝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시골이라고는 하나, 이웃과 불편하게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이웃과 잘 지내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금상첨화 대신 금상만으로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골 생활은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이웃 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집을 짓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이웃을 피해 돌아앉아 있는 환경도 좋다. 불편한 이웃과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아예 이사 나가는 것도 대안의 하나겠지만 이사 가는 곳이라고 해서 이웃과 편안하게 지내리라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늙은이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것은 이웃을 투명인간 대하듯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불교나 유교적으로 보면 이웃을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말라는 소위 중도나 중용을 현실에서 구현해보는 일이다. 어찌 보면 수행에 가까운 생활일 수도 있겠지만 중생 모두가 불성을 가지고 있고 또 중생 모두의 행복 추구가 부처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입장에서 보면, 수행은 꼭 출가하여 절에서만 하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집에서 이웃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지낼 수만 있다면 바로 재가在家 수행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 늙은이의 화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이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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