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도시’답게 친절함 곳곳에' 2002 03 08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35
조회
221
https://www.gtn.co.kr/home/news/news_view.asp?news_seq=6256&s_key=%B9%DA%C0%C7%BC%AD%20%B1%B3%BC%F6

직업상 비교적 원거리 여행을 많이 한 필자는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 일본 - 그것도 비행기로 채 한시간도 안걸려 닿을 수 있는 일본열도 남단 규슈지역 나가사키현 일대의 온천지대를 여행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나가사키시 당국이 일본인들의 국내여행 수요가 줄어들자 그 빈자리를 한국과 중국인 관광객들로 채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으로 때마침 개최된 춘절기간의 랜턴페스티발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가까운 거리이지만 일본 여행이 처음이나 마찬가지인 필자에게 나가사키 지역은 마치 남부 유럽의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고 있는 인상을 주었다. 햇살이 따스한 해양성 날씨와 이 지역의 아열대성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 분포가 그랬고 늘 희뿌연 서울 하늘에서 시달리다가 모처럼 만난 무공해 공간을 통해 보이는 파란 하늘의 인상이 그러 했다. 인천공항에서 불과 한 시간밖에 날아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다니!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일본 여행후 책써내기를 다투어 하고 있구나. 그것도 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나가사키는 1845년 8월9일 원폭이 투하된 도시로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원폭투하지점에 평화공원과 원폭자료관이 조성되어 관광객들에게 그 때의 참상을 일깨워주고 있다. 나가사키는 또한 17세기에 서양문물을 향해 일본이 처음으로 개항한 도시로서 그 당시의 선교 유적과 데지마섬(出島)으로 대표되는 일본 최초의 서양과의 교역지인 상관이 잘 보존되어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물론 상관 자체는 지금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지만. 나가사키는 일찍이 서양과의 개항지였던 관계로 주민들이 다른 지역의 일본 사람들과는 달리 개방적이고 친절하다는 게 안내 역할을 맡아준 부산시청 소속 파견 연수 공무원인 이 원실씨의 설명이다. 필자가 일 주일 동안 만난 이 지역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도 이 원실씨의 설명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나가사키는 일본 쇄국 시대에 유일하게 창구역할을 했던 항구로서 서양과는 물론 중국과도 오랫동안 교류를 해온 도시로서 나가사키 특유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왔으며 그 유적으로 나가사키 시 남산에 위치한 메이지 시대의 글로버 가든, 1893년에 중국인들에 의해 해외에서는 처음 만들어 졌다는 공자묘 등이 있고 일본에서는 드물게 1864년에 26인의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오오무라 성당 등이 혼재되어 있는 도시이다. 나가사키 시내의 원폭 투하지점을 공원으로 조성한 평화공원에 인접해 있는 원폭 자료관에서는 종전(終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던 1945년 당시 원폭 투하로 빚어진 처참한 피해 상황을 돌아볼 수 있어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 원폭 투하에 의해 파괴된 모습이었는데 나가사키는 원폭 피해는 물론 17세기 선교 이후 순교자들의 순교지가 많아 일본에서 흔치않은 성지 순례지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카톨릭신자인 필자에게는 왜 하필이면 순교성지인 나가사키에 폭탄이 투하되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가사키에는 이외에 서양과의 교역을 위해 서양인들의 주거지가 집단적으로 조성되어 있었는데 이 지역을 보존해 관광지로 조성하여 개방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을 헐어낸 것이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나가사키 인근에는 유명한 오마바온천이 있는데 노천온천의 수온이 섭씨 100도가 넘는 온천도 있어 온천물에 계란을 삶아먹는 것을 보고 놀라웠다. 인상적인 것은 온천의 수온이 높은 것은 물론 수량이 풍부해서 매일 25만톤이 넘는 온천수가 오마바의 하수구와 해변으로 넘쳐흘러 온 동네가 온천 수증기로 뒤덮혀 있는 모습이었다. 이곳 온천의 특징은 옥상과 해변에도 온천을 운영하고 있는 점이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65도의 노천탕에 발만을 담그었는데도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온천을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를 꼭 한번 데리고 와서 며칠 묵어 가고 싶은 장소였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지역의 대중 교통이 불편해 접근이 쉽지 않아 많은 관광객들이 인근의 운젠온천을 가기 위한 경유지로만 거쳐간다는 것이었다. 오마바에서 한 시간여를 가파르게 운전하여 해발 700미터 고지에 오르면 역시 노천 온천이지만 유황온천인 운젠(雲仙)온천을 만나게 되는데 이곳 역시 노천 온천의 수증기가 온 동네를 덮고 있는 것은 물론 유황냄새가 진동해 일명 지옥 순례지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지역은 일본 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이기도 하며 이곳에서 자동차로 20분여를 올라가면 1991년의 화산 폭발로 43명의 인명을 앗아간 평성신산이 있고 그 신산 아래로는 화산 폭발로 인한 토석류가 계곡을 할퀴고 흘러내려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웅변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그 산아래 시마바라 시가지가 펼쳐져 있는데 이 도시에는 화산 재해의 참혹함을 재현한 운젠화산재해기념관을 건립해 학생들과 일반 관광객들의 체험관광을 유치하고 있었다. 나가사키와 시마바라를 돌아보고 느낀 것은 원자폭탄 투하와 화산폭발로 상징되는 인간 능력의 한계와 도전 그리고 이를 응징하려는 신의 의지 같은 것이었다.

나가사키 지역은 이 지역의 개방적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축제들이 개최되고 있어 일년 내내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 매년 구정에 시작해서 정월 대보름에 끝나는 중국 유래의 랜턴페스티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일종의 조정 경기이자 역시 중국 유래인 페론대회 그리고 매년 4월에 열리는 범선 축제 등이 그것들이다. 나가사키는 옛날부터 중국·네델란드·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아 중화요리나 싯포꾸 요리 등 외래문화의 영향을 흡수한 독특한 식문화를 발전시켜왔으며, 나가사키 지역의 여행을 마무리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반영한 이들 음식을 먹어 보는 일일 것이다. < 나가사키=안양대 박의서교수 euisuh@yahoo.com>> 2002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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