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과 다비드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19
조회
211


매년 봄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면 유럽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가는 곳은 아마도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 지방일 것이다. 사람들이 토스카나를 늦은 봄에 많이 찾는 이유는 계절에 맞는 아름다움이 그 곳에 있기 때문인데 토스카나 일대의 자연은 노란 색 봄꽃들이 신록과 어우러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력이 있다. 이러한 편안한 지형과 온화한 기후가 이  곳을 이탈리아 최고의 와인산지로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토스카나 지방 여정의 마무리를 피렌체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자들이 토스카나 여행을 선택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바쁜 여행자들에게 이름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도시이자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 피렌체를 한눈에 감상하는 방법으로 피렌체 서쪽 언덕에 위치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언덕 위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굽어보는 피렌체는 시내를 관통하는 아르노강을 사이에 두고 마치 화려하고 정교하게 꾸며진 화원을 보고 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언덕 뒤편의 미켈란젤로 광장은 이 광장의 중앙에 우뚝 서있는 다비드 상이 아니라면 여행자들에게 그저 주차 편의나 제공하는 평범한 주차장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피렌체에 있는 두 개의 복제품 중의 하나인 미켈란젤로 광장의 이 다비드 모형은 많은 관광객들에게 피렌체 방문을 기념하는 사진촬영의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언덕에 그럴듯한 이름을 부여하여 관광명소로 연출하고 있는 좋은 사례이다.

미켈란젤로가 청년 시절에 완성한 진품 다비드 조각은 토스카나 공국의 정청이었던 베키오궁 앞 시뇨리아 광장에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그곳에도 복제품이 서있고 진품은 아카데미아 미술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다.

석굴암 모형관 건립 추진을 둘러싸고 문화계와 환경단체간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모형관 건립의 당위성 여부와 건립할 경우 모형관의 위치를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근원적인 문제와 모형건립 추진 당국자들이 전문가들과 충분한 사전 의견 수렴 없이 모형관 건립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절차적인 문제로 요약되고 있다.

석굴암 모형관 건립에 따른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모형관 건립이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에 대한 이해가 선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모형관 건립의 목적이 유리 보호벽 설치에 의해 석굴암에의 접근이나 접촉이 금지된 관람자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형관을 어디에 둘 것이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과학문화기구(UNESCO)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석굴암은 관람객들에 의한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70년대 중반부터 유리보호막을 설치하여 보존하여 오고 있다. 이 유리보호막의 설치로 석굴암의 보존 목적은 충분히 달성하고 있다고 보나 유리벽을 통해서 바라보는 석굴암으로는 관람자들이 그 문화적인 가치를 충분히 인식하거나 체험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석굴암 인근에 모형을 건립하여 관람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자는 것이 모형관 건립의 취지일 것이다. 또한 모형관 건립이 석굴암의 문화재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은 아닐 것임으로 모형관 건립 자체에 반대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모형관 건립에 대한 이견이 없다면 모형관의 개수나 위치는 관람객들의 접근이 편리하고 환경을 해치지 않는 장소를 선택하여 설치하면 된다고 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복제품을 다비드 조각상의 원 위치나 미켈란젤로와는 전혀 무관한 언덕 위에 세워놓고 오히려 그 장소를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명명하여 관광명소로 활용하고 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사례는 석굴암 모형관 설치와 관련된 우리 전문가들 사이의 논란을 정리하는 데 좋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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