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관문화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17
조회
193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중국 동진(東晋)의 도연명이 나이 마흔 하나에 그의 마지막 관직인 펑쩌현(彭澤縣)의 현령자리를 박차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선언한 글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상관(上官)의 순시 때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해야되는 것에 대해 쌀 다섯 말밖에 안 되는 적은 봉급을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며 그날로 사직하였다. 귀거래사는 도연명의 이와 같은 기개를 나타내는 일화와 함께 그의 생애의 절정을 장식한 시이다. 도연명은 또 도화원기(桃花源記)라는 산문을 통해 인간이 찾을 수 없는 이상향인 도원경(桃源境) 또는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도원경은 이를테면 서양의 유토피아와 같은 곳으로서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한참을 가다 보니 복숭아 꽃잎이 떠내려오는데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향기에 취해 꽃잎을 따라가다 보니 커다란 산이 앞을 가로막는데 산 양쪽으로는 복숭아꽃이 만발하였다. 어부가 복숭아꽃이 춤추며 나는 가운데를 자세히 보니 계곡 밑으로 작은 동굴이 뚫려 있었다. 그 동굴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의 크기였는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조금씩 넓어지더니 별안간 확 트인 밝은 세상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끝없이 너른 땅에 기름진 논밭, 풍요로운 마을과 뽕나무, 대나무 밭 등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황홀해 하고 있는 어부에게 그곳 사람들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으며 얼굴에 모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런 뜻밖의 상황에 대해 놀라워하는 어부에게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이곳에 온 이후로 한번도 밖에 나간 적이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어부에게 바깥 세상에 대해 궁금해하였다. 어부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준 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며칠간을 더 머문 후 그 곳을 떠나려 하자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 마을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해서는 안 된다는 당부를 하였다. 그러나 어부는 너무 신기한 나머지 돌아오는 길목마다 표시를 하고는 귀향 즉시 고을 태수에게 그 사실을 고하였다. 태수는 기이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곳을 찾으려 했으나 표시해 놓은 것이 없어져 찾을 수 없었다. 그 후 유자기라는 사람이 이 말을 듣고 그곳을 찾으려고 갖은 애를 썼으나 찾지 못하고 병들어 죽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곳을 더 이상 찾으려 하지 않았고, 도원경은 이야기로만 전해지고 있다. 또한 장자는 도원경과 유사한 의미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는데 그 뜻은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곳이라는 말로 장자가 추구한 무위자연의 이상향을 의미한다.

중국 후난성 서북쪽의 상덕(常德)시 인근에는 도화원(桃花源)이라는 아름다운 계곡이 있고 그 이웃에 무릉(武陵)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는데 이 지역에는 장가계, 원가계, 천자산, 천문산 등의 절경이 있고 같은 지역 안에 환상적인 경관의 황룡동굴이 최근에 발견되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특히 도교 사찰의 하나인 이 도화원은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기술한 도원경의 실제 장소라는 주장이 있으며 인근에 있는 무릉의 절경과 황룡동굴 역시 도원경의 배경들과 많은 부분 흡사해 이채롭다.

중국에는 유배를 당하거나 낙향 한 관리들에 의해 만들어진 폄관문화(貶官文化)라는 게 있다. 대부분의 중국 경승지나 유적지가 이 유배 관리들의 행적에 의해 그 가치가 크게 부가되었는데 요즈음 말로 하면 이들에 의해 관광지가 연출된 셈이다. 특히 도연명과 같이 인품과 문품을 두루 갖춘 유배 또는 낙향한 관리들이 가까이 했던 산수나 풍물은 그대로 명물이 되었다. 후난성의 실물, 도화원 역시 도연명의 도원경과는 차이가 많은 곳이지만 땅은 사람에 의해 전해지고 사람은 땅에 의해 전해지는 법이니 사람과 그 사람이 살던 땅은 서로 비추어 모두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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