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산의 적멸보궁

작성자
박 의서
작성일
2023-02-18 20:17
조회
197
우리나라의 불교사찰을 순례하다 보면 한결같이 명당에 위치하고 있어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사찰의 진입로와 인접환경 역시 적송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전국의 유명 불교 사찰이 모두 명당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명당 중의 명당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특히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은 좌청룡 우백호의 중대(中臺)봉우리 끝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고 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실사리를 모신 전각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신라의 승려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부처의 사리와 정골(頂骨)을 나누어 봉안한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양산의 통도사(通度寺), 강원도 오대산 중대(中臺)의 월정사(月精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사자산 법흥사(法興寺)의 적멸보궁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제주도 한라산 중턱의 영실(靈室)에는 현재 존자암(尊者唵)이라는 작은 암자가 복원되고 있는데 이 한라산 영실의 존자암이 우리나라 최초의 적멸보궁이라는 사실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1937년 조선일보사의 전국산악순례사업의 일환으로 한라산을 등반한 시인 이은상은 그의 저서 ‘탐라기행 한라산’에서 영실은 한라산의 만물상으로 그 구도와 모양이 금강산의 만물상과 다름이 없어 오백장군이라는 별호로 불리어지고 있는 한편 석가모니의 여섯째 제자인 발타라존자의 상주처(常住處)라 하여 석라한(石羅漢)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려지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영실의 기암, 동부(洞府)는 수행동(修行洞)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려오고 있고 존자암 뒤편의 봉우리는 불래(佛來)오름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어 이 지역이 불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법주기에 의하면 석가모니의 제자들인 16존자들은 석가모니 사후 불교의 전교를 위해 아시아 전역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 중 여섯 번째 제자인 발타라존자는 오백 나한을 이끌고 탐몰라 주에 상주한다는 기록이 있다. 법주기에 기록된 탐몰라 주는 제주의 다른 이름인 탐라(耽羅)와 합치되고 있어 영실 동부(洞府)의 기암들이 석라한이라고 불리고 있는 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한라산은 한국 불교의 대륙 전래 이전에 남방 해양을 통한 전래와 깊은 인연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한라산에서 발타라존자가 생존한 연대는 석가세존이 열반한 연대가 기원전 486년이고 석가모니제자들은 석가모니 사후에 흩어졌을 것이므로 적어도 2470여 년 전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기원 372년)에 전진(前秦)에서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고 백제에는 침류왕 1년(384년)에 진(晋)에서 들어왔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탐라국은 고구려나 백제의 경우보다 850여 년 전에 이미 불교국이었다는 말이 된다.

한라산 역시 나한들이 살았던 산이라 하여 나한산(羅漢山)으로 불려오다가 조선시대의 억불숭유정책으로 한라산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존자암 주지스님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다만 존자암 주지 스님은 한라산(漢羅山)이 왜 한라산(漢拏山)으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불교 전래에 관한 야사일지라도 이러한 사실(史實)들을 발굴하여 관광상품으로 연출?개발하고자 하는 관광당국의 꾸준한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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