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얼굴 내민 중국 호남성 2002 10 19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36
조회
227
https://www.gtn.co.kr/home/news/news_view.asp?news_seq=7846&s_key=%B9%DA%C0%C7%BC%AD%20%B1%B3%BC%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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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인근의 한 호텔에서 중국 여유국 한국 지국장 주최로 조찬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2002년 중국호남 여유제(HUNAN CHINA TOURISM FESTIVAL 2002)에 초청된 기자단과 중국 전문 판매 여행사 간부와 직원 몇 명이 함께 자리하였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설기평 지국장이 인사를 하면서 중국여행이 처음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란다. 한 잡지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 젊은 기자를 보면서 나는 속이 좀 켕겼다. 사실은 나도 이번 중국여행이 처음이었지만 여행업계에 20년 이상을 종사한 내가 가까이 있는 중국 한번 못 가보았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져 차마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설지국장은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가 될 장가계(張家界)는 거리 때문에 본인도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절경인데 우리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이 엄청난 행운이란다.
장가계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그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실은 처음 여행길이니 기왕이면 북경이나 상해 같은 곳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다음 날 저녁 해가 떨어진 직후 우리는 장사(長沙) 공항에 도착하였다. 장사에 오기 전 잠시 비행기를 바꾸어 탄 푸동공항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장사 공항은 국제선 공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시설은 물론 공항 공간이 넓고 쾌적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중국은 인프라가 형편없다던데.
이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호남성 여유국에서 우리 일행을 영접하러 온 여직원의 모습이었다. 비행기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공항에 늦게 나온 게 되어 ‘쏘리 쏘리’를 연발하던 이 아가씨의 모습이나 옷차림은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젊은 중국여인들과는 천지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훤칠한 키가 그렇고 또 웬 세련된 옷차림! 설지국장이 북경에서 너무 멀어 장가계 구경 한번 못했다고 해서 순 벽촌인 줄만 알았더니 우리가 자랑하는 인천공항 못지 않은 장사공항은 무엇이고 밀라노나 파리 패션의 옷차림이 분명한 저 중국 미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후 여행 일정 내내 우리를 동반한 이 장사 미인 황크(黃可)는 예의 그 세련된 패션과 매너 그리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들을수록 정감이 가는 달콤한 중국어 악센트로 우리 일행을 사로잡았다.
‘인물은 상강 변 초나라에서 나고 산수는 동정호 이남이다.’(人文湘楚 山水湖南) 장사시를 관통하는 상강(湘江)을 경계로 하여 오나라와 촉나라를 품어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였던 호남지역은 예로부터 황흥, 채악 등 걸출한 문인, 정치인, 군인 등의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모택동, 유소기. 호요방, 화국봉 등이 그렇고 현재 중국 국무원 총리인 주룽지 역시 호남성 사람이다.
장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여를 달리면 상담시가 나오고 이 상담시에는 소산이라는 조그만 촌락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60년대 10억 중국인들의 성지였던 모택동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불과 40km 떨어진 영향에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과 권력을 다투었던 유소기의 생가가 이웃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인물을 낼 때는 반드시 라이벌과 함께 내려 자웅을 겨루게 한 것이 인류사라고 했던가. 중국 호남성과 호북성을 가르는 것은 동정호를 기준으로 삼는 것인데 동정호는 중국대륙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동정호는 중국의 신화나 전설과 관계가 많은 곳으로 이 호수로 흘러드는 상강은 바로 호남성의 수도인 장사를 관통하고 있다. 일제 강점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까지 피해가기 바로 전 일 년여 동안 임시 정부 거처로 삼기도 했던 장사는 하늘의 별자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하늘에는 장사 좌 땅에는 장사. 이 도시가 장사라는 이름을 갖게된 다른 연유는 상강에서 발달된 모래톱에 지어진 도시라는 의미도 있다고.
장사 중심에서 서쪽으로 상강을 넘으면 악록산이 상강 서부의 장사를 감싸고 있는데 이 악록산 동편 산기슭에는 모택동이 청년 시절을 보낸 악록서원을 품고 있다. 악록서원은 중국 송나라 시대 중국 강남 4대 서원의 하나인데 남송 시절 주희와 장식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악록서원은 모택동이 공부한 곳으로 더 유명한데 지금도 모택동의 침대와 기숙사가 이곳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모택동이 공부하다 힘이 들면 쉬었다던 애만정(愛晩亭)이라는 정자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사시 동쪽 교외에는 중국 서한(西漢) 초기(BC 206년) 장사국 승상 대후 가족 묘지가 70년대에 공사 중에 출토되었는데 이 묘지에서 살아있는 듯한 여성의 유해가 나와 중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승상부인의 미이라는 죽으면 가장 먼저 상한다는 장기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구경꾼들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모두 세 기의 고분에서 한나라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토우, 도기는 물론 비단, 면사 등의 진귀한 방직물도 발굴되었다. 이외에 현대 지도와 유사한 지도도 발굴되어 관련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약 10만 여자에 달하는 사료가 출토되어 역사, 철학, 과학기술 등에 관한 귀중한 역사적 문헌자료가 되고 있다.
장사 시에서 고속도로로 두 시간 여 그리고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리니 상덕이라는 작은 도시와 마주한다. 이른 아침 장사 시를 출발한 버스가 비포장길을 경찰의 캄보이를 받으면서까지 기를 쓰고 달려온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도연명의 고향 도화원이 상덕시 바로 이웃에 있었는데 오전 열 한 시가 도화원 축제의 개막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최측의 정성어린 축제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그 굵기를 더해 처음 시작하는 축제를 망치고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대낮에 폭죽을 하늘 높이 쏘아대고 있었는데 흐린 날씨였으니 망정이지 맑은 하늘로 쏘아댔을 불꽃을 상상하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국 사람들은 모든 행사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죽 쏘기를 좋아한단다. 심지어는 장례식에서조차.
도화원은 동진 시대 도연명이 이곳을 백성들이 편안히 쉬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상향으로 묘사하여 우리들에게 상상의 도시인 무릉도원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진나라 시절 이웃 도시인 무릉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은거한 곳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16세기 전 도연명은 도화원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선경으로 묘사했는데, 실제로 이곳은 아름다운 산 속에 열매가 달리지 않는 복숭아 꽃밭과 계곡, 도교 사원과 정자들이 그림처럼 안겨 있는 곳이다. 진나라 시대에 처음 조성되어 당과 송나라 시대에 번창하다가 원나라 시대에 완전히 파손된 적이 있고 이후 명과 청나라를 거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곳이다. 도화원은 또한 아직까지도 중국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도교 사상의 중심인 고대 중국 4대 도교 사원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동굴 서른 다섯 개와 마흔 여섯 곳의 기복의 장소가 있다. 도화원은 도연명뿐만 아니라 맹호연, 왕창령, 왕유, 이백 등의 중국 문호들이 다녀가면서 시를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약 8평방 킬로미터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전설과 신화의 땅에서는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매년 3월 28일이면 축제가 열리는데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여 복숭아꽃 향기에 취하게 해 무아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같이 동반한 중국 전문 여행사의 정사장은 호남성 여행 일정 내내 유머와 재치있는 말재간으로 우리 일행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정사장은 지난 3년간 중국 대륙의 웬만한 관광지를 대부분 섭렵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우리 여행 일정의 주 목적지인 장가계 만큼은 초행길로서 요즈음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고 있어 관련 상품 개발을 위해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사장은 또 중국 판매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지의 취향이 늘 바뀌어서 상품기획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쿤밍, 구이린, 하이난, 장가계 식으로 손님의 취향이 늘 순환되고 있어 항공사와 패키지여행사가 상품 수요를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품개발이 어려울 수밖에.
도화원에서 버스로 산골길을 두어 시간쯤 달렸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 일행은 덜컹거리는 버스와 피곤이 겹쳐 비몽사몽간에 계절도 아닌 도화원의 복숭아 향기에 취해 있었을까. 눈을 떠보니 수 백 개의 석순들이 갑자기 우리를 가로막았다. 서유기 영화를 촬영했다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변덕스럽게도 구이린보다도 더 좋아한다는 3000개의 석순의 숲 장가계. 삼국지의 장량이 숨어살아서 장가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1992년 UNESCO는 이 장가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고 1982년 중국 정부가 지정한 국립공원 1호의 명승지이다.
아침에 케이블카를 타고 황석채에 오르니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물안개에 둘러싸인 석봉들이 한 폭의 동양화 그대로이다. 그래서 이 곳은 화가, 사진작가들이 일년 내내 몰려들고 있고 등산가들의 꿈이기도 하단다. 장가계의 명물 석봉과 석순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고도 1,300m를 오르면 황석채라는 곳에서 사방으로 모두 눈 아래로 펼쳐진다. 이 봉우리들은 금편계곡을 따라 20여 리를 걸으면서 또 다른 장관으로 다가선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 아래를 보아도 와와, 위를 보아도 와와 라는 탄성을 지르기 때문에 일명 와와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도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얼마나 절경이면 금편계곡에는 나이 많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가마가 줄을 지어 서있을까.
장가계 시에서 한 시간 여 버스를 타면 천자산이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100㎢에 달하는 천자산 역시 2,000여 개의 석봉과 석순들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이다. 장가계 시 외곽에는 최근에 발견된 황룡동굴이 있는데 동굴을 다 돌아보려면 처음에는 보우트를 이용해야 하고 나중에는 도보로 4층이나 올라가면서 볼거리가 펼쳐지는 대형 동굴이다. 전체 면적이 20헥타르나 되며 수직 높이로 100m가 넘는 규모란다, 이 동굴 안에는 네 개의 호수, 세 개의 폭포, 열세 개의 대형 광장이 있으며 그 안에 헤아릴 수 없는 석순, 석주, 석화 등이 화려한 조명으로 환타지를 연출하고 있다. 장가계 인근에는 아직 관광객을 위해서 개발이 되지 않아 접근이 어려운 천문산과 원가계가 있는데 이 곳이 개발되어 관광객에게 개방된다면 장가계를 돌아보는데 만도 일주일은 잡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봉황고성·남방장성
호남성 여유국은 우리 일행을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장가계에서 길수까지의 기차여행 기회가 그 중의 하나이다. 처음 타보는 중국 기차의 침대 칸은 침대 시설과 시트 등의 위생 상태가 유럽의 침대 열차에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리 나라는 땅덩어리가 작아 침대 열차가 없으니 비교의 대상이 못되고.
호남성내 토가족과 묘족 등 소수민족 자치구인 상서자치구의 수도 길수시에서 남쪽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우리 나라의 60년대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시골 모습이 연결되고 비포장길 중간에 남방장성이 나타난다. 이곳은 최근에 발견되어 복원된 성인데 베이징의 만리장성과 비교하여 남방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길수에서 남방장성에 이르기 전 탁강변을 둘러싸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독특한 모습으로 다가서는데 봉황고성이라는 곳이다. 마치 중국의 축소판 베네치아로 보이기도 하는 이곳은 납이산을 끼고 190km나 되는 명과 청나라 시대에 축조된 중국 남방지역의 최대 장성이다. 성문 내 시내 쪽으로는 천왕묘, 회룡각, 고성루 등이 보존되어 있고 중국 근대의 문호 심종문의 생가와 묘소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으며 마침 심종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강변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이 축제에 몰려든 중국인들을 보고 우리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심종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중국 명사들은 봉황고성의 빼어난 경관에 빠져 아직도 이곳에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봉황고성은 특히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유럽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이곳은 여강고성, 안휘성 그리고 절강성과 함께 중국 4대 고성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음식·숙박·교통편
중국을 얘기하면서 음식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호남 지역은 마늘과 고추를 양념으로 많이 써서 맵고 짠 음식이 감칠 맛 나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중국 요리는 아직까지 값이 싸 큰 부담이 되지 않고 특히 길주에서 나는 주귀주는 중국 최대의 명주로서 술의 향기가 독특하고 술 마신 뒤끝이 말끔해서 좋다. 이외에 중국은 지방별로 술을 닮고 있어 호남성에도 무릉주, 상서왕 등 큰 부담 없는 가격으로 좋은 술을 푸짐한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어 식도락가들의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장사와 장가계는 아직 국제선이 취항하고 있지 않아 상해, 홍콩 등의 인근 도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장가계에 대한 인기를 등에 업고 최근에는 전세 비행기들이 직항으로 많이 취항하고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기차 여행을 한번 권하고 싶다. 철도가 중국 각 도시를 잘 연결해 주고 있고 기차 객차 시설 역시 깨끗해서 권할 만 하다. 그러나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아직 비포장 구간이 많아 피해야 한다.장사나 길수와 같은 대도시의 호텔은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장가계는 황석채와 금편계곡 기슭에 3성급 호텔만이 있는데 3성급 이지만 우리 일행이 묵었던 비파계호텔(0744-5718888)은 낮은 구조의 건물과 이탈리아 풍의 중정을 갖춘 깨끗한 시설이어서 권할 만 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여행자들은 이런 외진 장소보다는 저녁에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장가계 시내의 호텔을 선호한다는 게 현지 여행사 직원의 귀뜸이다. 2002 10 19
https://www.gtn.co.kr/index.asp?
명동 인근의 한 호텔에서 중국 여유국 한국 지국장 주최로 조찬 모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2002년 중국호남 여유제(HUNAN CHINA TOURISM FESTIVAL 2002)에 초청된 기자단과 중국 전문 판매 여행사 간부와 직원 몇 명이 함께 자리하였다. 식사가 시작되기 전에 설기평 지국장이 인사를 하면서 중국여행이 처음인 사람 있으면 손들어 보란다. 한 잡지 기자가 손을 들었다. 그 젊은 기자를 보면서 나는 속이 좀 켕겼다. 사실은 나도 이번 중국여행이 처음이었지만 여행업계에 20년 이상을 종사한 내가 가까이 있는 중국 한번 못 가보았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져 차마 손을 들 수가 없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설지국장은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가 될 장가계(張家界)는 거리 때문에 본인도 아직까지 가보지 못한 절경인데 우리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이 엄청난 행운이란다.
장가계에 대해 전혀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그저 무덤덤한 기분이었다. 실은 처음 여행길이니 기왕이면 북경이나 상해 같은 곳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다음 날 저녁 해가 떨어진 직후 우리는 장사(長沙) 공항에 도착하였다. 장사에 오기 전 잠시 비행기를 바꾸어 탄 푸동공항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장사 공항은 국제선 공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대적 시설은 물론 공항 공간이 넓고 쾌적하여 나를 놀라게 하였다. 중국은 인프라가 형편없다던데.
이런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호남성 여유국에서 우리 일행을 영접하러 온 여직원의 모습이었다. 비행기가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공항에 늦게 나온 게 되어 ‘쏘리 쏘리’를 연발하던 이 아가씨의 모습이나 옷차림은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젊은 중국여인들과는 천지차이가 있는 것이었다. 훤칠한 키가 그렇고 또 웬 세련된 옷차림! 설지국장이 북경에서 너무 멀어 장가계 구경 한번 못했다고 해서 순 벽촌인 줄만 알았더니 우리가 자랑하는 인천공항 못지 않은 장사공항은 무엇이고 밀라노나 파리 패션의 옷차림이 분명한 저 중국 미인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후 여행 일정 내내 우리를 동반한 이 장사 미인 황크(黃可)는 예의 그 세련된 패션과 매너 그리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들을수록 정감이 가는 달콤한 중국어 악센트로 우리 일행을 사로잡았다.
‘인물은 상강 변 초나라에서 나고 산수는 동정호 이남이다.’(人文湘楚 山水湖南) 장사시를 관통하는 상강(湘江)을 경계로 하여 오나라와 촉나라를 품어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였던 호남지역은 예로부터 황흥, 채악 등 걸출한 문인, 정치인, 군인 등의 인물을 많이 배출하였는데 모택동, 유소기. 호요방, 화국봉 등이 그렇고 현재 중국 국무원 총리인 주룽지 역시 호남성 사람이다.
장사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여를 달리면 상담시가 나오고 이 상담시에는 소산이라는 조그만 촌락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60년대 10억 중국인들의 성지였던 모택동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불과 40km 떨어진 영향에 문화혁명 당시 모택동과 권력을 다투었던 유소기의 생가가 이웃해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인물을 낼 때는 반드시 라이벌과 함께 내려 자웅을 겨루게 한 것이 인류사라고 했던가. 중국 호남성과 호북성을 가르는 것은 동정호를 기준으로 삼는 것인데 동정호는 중국대륙의 배꼽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동정호는 중국의 신화나 전설과 관계가 많은 곳으로 이 호수로 흘러드는 상강은 바로 호남성의 수도인 장사를 관통하고 있다. 일제 강점 시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경까지 피해가기 바로 전 일 년여 동안 임시 정부 거처로 삼기도 했던 장사는 하늘의 별자리를 따서 지은 이름이란다. 하늘에는 장사 좌 땅에는 장사. 이 도시가 장사라는 이름을 갖게된 다른 연유는 상강에서 발달된 모래톱에 지어진 도시라는 의미도 있다고.
장사 중심에서 서쪽으로 상강을 넘으면 악록산이 상강 서부의 장사를 감싸고 있는데 이 악록산 동편 산기슭에는 모택동이 청년 시절을 보낸 악록서원을 품고 있다. 악록서원은 중국 송나라 시대 중국 강남 4대 서원의 하나인데 남송 시절 주희와 장식이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악록서원은 모택동이 공부한 곳으로 더 유명한데 지금도 모택동의 침대와 기숙사가 이곳에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모택동이 공부하다 힘이 들면 쉬었다던 애만정(愛晩亭)이라는 정자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장사시 동쪽 교외에는 중국 서한(西漢) 초기(BC 206년) 장사국 승상 대후 가족 묘지가 70년대에 공사 중에 출토되었는데 이 묘지에서 살아있는 듯한 여성의 유해가 나와 중국은 물론 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곳에서 출토된 승상부인의 미이라는 죽으면 가장 먼저 상한다는 장기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어 구경꾼들의 경탄을 자아내고 있다. 모두 세 기의 고분에서 한나라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토우, 도기는 물론 비단, 면사 등의 진귀한 방직물도 발굴되었다. 이외에 현대 지도와 유사한 지도도 발굴되어 관련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약 10만 여자에 달하는 사료가 출토되어 역사, 철학, 과학기술 등에 관한 귀중한 역사적 문헌자료가 되고 있다.
장사 시에서 고속도로로 두 시간 여 그리고 비포장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달리니 상덕이라는 작은 도시와 마주한다. 이른 아침 장사 시를 출발한 버스가 비포장길을 경찰의 캄보이를 받으면서까지 기를 쓰고 달려온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도연명의 고향 도화원이 상덕시 바로 이웃에 있었는데 오전 열 한 시가 도화원 축제의 개막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최측의 정성어린 축제 준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그 굵기를 더해 처음 시작하는 축제를 망치고 있었다. 개막식에서는 축제 분위기를 돋구기 위해 대낮에 폭죽을 하늘 높이 쏘아대고 있었는데 흐린 날씨였으니 망정이지 맑은 하늘로 쏘아댔을 불꽃을 상상하니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중국 사람들은 모든 행사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폭죽 쏘기를 좋아한단다. 심지어는 장례식에서조차.
도화원은 동진 시대 도연명이 이곳을 백성들이 편안히 쉬면서 즐겁게 살 수 있는 이상향으로 묘사하여 우리들에게 상상의 도시인 무릉도원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 곳은 또한 진나라 시절 이웃 도시인 무릉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은거한 곳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16세기 전 도연명은 도화원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선경으로 묘사했는데, 실제로 이곳은 아름다운 산 속에 열매가 달리지 않는 복숭아 꽃밭과 계곡, 도교 사원과 정자들이 그림처럼 안겨 있는 곳이다. 진나라 시대에 처음 조성되어 당과 송나라 시대에 번창하다가 원나라 시대에 완전히 파손된 적이 있고 이후 명과 청나라를 거치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한 곳이다. 도화원은 또한 아직까지도 중국 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도교 사상의 중심인 고대 중국 4대 도교 사원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동굴 서른 다섯 개와 마흔 여섯 곳의 기복의 장소가 있다. 도화원은 도연명뿐만 아니라 맹호연, 왕창령, 왕유, 이백 등의 중국 문호들이 다녀가면서 시를 남긴 곳으로도 유명하다. 약 8평방 킬로미터의 산으로 둘러싸인 이 전설과 신화의 땅에서는 복숭아꽃이 만발하는 매년 3월 28일이면 축제가 열리는데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들여 복숭아꽃 향기에 취하게 해 무아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같이 동반한 중국 전문 여행사의 정사장은 호남성 여행 일정 내내 유머와 재치있는 말재간으로 우리 일행을 즐겁게 해주었는데 정사장은 지난 3년간 중국 대륙의 웬만한 관광지를 대부분 섭렵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우리 여행 일정의 주 목적지인 장가계 만큼은 초행길로서 요즈음 한국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선호하고 있어 관련 상품 개발을 위해 이번 여행에 참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사장은 또 중국 판매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행지의 취향이 늘 바뀌어서 상품기획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쿤밍, 구이린, 하이난, 장가계 식으로 손님의 취향이 늘 순환되고 있어 항공사와 패키지여행사가 상품 수요를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상품개발이 어려울 수밖에.
도화원에서 버스로 산골길을 두어 시간쯤 달렸을까.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떤 일행은 덜컹거리는 버스와 피곤이 겹쳐 비몽사몽간에 계절도 아닌 도화원의 복숭아 향기에 취해 있었을까. 눈을 떠보니 수 백 개의 석순들이 갑자기 우리를 가로막았다. 서유기 영화를 촬영했다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변덕스럽게도 구이린보다도 더 좋아한다는 3000개의 석순의 숲 장가계. 삼국지의 장량이 숨어살아서 장가계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단다. 1992년 UNESCO는 이 장가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고 1982년 중국 정부가 지정한 국립공원 1호의 명승지이다.
아침에 케이블카를 타고 황석채에 오르니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물안개에 둘러싸인 석봉들이 한 폭의 동양화 그대로이다. 그래서 이 곳은 화가, 사진작가들이 일년 내내 몰려들고 있고 등산가들의 꿈이기도 하단다. 장가계의 명물 석봉과 석순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고도 1,300m를 오르면 황석채라는 곳에서 사방으로 모두 눈 아래로 펼쳐진다. 이 봉우리들은 금편계곡을 따라 20여 리를 걸으면서 또 다른 장관으로 다가선다. 사람들이 이곳에 와 아래를 보아도 와와, 위를 보아도 와와 라는 탄성을 지르기 때문에 일명 와와산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도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얼마나 절경이면 금편계곡에는 나이 많아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가마가 줄을 지어 서있을까.
장가계 시에서 한 시간 여 버스를 타면 천자산이 케이블카로 연결된다. 100㎢에 달하는 천자산 역시 2,000여 개의 석봉과 석순들이 눈 아래로 펼쳐지는 장관이다. 장가계 시 외곽에는 최근에 발견된 황룡동굴이 있는데 동굴을 다 돌아보려면 처음에는 보우트를 이용해야 하고 나중에는 도보로 4층이나 올라가면서 볼거리가 펼쳐지는 대형 동굴이다. 전체 면적이 20헥타르나 되며 수직 높이로 100m가 넘는 규모란다, 이 동굴 안에는 네 개의 호수, 세 개의 폭포, 열세 개의 대형 광장이 있으며 그 안에 헤아릴 수 없는 석순, 석주, 석화 등이 화려한 조명으로 환타지를 연출하고 있다. 장가계 인근에는 아직 관광객을 위해서 개발이 되지 않아 접근이 어려운 천문산과 원가계가 있는데 이 곳이 개발되어 관광객에게 개방된다면 장가계를 돌아보는데 만도 일주일은 잡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봉황고성·남방장성
호남성 여유국은 우리 일행을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았는데 장가계에서 길수까지의 기차여행 기회가 그 중의 하나이다. 처음 타보는 중국 기차의 침대 칸은 침대 시설과 시트 등의 위생 상태가 유럽의 침대 열차에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었다. 우리 나라는 땅덩어리가 작아 침대 열차가 없으니 비교의 대상이 못되고.
호남성내 토가족과 묘족 등 소수민족 자치구인 상서자치구의 수도 길수시에서 남쪽으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우리 나라의 60년대 모습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시골 모습이 연결되고 비포장길 중간에 남방장성이 나타난다. 이곳은 최근에 발견되어 복원된 성인데 베이징의 만리장성과 비교하여 남방장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길수에서 남방장성에 이르기 전 탁강변을 둘러싸고 고풍스런 건물들이 독특한 모습으로 다가서는데 봉황고성이라는 곳이다. 마치 중국의 축소판 베네치아로 보이기도 하는 이곳은 납이산을 끼고 190km나 되는 명과 청나라 시대에 축조된 중국 남방지역의 최대 장성이다. 성문 내 시내 쪽으로는 천왕묘, 회룡각, 고성루 등이 보존되어 있고 중국 근대의 문호 심종문의 생가와 묘소가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으며 마침 심종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가 강변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이 축제에 몰려든 중국인들을 보고 우리 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심종문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중국 명사들은 봉황고성의 빼어난 경관에 빠져 아직도 이곳에 별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봉황고성은 특히 이국적인 분위기 때문에 유럽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곳인데 이곳은 여강고성, 안휘성 그리고 절강성과 함께 중국 4대 고성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음식·숙박·교통편
중국을 얘기하면서 음식을 빼놓을 수가 없다. 특히 호남 지역은 마늘과 고추를 양념으로 많이 써서 맵고 짠 음식이 감칠 맛 나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중국 요리는 아직까지 값이 싸 큰 부담이 되지 않고 특히 길주에서 나는 주귀주는 중국 최대의 명주로서 술의 향기가 독특하고 술 마신 뒤끝이 말끔해서 좋다. 이외에 중국은 지방별로 술을 닮고 있어 호남성에도 무릉주, 상서왕 등 큰 부담 없는 가격으로 좋은 술을 푸짐한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어 식도락가들의 천국이라고 할만하다. 장사와 장가계는 아직 국제선이 취항하고 있지 않아 상해, 홍콩 등의 인근 도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의 장가계에 대한 인기를 등에 업고 최근에는 전세 비행기들이 직항으로 많이 취항하고 있어 편리하다. 그러나 여유가 있는 여행자라면 기차 여행을 한번 권하고 싶다. 철도가 중국 각 도시를 잘 연결해 주고 있고 기차 객차 시설 역시 깨끗해서 권할 만 하다. 그러나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한 장거리 여행은 아직 비포장 구간이 많아 피해야 한다.장사나 길수와 같은 대도시의 호텔은 시설이나 서비스 면에서 선진국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 다만 장가계는 황석채와 금편계곡 기슭에 3성급 호텔만이 있는데 3성급 이지만 우리 일행이 묵었던 비파계호텔(0744-5718888)은 낮은 구조의 건물과 이탈리아 풍의 중정을 갖춘 깨끗한 시설이어서 권할 만 하다. 그러나 우리 나라 여행자들은 이런 외진 장소보다는 저녁에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장가계 시내의 호텔을 선호한다는 게 현지 여행사 직원의 귀뜸이다. 200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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