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의 피냉과 말라카 - 예술과 문화의 도시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21
조회
205
정신이 어수선하다보니 이번 기록이 세 번째다. 엊그제의 워드 작업은 저장 과정에서 키를 잘 못 눌러 날라갔다.

어제 수첩에 같은 내용을 적었었는데 오늘 아침 호텔방 비우면서 서둘르느라 수첩을 어딘가에 흘리고 나왔다. 흘린 것 까지는 익스큐스가 되겠는데 문제는 오늘 오전 내내 내 마음이 온통 잃어버린 수첩에 맴돌고 있는 딱한 상황이다. 수첩에 적어 놓은 스케쥴과 자꾸 무엇인가를 빠뜨리는데 대한 한심한 생각이 오전 내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세월가며 집착이 심해지는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을꼬...

저가 항공 에어아시아는 빈자리가 없이 꽉 찼다. 국제선 저가항공 탑승은 이번이 처음인데 보딩시간이 0시가 넘은 불편한 스케쥴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시장의 반응이다. 3년 연속 세계 최고의 저가항공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다. 새벽 6시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해서 또 한번 놀란다. 저가항공 전용 터미널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라카행 버스 정보가 없는 나는 비행기 안에서 말레이시아 승무원에게 물어 정규 터미널행 셔틀 버스를 타고 KL국제공항에 도착한다. 그런데 어이가 없다. 말라카행 시외버스는 저가 전용터미날인 LCCT에서만 출발한단다.

하는 수 없이 버스를 다시 타니 타고온 셔틀버스 기사가 웬일이냐며 놀란다. 말라카행 시외버스를 타기위해 LCCT로 다시 돌아간다고 하니 왜 자기한테 미리 묻지 않았냐고 핀잔이다.

말라카행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킴이라는 신학교 교수를 만났다. 중국계 말레이인데 영어가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다. 서양사람들과 달리 동양 사람들과는 이렇게 만나도 쉽게 친해진다. 구순이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데 인도네시아인 도우미의 휴가길을 배웅해주고 말라카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킴은 말레이시아에서 중국인이 받고 있는 차별대우와 말레이시아 정부의 부패에 대해 매우 흥분해했다. 말레이시아 정부의 온갖 차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들의 경쟁력이 훨씬 훌륭하단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노력 덕분이란다.

 

킴을 통해서 말레이시아와 말라카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었다. 말라카 버스 터미널에서 차이나타운까지 가는 교통편을 물었더니 바쁘지 않으면 자기 차를 타고 가란다. 조카가 버스터미널까지 마중나오기로 했단다. 킴은 말라카이외의 후보 여행지로 피냉을 추천해주면서 버스 티켓 예매까지 도와준다. 밤 9시 30분에 출발하는 오버나잇 버스로 다음 날 새벽 5시에 피냉에 도착하는 버스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청춘인양 착각하며 여행하고 있는 게 어찌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환갑 넘긴 나이에 밤새 버스에서 시달린 후 새벽 5시에 도착해 그 피로를 어떻게 감당할려고...

킴의 조카 차를 얻어타고 말라카 차이나타운의 김선생집에 도착했더니 아뿔사! 갤러리 도어가 커다란 자물쇠로 묵직하게 잠겨있는 게 아닌가. 김선생이 이메일로 보내 준 두 개의 전화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모두 불통이다. 하는 수 없이 킴이 자기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니 그제서야 전화연결이 된다.

갤러리는 큰 부자가 살았던 집으로 보이는데 그 규모가 매우 컸다. 낡긴 했지만 더운 지방의 건물답게 여기저기 통풍시설이 잘 되어 있어 쾌적한 모습이다. 킴은  그의 조카와 함께 김선생 갤러리를 돌아보며 한국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인다. 킴과 그의 조카에게 갤러리 안내를 해준 후 서울에서 가져온 내 여행기 '로망아프리카'에 싸인해 선물했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킴과 그의 조카가 떠난 후 차이나타운의 한 중국식당에서 김선생과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게스트 룸에 돌아와 낮잠을 청한다. 혼자 여행인데다 새벽에 도착한 탓으로 몹시 피곤하다. 저녁은 인근의 운하를 산책한 후 운하 근처에서 매식. 그런데 김선생의 입장이 생각했던 것 보다 많이 딱한 형편인 것 같다. 살기에는 좋은 곳으로 보이나 먹고 살 길이 막연해 보이기 때문이다. 김선생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는 것 같고 달랑 방 하나 뿐인 게스트하우스도 영업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초대받아 왔지만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다음 날 저녁, 김선생은 갤러리 겸 집 근처의 지인들을 불러 모아 한식당에서 저녁을 사겠단다. 저녁값으로 현지화 440링깃이 나왔는데 저녁을 내가 사는 게 도리일 것 같아 굳이 계산하겠다는 김선생을 뿌리치고 내가 계산했다. 열명이 삼겹살을 먹었는데 우리 돈으로 18만원 정도 지불했다. 그나마 초대 손님 중의 하나인 애플 킹이 와인 두 병을 가져와 마신 덕분이다. 한국으로 치면 인원에 비해 많이 나온 게 아니지만 현지 물가 수준과 메뉴가 삼겹살과 김치찌개 위주인 점을 감안하면 다소 비싼 계산이다.

이날 저녁을 먹으러 가기 위해 레지나 호라는 중구계 여성이 차를 가지고 나왔다. 김선생에게서 열네살 난 딸과 함께 그림도 배우고 한국말도 배운다고 했다. 젊은 시절 돈을 꽤 모았었는데 남편의 도박때문에 큰 돈을 날렸다고 푸념이다. 시어머니는 부동산이 굉장히 많은 부자임에도 돈쓸 줄을 모르는 노랭이 할망구라고 했다. 본인은 돈을 많이 벌었던 탁월한 사업가라고 했는데 본인 주장대로 흐물흐물한 여자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약간의 뻥이 있는 듯. 어쨌거나 성격이 매우 유쾌하고 하얀 피부에 밉지 않은 인상이어 같이 수다(?) 떨기에는 아주 괜찮은 파트너다. 빈둥빈둥했을지도 모를 나를 위해 만 이틀이나 말라카 여정을 동반해 주어 고마울 뿐이다.

김선생 이웃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애플 킹은 중국인이 좋아한다는 사과만을 그리는 화가로 이혼하고 혼자 산단다. 그림이 중국인이 좋아하는 소재라서 잘 팔린 덕에 돈을 좀 모았단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 가구 수집이 취미인데 아주 고가의 가구들을 갤러리에서 그림과 함께 진열하고 있었다. 역시 혼자인 김선생과 잘 지낼 수 있으면 서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쩌면 이 길만이 김선생이 현지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일지도 모르겠다. 서로 관심은 많은 것 같은데 나로서는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다.

애플 킹과 파트너라는 스웬 역시 이웃에서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주 젊은 태국 여자와 살고 있다. 스웬은 건물을 주로 그리는 화가이고 역시 화가인 부인은 민물고기를 그린다.

그을린 모습이 한국 사람같지 않은 한국 신부와 결혼해 사는 이란 화가 아밀도 초청되어 왔다. 아밀 역시 화가인데 잘 생긴 호남형이지만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촌 어디에서나 쉽지 않은 모습이다. 이란 태생이지만 말라카의 예술적인 분위기가 좋아 3년 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살고 있다고 했는데 돼지고기로 요리한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아 비빔밥을 따로 시켰다. 두 딸을 결혼시킨 내 입장에서 보니 한국 신부의 부모 마음이 얼마나 아련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이 사람들에게 저녁을 낸 답례로 애플 킹이 그 다음날 바로 크랩으로 저녁을 사겠단다. 풍성한 크랩으로 말라카의 저녁을 즐긴 그 다음날 저녁에도 이웃들은 김선생 갤러리의 뒤곁에서 바비큐 파티도 열어 주었다. 역시 동양사람들끼리라 쉽게 친해진다.

바비큐 파티 후 이틀 동안 나를 안내했던 레지나의 차를 얻어타고 피낭행 밤 버스를 타고 바로 곯아 떨어진다.

 

이튿날 이른 새벽 다섯 시에 피냉 외곽의 버스 정류장에 떨어지니 황당하기 그지 없다. 무허가 택시 기사들이 여기저기서 호객 한다. 무허가 택시는 위험하다며 타지 말라고 레지나가 그랬는데...그러나 한 기사가 집요하게 흥정을 해온 데다 말레이 젊은이가 합승한다고해서 15링깃에 흥정을 하고 택시를 탔다. 예약해 둔 콘티넨탈호텔에 도착해서 첵크인하려 했으나 이른 시간이라 준비된 방이 없단다. 하는 수 없이 로비 소파에서 한 시간여를 졸다가 화교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마침 방이 나왔단다. 청소도 되지 않은 방에 들어가 청소 끝내는 걸 기다렸다가 오전 내내 잠을 잔다.

콘티넨탈호텔은 시설에 비해 호텔비도 저렴하고 피냉의 중심가인 죠지타운에 위치해 입지도 탁월하다. 호텔에서 투어를 수배해주는 것도 편리하고 쿠알라룸푸르로 돌아가는 버스도 호텔에서 픽업해 준다고 해서 KL행 버스도 미리 예약했다. 피냉에서 뭘 하며 지낼까 걱정이었는데 편리한 호텔 서비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렸다.

이튿날 아침 중국계 말레이 알렌이 투어 픽업을 왔다. 이웃 호텔에 투숙하고 있는 이탈리아 여행자 3명과 한 팀이 되어 관광을 나선다.

알렌은 은퇴한 동갑네기로 매우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3년여 전에 직장을 은퇴한 후 파트 타임으로 여행사에 근무하고 있단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나이만 동갑인 게 아니라 혈관 계통의 질환을 앓고 있는 것도 나와 비슷하다. 여행사 근무하면서 중국 베이징에서 온 한의사를 안내한 적이 있었는데 매일 취침 전 올리브오일 한 숱갈을 복용할 것을 권유해와 그대로 따라했더니 3개월만에 혈관 질환과 관련된 수치들이 정상으로 돌아갔다며 내게도 똑같이 해볼 것을 권한다. 근무 중에도 틈만나면  손톱 누르기하는 비방도 그 한의사가 알려준 것이란다.

피냉은 외국인 은퇴자들을 많이 유치하고 있는데 피냉 거주 한국인 은퇴자들도 만명이 넘는단다. 큰 돈 투자없이 영주가 가능하고 좋은 기후에 물가도 비교적 싼 편이니 은퇴 후 거주지로 괜찮을 것 같다.

리볼빙 식당의 허명

러브 레인의 다양한 게스트하우스

비교적 싼 음식들

호텔 앞에 동시에 주차된 두 대의 페라리

싼 호텔

리틀인디아

크루즈 입항/독일인

삼륜자전거

크고 넓직한 가옥

인공 운하

죠지타운과 종커스트리트

랑카위섬

이슬람, 불교, 힌두, 개신교, 천주교, 성공회의 공존

깨끗하고 새로운 건물의 쿠알라품푸르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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